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덕유산 (德裕山)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script async src="//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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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德裕山)
덕유산은 소백산맥의 중심부에 솟은 산으로 주봉은 향적봉(香積峰, 1,614m)인데, 남서쪽에 위치한 남덕유산(1,507m)과 쌍봉을 이룬다. 두 봉을 연결하는 분수령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가 되며, 남덕유산에 대하여 북쪽의 주봉인 향적봉을 북덕유산이라고 부른다.

이들 두 산이 이루는 능선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적상산(赤裳山, 1,034m)과 두문산(斗文山, 1,052m), 북동쪽에 거칠봉(居七峰, 1,178m)과 칠봉(七峰, 1,161m), 남서쪽에 삿갓봉(1,419m)과 무룡산(舞龍山, 1,492m) 등 1,000m 이상의 고산들이 일련의 맥을 이루어 덕유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덕유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은 약 5억 7천만 년 이전인 원생대 전기의 퇴적암이 변성된 것으로 대부분이 편마암류이다. 북덕유산에서 남덕유산에 이르는 약 20㎞의 능선에는 산정부가 완경사인 평정봉(平頂峰)이 연속적으로 분포한다.
이러한 평정봉은 토양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어서 예로부터 토산(土山)으로 불려왔다. 두문산 동쪽의 심곡리 일대와 구천동 계곡 주변에도 해발고도가 800∼1,000m에 이르는 고원 형태의 평탄면이 비교적 넓게 분포한다.

덕유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셋이 있다. 북동 사면은 금강 상류의 한 지류인 원당천(元唐川)이 심하게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하면서 수많은 계곡과 폭포를 형성하여 이른바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서쪽 사면 또한 금강의 지류인 구리향천(九里香川)이 칠련폭포(七連瀑布)·용추폭포(龍湫瀑布) 등 급류를 이루면서 안성분지(安城盆地)로 흘러든다. 남동 사면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渭川)이 흐른다.

덕유산의 생물은 총 893종의 식물과 포유류 33종, 야생 조류 122종, 곤충류 2,206종, 양서류 9종, 파충류 13종, 담수어 23종 등이 확인되었다.

주봉인 향적봉과 남덕유산을 잇는 능선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이다. 이 능선을 따라 적상산·두문산·칠봉·삿갓봉·무룡산 등 높은 산들이 하나의 맥을 이룬다.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원당천은 계곡을 흘러 무주구천동의 절경을 이루며 금강으로 흘러든다.

1975년 2월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표적 경승지는 나제통문에서 북덕유산 중턱 아래 백련사에 이르는 무주구천동이다. 33경이 있는데, 나제통문·가의암·추월담·수심대·수경대·청류동·비파담·구월담·청류계곡·구천폭포 등이 있다.

높이 1,614.2m. 북덕유산이라고도 하며, 소백산맥의 중앙에 솟아 있다. 주봉인 향적봉과 남서쪽의 남덕유산(1,594m)을 잇는 능선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이 능선을 따라 적상산·두문산·거칠봉·칠봉·삿갓봉·무룡산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어 덕유산맥이라고도 한다. 산정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하며, 높이 900~1,000m에 위치한 심곡리 일대와 구천동계곡 주변에는 고위평탄면이 나타난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원당천은 깊은 계곡을 흘러 무주구천동의 절경을 이루며 금강으로 흘러든다. 산록에는 상수리나무 등의 숲이 울창하며, 능선에는 살구나무 등이 자란다. 산정에는 가문비나무·분비나무·눈향나무·주목·구상나무 등이 자라고, 특히 높이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는 철쭉 등이 자라는 초지를 이루어 식물의 수직분포를 보인다. 곰·사향노루 등의 희귀동물이 서식하며, 야생조류·곤충류·거미류의 종류가 많아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된다.

이러한 덕유산의 절경과 무주구천동 계곡 및 산정·사찰 등의 문화유적이 있어 무주군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를 1975년 2월에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총면적 219㎢. 공원의 대표적 경승지는 나제통문에서 북덕유산 중턱 아래 백련사까지 28㎞에 이르는 무주구천동이다.

기암괴석·폭포·벽담 등과 울창한 수림경관이 조화된 33경(景)이 있다. 제1경(景)인 나제통문을 비롯하여 가의암·추월담·수심대·수경대·청류동·비파담·구월담·청류계곡·구천폭포 등이 있다. 특히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장덕리 사이의 암벽을 뚫은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동문으로 구천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이며, 고려시대까지 행정구역의 경계가 되어오다가 공양왕 때에 이르러 동문 밖의 무풍현이 동문 안의 주계군에 합쳐졌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재의 무주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도 이 문을 경계로 두 지역 간의 언어와 풍습 등이 다르다. 단풍으로 유명한 적상산에는 적상산성·안국사·호국사·송계암 등의 유적이 있으며 칠연·용추폭포 등의 명승지가 있다.

적상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한 선원각 등 사찰과 사적이 많은 곳이다. 현재는 4문 가운데 서문과 북문만이 남아 있다. 이 산성 내에 있는 안국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극락전과 적상산사고의 현판이 있다. 또한 구천동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백련사는 신라 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소실되어 재건된 것이다. 이밖에도 1723년(경종 3)에 만들어진 범종이 있다.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오색단풍, 겨울 설경의 아름다움이 유적과 어우러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구천동에서 백련사까지 등산로가 나 있다. 또한 칠봉산록에 조성된 청소년 야영장이 청소년들의 심신단련장 및 국제 잼버리 대회장으로 이용되고 자연학습장인 덕유대가 있다. 그밖에도 숙박시설을 비롯한 공공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고속 버스, 열차를 이용하여 영동·대전까지 갈 수 있으며, 영동에서 무주구천동까지 운행하는 직행 버스가 있다.


분홍빛으로 단장한 철쭉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오색단풍, 겨울 설경의 아름다움이 유적과 어우러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구천동에서 백련사까지 등산로가 나 있다.

주요 식물상의 분포를 보면, 산록부에는 서나무·개서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들메나무·상수리나무·굴참나무 등이 우세하고, 박달나무·피나무·고리실나무 등 거목의 활엽수와 전나무·구상나무·잣나무·소나무·노간주나무·개비자나무 등의 침엽수가 분포한다.

능선부에는 털윤노리나무·살구나무·자두나무·박태기나무·헛개나무·달피나무 등이 자생한다. 또 능선의 수림지대에는 지리바꽃이나 모데미풀의 군락이 있고, 고습지에는 개불알꽃·박새큰앵초·용담 등도 자생한다.
산정부에는 지보원추리나주목이 군생하고, 분비나무·가문비나무·눈향나무 등도 자라고 있다. 1,500m 이상의 산정부는 대체로 철쭉이 군생하는 초지이다.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291호인 무주군 설천면의 반송과 천연기념물 제306호인 무주군 설천면의 음나무가 있다.

덕유산 일대는 웅장한 산세와 계곡, 그리고 울창한 식생이 어울려 뛰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고, 산성·사찰 등 문화 유적이 많아 1975년 2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면적은 총 219㎢인데, 그 중 71㎢가 자연보호지역, 131㎢가 자연환경지역이다. 나머지 17㎢는 농촌지역·시설지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유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경승지는 무주구천동이다. 길이 28㎞에 이르는 구간에는 기암괴석·암반이나 급류·폭포·급연(急淵)·벽담(碧潭) 및 울창한 수림이 조화된 33경(景)이 있다.

제1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을 비롯하여, 은구암(隱龜巖)·청금대(聽琴臺)·와룡담(臥龍潭)·학소대(鶴巢臺)·일사대(一士臺)·함벽소(涵碧沼)·가의암(可意岩)·추월담(秋月潭)·만조탄(晩釣灘)·파회(巴洄)·수심대(水心臺)·세심대(洗心臺)·수경대(水鏡臺)·월하탄(月下灘)·인월담(印月潭)·사자담(獅子潭)·청류동(淸流洞)·비파담(琵琶潭)·다연대(茶煙臺)·구월담(九月潭)·금포탄(琴浦灘)·호탄암(虎灘巖)·청류계(淸流溪)·안심대(安心臺)·신양담(新陽潭)·명경담(明鏡潭)·연화폭(蓮華瀑)·이속대(離俗臺)·백련사(白蓮寺)·구천폭(九千瀑)·백련담(白蓮潭)의 32경이 있고, 마지막 33경은 덕유산정을 호칭한다.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장덕리 사이의 암벽을 뚫은 인공동문(人工洞門)으로 구천동 입구에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었는데, 이 통문이 뚫리게 된 경위나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나제통문은 고려시대에 무풍현(茂豊縣)과 주계군(朱溪郡)의 경계였으나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 무풍현이 주계군에 병합되었고, 조선 태종 때 무주군으로 개칭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높이 3m, 길이 10m의 나제통문을 경계로 양 지역 간 언어와 풍습의 차이는 지금도 남아 있다.

백련사는 북덕유산 동쪽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고, 현재의 사찰은 전쟁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덕유산 주변에는 적상산성·안국사·호국사·연각사·송계사 등의 사적 및 사찰과 칠봉약수골·칠연폭포·용추폭포 등의 경승지가 있다.

적상산성에는 1374년(공민왕 23) 최영(崔瑩) 장군이 제주도 토벌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간파하고, 산성을 쌓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적상산 산정부의 분지는 성 내부에 해당된다.


덕유산국립공원도

소백산맥에서 남쪽으로 뻗어나온 덕유산국립공원(219㎢)은 전북, 경남의 2도 4군에 걸쳐 있으며, 1975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유산하면 모두 무주를 연상하고 있으나, 백두대간이 되는 주능선에서 북쪽으로 1.6km 벗어나 있는 최상봉 향적봉(1,614m)을 제외한 덕유 연봉들이 모두 거창군 내에 위치하고 있다.

덕유산이 시작되는 덕유삼봉산(1,254m)에서 부터 수령봉(933m), 대봉(1,300m), 지봉(1,302m), 거봉(1,390m), 덕유평전, 무룡산(1,492m), 삿갓봉(1,400m), 남덕유산(1,508m) 등이 거창의 산이다.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의 아름다운 물과 바위, 무주의 구천동계곡에 버금가는 산수리의 마학동 계곡, 병곡리의 상여덤계곡, 소정리의 송계사 계곡 등은 곳곳에 소, 담, 폭을 이루며 아직도 깊숙한 골짜기에는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는 본래 사책(史冊)과 보첩(寶帖)을 보관해 둔 사고(史庫)와 선원각(璿源閣) 외에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약 3㎞의 성지(城址)와 약간의 석축(石築), 그리고 높이 1∼3m의 북문지(北門址)·서문지(西門址)·사고지(史庫址)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안국사는 적상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 등 두 번에 걸쳐 중수되었다. 안국사 극락전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안국사에는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의 현판이 남아 있다.

덕유산이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북동쪽의 칠봉 산록에는 대규모의 국제 야영대회를 치를 수 있는 청소년 야영장과 자연학습장인 덕유대(德裕臺), 산의 능선을 이용한 스키장 등이 설치되었다.


출처 & 참고문헌
  • 『한국지리지』전라·제주편(국토지리정보원, 2004)
  • 『한국의 산천』(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무주구천동종합학술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72)
  • 「남한중부지역의 지질과 지구조」(김옥준, 『광산지질』2(4), 1970)
  • 덕유산국립공원(deogyu.knps.or.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대한민국 구석구석       
『덕유산과 구천동』(손경석, 성문각, 1971)

테그 > 덕유산 #국립공원 #지방문화재 #덕유대(德裕臺) #무주구천동 #적상산성 #안국사 #극락전 #석축(石築) #한국지리지

2019년 12월 26일 목요일

현대제철은 왜 자꾸이런일들이 ???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script async src="//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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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이런일들이 ???
최고의기사(2019년)
또 컨베이어에 끼여 골절…"죽음 무릅쓰고 작업??"
'정규직' 뽑겠다더니…"계약직 '정'직원이었네요"

12년 동안 36명의 노동자가 숨져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이 붙은 회사, 바로 현대 제철입니다.

올해 초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한 노동자가 숨진데 이어 얼마전 바로 그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청 노동자가 하반신을 못쓰게 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올해에만 2천 4백여 건의 안전 위반 사항이 적발돼서 정부가 개선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무사하다 벌어진 일입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입니다.

컨베이어벨트가 굉음을 내며 쇳덩이들을 쉴 새 없이 실어나릅니다.

광물들이 여기저기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컨베이어벨트 곳곳에 가림막, 이른바 '스커트'가 설치돼 있습니다.

지난 17일 하청노동자 장재문씨는 이 컨베이어벨트와 스커트 사이에 하반신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점검용 발판을 만들라는 원청의 지시에 따라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벨트가 작동하면서 순식간에 몸이 빨려들어간 겁니다.

[장재문/사고 피해 노동자]
"진짜 이렇게 죽는구나. 온 몸은 기계 안으로, 점점 기계 안으로 들어가고 있고, 제 엉덩이뼈를 짓누르면서 막 내려가는데, 아 진짜 너무 고통도 너무 심하고 쇠를 사람이 또 어떻게 이겨요?"

골반과 다리 뼈가 골절되는 전치 6개월의 중상을 입고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장재문/사고 피해 노동자]
"컨베이어벨트 사고 나면 무조건 다 사망 사고라는 걸 알고 있어요. (원청에) '나는 설치 못하겠다. 무서워서' 말을 했어요.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 알고 이런 걸 작업을 시키냐…"

멈춰있던 컨베이어벨트는 왜 다시 작동됐을까.

먼저 정비업무를 위해선 컨베이어벨트 전원을 아예 차단시켰어야 하는데 사고 당일 현대제철이 작성한 작업 허가서나 일지에선 전원 차단 조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작동 스위치를 끄고 켜는 건 원청의 지시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박광원/현대제철 비정규직노조 노동안전부장]
"생명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꼭 하거나, 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피해 노동자가) 얘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도 않고요."

사고 당시 컨베이어벨트를 비상정지시키는 '풀코드 장치'는 또 먹통이었습니다.

[박광원/현대제철 비정규직노조 노동안전부장]
"일단은 첫번째 풀코드 스위치가요, 당겼을 때 정상 동작되지 않았고요. 노동자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보고 (다른) 풀코드 스위치를 당겨서 기계가 멈췄다라고…"

지난 2월엔 같은 공장 같은 컨베이어벨트에서 50대 하청노동자가 몸이 끼어 숨졌습니다.

이 사고 이후 정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컨베이어벨트에서만 1300여건, 풀코드 장치 불량만 3백여 건이 적발됐습니다.

8개월이 지나도록 개선 명령을 무시하다 똑같은 사고가 났는데도, 현대제철은 개선 중이라는 원칙적 입장만 내놨습니다.

관할 노동청은 이번 끼임 사고와 관련해 현대제철에 컨베이어벨트 전원 차단 장치를 개선하라고 또 지시만 내렸습니다.

이쯤되면 직권 조사를 해야하지 않냐고 묻자 누가 죽은 일은 아니어서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기사"
현대제철 당진공장서 사고…용역 노동자 숨져

오늘(20일) 오후 5시반쯤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공장에서 노동자 50살 A씨가 작업을 하던 중 숨졌습니다.

외부 용역업체 소속으로 알려진 A씨는 철광석을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 동료 3명과 현장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현대제철은 해당 컨베이어벨트 작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함께 근무했던 근로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왜 임원들은 기계는 수리를않는 걸까요???
그러면 임원들이 한달만이라도 이기회에 일반직원들 처럼 일을해보면 어떨까요!!!???

테그 > #컨베이어 #직권 조사 #노동청 #특별근로감독 #노동자   #골절 #정규직 #계약직 #정'직원 #시키는 임원 #죽음 무릅쓰고 작업 #거짓말만하는 직원

2019년 12월 25일 수요일

요르단,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script async src="//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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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 했다는 기념비
느보산은 모세가 죽어서 묻혔다고 알려진 산 입니다,
요르단 이지만 여기는 기독교 성지로 카톨릭 수사분들이 직접 관리 합니다,
위인들의 옆모습 얼굴들
모세를 기린다는 이야기가 이슬람어로도 쓰여 있는게 신기 합니다,
모세의 무덤을 덮었을거로 추측 되는 돌
모세도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여기서 죽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40만 혹은 200만 유대인이(학자에 따라 다릅니다) 여기서 한달간 통곡을 하며 머물렀다고 합니다,
성경이나 이야기로 들을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여기에서 보니 그들의 막막함과 슬픔이 실감 납니다,
넓고 넓은 황량한 광야 믿고 따르던 지도자의 죽음 이제 약속의 땅을 앞두고 있는 설레임과 두려움 한달간 통곡하고도 남을 슬픔이 하늘을 덮을듯 합니다,
모세가 들고 다녔다는 지팡이와 놋뱀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형상화 했다고 합니다,
모세는 저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이집트를 탈출 했고 바위를 때려 물을 솟게 했고 고생스런 피난 길을 벗어나 다시 이집트로 가자거나  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반역자들을 처벌 했습니다
모세의 놋뱀은 광야를 떠도는 세월이 길어지고 힘들어지자 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났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벌하고자 불뱀을 풀어 뱀에 물린 사람들은 고통속에 죽어 가게 했습니다,
놀란 유대인들이 회개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모세의 놋뱀 지팡이를 본 사람들은 다시 살려주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에서 따온것 입니다,
어릴땐 반역자들이 이해가 안갔으나 점점 나이를 먹어 세속화 되니 40년 가까운 세월을 모세만 믿고 광야를 떠돈 유대인들이 믿기 아려울 정도로 대단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세의 형 아론은 페트라 가는 길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높은 산 정상에서 죽었습니다
잠시 차가 멈추어서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론의 무덤과 비석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도 아론도 결국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둘다 이집트 생활을 했으며 여호와가 굳이 광야를 40년 가까이 떠돌게 한 이유는
이집트 생활을 기억하는 구세대들이 죽고 이집트의 노예 시절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바랬기 때문 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무리 여호와의 뜻을 가장 잘 받드는 사람 이라도 노예의 시절을 기억하는 흠이 있었다는 뜻 이겠습니다



평소 성지 순례에 비판적인 편 이었습니다



신앙 생활보다 냉담 기간이 몇배나 긴 사이비 카톨릭 신자인 탓도 있고
가서 본들 예전 일이 뭐 별다르겠어 
그냥 발도장이나 찍는거지 뭐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 이었습니다



느보산은 달랐습니다
광야를 마주하는 순간 책이나 영화로 보던 신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 했습니다



성지 순례를 가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습니다



다만 모세가 온갖 저주를 퍼부어 망했을거라 믿었던 이집트는
역사적 사실로는 가장 번성하고 현명한 람세스 2세의 시대 였다는 괴리는
각자의 입장 차이로 돌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티켓 50디나르 내국인 1디나르
여튼, 카드로 티켓팅을 하면 2%의 수수료를 내야한다.
2일권 55디나르, 3일권 60디나르



자 티켓을 들고 입장!!
입구에사 티켓에 펀칭을 해준다.
입구 오른쪽에 보면 페트라 무료 와이파이 광고판이 있다.
무려 현대가 기부했다. ㅋㅋㅋ



입구를 막 지나면 말을 타고 가라고 영업중이다.
(여기 살던 사람들(베두인 포함)을 주거지를 옮기며 말이나 마차, 당나귀 등을 이용한 택시(?)운영 또는 기념품을 팔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



입장시간 여름이나 겨울이나 시작은 6시.
그래서 호텔 조식도 6:30부터 인듯



알카즈네,

800개의 계단을 오르면 저기 저 수도원을 볼 수 있다.
덥고 가파르고 올라가면서 무지 힘들었다고 그래도 올라갈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 알-데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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