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일 일요일

금산 & 보리암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
금산 &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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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신선의 섬, 일점선도(一點仙島)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남해섬이 간직한 최고의 경승지는 누가 뭐래도 금산(錦山)이다. 
금산은 해발 701m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조물주의 조각 작품 같은 기암괴석이 산의 이곳저곳을 꾸미고 그 주변에 울창한 난대림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금강산에 견주어 ‘소금강산’이라 불려왔다.
  해수 관음보살상
팔선대
팔선대
의젓하게 우뚝 서 있거나 바다 쪽을 지긋하게 내려다보는 듯한 갖가지 신비로운 이미지를 자아내는 바위들에 이름을 붙인 금산 38경도 좋지만, 산 정상께에 있는 보리암과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경치가 그만이다. 
바다에 깔리는 안개나 산중턱에 걸리는 구름 때문에 온전한 형체를 고스란히 보기는 어렵지만, 햇살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빛깔을 띠는 바다와 함께 그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이 그려내는 다도해 풍광의 적요로운 느낌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금산은 남해에서는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산과 보리암 답사는 복곡저수지 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보리암에 닿은 뒤 보리암과 금산을 둘러보고 상주해수욕장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빠르고 쉽다. 
대장봉 & 형리암
‘비단 산’이라는 예쁜 이름의 금산은 본래 보광산이었다고 한다. 이 보광산이 금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이성계가 천운의 뜻을 품고서 백두산에 들어갔는데 산신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두번째로 지리산에 들어갔으나 산신이 받아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남해섬 보광산에 들어와 백일기도를 올리고서야 비로소 왕조 창업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보광산에 은혜를 갚기 위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려 했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에 한 신하가 “비단으로 산을 감싸기는 나라 경제가 허락하지 않고 영원한 기념이 될 수 없으니 차라리 이름을 비단 산[錦山]으로 지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자, 태조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보광산의 이름을 금산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 
금산 정상 단풍모습
금산 정상 부근에 자리잡은 보리암(菩提庵)은 신라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이름은 보광사였는데 현종 원년(1660) 절을 왕실 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으로 바꿨다고 한다. 오래된 역사와 절경을 품고 있는 보리암이지만 비좁은 경내에는 이렇다 할 문화재가 없다. 절 아래쪽 탑대에 고려 초기에 조성된 삼층석탑과 불기 2514년(1970)에 세운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보리암: 
남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보리암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처음 창건했다고 전한다. 양양의 낙산사, 강화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보리암 뒤로 우뚝 솟은 바위는 금산 38경의 하나인 대장봉이다.
삼층석탑은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원효대사가 모셔와 이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전해온다. 전설과는 달리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 양식을 취하고 있다. 단층기단 위에 놓인 탑신 세 층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구슬 모양의 보주가 놓여 있다.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이다. 
해수관음보살상 & 보리암 삼층석탑:
보리암 삼층석탑: 
원효대사가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모셔와 세웠다고 전하지만, 전하는 말과는 달리 탑의 모습은 고려 초기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보리암 삼층석탑:
삼층석탑과 한 영역에 어우러져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은 보리암의 근래 명물이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관음보살상, 강화도 보문사 관음보살상과 함께 치성을 드리면 효험을 보는 3대 해수관음보살상으로 손꼽혀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리암전경
탑대에 앉아 바다를 등지고 보리암 주변을 둘러보면 가장 높은 대장봉에서부터 왼편으로 형리암·농주암·화엄봉·일월봉·제석봉·상사바위 등이 차례로 보인다. 
삼불암은 탑대 오른편으로 건너다보이는 바위이다. 
극락전 아래쪽 대나무 숲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가면 나오는 삼불암의 아래쪽에는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한 뒤 등극했다는 전설이 깃든 이태조기단이 있다.
금산 석양
금산정상
형리암
입구에서본형리암
상사바위
상사암에서본 보리암,
보리암입구에서본전경,
상사바위똑에서본 보리암쪽전경,
보리암 뒤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금산 정상이다.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하늘 아래인 이곳엔, 우선 덩치 큰 돌무더기가 눈에 띈다. 망대라고도 불리는 봉수대이다.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여 변방에 적이 침입했음을 중앙에 알리는 군사 통신시설이다. 평상시는 연기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가까이 접근하면 셋, 침공하면 넷, 접전시에는 다섯으로 긴급히 연락하였으며, 만약 봉수대에 불이 지펴지지 않거나 구름이나 바람 때문에 연기나 점화가 여의치 않으면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직접 뛰어가서 연락해야 했다.
금산 봉수대
금산 정상에 있는 군사 통신시설로 망대라고도 부른다. 금산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여 변방에 적이 침입했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 맑은 날에 봉수대 위에 서면 남쪽 남해 바다는 물론 북쪽 지리산까지 사방이 한눈에 보인다.봉수는 동서양의 고대국가에서 두루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대략 수십 리마다 살피기 좋은 요지의 산꼭대기에 이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이 많고, 신속한 교통이나 통신제도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봉수는 매우 효과적인 통신수단이었다. 고려시대에도 봉수는 더욱 발전되고 정비된 상태로 유지되었으며,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서는 봉수에 관한 법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마련되었다. 봉수가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이다.
조선시대 봉수망은 전국에 다섯 개가 있었으며, 국경지방의 연대에서 경봉수대인 서울 남산(목멱산) 봉수대까지는 7시간 정도(1시간당 약 110㎞) 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세가 험악하고 지형이 고르지 못한 길로 뛰어가서 전하는 치보(馳報)가 1개월 정도 걸렸을 것으로 보면 봉수는 당시 퍽 신속한 통신수단이었던 셈이다.

금산 봉수대는 고려 명종 때 남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오장 2명과 봉졸 10명이 교대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높이 3.5m 둘레 56m 폭 8m 되는 장방형의 돌담으로 작지 않은 규모이며,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금산 봉수대에서 피워올린 연기는 동쪽으로는 창선면 대방산 봉수대를 거쳐서 제2선인 진주로 연결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남면 홍현리의 설흘산 봉수대를 거쳐 제5선인 여수 돌산도로, 북쪽으로는 이동면 원산 봉수대로 연결되었다. 이 금산 봉수는 제2선인 동래 노선에 속하여 사천·진주·단성·합천·금산(추풍령)·영동·옥천·회덕·청주·진천·충주·죽산·용인·광주를 거쳐 서울 남산(목멱산)에 닿았다고 한다, 금산에선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한려수도를 한눈에 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맑은 날 봉수대에서 보면 멀리 북쪽으로 지리산, 동으로 사천, 남으로 상주 쪽 남해 바다, 서쪽으로 여수까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봉수대에 망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 만하다.

봉수대 바로 아래쪽 등산 길목에는 유난히 큰 바위가 눈에 띈다. 바위 가운데에 ‘由虹門 上錦山’(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에 오르다)이라는 글씨가 힘차게 각인돼 있다. 조선 중종 때 학자인 주세붕이 쓴 것이라 하며, 이 때문에 문장암이라 불린다.
문장암의 암각글씨
조선 중종 때 학자인 주세붕이 쓴 것이라 한다. 이 글씨 때문에 문장암이라 불린다.보리암이라는 암자와 가까운 남해금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보리암전삼층석탑'이라 불리고 있는 3층 석탑으로,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더욱 유명해졌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꼭대기에는 보주(寶珠:구슬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허태후(김수로의 왕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 하나, 두꺼운 지붕돌 과 3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금산의 정상까지 오른 뒤 다시 보리암으로 해서 한려수도를 굽어보면서 등산길을 따라 하산하면 반달 모양의 포구를 이루는 상주해수욕장이 나온다. 상주해수욕장은 금산을 배경으로 한 절경을 갖춘 남해 제일의 경승지이다. 모래알이 곱고 수심이 얕으며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 가족 단위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하산길, 보리암 바로 아래에는 마치 두 눈이 크게 뚫린 해골 또는 쌍안경같이 생긴 쌍굴이 있다. 보리암의 관문처럼 여겨지는 쌍홍문이다. 절묘하게 생긴 쌍굴 안에 서면 상주해수욕장과 남해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세존도가 손끝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제석봉에서 일월봉
옛날 부처님이 금산에서 돌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갈 때 쌍홍문의 오른쪽 굴로 나가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세존도 한복판에는 마치 커다란 원을 그려 뚫은 듯한 해상동굴이 있다.
화엄봉에서 대장봉 & 형리암
제석봉에서 일월봉
부소암
여행에 필요한 기초 정보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현: 상주면 상주리)에 있다. 가천 암수바위가 있는 홍현리 가천마을에서 다시 앵강곡삼거리로 되돌아나와 오른쪽 상주·미조로 난 19번 국도를 따라 800m 가면 길 왼쪽에 보리암 표지판과 함께 금산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2.6㎞ 가면 복곡 제1주차장과 매표소에 닿고, 매표소를 지나 3.3㎞ 더 산을 오르면 제2주차장에 닿는다. 
제2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는 약 1㎞ 정도 걸어가야 한다. 승용차는 제2주차장까지 갈 수 있으나 대형버스는 제1주차장에 주차해야 하며 제2주차장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 올라가야 한다.

금산 보리암으로 오르는 또 다른 길은, 앵강곡삼거리에서 상주·미조로 난 19번 국도를 따라 9.8㎞ 가면 길 왼쪽에 금산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2시간 30분쯤 산을 오르면 쌍홍문을 거쳐 보리암에 닿는다. 앵강곡삼거리에서 복곡 제1주차장까지 가는 도중에는 숙식할 곳이 간간이 있다. 금산 입구 주차장 주변에도 숙식할 곳이 몇 곳 있다. 
남해읍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약 1시간 간격으로 상주·미조행 버스가 다니는데 복곡저수지 입구에서 내려 복곡 제1주차장까지 걸어가거나 더 가서 금산 입구 주차장에서 내린다.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南海 菩提庵 木造觀音菩薩坐像 佛龕)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상주리 2065, 
보리암에 있는 불화이다. 
2015년 1월 15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상사암(바위)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은 독립적인 관음보살상과 선재동자, 용왕이 협시한 불감형식의 작품이다. 현재 불감의 윗부분은 없어졌고 남아 있는 형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형식은 서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불감(1637-1644년)을 시작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 까지 유행하였다. 
관음보살상은 통통한 뺨, 보발이 없는 점, 대칭적인 연판, 양 측면에 늘어진 옷자락 등에서 조선전기적 특징을 계승한 조선후기 17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한 관음보살 삼존의 도상적 특징을 지닌 점과 사례가 적은 목조불감 형식, 17세기로 추정되는 제작시기 등 자료적 가치가 높은 중요한 불상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금산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해발 705m의 산으로, 서쪽으로 대구청산, 북쪽으로 호곡산, ​무등산, 남쪽으로 해운산과 이어져 있고, 주봉인 망대와 문장봉, 화엄봉, 일월봉, 대장봉, 가마 봉등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 산이름은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하여 보광산이라 불리다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약 200m떨어 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산이름을 금산으로 지어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덮어 주어 금산으로 부르며,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남해금강으로도 부르며,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커다란 해골에 두 눈이 뻥 뚫린 듯하기 도한 굴이 둥근 모양이어서 한쌍의 무지개라고도 불리는 쌍홍문, 양반집 규수를 짝사랑하던 머슴의 전설이 얽혀 있고 이 바위에 올라 기원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상사암, 상사바위위에  있는 9개의 구덩이로 빗물이 고이면 샘처럼 보이고 이물로 세수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구정암, 조선 태조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기단을 쌓고 기도를 올린 삼사기단,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를 업고 있는 형상의 바위 저두암, 바위모양이 화엄 두 글자를 닮은 화엄봉, 버선바위 또는 명필암이라고도하는 문장암, 여덟명의 신선이 내려와 놀다가 바위가 된 팔선대, 진시왕의 아들 부소가 유배되어 살다간 부소암, 사자암, 촉대봉, 향로봉등  38경이 유명하다.
​※ 금산38경 - 
1.망대, 2.천마암, 3.삼사기단, 4.화엄봉, 5.문장암, 6.만장대, 7.저두암,  8.일월봉, 9.대장봉, 10.음성굴, 11.촉대봉, 12.흔들바위, 13.형리암, 14. 용굴, 15.향로봉, 16.부소암, 17.탑대, 18.쌍홍문, 19.사자암, 20.남해 양아리 석각, 21.천구암, 22.사선대, 23.팔선대, 24.세존도,  25.조선태조기단, 26.백명굴, 27.상사암, 28.노인성, 29.가사굴, 30.천구봉,  31.구정암, 32.일출경, 33.삼불암, 34.제석봉, 35.감로수, 36.천계암, 37. 좌선대, 38.농주암
쌍홍문
 쌍홍문:웅장한 바위에 2개의 큰 굴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뚫려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절경으로 여름철에 서늘한 바람이 불며 상주 쪽에서 금산을 오르는 관문이다. 옛날 세존이 석주(돌로만든 배)를 만들러 타고 우측 문으로 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음성굴
음성굴: 오른편에 있는 용굴은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음. 길고 넓게 생겼다. 전등을 가지고 가야 굴 안을 잘 볼 수 있다. 절벽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어 기이하며 굴 입구까지 돌 사다리를 타야 한다. (남해금산38경)
만장대
만장대: 탑대의 서남편에 마치 깍아세운 듯 천인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으로 웅장한 미가 있으며, 그 높이가 만장같이 높고 반듯하다고 하여 만장대라 부른다. (남해금산38경)
사선대
사선대: 쌍홍문에서 천구암 쪽으로 가면 마치 신성선녀 모양의 바위가 4개있다.
옛날 삼신산(三神山)의 사선(四仙)이 놀다가 갔다는 전설이 있다. (남해금산38경)


名山




좌선대에서 상사암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있는 큰 바위로 모양이 흡사 "사자"와 같다고하여 붙혀진 이름. (남해금산38경)


名山




삼사기단 왼편 아래쪽에 있으며, 그 모양이 향로와 같아 불리워진 이름. 삼사가 기도를 올릴 때 향로로 사용했다고 한다....


名山




향로봉 바로 옆에 있으며 그 모양이 촉대와 같은 바위인데 원효. 의상. 윤필 삼사가 기도를 올릴 때 촉(촛)대로 사용했다...


名山




좌선대 왼쪽에 있는 바위로서 그 모양이 돼지 머리와 같아 "돼지바위"라고 불리워 짐. (남해금산38경)


名山




좌선대 아래에 있는데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등 삼도인이 기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는데, 이 자리는 윤필거...


名山




제석봉 왼쪽에 있는데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수도좌선 하였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오르기에 힘드나...


名山




일월봉 아래 천구암의 왼편에 있는데 일월봉이 있으면 반드시 재석봉이 있기 마련으로 제석님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 (남...


名山




일월봉 아랫편에 있는 바위로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천구봉이라 불리우며, 이 바위는 일월봉을 보고 있다. ...


名山




사선대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임진왜란시에 100명 내외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피난하였던 굴로서 입구까지 찾아가기가 곤란하...


名山




쌍홍문에서 천구암 쪽으로 가면 마치 신성선녀 모양의 바위가 4개있다. 옛날 삼신산(三神山)의 사선(四仙)이 놀다가 갔다는 ...


名山




웅장한 바위에 2개의 큰 굴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뚫려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절경으로 여름철에 서늘한 바람이 불며...


名山




음설굴의 오른편에 있는 용굴은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음. 길고 넓게 생겼다. 전등을 가지고 가야 굴 ...


名山




높이2m, 길이5m의 작은 굴로서 돌로 두드리면 장고 소리와 같은 풍악 소리가 들리므로 음성굴이라 한다. 절벽 한 가운데에...


名山




탑대의 서남편에 마치 깍아세운 듯 천인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으로 웅장한 미가 있으며, 그 높이가 만장같이 높고 반듯...


名山




망대 아래쪽 동쪽에 있는 뚜거비 모양의 바위로서 태조가 기도를 하고 있을 무렵에는 회두암(回頭岩)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名山




이태조기단 뒤편에 서있으며 이태조가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닭의 울음 소리가나서 인가가 있는 곳이 아닌가 하고 주위를...


名山




이태조 기단 뒤편에 직립대암벽 위에 3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태조가 백일기도 전에는 3개의 바위가 누워있는 모습이었으나...


名山




탑대 밑 동쪽에 있는 암굴(巖窟)로서 길이 험하여 보통은 못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옛날 낙서대사 때는 천동천녀가 가사...


名山




이태조(李太祖)가 이 자리에서 백일 기도 후 곧 등극하였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으로 탑대에서 건너다 보이는 삼불암 아래에...


名山




탑대의 북쪽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바위로, 그 모양이 마치 비둘기처럼 생겼다 하여 천구암이라 한다. 일명 "비둘기바위"라...


名山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탑이 서있어 이 절벽을 탑대라 한다.보리암 바로 밑에 있어 전망이...


名山




보리암 바로 뒤에 있으며,대장봉 앞에서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습으로 생겨 형리암이라 부르게 되었고 보리암에서 처음...


名山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그 모습이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있어 대장봉이라 부른다. 이 ...


名山




망대에서 남쪽 내림 길목에 있는 바위로서 조선 중종 시대의 한림학사인 신제 주세봉 선생이 글씨를 쓰셨다고 해서 문장암...


名山




금산에서 제일 높은 상봉으로 이곳에 오르면 금산을 에워싼 온 경치를 한눈에 굽어 볼 

** 본 정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행 시에는 최신 정보를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금산과 보리암 지도

금산과 보리암
금산과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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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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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구름
무지개는 물과 빛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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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은 하늘에 나타나는 모든 자연현상들이 신이 활동하는 표시라고 믿었다. 따라서 사나운 폭풍우에 이어 나타나는 무지개는 자비로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무지개는 하늘과 지상 사이의 경계선에 걸쳐져서 나타난다. 그러기에 신과의 통신을 나타내는 특별한 상징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무지개는 신의 현신이었다. 올림포스 산에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리스 여신이었다. 이리스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꽃 아이리스로부터 라틴어 이름을 물려받았다. 무지개 여신인 이리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소식의 전달이다. 그녀는 이슬방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무지개를 밟고 사람의 세계로 내려온다.
북유럽신화에서는 신들이 하늘과 사람이 사는 땅 사이에 다리를 세웠다. 이 다리가 비프로스트라는 무지개 다리다. 무지개가 신과 사람과의 소통의 통로인 것이다. 브라질 원주민 중 움반다(Umbanda)와 칸돔블레(Condomble) 족, 쿠바의 산테리아(Santeria) 인은 무지개에 비슷한 상징을 부여한다. 무지개가 신이 사는 높은 곳과 인간이 사는 낮은 곳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라는 것이다. 티베트에서 인간과 신은 무지개로 만들어진 하늘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렸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무지개 신화가 있다. 신라 진지왕은 도화()라는 부녀자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렸다. 왕은 온갖 감언이설로 여인을 꾀었다. 여인은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며 왕을 모실 수는 없다고 버텼다. 결국 여인을 품지 못한 왕은 미련을 안고 죽었다. 그런데 그 날부터 일주일간 도화녀의 집 지붕에 오색 무지개가 섰다. 무지개 타고 저승에 가던 진지왕이 미련이 남아 머물다 간 것이란다. 하늘의 선녀도 무지개를 타고 지상에 오르내린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Yoruba)족 등 아프리카 문화에서 무지개는 하늘과 지상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로 본다. 이들은 그들이 상서로운 상징으로 보는 하늘 뱀과 동일시한다. 잉카인들은 무지개를 태양신과 연관 지었다. 고대 칼데아 인들은 무지개를 위대한 여신이 대홍수 뒤에 들어 올린 커다란 활이라고 했다. 사하라 사막 지대의 반투 족들의 왕은 자기들이 무지개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무지개를 이용하여 통치에 활용한 것이다. 
중국 갑골문은 가장 오래된 기상현상 기록문이다. 무지개(()는 ‘2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용이나 뱀 종류)이 강물을 퍼 마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지개가 떠오르면 벌벌 떨면서 점()을 치는 수선을 피웠다고 한다. 중국 전통에서 무지개는 천상과 지상의 합일인 천룡()의 상징이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에서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인 것이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찍은 달 무지개(moonbow)<출처 : (cc) CalvinBradshaw at wikimedia.org>

우리가 말하는 하나의 무지개로 보이는 것을 1차 무지개라 부른다. 빗방울 속에서 햇빛이 한번 반사된 것이다. 숫무지개라고도 한다. 태양과 관측자를 연결하는 선을 연장한 방향을 중심으로 시반경() 40~42°로 나타난다. 안쪽이 보라색, 바깥쪽이 빨간색으로 배열된 햇빛 스펙트럼이라고 보면 된다.
약간 드물지만, 쌍무지개도 종종 나타난다. 쌍무지개는 1차 무지개 바깥쪽에 2차 무지개가 보인다. 2차 무지개를 암무지개라고도 부른다. 1차무지개와 달리 시반경이 넓다. 시반경 50~53°로 나타난다. 빗방울 안에서 빛의 반사가 두 번 일어날 때 만들어진다. 무지개 색 배열은 안쪽이 빨간색, 바깥쪽이 보라색으로 1차 무지개와 달리 반대 색상 배열로 나타난다.
3차무지개는 1, 2차 무지개와 반대 방향 즉, 태양 방향으로 시반경 38~42°로 나타난다. 빗방울 안에서 빛이 세 번 반사가 일어날 때 만들어진다. 그러나 반사가 될 때마다 상당히 어두워지기 때문에 점점 실제로 보기는 어려워진다. 4차 혹은 그 이상의 무지개도 있을 수 있다. 3차 이상의 무지개 관측은 쉽지 않다.

쌍무지개. 1차 무지개와 2차 무지개가 함께 뜬 것이다. <출처 : (cc) Eric Rolph at English Wikipedia>
대기의 날줄과 씨줄로 직조해내는 웅대한 리듬이 현란하다. 순간순간 바뀌는 변화가 오묘하다. 복잡하면서 단순한 색채의 현란함은 차라리 경이롭다.지상에서 보이는 무지개는 화살모양으로 반원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중에서 보면 무지개는 원형이다. 왜 그럴까? 물방울을 입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햇빛이 물방울에 비치면 물방울로부터 나오는 빛은 아이스크림콘처럼 원뿔 모양을 이룬다. 원뿔의 뾰족한 점(꼭짓점)을 시선의 위치라고 하면 무지개는 원기둥의 밑면인 원의 둘레처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무지개의 모양이 반원인 것은 어떤 이유일까? 대개의 경우 무지개가 지면에 가리게 되어 반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비행기(비행기의 위치는 원뿔의 꼭짓점)에서 무지개를 본다면 무지개는 분명 원 모양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찌그러진 무지개는 볼 수 없고, 무지개의 옆면이나 뒷면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지개는 항상 정면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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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는 색깔의 순서가 서로 반대이다. <출처 : 기상청 기상사진전>
스카이다이빙 중에 촬영한 동그란 무지개 <출처 : (cc) Steve Kaufman>
또한 무지개는 다른 종류도 있다. 제1차 무지개의 안쪽과 제2차 무지개의 바깥쪽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과잉무지개(supernumerary rainbow)인데, 이것들은 제1차 무지개 및 제2차 무지개를 만드는 물방울로부터의 빛의 간섭에 의해서 생긴다고 추정된다. 태양이 호수 등 잔잔한 수면에 떠 있는 경우, 호수에 비친 태양에 의해서도 엷은 무지개가 생긴다. 그래서 무지개가 겹치게 되는데, 이를 반사무지개라고 한다.

1차 무지개 안쪽에 다시 희미한 무지개가 보일 수 있는데, 이를 과잉무지개라 한다.

무지개 2개가 겹치는 형태로 보이는데, 위의 희미한 무지개가 반사 무지개이다.
안개 등 반지름이 30μm(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물방울의 경우 대일점으로부터 37~40°에서 테만 엷게 물든 폭이 넓은 무지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안개무지개(fogbow) 라고 한다. 태양 빛이 아니라 달 빛으로도 무지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달 무지개(moonbow)라고 한다. 석양이나 일출 근처에 무지개가 생길 경우 붉은 색의 단색 무지개가 생길 수 있다.무지개 사진모음
무지개의 경이로운 성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은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였다. 그 이후 많은 대기과학자들에 의해 무지개의 원리가 상세하게 밝혀졌다.

데카르트의 무지개에 관한 설명
무지개란 한쪽 하늘에 떠 있는 빗방울에 의해 생긴다. 빗방울 반대쪽에서 오는 햇빛이 굴절․ 분광, 반사되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무지개는 하얀 햇빛이 공기와 물 사이를 지나는 순간 여러 가지 색깔로 휘어진다. 빛의 굴절 현상이다. 굴절은 빛의 색깔들이 각기 다른 속도로 빗방울 속을 지날 때 발생한다. 빨강 색은 보라색보다 약간 더 빠르게 통과한다. 이러한 속도 차이로 인해 여러 가지 색깔로 나누어진다. 색깔이 나누어지는 현상을 분광 현상이라고 한다. 무지개는 태양 광선이 빗방울 속에서 일정한 각도로 반사되어 우리의 눈에 보이게 된다. 반사현상이다.
비가 내린 뒤 산 위에 걸쳐지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그것이다. 어릴 적에는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기 오염으로 거의 볼 수가 없다. 무지개는 빛이 광원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비ㆍ물보라ㆍ안개와 같은 물방울의 집합체를 비출 때 7가지 색채를 띤 동심호로 나타난다. 특히 태양이 소나기의 빗방울을 비출 때 태양과 반대 방향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데,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무지개는 동심원으로 보인다. 태양을 등지고 입에 물을 머금었다가 뿜으면 희미하게나마 일시적으로 인공적인 무지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햇무리와 달무리도 대기 중에 있는 물방울이나 얼음 덩어리에 의해서 생기는 광학적인 현상으로 일종의 무지개이다. 이때 햇무리는 해에 생긴 무지개(일훈)이고, 달무리는 달에 생긴 무지개(월훈)를 말한다.

옛날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반드시 재난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아주 심각하게 여겼다. 달무리는 달 주위에 동그랗게 나타나는 빛의 띠로 호ㆍ기둥ㆍ점 등의 모양을 나타내기도 한다.

달무리가 나타나는 이유는 대기 중에 떠 있는 빙정에 의해서 빛이 굴절ㆍ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빙정으로 이루어진 엷은 권층운이 끼어 있을 때 나타난다.

흔히 달무리가 있으면 곧 비가 내린다고 알려져 있다. 또 태양 주위에 나타나는 햇무리는 빛이 구름의 얼음 조각을 통과할 때 회절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엷은 권층운이 끼어 있을 때 나타난다.

『서운관지』라는 책에는 일훈과 월훈 이외에도 이()ㆍ관()ㆍ배()ㆍ포()ㆍ경()ㆍ극()ㆍ리() 등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무지개로 구분되어 있다. 특히 흰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는 백홍관일()과 흰 무지개가 달을 꿰뚫는 백홍관월()은 지동지진()이나 객성과 같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 즉시 조정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쪽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소를 강가에 매지 말라’는 속담을 보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서쪽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서쪽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있는 곳에도 비가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했던 말이다. 이와 같이 선조들은 무지개를 보고 홍수를 예측했던 것이다.
무지개의 색깔은 바깥쪽에서부터 안쪽으로 빨강ㆍ주황ㆍ노랑ㆍ초록ㆍ파랑ㆍ남색ㆍ보라색을 띠며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무지개는 1개만 생기는 무지개와 그 바깥쪽에 하나 더 생기는 2차 무지개가 있는데 이것을 ‘쌍무지개’라고 부른다. 쌍무지개는 1차 무지개보다는 색이 희미하고 색 층이 반대로 되어 있다.

무지개 전설

우리나라에는 선녀들이 깊은 산속 물 맑은 계곡에서 목욕하기 위하여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중국에서는 무지개는 연못의 물을 빨아올려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이런 것 때문에 가뭄이 든다고 생각했다. 동남아시아의 원시 민족들은 아침 무지개는 신령이 물을 마시기 위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다. 무지개가 선 곳을 파면 금은보화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 나라도 있다.

그 예로 아일랜드에서는 금시계, 그리스에서는 금열쇠, 노르웨이에서는 금병이 무지개가 선 곳에 숨겨져 있다고 하였다. 무지개가 동반하는 소나기 때문에 고대 유적과 같은 곳의 겉흙이 씻겨져 금으로 된 유물들이 발견된 데서 이러한 전설들이 유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밖에 민족에 따라 하늘과 땅 사이의 다리(북유럽 신화), 뱀(아메리카 원주민)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바이라족은 지상신, 말레이 반도의 원주민은 하늘나라의 거대한 뱀 또는 뱀이 물을 마시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무지개를 신령이 지나다니는 다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우리는 무지개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일곱 색깔이라고 알고 있지요.
하지만 무지개 색깔은 나라마다 달라요. 지금은 일곱 색깔이라고 말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오색 무지개라고 했어요. 미국에서는 남색을 제외한 여섯 가지 색깔, 멕시코 원주민인 마야 인은 검은색, 하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다섯 가지 색깔, 아프리카 사람들은 두세 가지 색깔로 무지개가 이루어졌다고 말하지요. 도대체 무지개는 몇 가지 색깔로 되어 있는 것일까요?
사실 무지개의 색깔은 몇 가지냐 하면······. 놀라지 마세요. 무려 134~207색까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해요. 이렇게 무지개 색깔이 많은데, 왜 우리는 무지개 색깔을 일곱 가지로만 나눈 것일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옛날 사람들이 하늘에 나타나는 신비로운 무지개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어요. 그래서 무지개의 색깔도 별이나 신을 나타내는 성스러운 숫자 7과 관련지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답니다.
요즘에는 무지개를 잘 볼 수 없어요. 특히 도시 지역에서 무지개를 보기가 더 힘든데, 그것은 도시의 공기 중에 오염된 물질이 많기 때문이에,,,

구름의 외관상 모양을 말한다. 다음과 같이 3가지 기본형으로 구분한다.
1) 권운형(cirriform cloud) 섬유상의 구름으로서 매우 높은 고도에서 나타난다.
2) 적운형(cumuliform cloud) 돔(dome) 또는 탑모양의 연직으로 발달한 구름으로 어느 고도에서나 나타난다.
3) 층운형(stratiform cloud) 두께에 비하여 수평방향의 범위가 훨씬 크고 어느 고도에서나 나타난다.
4) 기본 구름모양 구름의 모양과 고도에 따라 10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구름"
층상운종류열대지방온대지방극지방
고층운
권운, 권적운, 권층운
km∼18 km
km∼13 km
km∼8 km
중층운
고층운, 고적운
km∼8 km
km∼7 km
km∼4 km
하층운
층적운, 층운, 난층운
지상∼2 km
지상∼2 km
지상∼2 km
대류운
적운
보통 0.5 km∼6 km 고도범위에서 발달하며, 그 이상까지 발달하는 경우도 있다.
적란운
뇌우(때로는 우박)를 동반하며 대류권계면 고도까지 발달한다.

출처 & 참고문헌,
[무지개 [Rainbow] - 기상 현상중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이미지 (지구과학산책,)[무지개 - 물방울이 만들어 내는 하늘의 색동 띠 (대단한 지구여행, 2011..,)[재미있는 날씨와 기후 변화 이야기,[무지개 - 물방울이 만들어 내는 하늘의 색동 띠 (대단한 지구여행, 2011..,)[무지개 색깔은 나라마다 달라요? (재미있는 날씨와 기후 변화 이야기, 2014..,)[구름 - 하늘에 떠다니는 물과 얼음 (지구과학산책, )[구름모양 [雲形, cloud form] (지구과학사전, 2009. 8. 30., (사)한국지구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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