기쁨으로 수용하라.
기뻐하면 기뻐할 일만 생겨난다
힘든 것에는 뜻이 있다.
감사함으로 수용하라.
믿음의 열도를 10배로 늘여라.
100배의 수확이 보장된다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나를 위하는 지름길이다
진리가 아니면 따르지 말라.
길 한번 잘못들면 평생 후회한다.
석불사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다.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특히 거대한 자연 암석들과 더불어 석재 및 금속 재료를 통해 조성된 석불사는 조용선 선사에 의해 1930년에 창건되었다.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금정산에 있는 1930년에 창건한 석불사의 모습이다. 일주문과 대웅전, 범종각 등이 있다.
* 일주문
마애불상군(石佛寺磨崖佛像群)은 대웅전과 칠성각 위쪽으로 약 20m와 40m 높이의 자연 암석에 스물아홉 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불상 왼쪽 암벽에 스물 네 구의 불상이, 불상 오른쪽 암벽에 다섯 구의 불상이 확인된다. 불상 왼쪽 암벽에 좁아지는 암벽 위쪽으로 조각된 불상을 Ⅰ군, 앞쪽으로 세 구의 불상을 Ⅱ군으로 구분한다.
* 대웅전
불상 오른쪽 역시 좁아지는 암벽의 정면에 두 구의 불상을 Ⅲ군, 앞쪽으로 세 구의 불상을 Ⅳ군으로 나눈다. 신상균이 1950년에 Ⅰ군과 Ⅱ군 중 정면 위쪽에 조각된 불상을 조각하였다. 원덕문이 1950년대에 Ⅲ군을 제작하였다. 권장학이 1950년부터 1960년 사이에 Ⅱ군의 정면 아래쪽에 서 있는 불상과 Ⅳ군의 불상을 제작하였다.
석불사 마애불상군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 현대 불상의 양식에 적절히 녹아들어 조화를 이룬다. 특히 Ⅰ군의 조각과 Ⅱ군의 상단 불상은 연화좌, 얼굴, 옷 주름의 모습 등에서 고려 말기의 불상 양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와 함께 Ⅰ군의 조각상은 도상 구성과 표현이 여러 군상들 중 가장 특징적이다. 일반적으로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상은 대표적인 석가모니의 도상이다. 그리고 좌우에 조각된 십육 나한상은 본존이 석가모니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본존을 모시고 좌우에 서 있는 보살상의 보관(寶冠)에는 아미타불상의 좌우 협시 보살로 등장하는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어 흥미롭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일반적으로 보관에 화불과 정병이 나타나 쉽게 판별할 수 있다.
Ⅰ군의 본존 좌측 보살의 보관에 화불이 확인되며 우측 보살의 보관에는 정병과 함께 작은 탑이 조각되어 있다. 고려 시대가 되면 대세지의 보관에 정병 대신 탑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Ⅰ군 불상의 전체적인 양식이 고려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Ⅰ군: 편단우견(偏袒右肩)의 형식으로 입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한 불좌상이 있다.
그 좌우측으로 보살 입상 두 구, 십육 나한상, 신장상 두 구가 서 있는 것이 확인된다.
나한상은 통견식(通肩式)과 변형 편단우견 형식으로 입고 얼굴의 표정 및 앉은 자세도 반가좌(半跏坐), 결가부좌(結跏趺坐), 우슬착지(右膝着地) 등으로 다양하여 나한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관음보살 입상과 위로 미륵불 좌상
Ⅱ군에서 정면 상단에 위치한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걸친 변형 편단우견의 형식으로 입었으며, 오른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왼쪽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고 어깨 높이까지 왼손을 올려 보주를 손바닥 위에 두고 있다.
정면 하단의 불상은 십일면 관음보살 입상으로 형식과 양식적 특징이 경주 석굴암 석굴(慶州石窟庵石窟)의 십일면 관음보살상을 계승하고 있다.
Ⅰ군과 Ⅱ군 위쪽의 불상은 법의에 드러나는 돋을 주름의 표현과 대좌 형태 등 양식적 표현 등이 같아 조각가가 같음을 쉽게 알 수 있으며,
Ⅱ군 하단 불상은 표현하는 기법과 양식적 특징이 Ⅰ군의 불상과 달라 조각가가 다름이 드러난다.
* 범종각
Ⅲ군의 불상은 도상 명칭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앞쪽으로부터 서방 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비로자나불 입상이다.
일반적으로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혹은 뱀과 여의주를, 북방 다문천왕은 탑과 깃발을 지물로 가지며 석불사의 두 사천왕상의 지물도 마찬가지이다.
비로자나불상의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인데 석불사의 것은 약간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Ⅳ군의 불상은 앞쪽으로부터 남방 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동방 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약사불 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남방 증장천왕은 검, 동방 지국천왕은 비파, 약사불 입상은 약 합을 지물로 가졌다. 검, 비파, 약 합은 남방·동방 천왕과 약사불이 가지는 일반적인 지물이다.
이외 석불사 마애불상군의 사천왕상 중 유일하게 Ⅱ군 불상에 포함된 서방 광목천왕만 의좌(依坐)이다.
* 광목천왕(廣目天王 · 서방을 수호)- 갑옷에 용을 잡고 있으며 중생을 수호하고 용왕들을 통치한다.
* 다문천왕(多聞天王 · 북방을 수호·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불린다.)- 갑옷을 입고
깃발, 보탑을 들고 있으며 야차들을 통솔하고 중생들의 재물과 부귀를 수호한다.
* 약사여래불상, 사천왕상
*비로자나불상, 사천왕상,
* 비로자나불- 본래 명칭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부처가 되면 몸이 세 개(삼신이라고 함)가 되며
법신, 보신, 화신(응화신)이라 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불이름이다.
* 약사여래(藥師如來-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준다는 부처)
* 미륵보살(彌勒菩薩)- 현재는 보살이지만 다음 세상에 부처로 나타날 것이라고
불교에서 믿고 있는 미래의 구세주로서의 보살이다.
석불사는 거대한 자연 암석들 사이에 세운 사찰 건물도 그렇고 출입구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것도 그렇고 여느 사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높이가 무려 40m와 20m가량 되는 직벽의 암석을 깎아 여러 불상들을 조각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이들 석불들은 규모도 크지만, 정교하게 새긴 예술성 또한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어 현대 불교 미술의 한 면모를 보여 준다.
정면에는 11면 관음보살 입상과 상단에 미륵불 좌상이 있다. 우측 암벽에는 약사여래불상과 사천왕, 좌측 암벽에는 사천왕과 비로자나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옆으로 좌측에 팔나한과 석가모니불상, 우측에 팔나한이 있어 모두 29상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석불사의 석불 가운데 미륵불의 정교함은 단연 두드러진다.
이러한 조각 작품들이 모두 이 절을 창건한 승려 조일현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유산이다. 더구나 사찰을 둘러싼 자연 암석에 새긴 것이어서 더 가치가 있다. 금정산에 산재한 여러 사찰과 암자들 중 휴정암과 호국사 등에서도 병풍암 석불처럼 자연 암석에 석불을 조각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석불사는 80여 년의 짧은 연륜을 지닌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금정산의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중앙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의 단아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11면의 얼굴을 지닌 관음보살. 6도(六道-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에
빠져있는 중생을 구제해주는 보살로 11면 관자재보살, 대광보조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하며 자비의 상징이다.
석굴암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유명하다.
석불사 마애불상군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의 불상 조각으로 현대 불교 조각 미술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 작품이다. 특히 고대 삼국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약사불의 도상 형식, 고려 시대 조각의 양식적 특징, 조선 시대 사천왕상의 형식, 현대에 들어와 새롭게 변용해 본 대세지보살의 보관에 정병과 탑을 함께 조각한 점, 마지막으로 십일면 관음보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양식이 계승된다는 불변의 진리 등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자료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현대 불교 조각이다.
석불사는 1930년대 일현선사(조 일현)가 세웠다 하니 일백년이 되지 않은
신생 사찰이나 거대한 병풍바위에 새겨진 대형 불상은 접하기 쉽지 않은 장관(壯觀)이다.
대웅전(大雄殿), 칠성각(七星閣), 좌우 수직 암벽에 새겨진 불상(佛像)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영각(獨聖山 靈閣)이 있다.
거대한 바위에는 사천왕(四天王)과 보살(菩薩 · 菩薩乘 · 보리살타- 菩提薩埵 · 성인 · 고승의 존칭 · 여자신도) ·
나한(癩漢)이 자리한 마애불상(磨崖佛像)이다.
* 마애불(磨崖佛)- 마애석불(磨崖石佛). 바위에 직접 새겨진 불상.
* 나한(癩漢 · 羅漢)- 불제자 중에서 번뇌를 끊어 인간과 하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른다.
* 부도탑
가는 길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구포역, 또는 모라역으로 오면 인근에 북구청이 있다. 북구에는 트래킹을 할 수 있는 순환 웰빙 산책로가 있다. 22㎞로 8~9시간이 걸린다. 구포쌈지공원(구포근린공원 맞은편)→거북바위 입구→전망데크→운수사 연결도로(운수사)→목교→4쉼터→3쉼터→2쉼터→1쉼터→만덕 만남의광장→전망데크→만덕석불사 입구(석불사)
석불사 올라 가는 길
부산시 북구 볼거리
생태문화관광코스로는 금정산 서문 밑에 위치한 화명수목원→산성로길 보행데크→대천천과 애기소→화명강변공원→부산어촌민속관→구포시장
만덕동에 위치한 ‘만덕 뜰에장’에서는 다양한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전통장, 김치, 손두부, 떡, 장아찌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30명 정도 체험할 수 있다. 체험행사는 오전 10~4시까지. 비용은 2만원 가량이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위치하고 있는 장수삼절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의암 주논개의 영정을 모신 사당.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정식 명칭은 의암사이다.
이칭별칭유형시대성격건립시기·연도규모(면적)소재지문화재 지정번호문화재 지정일
의암사(義巖祠)
유적
조선
사당
1954년, 1974년 이건
2만여 평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한누리로 393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46호
1981년 04월 11일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있는 사묘·제단.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위치하고 있는 장수삼절(長水三節)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의암(義岩)주논개(朱論介)의 영정을 모신 사당.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정식 명칭은 의암사(義巖祠)이다.
의암사(義岩祀)라고 도한다.
장수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수읍 남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논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논개의 본관은 신안으로, 현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천부락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최경회(崔慶會) 장군이 경상병사로 진주성에 들어갔다가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전사하자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이곳은 진주 의기 논개로 알려져 있는 의암 주논개(1574~1593)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선조 7년(1574) 9월 9일 현 전라북도 장수군 임내면 주촌부락에서 부친 주달문과 모친 밀양 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논개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숙부 주달무에게 의탁하고 있었는데 숙부가 임내면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보내자 그곳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 장수현감 최경회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무죄방면은 되었으나 의지할 곳이 없는 논개는 최 현감 부인의 주선으로 최 현감의 후실로 들어앉게 되었다.
그후 선조 25년(1592)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 현감은 의병을 모집해서 왜군을 무찌르는 전공을 세워 1593년 4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되어 논개와 함께 진주에 부임하였다.
동년 6월 29일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최 절도사는 김천일, 고종후 장군과 함께 남강에 투신 순절하였다.
이에 논개는 국치의 설욕과 최 절도사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엿보던 중, 동년 7월 7일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의 승전 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여 주흥에 도취된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를 남강가의 바위로 유인해서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물 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당시 논개의 나이는 방년 19세에 불과하였다.
그후 조정에서도 논개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여 의암이라는 사호를 내렸고 진주 촉석루 곁에 논개사당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논개의 생장지인 이곳 장수에 논개의 사당을 세우고 의암사라 명명하였다.
의암사(논개사당)는 1954년장수군내 각계 각층에서 성금을 모아 남산공원의 아래봉우리 꼭대기에 창건하였고, 논개 영정은 이당(以堂)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렸다.
당시의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이 친필로 휘호를 내려 현판을 각자(刻字)하여 걸었다.
1960년대 후반기부터 추진된 성역화사업은 1973년에 문화공보부 승인을 얻어 정화사업에 착수하여 장수읍 두산리에 2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를 조성하여 1974년 사우(祠宇)를 이건(移建)하여 삼문(三門)과 담장을 설치하고 주위 조경공사를 시행하고 관리사 및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주논개 수명비(竪銘碑)도 경내에 이건하였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모셔오던 중 1968년부터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모시는 것으로 결정되어 계속하고 있다.
논개 사당 / 의암사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위치하고 있는 장수삼절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의암 주논개의 영정을 모신 사당.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정식 명칭은 의암사이다.
장수삼절(長水三節)로 알려진 논개는 조선 중기의 의기(義妓)로, 진주병사 최경회(崔慶會)의 사랑을 받았다 한다.
임진왜란 때 끝까지 저항하던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들은 촉석루(矗石樓)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기생으로서 그 자리에 참석한 논개는 성의 함락과 군관민의 죽음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바위 위로 유혹해 껴안은 채 남강 아래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그가 뛰어내린 바위를 훗날 의암이라 하였다.
지금 사당을 의암사라 부르는 연유이다.
조선 헌종 12년(1846)에 현감으로 장수에 온 정주석(鄭胄錫)은 이 곳이 논개가 자란 고장임을 기념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세웠는데, 사당 건립 당시 발굴되어 경내에 옮겨져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56년에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호남삼강록(湖南三岡錄)·의암주논개사적비 등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장수군내 각계 인사가 성금을 모아 건립을 추진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때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여러가지 고서와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여 그린 영정을 봉안하고, 의암사(義岩祠)라는 당시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의 친필 휘호로 현판을 각자하여 걸었다.
그 후 1960년대 후반부터 의암사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전체 2만 여 평에 이르는 대지를 조성하여 사우(祠宇)를 이건(移建)하였다.
구조는 삼문 안의 안마당과 중문으로 막은 사당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층을 이룬다.
삼문 좌우로 사당채 뒤까지 담을 두르고, 중문 좌우에서 역시 담을 둘러 영역을 확연히 구분하였다.
조성은 안마당 영역을 지면보다 한층 높게 마련하였으며, 사당 영역은 안마당에서 다시 층계를 오른 후 중문을 통해 들어가게 하였다.
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의암사가 창건된 후에 장수군은 매년 9월 9일을 택하여 논개제전을 열다가 1968년부터는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지내고 있다.
산수국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자라는 낙엽 관목이다. 생육환경은 산골짜기나 돌무더기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식물명 : 산수국 • 과명 : 범의귀과 • 학명 : Hydrangea serrata for. acuminata • 종류 : 목본(나무) • 이명 : 거치엽수구 • 꽃색 : 자주색 • 계절 : 여름 • 분포-지리 : 중부 이남지방 경기도, 강원도 이남 • 분포-지형 : 산골짜기 냇가 바위틈 • 생육상 : 낙엽관목(잎이 지는 떨기나무) • 높이 : 1m 안팎 • 개화기 : 7월 ~ 8월 • 결실기 : 9~10월 • 열매의 형태 : 삭과(튀는열매)-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 • 용도 : 관상용 산수국은 암술과 수술을 가진 작은 진짜 꽃과 꽃잎처럼 생긴 총포만으로 된 크고 화려한 가짜 꽃(장식화)의 두 가지 꽃을 피운다. 진짜 꽃은 안쪽에, 가짜 꽃은 진짜 꽃 주위에 자리한다. 산수국은 진짜 꽃보다 가짜 꽃이 더 진짜 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가짜 꽃은 크기가 작은 진짜 꽃이 곤충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불리한 점을 보완해 주는 보조 역할을 한다. 가짜 꽃 몇 개로 곤충을 유인하는 대신 진짜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다. 실제로 가짜 꽃을 떼어 버리면 벌이 찾지 않는다. 진짜 꽃이 꽃가루받이를 끝내면 제 역할을 다한 가짜 꽃은 서서히 시들어 버린다. 산수국의 가짜 꽃을 중점으로 육종하여 관상용 꽃으로 만든 것이 수국이다. 수국은 다양한 원예종으로 개량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가짜 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종자를 만들지 못한다. 대략 5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은 처음에는 엷은 청색,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붉은색이 되다가 적자색이 되는 것과 그 반대의 것이 있다. 혹은 작년에 핑크색이던 꽃이 올해는 청색이 되기도 하고, 같은 줄기인데도 가지에 따라 색이 다른 꽃이 피기도 한다. 심지어는 같은 꽃에서도 부분적으로 색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색소는 모두 ‘안토시아닌’이다. 한 가지 색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꽃 색이 달리 나타나는 것은 pH(수소이온 농도), 색소, 유기산, 알루미늄, 마그네슘 등의 유무에 의한 것이다. 키는 약 1m 내외이고, 잎은 난형으로 끝은 꼬리처럼 길고 날카로우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나 있다. 잎은 길이가 5~15㎝, 폭이 2~10㎝가량으로 표면에 난 줄과 뒷면 줄 위에만 털이 있다. 꽃은 희고 붉은색이 도는 하늘색으로 수술과 암술을 가운데 두고 앞에는 지름 2~3㎝가량의 무성화가 있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이 시기 꽃 색은 갈색으로 변해 있다. 이처럼 꽃 색이 변하는 것은 꽃이 아닌 것이 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희고 붉은색이지만 종자가 익기 시작하면 다시 갈색으로 변하면서 무성화는 꽃줄기가 뒤틀어진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산골짜기나 자갈밭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작은가지에 털이 난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이며 길이 5∼15cm, 너비 2∼10cm이다. 끝은 흔히 뾰족하며 밑은 둥근 모양이거나 뾰족하다.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겉면의 곁맥과 뒷면 맥 위에 털이 난다.
꽃은 7∼8월에 흰색과 하늘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주변의 중성화는 꽃받침조각이 3∼5개이며 꽃잎처럼 생기고 중앙에는 양성화가 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 수술은 5개이고 암술대는 3∼4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로서 달걀 모양이며 9월에 익는다.
탐라산수국(for. fertilis)은 주변에 양성화가 달리고, 꽃산수국(for. buergeri)은 중성화의 꽃받침에 톱니가 있으며, 떡잎산수국(for. coreana)은 잎이 특히 두껍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국·일본·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번식 및 관리법 번식법 : 이른 봄에 새순이 나오면 새싹을 포기나누기하고, 가을에는 새로 나온 가지를 잘라 삽목을 해도 된다. 종자는 9~10월에 결실된 것을 이른 봄까지 저장 후 화분에 뿌린다.
관리법 : 물 빠짐이 좋은 반그늘이나 양지의 화단에 심는다. 잎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매일 물을 주고 그 외 계절에는 2~3일 간격으로 준다. 화분에 심어 관리하려면 큰 화분을 이용하되 밑에는 자갈을 넣어 물 빠짐을 좋게 해 준다. 범의귀과의 잎지는 넓은잎 작은키나무로 줄기가 무더기로 올라와 키 1m 정도로 자란다.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전체가 둥그스름해진다.
서식지 중부 이남의 산 200~1,400m 고지의 골짜기 너덜바위 지역이나 계곡가 반 그늘진 곳에 서식한다. 주로 나무 그늘 밑에 많으며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특징 가운데 피는 참꽃이 푸른 보라색이다.
잎 길이 5~15㎝ 정도의 잎이 가지에 마주 달린다. 끝이 꼬리처럼 뾰족한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앞면의 측맥과 뒷면 잎맥에 잔털이 있다.
꽃 7~8월에 새로 나는 햇가지 끝에 핀다. 어긋나게 갈라져 쟁반처럼 퍼진 꽃대가 나와 끝마다 꽃이 달리며, 암술과 수술이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헛꽃과 암술과 수술이 있는 참꽃이 함께 나온다. 바깥쪽에는 지름 2~3㎝ 정도의 헛꽃이 빙 둘러 달리며 꽃잎은 따로 없고 3~5장의 꽃받침잎이 나오며 푸르거나 붉은 흰색을 띤다. 헛꽃 안쪽에는 지름 5㎜ 정도의 참꽃이 피며 푸른 보라색 꽃잎이 5장이고 암술은 1개, 수술은 5개다.
열매 9~10월에 작은 타원형 열매가 갈색으로 여문다. 다 익으면 열매껍질이 갈라져 씨앗이 나온다.
줄기껍질 어린 나무는 붉은빛 도는 갈색을 띠며 매끄러운 껍질이 허물처럼 얇게 벗겨진다. 묵을수록 갈색을 띠며 껍질이 허물처럼 벗겨진다.
줄기 속 흰 갈색을 띤다. 한가운데에 수수깡 속 같은 흰색의 무른 속심이 있다.
가지 햇가지는 푸르다가 점차 껍질이 허물처럼 벗겨져 붉은 갈색이 되며 잔털이 있다. 겨울에 위쪽이 말라 죽어 회색이 된다.
겨울눈 긴 원뿔 모양이며 노란 갈색을 띤다.
용도 약용: 말라리아, 고열, 기침, 당뇨, 가슴 두근거림 식용: 차
민간요법 꽃 · 잎 · 뿌리 · 줄기(토상산, 土常山) 여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쓴다. 말라리아, 고열, 기침, 당뇨, 가슴 두근거림에 말린 것 1g을 물 700㎖에 넣고 달여서 마신다.
식용방법 꽃과 잎으로 차를 끓여 마신다.
계절별 봄 어린 나무 (4월 16일)햇줄기는 푸르다가 붉은 갈색이 된다. 봄 군락 봄 (5월 24일)군락이 많은 편이다. 수형 (5월 31일)봄 모습. 밑동에서 많은 줄기를 내어 번성하며 전체가 둥그스름해진다. 봄 군락 꽃봉오리 달린 모습 (6월 27일)위쪽을 향해 핀다. 꽃과 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면 달달하다. 꽃과 잎을 햇볕에 말려서 약으로 쓴다.
여름 헛꽃과 참꽃봉오리 (6월 11일)흰 것은 열매를 못 맺는 가짜 꽃으로 벌과 나비를 유인한다. 가운데는 암술과 수술이 있는 참꽃봉오리다. 산에 난다고 산수국이다.잎 (6월 28일)햇볕에 말려서 약으로 쓴다. 가을 풋열매 (9월 16일)작은 단지 모양이며 암술대가 남아 있다.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갈라져 씨앗이 터져 나온다. 겨울 군락 (12월 25일)묵은 가지는 말라 죽어 허옇게 된다. 열매 (1월 28일)헛꽃들이 하얗게 변해 있다. 모습 (1월 29일)하얀 것은 열매에 달린 헛꽃. 멀리에서 보면 가지가 붉거나 희다. 곁눈 (1월 28일)잎 떨어진 잎자리에 난 곁눈은 2쌍으로 난다. 뿌리와 줄기 채취 (3월 10일)초봄. 속심이 수수깡 같다. 뿌리에는 잔뿌리가 있다. 햇볕에 말려서 약으로 쓴다
나무수국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귀과의 낙엽활엽 관목.
학명 계문강목 원산지 분포지역크기
Hydrangea paniculata
식물
속씨식물
쌍떡잎식물
장미목
일본
한국·일본·중국
높이 2~3m
일본이 원산지이고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는다. 낙엽 관목으로 높이는 2∼3m이다. 잎은 마주나고 때로는 3개가 돌려나는 것도 있으며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다. 잎 끝은 뾰족하고 밑은 둥글며 길이가 5∼12cm, 폭이 3∼8cm이다. 잎 앞면은 처음에 털이 약간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맥 위에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7∼8월에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피는데, 중성화와 양성화가 한 꽃차례에 함께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타원 모양 또는 원 모양이고 꽃잎과 모양이 같으며 흰색 또는 붉은 색이다. 열매는 9∼10월에 맺는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꽃이 중성화뿐인 것을 큰나무수국(for. grandiflora)이라고 한다.
화단에 심어 기르는 낙엽떨기나무이다. 높이 2-3m이다. 잎은 마주나거나 3장씩 돌려나며, 타원형 또는 난형으로 길이 5-12cm, 폭 3-8cm,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 뒷면은 연녹색이고 맥 위에 털이 있다. 꽃은 7-8월에 가지 끝에 지름 26cm 정도인 원추꽃차례로 피며, 흰색이고 붉은빛을 띠기도 한다. 꽃받침잎은 타원형 또는 원형이며 꽃잎처럼 생겼다. 열매는 삭과, 9-10월에 익는다. 관상용으로 식재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자생지에서는 산기슭, 계곡, 덤불숲에 자란다. 낙엽떨기나무이다. 높이 2-3m이다. 잎은 마주나거나 3장씩 돌려나기도 한다. 잎자루는 길이 1-3cm이다. 잎몸은 타원형 또는 난형, 길이 5-12cm, 폭 3-8cm,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뒷면은 연녹색이고 맥 위에 털이 있다. 측맥은 6-7개이다. 꽃은 가지 끝에 길이 26cm 정도의 원추꽃차례로 달리며, 흰색이고 붉은빛을 띠기도 한다. 꽃받침잎은 타원형 또는 원형이며 꽃잎처럼 생겼다. 열매는 삭과, 타원형이며, 지름 3.0-3.5mm이다. 씨는 갈색이고 방추형이며, 길이 2.5-3.0mm의 날개가 있다. 꽃은 7-8월에 피며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정원수, 생울타리용으로 심는다. 수국(H. macrophylla (Thunb.) Ser. for. otaksa (Siebold & Zucc.) E. H. Wilson)이나 산수국(H.serrata Ser. for. acuminata (Siebold & Zucc.) E. H. Wilson)은 꽃이 산방꽃차례를 이루지만, 본 종은 원추꽃차례이므로 구분된다
서양수국 학명 생물학적 분류 개화시기 꽃말
Hydrangea macrophylla (Thunb.) Ser.
계 : 식물계(Plantae)
문 : 피자식물문(Angiospermae)
강 : 쌍떡잎식물강(Dicotyledoneae)
5월~7월
교만, 허풍, 변심, 냉담, 처녀의 꿈
높이 1.5~2m 정도 자라는 낙엽성 관목이다. 1951년 프랑스의 Mouillére씨가 작출한 것으로 묵은 줄기는 연갈색이 나며 새로 나온 가지는 녹색이다. 잎은 대생하고 잎의 형태는 난상 타원형으로 잎 끝은 뾰족하다. 잎 가에는 거치가 있고 잎 길이는 20㎝ 내외나 화분에서 재배할 때는 10~20㎝ 정도 된다. 꽃은 가지 끝에 1경 1화로 붉은 자홍색의 산방화서로 여러 개의 작은 꽃이 모여 둥근 공모양으로 꽃 송이가 핀다. 개화기는 5~7월이고 개화를 위해서는 저온의 휴면타파가 요구된다. 원산지는 남북아메리카와 아시아로 30종이 난다. 한국에는 3변종의 자생종이 있다.
화재응용
꽃가게에는 화분류나 절화로서 나온 수국의 거의가 서양 수국이고 현재에는 단순히 수국으로 통용하고 있다. 서양 수국은 꽃이삭이 크고 꽃색도 다양하며 화려함이 있다. 꽂을 때는 꽃이삭이 작은 송이로 골라 잎도 적당히 정리하는 편이 조화가 좋다. 일종꽂이나 그 밖의 가지류에 곁들여 이용하고 있다.
진짜 꽃과 가짜 꽃 곤충의 눈에 잘 띄는 크고 화려한 장식의 가짜 꽃(꽃가루와 알세포가 없음.)을 만들어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대신 씨앗을 만들 수 있는 진짜 꽃을 많이 만드는 식물이 있다. 화려한 꽃 모양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많은 씨앗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백당나무의 가짜 꽃을 육종한 정원목이 불두화이다. 가짜 꽃으로 만든 불두화는 무성화(無性花)이므로 씨앗을 만들지 못하지만 수명이 길어 오랫동안 꽃을 유지한다. 백당나무를 개량한 종이다.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고 부르고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꽃 모양이 수국과 비슷하나 불두화는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일본·중국·만주·아무르·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산지에서 자라며, 높이는 3~6m이다. 어린 가지는 털이 없고 붉은 빛을 띠는 녹색이나, 자라면서 회흑색으로 변한다. 줄기껍질은 코르크층이 발달하였으며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 4~12cm의 넓은 달걀 모양이다.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끝이 3개로 갈라진다. 뒷면 맥 위에 털이 있다. 잎자루 끝에 2개의 꿀샘이 있고, 밑에는 턱잎이 있다.
꽃은 무성화(無性花)로 5~6월에 피며, 꽃줄기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처음 꽃이 필 때에는 연초록색이나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누런빛으로 변한다. 열매는 둥근 모양의 핵과(核果)이며 9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떡잎산수국, Korean hydrangea.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귀과의 낙엽 활엽 관목. 학명 계문강목 서식장소/자생지크기꽃의 색개화시기잎의 형태
중부 이남의 그늘진 계곡, 건조한 바위틈, 습한 계곡에서 잘 자라고, 고도 200~1,400m 부근에서 자생하는 제주도 고유종이다.
높이는 약 1m이고, 일년생 가지에 잔털이 있다.
잎은 길이 5~15cm, 폭 2~10cm로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이며, 마주나기로 난다. 잎의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으며, 특히 잎이 두껍다.
꽃은 7~8월에 청색 또는 백색으로 피고, 당해에 자란 가지 끝에 지름 2~3cm의 장식꽃과 함께 다수의 양성꽃이 편평꽃차례를 이룬다. 장식꽃은 꽃받침조각이 꽃잎 모양이고 3~5개이며 청색 또는 백색이다. 양성꽃은 꽃받침조각이 작고 꽃잎과 함께 각각 5개이다.
열매는 삭과이며, 달걀 모양으로 가을에 익는다. 뿌리, 잎, 꽃을 팔선화라고 하여 생약재로 이용한다. 유사종으로 탐라산수국(f. fertilis), 꽃산수국, 산수국 등이 있다. 분포 한반도(중부 이남의 표고 200-1,400m에서 자생) 특징 중생식물로 여름에 백자색으로 피는 꽃은 야성적이면서도 청초한 느낌을 준다. 잎 길이 5-15cm, 폭 2-10cm로 타원형 또는 달걀모양인데 마주나고 긴 점첨두, 원저 또는 예저이다.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측맥과 뒷면 맥위에 털이 나 있으며 잎이 특히 두껍다. 꽃 개화기는 7-8월로 당해에 자란 가지끝에 지름 2-3cm의 장식꽃과 함께 다수의 양성의 꽃이 편평꽃차례를 이룬다. 장식꽃은 꽃받침조각이 꽃잎 모양이고 3-5개이며 청색 또는 백색이다. 양성의 꽃은 꽃받침조각이 작고 꽃잎과 함께 각각 5개이다. 수술은 10개이며 꽃잎보다 길다. 암술은 1개이고 암술대는 3-4개이다. 열매 삭과는 달걀모양으로 가을에 익는다. 줄기 밑에서 많은 줄기를 내어 번성하고 일년생가지에 잔털이 있다. 뿌리 잔뿌리와 보통 뿌리가 있다. 생육환경 그늘진 계곡에서 다수가 군집을 이루고 건조한 바위틈이나 습한 계곡에서도 잘 자라며 내음성과 내한성, 내공해성이 강하다. 비옥하고 보습성이 충분한 사질양토를 좋아한다. 번식방법 삽목번식이 잘되는 수종으로 녹지삽목, 숙지삽목 모두가 잘된다. 파종시에는 파종상자를 준비하여 수태 위에 고른 밀도로 파종하는 것이 좋다. 이용방안 상록성 교목의 하부식재용으로 군식하여도 좋다. 도시조경용수, 경계용수로 식재할 수 있다. 뿌리, 잎, 꽃을 팔선화라고 하여 생약재로 이용한다. 보호방안 자생지 보존은 물론 자생지외 보존을 실시한다. 조경수로 개발 가능성이 높으므로 경제수종으로 적극 이용하여 개체수를 높인다. 유사종 • 탐라산수국 : 둘레에 있는 꽃이 무성꽃이 아닌 양성꽃을 갖는다. • 꽃산수국 : 무성꽃의 꽃받침에 거치가 있다.
참고문헌 『양화소록(養花小錄)』 『악학궤범』 『한국명시조선』(정음사, 1982) 『대한식물도감』(향문사, 1982) 『한국민요집』(집문당, 1974) 국화 [菊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수레국화 (국립중앙과학관 - 식물정보, 한국화훼농협) 수레국화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우리꽃 문화의 디지털 형상화 사업),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수국 [Mountain hydrangea, 山水菊] (두산백과) 산수국 (약초도감, 2010.., 솔뫼) 산수국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우리꽃 문화의 디지털 형상화 사업),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나무수국 (두산백과) 나무수국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서양수국 (한국화재식물도감, 하순혜, 탕카) 진짜 꽃과 가짜 꽃 -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전략 (신비한 식물의 세계, 2016. 4..,) 불두화 [佛頭花] (두산백과) 떡잎산수국 [Korean hydrangea] (두산백과) 떡잎산수국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 식물)
찬밥 한 덩이와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골목에서 하루를 지내면서도 학문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고 공자에게 극찬을 들은 안회(顔回)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전기에 국화로 군자의 자화상을 다룬 작품으로는, 강희맹(姜希孟)의 〈우국재부(友菊齋賦)〉와 성현(成俔)의 〈국옹설(菊翁說)〉이 우선 눈에 띈다.
강희맹의 부(賦)는 수양론적 자세에 가깝고, 성현의 산문은 양생론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문득 사계절이 순식간에 바뀌니
奄四時兮倐忽
여러 꽃이 쇠하여 시들어가네.
念群芳兮衰歇
국화는 맨 뒤에 비로소 피어나니
殿百花兮始發
맑고 차가운 향기가 뼈에 스미네.
香淸冷兮逼骨
만장의 홍진이 눈을 가리고
塵萬丈兮眯目
된서리가 머리칼에 날아들어도
颯乾霜兮入髮
너는 끝내 향기를 그대로 지녀
保芳馨兮無闕
밝은 달에게 그윽한 정 붙이네.
寄幽情於明月
- 강희맹, 〈우국재부(友菊齋賦)〉
의인화된 국화는 작자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세상인심은 자주 바뀌지만 나는 국화처럼 맑고 차가운 향기를 지닌 채 살고 싶다.
때로 세상 먼지가 눈을 가리고 된서리가 머리칼에 파고들어도 나만의 향기를 지닌 채 밝은 달과 같은 세상을 염원하고 싶다.
성현은 벼슬은 버리고 은거하려는 국옹(菊翁) 신윤조(辛潤祖)에게 〈국옹설(菊翁說)〉을 지어주며 그의 호 ‘국옹’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군자는 어떤 사물이 자신의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이름을 삼는다고 하면서, 오솔길과 집, 서재에 이름을 붙인 예시를 들었다.
국화는 유아(幽雅), 담박(澹泊)하고 찬란히 홀로 빼어난데, 굴원이 먹고 도연명이 뜯고 두보가 향기를 맡고 소식과 장식(張栻)이 읊고, 유몽(劉蒙)과 범성대가 족보로 만들었다며 박학한 지식을 드러내었다.
이어지는 글이다.
국화는 그 색이 누렇다.
이를 통하여 옹(翁)이 중정(中正)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것을 안다.
국화는 또 그 냄새가 향기롭다.
이를 통하여 옹의 덕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가리기 어려운 줄을 안다.
국화꽃은 봄에 피지 않고 반드시 가을에 피니, 봄날 햇볕이 화사할 때 피지 않고 반드시 가을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려 한기로 서늘할 때 핀다.
이를 통하여 옹은 지조가 굳고 행실이 독실하여 시류에 혼탁하게 휩쓸리지 않을 것을 안다.
국화의 특성은 달고 부드러워 매우 맛이 좋다.
복용하면 허한 기운을 보충해줄 수 있고, 술에 띄우면 근심을 잊을 만하며, 주머니에 넣어 베고 자면 두풍(頭風: 신경성 두통)을 치료할 수 있고, 물에 담가 마시면 불로장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옹이 정신을 잘 길러 더욱 오래 살 것을 안다.
이 글을 보면 국화에 대한 종합적인 식견을 느낄 수 있다.
인고와 절개, 군자의 표상에 더해 수양과 양생의 문화까지 녹아 있다.
퇴계 이황은 푸른 물가 벼랑에 핀 야국(野菊)을 보고 아예 이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다 하였고, 추사 김정희는 국화가 비바람 속에서 시인에게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노라며 꽃 중의 으뜸이라 하였다.
국화의 결곡한 모습에 고매한 선비들이 매료되어 시를 지어 바친 예이다.
옛 문인들은 국화를 알뜰히도 생각하여 시로 즐겨 읊었다.
고인(古人)의 작품 속에 그려진 국화를 감상하노라면, 오래 다듬어진 그들의 품격(品格)이 느껴지는 반면 초라하기만 한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국화는 여러모로 삶을 생각게 하는 꽃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사군자 ,四君子.
요약 동양화의 화제(畵題).
세한삼우(歲寒三友:松竹梅) 중의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으로 명나라 때 진계유(陳繼儒)가 《매란국죽사보(梅蘭菊竹四譜)》에서 매란국죽을 사군자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사군자화는 삼우도(三友圖)와 같이 세상의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고 고절을 지킨 문인·고사(高士)·화가 들의 화제로 애호의 대상이었다.
묵매도(墨梅圖)는 북송(北宋)의 미불(米芾)이 시작하였다 하나 확실하지 않고, 화광중인(華光仲仁)·양보지(楊補之)가 유명했으며, 묵죽도는 명대(明代)에 와서 일반화한 것으로 계예(計禮)·황익(黃翊) 등이 유명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성행, 조선에 계승되어 사대부의 유교 교양의 일부로 널리 퍼졌고 남종화파(南宗畵派) 중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어몽룡(魚夢龍)은 묵매도로, 이정(李霆)은 묵죽도로 이름을 떨쳤다.
국화를 먹는 법
마시는 향기로운"
국화라 하면 진(晉)의 은자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히 전원으로 물러나 살면서 쓴 <술을 마시고서(飮酒)>라는 시에서 읊은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 따다가, 유연히 남쪽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구절을 떠올린다.
국화는 도연명으로 인하여 은일(隱逸)의 상징이 되었다.
국화를 두고 도연명은 서리 속의 호걸 상하걸〔霜下傑〕이라 하였고, 소동파(蘇東坡)는 서리 속의 영웅 상중영〔霜中英〕이라 하였으니 국화에는 꼿꼿한 선비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는 별칭까지 더해졌다.
국화의 나라
운수평(惲壽平, 1633∼1690), <국화도(菊花圖)>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조선 후기에도 백색, 홍색, 황색 등 세 가지 색깔의 국화를 화분에 길러 감상하였다.
조선은 가히 ‘국화의 나라’라 할 만하다.
조선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한 가지에 피는 삼색국(三色菊), 오색국(五色菊)이 있었다.
강이천(姜彝天, 1768~1801)의 증언에 따르면 김노인이라는 사람이 국화 재배에 경이로운 솜씨를 발휘했다.
그는 꽃을 일찍 피우게도 늦게 피우게도 하였고, 꽃의 크기를 손톱처럼 작게도 만들었다.
큰 키에 큰 꽃이 피는 품종도 만들어냈으며, 옻칠한 듯 검은 꽃을 피워내는가 하면, 가지 하나에 여러 빛깔의 꽃이 섞여 피어나게도 했다 한다.
국화는 품종 자체도 매우 다채로웠는데, 몇몇 품종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순백색의 큰 꽃이 피어 옥매(玉梅)라고도 하는 신라국(新羅菊), 범 가죽처럼 황색과 적색이 섞여 있는 고려국(高麗菊)처럼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품종이 널리 알려졌다.
고려 충숙왕이 원나라에서 고려로 돌아올 때 오홍(烏紅), 연경황(燕京黃), 연경백(燕京白), 규심(閨深), 금홍(錦紅), 은홍(銀紅), 학정홍(鶴頂紅), 소설오(笑雪烏) 등 현란한 이름의 국화를 선물로 받아와 조선 초기 정원을 빛내었다.
소중양절인 5월 9일에 즐기던 황색의 왜황(倭黃)이 유행하였거니와, 심능숙(沈能淑, 1782∼1840)은 1834년 커다란 흰 꽃이 피고 향기가 아름다운 백운타(白雲朶)라는 일본 꽃을 구해와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시에는 “근일에 서양 국화가 중국에 들어온 것만 쳐도 백 수십 종이 된다”고 하였고,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이 [양국보(洋菊譜)]를 편찬한 것을 보면 중국에 들어온 서양 국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김정희의 다른 시에 “163종이나 되는 품종이 많기도 하건만 끝내 학령이 여러 국화 중에 첫째라네”라 한 대로 당시 조선의 정원에는 160종이 넘는 국화가 재배되었다.
국화를 마시다
우지정(禹之鼎, 1647∼1709),<왕원기예국도(王原祁藝菊圖)>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화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다양한 국화를 키우는 것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화려한 국화는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향기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국화는 눈과 코를 넘어 입을 즐겁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따르면 국화는 몸을 경쾌하게 하고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하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선비들은 국화를 차로 끓여 먹거나 술로 담가 마셨다.
신위(申緯, 1769∼1845)에게도 국화로 담근 술은 몸을 가뿐하게 하는 묘약이었다. 이때의 국화는 식용의 감국(甘菊)이다.
사람들 오래 살고 싶은 소원 있어 有願人人壽命長 이날 은근히 서로 권하여 마신다네. 殷勤相屬此時觴 술은 신선처럼 몸을 가볍게 하는데 神仙輕體杯中用 국화꽃 향기가 햇살 아래 풍겨나네. 黃菊花香禀正陽
- 신위,<중양절 하상(荷裳) 등 여러 사람이 반분로(潘邠老)의 “성 가득 비바람에 중양절이 가깝네”라는 시구로 운을 삼아 각기 시 7수를 얻다(滿城風雨近重陽爲韻, 各得詩七首)>,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22책
한나라 때 비장방(費長房)이 환경(桓景)에게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집에 재앙이 있을 것이니,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붉은 주머니에 붉은 산수유 열매를 담아서 팔뚝에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국화주를 마시게 하면 재앙을 면할 것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이 생겼다.
국화주는 액운을 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몸을 가뿐하게 하고 수명까지 늘려준다 하니 더욱 좋다.
따스한 햇살 아래 활짝 핀 국화가 향기를 뿜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으랴? 그러니 잔에 든 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신선의 음식인 것이다.
조선시대 널리 읽힌 원나라 때의 책 [거가필용사류전집(居家必用事類全集)]에는 국화주를 담그는 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하다.
9월 감국이 흐드러지게 피면 향이 좋고 맛이 단 노란 꽃잎을 따서 햇볕에 바싹 말린 다음, 청주 한 말에 손가락 길이 정도의 높이로 국화꽃 두 냥을 명주 주머니에 넣어 걸어 두고 병 주둥이를 밀봉한다.
이렇게 하여 하루를 묵힌 후 명주 주머니를 제거하고 술을 마시면 국화의 향이 우러나고 맛도 달다.
정선(鄭敾), <동리채국도(東離採菊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연명이 중양절에 국화꽃을 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국화는 좋지만 술이 싫다면 차로 끓여 마시면 된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반쯤 핀 감국을 따서 푸른 꽃받침 껍질을 긁어내고 샘물에 넣어 끓인 다음 꿀에 타서 마시면 맛이 좋다고 한다.
국화가 이미 활짝 핀 것은 꽃받침을 제거하고 꿀을 발라 촉촉하게 하여 녹말가루에 굴린 다음, 잠깐 끓는 물에 넣었다 건져서 꿀물에 타고 잣을 띄워 마신다고 하였다.
국화는 구기자와 섞어 차를 끓이기도 하는데 이를 기국차(杞菊茶)라 한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감국 1냥, 구기자 4냥, 차의 싹 5냥, 참깨 반 근을 함께 곱게 갈아 체로 거른 다음, 소금과 들기름을 조금 넣어 한 번 끓인 물에 타서 마신다고 하였다.
국화는 약용으로 먹기도 했다.
[산림경제]에 “감국은 정월에 뿌리를 캐고 3월에 잎을 따며 5월에 줄기를 따고 9월에 꽃을 따는데 모두 응달에 말린다.
네 가지 맛을 내는 약재를 함께 천 번 빻아 가루로 만들고 술에 한 돈씩 넣어 먹거나 꿀에다 오동 열매 크기의 환으로 만들어 일곱 개씩 하루 세 번 먹는다”라 되어 있다.
이렇게 따라 하면 될 듯하다.
감국으로 만든 음식
먹을 수 있는 국화 감국. 식용의 국화는 그 맛이 달다 하여 감국(甘菊)이라고 하고, 진짜 국화라는 의미로 진국(眞菊)이라고도 했다. 감국은 단엽의 조그마한 꽃잎이 부드러우면서 줄기는 약간 붉은빛을 띤다. 음력 9월 그믐에 피어 10월에 만개한다.
다만 아무 국화나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굴원(屈原)이 [초사(楚辭)]에서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진 꽃잎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고 했을 때의 국화는 감국(甘菊)이다.
식용의 국화는 보통 맛이 달다 하여 감국이라 하고, 진짜 국화라 하여 진국(眞菊)이라고도 한다.
가국(家菊), 다국(茶菊), 강성황(江城黃)이라고도 불린다.
감국은 꽃잎이 단엽으로 조그마하고 두꺼우면서도 부드러우며, 줄기는 붉은빛을 띤다.
국화의 여러 품종 중에 가장 늦게 피어 최만황(最晩黃)이라고도 불린다.
그 색은 황금처럼 순황색이며 음력 9월 그믐에 비로소 피어서 10월에 만개한다고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국화는 크게 두 종이 있는데 줄기가 붉고 냄새가 향긋하며 맛이 단 것은 그 잎을 죽으로 만들 수 있지만, 줄기가 푸른 것은 맛이 써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먹을 수 없는 것은 구분하여 흔히 쑥부쟁이라 한다.
감국이라야 그 싹으로 죽을 쑤거나 찌개를 끓일 때 잎을 넣기도 하고, 여린 잎으로 나물을 무쳐 먹을 수 있다.
이옥(李鈺, 1760∼1815)은 [백운필(白雲筆)]에서 국화를 두고 “봄에는 그 싹을 먹어 나물로 삼고, 여름에는 그 잎을 먹어 생선찌개에 넣고, 가을에는 그 꽃을 먹어 술잔에 띄우거나 떡에 버무린다.
그 쓰임이 꽃을 보거나 향기를 맡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라 하였다.
국화의 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매운탕에 넣어 먹기도 하며, 꽃은 떡으로 쪄서 먹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傳) 김홍도(金弘道), <풍속도병(風俗圖屛)>프랑스 파리 기메 미술관 소장. 여러 색깔의 국화 화분 곁에 사람들이 모여 놀이를 하고 있다. 문 곁에는 괴석과 석류나무, 국화꽃이 보인다.
국화잎으로 무친 나물은 지금도 별미로 알려져 있다.
이 국화 나물을 예전에는 황화채(黃花菜)라 불렀다.
황화채는 광채(廣菜)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업나물이라 하였다.
업나물은 원래 원추리로 만든 나물을 가리키는 말인데, 국화 나물을 가리키는 말로도 혼용됐다.
허균(許筠, 1569∼1618)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의주 사람들이 중국인에게 배워 맛있게 조리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중국에서 들어온 요리인 듯하다.
[산림경제]에도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일기를 인용하여 통판(通判)을 지낸 군영(君榮)이라는 중국인이 이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하였다.
그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6~7월 만개한 원추리의 꽃을 따서 꽃술을 제거하고 깨끗한 물에 데쳐 초를 쳐서 먹는다고 하였다.
입에 넣으면 맛이 신선의 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박하여 송이보다 나아 나물 중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황화채, 곧 업나물은 국화의 잎으로도 만들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가을의 별미로 황화채를 들고, 이를 만드는 법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그 방법은 이러하다.
가을에 감국의 꽃을 따서 꽃받침과 꽃술을 제거한 다음 나무로 된 소반에 늘어놓고, 깨끗한 물로 살짝 씻은 다음 송엽주(松葉酒)를 이슬이 묻은 듯 살짝 적시고 녹두 가루를 꽃잎 위에 뿌려 바른다.
이것을 냄비에 물을 붓고 약하게 끓인 물에 데쳐서 건져내는데 이때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한다.
다시 꽃잎을 하나하나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식초를 타고 맛을 내는 여러 재료를 섞어 먹는다.
이규경은 원추리꽃, 아욱잎, 연꽃, 수박꽃, 당귀잎 등도 같은 방식으로 먹는데 이는 승려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 하였다.
국화꽃으로 만든 국화전(菊花煎)도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국전(菊煎), 국병(菊餠), 국고(菊餻)라고도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늦가을 감국을 채취하여 꽃받침과 꽃술을 제거한 다음, 물을 뿌려 축축하게 하고 쌀가루를 묻혀 전을 붙이면 된다고 하였다.
이때 꽃잎이 뭉치지 않도록 해야 모양이 곱다.
꿀에 담갔다 꺼내어 말려두었다가 겨울이나 봄, 여름까지도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도문대작]에는 한양에서 봄에는 두견화전(杜鵑花煎)과 이화전(梨花煎)을, 여름에는 장미전(薔薇煎), 가을에는 국화병(菊花餠)을 먹었다 하니, 국화꽃뿐만 아니라 진달래꽃, 배꽃, 장미꽃도 모두 전으로 부쳐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노릇노릇하게 지져낸 국화전은 중양절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기가 있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화주는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의 세시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출처: 한국전통주연구소>
국화전은 중양절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18세기 남인을 대표하는 문인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명덕동기(明德洞記)>에서 가족들과 야외로 소풍을 다녀온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3월 삼짇날이나 9월 중양절이면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스한 날을 골라 집안의 부녀자들을 이끌고 솥을 가지고 가서 벼랑의 바위에 앉히고돌 틈의 들꽃이나 국화를 꺾어 전을 만들어 먹고 쑥국을 끓여 반찬으로 삼았다.희희낙락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움이 끝이 없었다.
삼짇날의 쑥국과 중양절의 국화전은 가장 인기 있는 별미였던 것이다.
중양절이 되어도 절기가 늦어 국화가 피지 않아 꽃이 없으면 잎으로도 국화떡을 만들어 먹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자신의 집에서는 그렇게 먹는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화의 이러한 효능을 잘 알았기에 술에 띄울 뿐만 아니라 아예 국화를 말려 베갯속으로 삼은 예가 있었다.
18세기 문인 유언호(兪彥鎬, 1730∼1796)가 그렇게 했다.
유언호는<국침명(菊枕銘)>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이에 따르면 유언호의 백형이 묘향산에 갔다가 산국(山菊) 몇 되를 가지고 와서 베로 감싸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였더니 국화향이 은은하게 코에 어렸다고 한다.
선비의 고고한 정신까지 은근히 깃들인 것이니 더욱 멋이 있었으리라.
[산림경제]에는 가을에 감국을 따서 붉은 베로 만든 자루에 넣어 베개를 만들면 머리와 눈을 시원하게 한다고 되어 있으니 이 비방을 따른 것
소국.
아름다운 처방전 Chrysanthemum.
꽃말
밝은 마음, 고상, 실연 흰색: 성실, 진실 노란색: 실망 빨간색: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최근 식물을 활용한 치료법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베란다에서 채소를 기르거나 꽃을 가꾸는 등 식물을 가까이 해 얻는 치료 효과가 상당하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 알코올과 마약 중독이었던 한 남자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절대 헤어나지 못할 것 같던 그를 구원한 것은 바로 꽃이었다.
그는 작은 씨앗에서 새싹이 돋고, 잎이 자라나 꽃이 피고, 마침내 꽃이 지고 열매가 맺는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작은 식물에도 생명의 경이로움이 담겨 있다.
이러한 간접 효과 말고도 직접적으로 치료에 도움을 주는 꽃들이 있다.
사시사철 흔히 접할 수 있는 소국은 입 냄새, 비염, 고혈압, 저혈압, 불면증, 두근거림, 피로회복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저 집에 소국을 꽂아놓는 것만으로도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꽃이 주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덤이다.
소국 한 송이를 거실에 놓아두면 어떨까?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이 우리 몸에 있는 가벼운 질환 하나쯤은 거뜬히 치료될 것이다.
국화의 상징성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는 길상과 상서로움를 상징한다.
국화는 그 생태적인 속성과 연결되어 은군자(隱君子)·은일화(隱逸花)·영초(齡草)·옹초(翁草)·천대견초(千代見草) 등 고상함과 품위 및 장수를 의미하는 별칭을 가진다.
군자·은자·지조
유교에서는 많은 꽃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해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는 국화를 군자의 덕성에 비유해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여겨왔다.
사군자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인데, 이 중 국화는 국유걸사지풍(菊有傑士之風)이라 하여 뛰어난 사람[傑士]의 풍도(風道)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국화는 가을에 홀로 핀다는 점에 연유하여, 절개를 지키며 속세를 떠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은자(隱者)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국화가 은일지사(隱逸志士)의 상징이 된 것은 중국 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 365~427)과 관련이 있다.
도연명은 관직에 있었으나 그 생활이 생리에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국화 심기를 좋아했으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비롯한 여러 시에서 국화에 대해 읊었다.
장수의 선약
국화는 노장사상에 의해 신선의 초화(草花)라 일컬어졌는데, 이는 중국의 주유자(朱儒子)라는 사람이 국화를 달여 마시고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고사의 영향을 받아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겼는데, 국화주는 궁중의 축하주로 애용되었으며 음력 9월9일 중량절(重陽節)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병 장수한다고 여겨졌다.
국화무늬의 전개양식
국화무늬는 인화형(印花形)·당초형(唐草形)·절지형(折枝形)·사생형(寫生形)의 4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인화형 국화문은 정면형(正面形) 들국화와 잎을 함께 표현해 실제 국화와 같이 표현한 형태를 말한다.
국화의 한 종류인 들국화[야국(野菊)]는 산에서 자라는 것으로, 화형이 단순·간결해 조형물에 종종 시문되었다.
당초형 국화문은 당초풍의 줄기에 국화를 배치한 형태이다.
절지형 국화문은 국화 줄기를 함께 표현한 형태로, 줄기에 만개한 국화송이·봉오리·잎 등을 함께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사생형 국화문은 자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으로, 뿌리를 땅에 두고 있거나 수평선상에서 줄기가 뻗어나간 형태를 하고 있다.
국화무늬의 시대별 특징
고려시대
국화문 형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녹유인화문사이호(綠釉印花文四耳壺)>(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난 압인문(押印文) 형태의 추상적 화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화문이 본격적으로 시문된 시기는 고려시대 중엽이다.
고려시대의 조형물에 나타난 국화문의 표현특징을 살펴보면, 청자(靑磁)에서는 인화형(印花形)·당초형(唐草形)·절지형(折枝形)·사생형(寫生形)의 4가지 전개양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상감청자의 경우, 화문은 작고 단순한 정면형 들국화 무늬로 표현되었다.
잎은 눈썹형·끝이 말린 형·잎이 단순화된 형 등으로 다양하다.
인화형 국화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동화퇴화국화문합(靑磁銅畵堆花菊花文盒)>(12세기 후반), 호암미술관 소장의 <청자상감국화병(靑磁象嵌菊花甁)>(13세기 후반) 등에 나타난다.
당초형 국화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철화국당초문매병(靑磁鐵畵菊唐草文梅甁)>(12세기), 절지형 국화문은 호암미술관 소장의 <청자상감국화모란문장경각병(靑磁象嵌菊牡丹文長頸角甁)>(12세기), 사생형 국화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상감국죽문매병(靑磁象嵌菊竹文梅甁)>(12세기 중엽)에서 살필 수 있다.
고려시대의 동경(銅鏡)에서는 들국화가 다발로 피어있는 모습을 정면형 화문으로 형상화한 인화형 국화문 및 절지형 국화문으로 표현되었다.
나전칠기에서는 주로 당초형 국화문이 등장하는데 절지형 국화문도 있다.
국화의 줄기는 강한 곡선을 띠고 있어 장식적이다.
불화에서는 인화형 국화문과 당초형 국화문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는데, 나전칠기의 국화문보다는 사실적이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화문이 크고 입체적인 사생형 국화문이 주류를 이루었고, 인화형 국화문과 당초형 국화문은 특정 조형물에 한정되어 나타났다.
국화 형태를 대담하게 생략하고 재구성한 조선시대의 국화문은 인위적인 면이 보였던 고려시대 국화문과는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의 조형물에 나타난 국화문의 표현특징을 살펴보면, 분청사기에서는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분청사기인화문태호(粉靑沙器印花文胎壺)>(15세기)에서와 같이 정면형 들국화가 다발로 피어 있는 모습이 형상화된 인화형 국화문이 나타난다.
백자에서는 사생형 국화문이 나타나는데 고려청자의 국화문에 비해 화형이 커졌으며 겹국화문도 등장하였다.
청화백자에서는 국화문이 대담하게 간략화된 형태로도 시문되었다.
나전칠기에서는 당초형 국화문이 시문되었는데, 고려시대의 장식적인 당초 곡선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보다 여유로운 형태로 변화되었다.
당초형 국화문이 시문된 유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나전국당초매죽문방함(螺鈿菊唐草梅竹文方函)>(16세기)이 있다.
민화에서는 사생형 국화문 형식이 등장하는데, 겹국화문이 주를 이루며 농담이 없는 채색기법으로 인해 단순해 보인다.
자수품에서는 수병풍(繡屛風)의 경우 겹국화와 들국화 형태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수저집과 같은 소품에서는 사실성이 약화된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국화문은 점차 간략화·도안화되어 조선말기에는 매화 및 이화(梨花)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금박에서는 인화형 국화문이 등장하는데,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중앙에 화심(花心)을 표현하고 주위에 꽃잎을 원형으로 배치시켜 정면형 국화 형태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둘째는 꽃잎을 중첩시켜 겹국화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는 조선왕실 유물의 어보 및 어책을 싸는 보자기의 금박 장식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분류
재배 국화는 꽃송이의 크기에 따라서 대국(大菊)·중국(中菊)·소국(小菊)으로 나누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추국(秋菊)·동국(冬菊)·하국(夏菊) 등으로 나눈다.
대국은 꽃의 지름이 18cm이상 되는 것으로 흔히 재배하는 종류이며, 중국은 꽃의 지름이 9∼18cm, 소국은 꽃의 지름이 9cm 미만의 것을 말한다.
국화과에 속하는 센토레아속(Centaurea)에는 약 500여종이 있으나 그 중 원예용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시아누스종(C. cyanus)으로 우리말로는 수레국화라 부른다.
줄기는 분지력이 왕성하다.
줄기와 잎은 약간 백록색의 솜털로 덮여있고 줄기는 분지한다.
잎은 선상피침형 또는 좁은 선형으로 기부의 잎은 도란상 피침형이다.
꽃색은 주로 자색이며 이외에도 백색, 분홍, 자주색, 복색 등으로 다양하며, 12월부터 4월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개화한다.
두화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많은 품종이 있으며 색깔이 다양하다.
식물명 : 수레국화 과명 : 국화과 학명 : Centaurea cyanus 종류 : 초본(풀) 이명 : 시차국, 남부용, 도깨비부채 꽃색 : 자주색 계절 : 여름 분포-지리 : 유럽 동남부 원산(원예품종), 전국 분포-지형 : 관상용 재배 생육상 : 1~2년생초본(한해 또는 두해살이풀) 높이 : 30~90cm 개화기 : 6월 ~ 9월 결실기 : 8~10월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용도 : 관상용, 염료재(식물전체-청색염료재) 기타 : 독일 국화이다.
전국 각지에 분포
특징
머리모양꽃차례는 남청색, 청색, 연한 홍색, 백색 등 여러가지 품종이 있다.
독일의 국화이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밑부분의 잎은 길이 15cm 정도로서 거꿀피침모양이며 우상으로 깊게 중열되고 윗부분의 것은 선형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흰 솜털이 밀생한다.
꽃은 6-7월에서 가을까지 피지만 온실에서 가꾼 것은 봄에도 피고 머리모양꽃차례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며 감청색, 청색, 연한 홍색, 백색 등 여러가지 품종이 있고 모두 관상화이지만 가장자리의 것은 특히 크기 때문에 혀꽃같이 보인다.
총포조각은 4줄로 배열되며 외편이 가장 짧고 중편은 백색 또는 은색의 막질이며 가장자리와 더불어 뾰족한 돌기같은 톱니가 있고 내편은 피침형이다.
높이 30-90cm이고 가지가 다소 갈라지며 백색 면모가 밀생한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개화형태에 따라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을 피우는 스탠더드국화로 흔히 장례식이나 제례용으로 사용되는 흰색, 노란색이 국내에서는 유통되고 있으며, 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 스프레이국화로 보통 꽃꽂이나 꽃다발용으로 사용되며 시장이나 화원에서 보이는 다양한 색들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국화는 화색이 아주 다양하고 화형도 가장 흔하게 보이는 홑꽃형을 비롯하여 겹꽃형, 아네모네형, 탁구공같은 폼폰형, 가늘고 긴 거미줄 모양같은 스파이더형까지 다양함. 최근에는 실내인테리어용으로 사용되는 분화용(초장이 30cm미만) 국화들도 많이 선을 보이고 있다.
추위에 아주 강하여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한 여러해살이 화초로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상태에서 꽃눈분화가 이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
비슷한 식물: 산국/구절초/감국
구별법:
원예종으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국화는 줄기가 곧고 튼튼한 반면 우리나라 야생화들은 줄기가 가늘어 흐늘거리며 핌.
재배정보
심는 방법
절화용: 이랑 나비 1m, 포기 간격 15cm 정도씩 일정한 간격으로 삽목묘를 도복 방지용 네트 중앙에 심은 뒤 생육관리한다.
분화용: 초장이 30cm미만 이어야 상품화가 가능하므로 직경 12cm미만의 이색포트에 삽목묘 정식후 생육관리한다.
기후 & 토양
우리나라 여름과 가을 날씨일경우 가을에 정상적으로 국화꽃이 핀다.
생육온도는 15~20℃, 꽃눈분화온도는 18℃가 적절하다.
일장은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로 되는 단일조건이다.
토양조건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사양토나 양토가 적합하고 여러해 동안 같은 장소에서 재배시에는 연작장해가 나타나므로 연작은 피해야 한다.
관리하기물주기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건조하지 않도록 관수한다.
정식직후에는 충분히 관수하여 뿌리가 잘 활착되도록 하고 활착이 되어 생육중에는 토양표면을 건조하게 관리하여 흰녹병예방을 하고 꽃눈 형성이 된 후에는 관수량을 적게 조절한다.
거름주기
정식 2주전까지 10a당 퇴비 10a당 퇴비 2톤, 고토석회 100kg, 복합비료 등을 섞어 깊게 밭을 고르게 만든다.
꺾꽂이 방법
가지끝으로부터 5~10cm되는 위치를 손가락이나 면도칼 등으로 자른다.
2~3매의 잎을 남기고 5-6cm 정도의 삽수를 만든다.
삽수를 발근촉진제등에 잠깐 담그거나 약제를 발라준다.
삽목상자나 플러그트레이등에 질석이나 펄라이트가 섞인 인공상토를 담아 삽수 2~3cm깊이로 꽂는다.
삽목후 충분한 물을 주고 뿌리가 나올때까지 음지에서 관리한다.
질병관리
흰녹병
증상 - 저온과습할때 잎 뒷면에 담록색의 곰팡이가 핀다.
충해(응애)
증상 - 아주 작으며 심하면 거미줄 같은 게 생기고 잎의 뒷면에 기생한다.
충해(진딧물)
증상 - 어린 싹이나 잎뒷면에 떼를 이루며 흡즙하여 잎이 위축되거나 생육저하된다.
치료 - 전용 약제를 구입하여 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