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5일 일요일

개심사(開心寺)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651년(의자왕 11) 혜감국사()가 창건하고 개원사()라 하던 것을 1350년 처능()이 중창하며 개심사로 고쳤다. 그 후 1475년(조선 성종 6) 중창하였으며 1955년 전면 보수하였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충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殿) 및 심검당() 등이 있다.
마음을 씻고 오르는 절
개심사를 오르는 입구에는 세심동이라 글귀가 새겨진 표지가 보인다. 마음을 씻으며 마음을 열면서 개심사로 올라보자. 표지가 있는 입구에서 개심사까지 오르는 길은 멋진 산길로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돌계단을 따라 옆으로 계곡이 흘러 운치 있다. 개심사의 창건은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의 개심사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천천히 걸어 절에 이르면 안양루를 만난다. 안양루에 걸린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은 근대 명필로 알려진 해강 김규진의 글씨이다.

절의 강당인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산세가 일품이니 잠시 머물렀다 가자. 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웅보전과 요사채인 심검당은 조선 초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의 건축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대웅보전은 맞배지붕 건물로 차분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밖에서 보면 기둥 사이로 공포가 놓인 다포계 건물로 보이나 안쪽에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놓인 주심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형대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건축형태이다.
수선화 언덕이 아름다운 서산, 
한동안 봄꽃 하면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동백꽃과 매화, 벚꽃 정도를 떠올렸다. 몇 년 새 풍경을 상품화하는 경관 농업이 관심을 끌고 대규모 유채꽃 단지와 청보리밭, 매실 농장 등이 인기 관광지가 되면서 봄빛이 다양해졌다. 수선화의 아름다움도 재발견됐다. 특히 서산 유기방가옥(충남민속문화재 23호)은 고즈넉한 한옥과 노란 수선화를 가득 심은 언덕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영롱한 빛깔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수선화
수선화의 영어 이름은 나르시서스(narcissus)다. 자연스레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떠오른다. 호수에 비친 자신과 사랑에 빠져 목숨을 잃은 나르키소스가 꽃으로 피어난 것이 바로 수선화다. 수많은 요정의 마음을 흔든 소년을 닮아 수선화는 영롱한 빛깔과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언뜻 이국의 꽃으로 느껴지지만, 옛 선비들의 문인화에서도 수선화를 흔히 만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 수선화를 보고 단번에 매혹됐다. 그는 《완당집》에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며 “그 꽃이 정월 그믐부터 2월 초에 피어 3월에 이르면 산과 들, 밭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하다”라고 적었다. 수선화를 묘사한 시와 그림도 남겼다.
언덕과 산자락을 따라 펼쳐진 꽃밭에 놓인 의자가 포토 존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 만개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무렵 유기방가옥 뒷동산은 추사의 표현을 빌리면 샛노란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하다. 산등성이엔 울창한 솔숲이 이어져 수선화의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고택 바로 뒤 언덕과 산자락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꽃밭에 놓인 의자가 포토 존으로 인기다.
여미헌(餘美軒)이라는 현판이  
수선화 언덕에서 나르키소스 못지않은 인생 사진을 건졌다면, 유기방가옥도 찬찬히 둘러보자. 1900년대 초에 지은 고택은 서산 지역 전통 양반 가옥의 배치를 그대로 따른다. 누각형 대문에 여미헌(餘美軒)이라는 현판이 걸렸는데, 이 지역이 운산면 여미리에 속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부엌과 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어지는 ‘一 자형’ 안채가 양반가다운 규모를 드러낸다. 예전에 안채 앞으로 중문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헐어낸 상태다.
수선화의 동양적인 매력을 더하는 토담
대청에 앉으면 후원에 만발한 수선화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안채 왼쪽에 행랑채,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마당을 가운데 둔 ‘ㅁ 자형’이다. 덕분에 크기가 상당한 가옥인데도 아늑한 인상이다. 꽃밭과 고택을 구분 짓는 ‘U 자형’ 토담도 수선화의 동양적인 매력을 더한다.
대청에서 쉬는 여행자들
유기방가옥은 2018년에 방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고종의 최측근인 궁내부 대신 이정문의 집으로 등장했는데, 꼿꼿하고 거침없는 집주인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으로 눈길을 끌었다. 현재 한옥 체험을 운영해, 전화로 예약하면 안채와 사랑채 등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수령 350년에 가까운 비자나무,
고택에서 나와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수령 350년에 가까운 비자나무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75년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라고 한다. 지금도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듯 잎마다 윤기가 흐른다. 높이 20m에 둘레도 240cm가 넘는다. 제주에서 군락을 이루는 비자나무는 전라도 백양산과 내장산에서 자생하는 게 전부다. 중부지방 이북에서 이처럼 장수하는 고목이 흔치 않아, 산림학적 가치도 매우 높다.
10년 넘게 방치된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여미갤러리&카페
유기방가옥이 자리한 여미리엔 고려 시대 석불과 수령 25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등 걸음마다 볼거리가 풍성하다. 최근 예술가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며 ‘달빛예촌’이란 이름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데, 그 중심에 여미갤러리가 있다. 10년 넘게 방치된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이곳은 다양한 기획전은 물론, 마을 사람과 예술가들이 어우러지는 마을 예술제도 운영한다. 여행자에겐 잠시 걸음을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를 겸한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 각종 디자인 관련 전문 서적이 빼곡해 북카페로도 손색없다.
내포 지역의 중심지였던 해미읍성
서산을 대표하는 여행지 해미읍성과 개심사가 유기방가옥에서 자동차로 20분 내외 거리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화제를 모은 서산 해미읍성(사적 116호)은 천주교 성지로 이름이 높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천주교도 수천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해미고을은 서산과 당진, 홍성과 예산을 아우르는 내포 지역의 중심지로, 현감에게 군사력과 독자적인 처형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도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회화나무
이토록 비극적인 사연을 품었으나, 봄날의 해미읍성은 평화롭기만 하다. 드넓은 잔디밭이 연둣빛을 띨 무렵이면 벚꽃도 흐드러지게 핀다. 복원한 옥사와 천주교도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회화나무(충남기념물 172호) 한 그루가 목숨과 맞바꾼 신념을 기억할 뿐이다.
벚꽃이 아름다운 개심사의 봄 <사진제공:서산시청>
백제 시대 사찰로 알려진 개심사는 푸른빛을 띠는 청벚꽃으로 유명하다. 산속 깊숙이 자리해 평지보다 한참 늦은 4월 하순에나 벚꽃이 만발한다. 꽃송이가 탐스러운 겹벚꽃도 함께 피어 봄의 절정을 알린다. 오붓한 산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돌계단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가지런한 모양새가 꽤 정성을 들인 느낌이다. 수백 개나 되는 돌계단이 산세를 따라 ‘之 자형’으로 놓여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다. 그저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면 선물처럼 개심사가 눈앞에 나타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개심사(開心寺)로 오르는 길은 그 이름처럼 마음을 여는 과정이다.
개심사(開心寺)
보물 제 143호인 대웅보전을 안고 있는 개심사.
넓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상점사이를 비집고 나와 일주문 앞에 섰다.
"상왕산 개심사"... 바로 전에 들렀던 "문수사"도 상왕산이었는데....
가야산 한 줄기가 내려와 상왕산이라는 이름 안에 개심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약 10여분을 올라가면 개심사가 나온다.
거리상으로는 300m쯤? 100m는 찻길이고, 200m는 계단이다.
개심사는 입구
절 앞마당에 있는 직사각형 연못...
조금 더 있으면 연못가로 길게 드리운 왕벚꽃나무에서 하얀꽃잎들이 연못으로 떨어지는 장관을 볼수 있을게다.
수령이 짐작이 되지 않는 배롱나무의 화려한 꽃들도 볼만할텐데...
범종각
개심사를 둘러보는데 다른 여느 사찰에서 보지 못한 문구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입니다." 일반 사찰에서는 "출입금지", "내방객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단호한 글귀가 보였는데 이곳은 시적인 글귀가 써져있어 그저 조용히 고개를 돌리게 된다.
범종각 뒷건물은 "안양루"라는 건물이다.
"象王山 開心寺" 현판은 근대의 명필 해강 "김규진"씨가 예서체로 쓴 것이다. 
 안양루 옆의 "해탈문"으로 경내 입장~     
 개심사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안양루는 다른 개심사의 전각들처럼 옛스럽다.
불룩하게 튀어나와 자연스러움을 주는 대들보도 개심사답다.
안양루에서 사찰 건물을 쳐다볼때 정면에 대웅전이, 왼쪽으로는 심검당, 오른쪽에는 무량수각이 자리잡고 있다.
 개심사 경내는 작고 소박하지만 있을건 다 있다. 운치도 있고....
개심사 심검당
현재 개심사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초기 요사채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물이면서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요사채 문짝없는 대문
​심검당의 건립연대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성종실록에 개심사의 건물이 1475년(성종6)에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1484년(성종 15)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심검당도 이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에 다시 중창되었다.     
특히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 부재를 삼은 이 건물의 대담함과 천연스러움에 감탄하게 된다.
​심검당의 부엌쪽인 종무소 현판이 있는 부분은 후대에 이어지은 것이고 원래 건물은 맨 오른쪽부터 3칸이다.
 원래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나 지금의 "ㄱ"자형의 방을 이어지게 늘려지어 상당히 큰 요사로 남아있다. 구조는 기단석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윗부분에 공포를 짜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 한 주심포 양식이다. 
​지붕의 뒷부분에 홑처마, 앞은 겹처마의 맞배지붕 집이다.
평지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평탄하고 안정되어 산속의 다른 건축물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단청을 하지 않아 깊은 맛이 오히려 좋다.
개심사 오층석탑에 대하여는 별다른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개심사 대웅보전(보물 제143호)
개심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진덕여왕 5년은 651년에 해당하고 의자왕 14년은 654년에 해당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가는 확인할 수 없다.  
1941년 대웅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484년(성종15)에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건물로 네모반듯한 평면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을 이룬 단순한 직사각형 평면이다. 맞배지붕의 다포계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내부는 주심포계 형식의 특징인 결구 모습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건물로 네모반듯한 평면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을 이룬 단순한 직사각형 평면이다. 맞배지붕의 다포계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내부는 주심포계 형식의 특징인 결구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어 일종의 절충 형식을 띠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다포계 목조건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무량수각 대부,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불단 위에 다시 연꽃 조각 대좌를 두고 아미타불이 앉아있다.
양 옆으 보살들은 지장과 관음보살입상이다. 군더더기 없는 얼굴모양, 정연한 조각 등이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다.     
삼존불 뒷벽면은 예전에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탱화가 걸려있었는데 전문 도둑이 하룻밤 사이에 칼로 도려내가서 옛것을 본떠 새로 걸었다고 한다.
무량수각
사찰부엌,
사찰 부엌 천정,
다양한 각도에서 본 경내 풍경
전각이 많지 않은 개심사이지만 짜임새 있는 배치로 답답하지도 왜소해 보이지도 않는다.
대웅전, 오층석탑,,
대웅전 앞 전경,
대웅전 앞 전경,
새로지은 요사채,
심검당 뒷 모습,
요사채
개심사, 팔상전.
개심사 명부전,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와 등 10대왕을 봉안한 절의 전각이다. 
원래는 대웅전 다음으로 중요시되던 건물이었다. 자연석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었으며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으로 건립되었다. 
맞배지붕이며 측면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널판지가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이다.
내부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그 뒷면으로 불단을 조성하여 철로 만든 지장보살과 10대왕을 안치하였는데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하여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입문 좌우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자상을 세워두었다.   
​ 명부전
명부전 앞마당에는 큰 청벚꽃나무가 있다. 
청벗은 다른 곳에서는 살지 못하고 이곳에서만 살수 있다고 한다.
스님들 숙소같은듯, 담벼락이 정겹다, (요사채)
요사채대문,
이정표대로 걷다보면 보원사지가 나오고 마애여래삼존불이 나온다.
개심사 산신각
개심사 산신각
개심사 산신각 대부모습,
전각들이 있는 곳, 한층 아래 수풀로 우거진 창고(?)와 감로수가 나오는 약수터가 있다.
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민가인듯,,,
추측컨대 절 아래 민가가 있었을거 같다.
민가 인듯..
사찰주위에 오래묵은 집, (민가)
개심사 텃밭,
내려갈때는 왔던길로 내려가지 않고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로.,,
알고보니 주차장에서 이길로 차를 타고 올수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소나무 오솔길을 걷는 것도 힐링이 될듯싶다. 
개심사 소나무 오솔길
사찰입구, 논이 주차장???
​벚꽃 만발한 완연한 봄날에 다시 한번 올 수 있을까?
"맞배지붕에 다포계 건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라 한다. 개심사는 입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입산하는 것처럼 나그네의 발길을 끌었다. 구불거리는 돌계단을 숨차게 올라왔다. 開心寺는 마음을 열라는 사찰이다. 그러니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면서 두루두루 살폈어야했다. 길옆으론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는지, 무엇을 보러 왔는지 살피는 것도 사찰을 찾는 의미. 자연스런 모습으로 봄이라고 꽃이 지니 새롭게 올라온 야들한 나무이파리들의 모습도,,. 이것이 개심사로 향하는 멋스럼이지 싶었다.         
예로부터 산사는 높은 산에 있었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우리나라 산사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산사의 나라다.’ 라고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유홍준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와 있다.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들춰내는 데는 돌계단과 비탈길을 오르며 힘들다 투덜거렸기 때문이다. 생각없이 목표에만 신경을 썼으니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 두루두루 살폈더라면 어느 사이에 다 왔구나! 했을 것이다. 삐져나온 바위에 걸터앉아 무릎 보호대를 묶을 때까지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의 물결에 휩쓸리곤 했다. 어디서부터 투정을 부렸을까. 아마도 내가 나를 놓아버렸을 때였다. 개심사 가는 길이 별로 힘들지 않았고 멀지도 않았는데, 마음에서 산사가 멀어져갔을 때였다. 뭘 보러 여길 왔지? 사람구경일까. 어디가나 이때면 사람의 물결로 골치 아프니까. 그 순간 나는 개심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고얀이 입산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부러진 고목사이로 보이는 벚꽃이파리들이 엷은 바람결에 날렸다. 개심사의 왕벚꽃이 피면 장관이란 말을 들었다. 아직은 봉오리를 열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 옆에 앵두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누군가 잽싸게 옆에서면서 폰을 내어준다. 맛배지붕의 기와 골을 타고 내린 햇살도 곱다. 어쩜 검은 톤과 흰 꽃다발의 어울림이었다. 가지를 타고 주르륵 매달린 꽃들이 귀여운 동물의 긴 꼬리가 되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이런 것이 자연이 주는 산사의 멋인가 보다. 우리만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낳은 불교 유산일 게다. 가야산 한 줄기가 내려와 상왕산이라는 이름 안에 개심사는 들어앉았다.
佛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사찰에 들면 나는 스님이 만나고 싶어진다. 장삼을 입고 가사를 두른 스님을 보면 장삼자락에 불심의 도가 날릴 것 같고, 합장한 두 손 모음에 깊은 신심을 불러 모으는 듯해서 다시 한 번 그윽하게 바라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눈빛을 마주 볼 수 있으면 좋지만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일 게다.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어 꾸벅 인사를 드리면서 살짝 올려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꿈일 뿐이다. 스님의 그림자도 못 봤다. 일장춘몽이다.
대웅보전을 한 바퀴 돌아 열린 문으로 어쩌다 법당에서 스님의 불경소리를 들으면 참으로 신비스럽다. 역시 스님이 이 사찰의 주인인 것처럼 존경스럽다. 불교신자는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고갤 숙여 불경소리에 묵념을 하기도 했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렸을 때 마음을 울리는 것은 감사한 일임을 표현했다. 내일을 맞기 위한 진정한 기쁨은 오늘을 즐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강론 시간에 들은 적이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사는 일이 내일의 기쁨을 맞는 일이라고. 개심사가 내 나름의 판단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이 사찰을 오기 위해 준비하며 기다린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만큼의 즐김으로 만족하는 것도 오늘을 사는 보람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계단을 내려올 수 있지 싶어서 였다.
계절이 좋아서 일까?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당우는 많지 않았다. 대웅보전 양옆으로 왼쪽에 무량수전, 오른쪽엔 심검당과 이어진 건물로 종무소가 있다. 그리고 대웅보전과 마주한 안양루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배치되어 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와 앉아있다. 눈이 부셨다. 안양루 앞에 벤치에 앉아 둘러보았다. 희안하게도 종무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얕게 내려앉은 것 같은 추녀와 굽은 나무기둥이 별스럽게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하나 같이 구부러져 있는데도 제 구실을 하고 있는 버팀이 의아스러웠다. 나뭇결을 그대로 지고 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건축물 종무소는 그래서 더욱 돋보였다. 반듯했다면 그냥 스쳐갈 것인데 눈에 띄는 나무기둥들이 발길을 잡았다. 선산 굽은 나무가 대들보가 되었다.
커다란 가마솥과 아궁이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우리들의 유년시절의 모습과 엄마의 얼굴 언니들이 드나들던 문지방도 이색적이었다. 전에 부엌 문지방이 높았다. 한 옆으로 나뭇간이 있어서 먼지난다. 아무리 비질을 해도 통풍이 잘되도록 만든 한옥의 문들은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항상 뒤곁의 문을 닫았던 언니의 눈길이 보였다. 산사의 부엌 바닥은 세멘트로 매끄러웠다. 우리집 바닥은 흙바닥이였으므로 들고나는 신발이 물고온 흙들로 조개무덤을 만들었다. 디딜적마다 발바닥이 지압이 되었던 그날이 보였다. 그래도 그날은 부엌에서 열무김치와 고추장 넣어 비벼먹었던 커다란 양푼도 보였다. 지난 추억은 행복했었다.
개심사에서 수인이란 뜻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중학생이 숙제라면서 내게 물었다. 그 학생은 내가 불도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학생이 묻는데 그냥 내려간다면 안 될 것 같아서 기와 공양 봉사자에게 물었다. 불상마다 그 모습이 다르다면서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부처의 수인 형태와 그에 상응하는 것을 대강 알려주었다. 수인은 부처님 손의 모양을 말한다. 수인 형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불상 종류에 의한 수인은 교리적인 뜻을 가지고 표현되었다. 불상의 성격과 명칭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이라고 한다.
항마촉지인은 부처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란다. 개심사의 대웅보전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수인형태는 전법륜인은 최초로 설법할 때의 수인이라 한다. 그리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은 가볍게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해 배꼽 앞에 놓는다. 이런 모양을 한 부처는 본존불로 항마촉지인의 형태라는 것이다. 봐야 이해가 된다. 여하튼 학생 덕분에 개심사에서 하나 건져가지고 내려오게 되었다. 나도 선산의 굽은 나무 몫을 한 기분이 좋았다.                 
개심사 심검당과 오층석탑"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정면에 있는 건물은 조선시대 때의 것으로 충남문화재자료 제358호로 지정되었다.
●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유기방가옥 http://서산유기방가옥.gajagaja.co.kr
 - 서산문화관광 www.seosan.go.kr/tour/index.do

○ 문의 전화
 - 유기방가옥 041)663-4326
 - 서산시청 관광과 041)660-2499
 - 여미갤러리&카페 041)667-7344
 - 해미읍성 041)661-8005
 - 개심사 041)688-2256
유의사항
※ 위 정보는 2020년 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개심사[開心寺] (두산백과)
[doopedia.co.kr
[네이버 지식백과]개심사(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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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폭포, (korean, 瀑布, cataract)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

한국의 폭포, (korean, 瀑布, cataract)

우리나라 3대 폭포,
1) 대승폭포: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북면(北面) 한계 3 리(寒溪三里)에 있는 폭포.
2) 구룡폭포: 해발 고도 88m, 넓이 약 60m²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3) 경기도 개성(開城)의 박연폭포,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다.
강원도 속초시·인제군·양양군 등에 걸쳐 있는 천연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제171호. 면적 173,744,122㎡. 이 지역은 태백산맥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으로는 금강산을 거쳐 북한의 고원지대로 통하고, 남으로는 오대산·태백산을 거쳐 차령산맥·소백산맥과 연결된다.
유형/ 성격/ 소재지/ 관리자/
지명/지명
폭포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설악산국립공원 내
설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북면(北面) 한계 3 리(寒溪三里)에 있는 폭포. 한계령 아래 장수대 주차장에서 북쪽 소로로 1㎞ 떨어진 성곡(城谷;신라 경순왕의 피난지였던 성지)에 걸려 있다. 해발 고도 88m, 넓이 약 60m²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경기도 개성(開城)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다.


이 폭포의 맞은편 언덕 반석 위에는 조선시대에 풍류를 즐기며 명필로 유명한 양사언(楊士彦)의 글씨라고 전해오고 있는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높이 800m 지점에서 80여m의 낙차로 떨어지는 대승폭포는 장엄한 선경을 이루어 내설악 폭포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한계령 아래 장수대에서 북쪽으로 1 km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는 폭포로 폭포의 높이는 88 m이다.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의 하나이다. 2013년 3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97호로 지정되었다. 내설악에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긴 높이를 자랑한다. 폭포 맞은편 언덕의 반석 위에 ‘구천은하()’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2013년 3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97호로 지정되었다.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寒溪嶺) 정상부 서쪽 설악산 국립공원장수대(將帥臺) 탐방지원센터에서 대승령(大勝嶺) 방향으로 0.9km 지점에 있으며, 약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 폭포는 성곡(城谷 : 신라경순왕의 피난지였던 성지라는 전설이 있음)에 걸려 있다.
높이 88m, 면적 약 60㎡나 되는 이 폭포는 금강산(金剛山)의 구룡폭포(九龍瀑布), 황해북도 개성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우리나라 3대폭포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 폭포의 맞은편 언덕 반석 위에는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며 명필로 유명한 양사언(楊士彦)의 글씨라고 전해오고 있는 ‘九天銀河(구천은하)’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부모를 일찍 여읜 대승(大勝)이라는 총각이 어느 날 절벽에 동아줄을 매달고 내려가서 석이(바위에서 피는 버섯)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은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놀라 올라가보니, 지네가 동아줄을 쏠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가 목숨을 건진 뒤로 이 폭포는 대승폭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요새도 이 폭포의 물소리를 들어보면 ‘대승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들린다고 한다.
높이 800m 지점에서 80여m의 낙차로 떨어지는 대승폭포의 장관은 장엄한 경관을 이룬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로 가는 탐방로는 설악산의 다른 탐방로에 비해 찾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대승폭포를 거쳐 올라가면 안산(1430.4m)을 거쳐 복숭아탕에서 시작되는 12선녀탕계곡(十二仙女湯溪谷)으로 연결되거나, 대승령에서 바로 북쪽으로 하산하여 흑선동 계곡을 거쳐 백담사(百潭寺)로 연결되는 탐방로가 있다. 대승령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흑선동 계곡(대승골)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의 출현이 많아 자연휴식년제(2003∼2008)로 지정되어 탐방이 중지되어 있다.
2006년 강원도 지역에 내린 홍수로 인해 등산로의 훼손이 심하였으며, 계곡부의 경관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설악산의 어느 봉우리, 어느 폭포나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공원에 걸맞지만, 특히 대승폭포는 내설악 폭포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이 폭포는 신라 경순왕의 피서지로서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경기도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폭포의 하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제현 동쪽 50리에 한계산이 있다. 설악산이 전면에 있고 산위에 성이 있으며 천()이 성중에서 유출하다가 곧 폭포가 되어 아래로 수백 척 떨어진다. 바라보면 백홍이 하늘에서 내려 뻗은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현()의 동쪽 50리. 산 위에 대승암()의 옛터가 있고, 앞산의 샘물이 흘러 저절로 수천 척 높이의 폭포를 이룬다. 바라보면 마치 흰 무지개가 하늘에 드리워진 듯하다. 그 위에 올라 줄자를 아래로 늘어뜨리면 2,020척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1872년지방지도』 「인제현지도」에서 그 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명유래➣➣인제군 대승령 참조]


대승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로 불리는 곳으로, 폭포 시작점부터 바닥까지 88m의 높이를 단번에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폭포는 여느 폭포처럼 하천종단면의 경사변화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곡 방향에 평행한 단애면을 따라 떨어지면서 주 계곡과는 직각으로 만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밝은색의 단애면과 주변 산지의 붉은색 단풍 덕분에 경관의 단조로움은 피할 수 있었으나, 촬영 시기가 가을인지라 떨어지는 물의 양이 적어 마냥 아쉽다.

장수대에서 등산로를 따라 1㎞가량 오르면 폭포 맞은편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 사진은 전망대에서 촬영한 것이다. 여느 폭포 사진과 마찬가지로 맑은 날 보다는 흐린 날, 그것도 바위가 비에 젖어 있을 때 바위의 질감과 전체적인 지형 윤곽이 잘 드러난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대승령 정상에 도착한다. 여기서 반대로 하산하면 복숭아탕을 거쳐 남교리에서 홍천-속초 간 46번 국도와 연결되고, 서북주릉이라 부르는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가면 귀떼기청봉을 지나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 이른다.
삼척 무릉계곡 용추폭포, 
청송여행 주왕산 용추폭포무릉계곡(두타산)쌍폭포 용추폭포진해 마봉산-용추폭포전남 보성 오봉산 용추폭포강원도 동해시 폭포 용추폭포충북 괴산 사랑산(647m). 용추폭포/ 문경 대야산, 용추계곡 용추폭포/ 경기가평 용추폭포/ 거창 월봉산 용추폭포/ 경남 함양 용추계곡 용추폭포무등산 용추폭포/ 제천의림지 용추폭포우리나라에 용추폭포가 이렇게 많읍니다, (같은이름 사용)
개성 박연폭포,
개성직할시 개풍군(開豊郡) 천마산(天摩山) 기슭에 있는 폭포. 높이 약 20m. 폭포 아래에는 지름 40m에 이르는 고모담(姑母潭)이라는 못이 형성되어 있고, 못의 물이 매우 맑고 투명하여 못 속의 반석이 보일 정도이며, 여기에 비친 달빛과 가을단풍은 더욱 절경을 이룬다. 일찍이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이른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개성직할시 개풍군(開豊郡) 천마산(天摩山) 기슭에 있는 폭포. 높이 약 20m. 폭포 아래에는 지름 40m에 이르는 고모담(姑母潭)이라는 못이 형성되어 있고, 못의 물이 매우 맑고 투명하여 못 속의 반석이 보일 정도이며, 여기에 비친 달빛과 가을단풍은 더욱 절경을 이룬다. 일찍이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이른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박연이라는 명칭은 옛날에 박진사(朴進士)가 이 폭포에 놀러왔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폭포 밑 못 속에 사는 용녀(龍女)에게 홀려 결혼을 하고 돌아오지 않자, 진사의 어머니는 폭포 밑 못에 떨어져 죽었다. 그래서 그 못을 고모담이라 하고, 박씨의 성을 따서 박연폭포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금강산 구룡폭포,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유명한 폭포. 높이 74m.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온정리(溫井里)에 속하며,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십이폭포·비봉폭포·조양폭포와 함께 금강산 4대폭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유명한 폭포. 높이 74m.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온정리(溫井里)에 속하며,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십이폭포·비봉폭포·조양폭포와 함께 금강산 4대폭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폭포는 폭포벽과 그 바닥이 하나의 웅장한 화강암덩어리로 되어 있는 희귀한 폭포로서, 폭포 밑에는 금강산을 지키는 9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연(길이 13m)이 있고, 폭포 상류에는 <금강산팔선녀>에 대한 전설로 유명한 <상팔담(上八潭)>이 있다.
금강산 관음폭포.[ 觀音瀑布 ]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폭포.
설악산국립공원 내설악 백담지구의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鳳頂庵)으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구곡담계곡의 폭포 가운데 하나이다. 하류쪽으로 용손폭포와 만수폭포가 흐르고, 상류쪽으로는 쌍용폭포(쌍폭)가 흐른다. 백담탐방안내소에서 영시암~수렴동대피소~구곡담계곡을 지나 봉정암까지는 10.6㎞ 거리에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독주폭포,[ 獨走瀑布 , Dokjupokpo ]
구분/ 위치/
자연지명 > 폭포
강원도 양양군
강원도 양양군의 서북쪽 서면 오색리에 위치한 폭포이다. 독주폭포는 오색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정도 떨어져 있는데, 설악산의 연봉에서 흐르는 물이 독주골을 흐르다 한꺼번에 쏟아진다.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독주폭포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선녀탕에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몰래 따라 내려온 선관이 가장 예쁜 두 선녀의 옷을 숨겼다. 옷을 잃은 두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한 선녀는 옥녀폭포가 되었고 다른 한 선녀는 여신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선관은 두 선녀가 없어지자 선녀를 찾으러 대청봉으로 올라가다 힘에 부쳐 주저앉아 폭포가 되었는데 그 자리를 독주골, 폭포는 독주폭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모두 세 폭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폭포를 백장(百丈), 둘째를 천장(千丈), 셋째를 만장(萬丈)이라 한다. 높이 약 100m에 이르는 상단의 수직폭포와 하단의 와폭을 포함한 약 200m 정도의 연폭으로 되어 있다. 외설악의 토왕성폭포, 내설악의 대승폭포와 함께 설악산의 3대 폭포로 불린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방면의 남설악 지구에 있는 폭포.
설악산 서북주릉의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흐르는 독주계곡(독주골)에 있는 폭포로서 이 지방 사람들은 옛날 이곳에 있던 절 덕주사의 이름을 따서 덕주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규모가 큰 3단 폭포로서 첫째 폭을 백장(百丈), 둘째 폭을 천장(千丈), 마지막 폭을 만장(萬丈)이라 부른다. 물이 많을 때는 물안개로 무지개가 서리고, 겨울에는 빙폭(氷瀑)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대승폭포·토왕성폭포와 함께 설악산의 3대 폭포로 꼽힌다.
경상남도 하동군 지리산 쌍계사 북동쪽 계곡에 있는 폭포.
지리산국립공원 내 있는 자연폭포로 높이가 60m에 이르는 폭포이다.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하자 고려 21대 왕 희종()이 지눌이 머물던 암자에 ‘불일()’이라는 시호를 내려 암자 이름을 불일암()이라 하였는데, 그 가까이 있는 폭포이므로 불일폭포라 하였다.
우리나라 폭포 중에서 비교적 큰 규모를 가진 곳이다. 또한 이곳은 지리산 10경(景)의 하나에 속한다. 전설에 의하면 폭포아래 용소에서 살았던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靑鶴峰)과 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폭포가 생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희종(熙宗, 1204~1211)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를 하였는데 지눌이 입적을 하자 희종이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불일폭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며 지눌이 머물렀던 암자를 불일암이라고 불렀다. 근래에 폭포 옆에 암자가 들어서 있으며 현판에는 불일암이라고 새겨져 있다. 쌍계사 경내에서 출발하면 북동쪽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약 4㎞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폭포까지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섬진강 박경리 토지길 2코스 불일폭포불일폭포는 해발 720m에 있는 높이 60m, 폭 3m로 상하 2단으로 된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인 폭포이다. 폭포 밑에 용추못과 학못이 있으며, 쌍계사에서 약 3km 거리에 있어 쌍계사를 답사 한 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쌍계사 북쪽 3㎞ 지점에 펼쳐진 불일평전()에서 약 4㎞ 들어가 있다. 높이 60m로 전국에서 몇 번째 안가는 폭포로서 백천단애의 비폭과 오색무지개, 한여름에도 냉기를 느끼게 하는 장쾌한 물줄기는 가히 장관을 이룬다. 폭포에서 나와 불일평전휴게소에 이르면 40여 종의 약초를 배합하여 빚은 불로주()가 또다른 별미를 이룬다.
폭포로 높이는 약 60m에 이른다. 이 지역은 높이 1,000m가 넘는 큰 산들과 그 사이사이의 깊은 계곡들이 연이어 발달한 곳이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이어져 내려온 산줄기들이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고, 이와 나란히 화개천이 흐른다. 화개천 지류들은 주능선에서 이어진 산줄기들을 동서 방향으로 활발히 개석(開析)[원래의 지형면이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골짜기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바뀌는 일]하여 매우 좁고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다. 불일폭포는 동서 방향으로 흐르던 하천이 급격히 남북으로 꺾이며 화개동천 계곡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형성된 낙차가 매우 큰 폭포이다.

과거에 이곳을 흐르던 하천은 동서 방향 구조선을 따라 산지를 개석하며 쌍계사 계곡과 나란히 화개천으로 흘러들었다가 지반 운동으로 생성된 남북 방향의 구조선에 의해 단절되면서 바로 남쪽에서 쌍계사 계곡을 개석하던 하천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불일폭포 바로 하류에 있었던 불일평전 일대는 하방 침식력이 급격히 감소한 반면, 불일폭포 일대는 침식력이 가중되었다. 하천 쟁탈에 따른 유로 변동 과정에서 기존의 동서 방향을 따라 존재했던 단층선에 의해 차별 침식이 진전되면서 변위가 생겨 하상은 높은 낙차를 이루며 폭포를 형성하게 되었다.
불일폭포는 쌍계사가 자리한 지리산 화개천 계곡 상류부에 있다. 지리산에 있는 유일한 대형 폭포로서 상하 2단에 총 높이는 약 60m에 이르며, 폭포 아래 소는 용추(龍湫)·학추(鶴湫)라 한다. 인근에 고려 중기의 고승 지눌의 수행지인 불일암이 있고, 불일암 남쪽으로 경사가 가파른 청학동 계곡이 있다. 조선 시대의 많은 선비들은 불일폭포가 있는 곳을 청학동으로 생각하여 유람하고는 많은 글을 남겼다.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유두류록(遊頭流錄)」,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지리산 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 등이 있다.
지정/ 명칭,종목/ 지정번호/ 지정(등록)일/ 소재지/ 종류/ 분류크기면적/ 관리자(단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96호  자연유산 / 명승 / 자연명승
2013년 03월 11일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산 41-0/  설악산 토왕성폭포 ( )
자연유산/명승
338,740㎡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폭포./ 
https://youtu.be/jpXUWKhdSXk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폭포.

신광폭포()·토왕폭()이라고도 한다. 설악산을 대표하는 3대 폭포 가운데 하나로 2013년 3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96호로 지정되었다. 설악산국립공원 외설악의 칠성봉(:1077m) 북쪽 계곡 450m 지점에 있다. 설악산 신흥사 동남쪽으로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 한가운데로 3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연폭()으로서, 멀리서 보면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 놓은 듯하다. 겨울철에는 산악인들이 빙벽훈련장으로 이용한다. 폭포의 물은 토왕골을 흘러 비룡폭포와 육담폭포를 지나 쌍천()에 흘러든다.
토왕성폭포는 외설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적봉 남쪽 토왕골에 있다. 토왕성은 『여지도서』, 『양양도호부』고적조에 “토왕성() 부() 북쪽 50리 설악산 동쪽에 있으며, 성을 돌로 쌓았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이 성을 쌓았다고 하며, 폭포가 있는데, 석벽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 되어있다. 『양양부읍지』에도 같은 기사가 실려 있는데, 모두 토왕성으로 되어 있다.

토왕성폭포는 화채봉에서 흘러 칠성봉을 끼고 돌아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로 총 길이가 320m의 3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연폭()으로 하늘에서 비류하는 광경은 천상의 절경이다.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위에 널어놓은 듯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강원 속초,설악산 비룡폭포,[ 飛龍瀑布 ],

설악산 비룡폭포, [飛龍瀑布],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폭포. 높이 약 40여m.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폭포. 높이 약 40여m.
유형/ 성격/ 소재지/ 소유자관리자/ 문화재/ 지정번호/ 문화재 지정일/
지명/지명
폭포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국유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
1970년 3월 24일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폭포.
비룡폭포는 설악산국립공원의 외설악지역(外雪嶽地域)을 배수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쌍천(雙川)의 지류가 화채봉(華彩峰)의 북쪽 기슭에 만들어놓은 폭포이다. 비룡폭포가 흐르는 하천의 상류 쪽에 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 하류 쪽에 육담폭포(六潭瀑布)를 동반한다.
전설에 의하면 폭포수 속에 사는 용에게 처녀를 바쳐 하늘로 올려 보냄으로써 심한 가뭄을 면하였다고 해서 비룡이라 불렀다고 한다.
비룡폭포는 기반암하천인 산지하천에 해당한다. 비룡폭포가 있는 하천은 토왕골이며 폭포의 높이는 16m, 폭포 경사도는 44°, 계곡의 주방향은 SW14°, 유수의 방향은 SE34°, 폭포가 위치한 고도는 370m, 폭호의 너비는 16m이다. 하류쪽으로 경사를 이룬 비룡폭포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폭포이며 침식이 진행될 때 절리 발달이 미약하여 높이와 경사도가 점차 낮아지는 형태이다.
비룡폭포은 설악산에 발달한 다양한 지형경관 중 하나이다. 설악산의 암질차이와 절리 발달은 귀면암, 울산암 등과 같은 기암을 형성하거나 절리방향에 따르는 차별침식으로 폭포, 구혈, 급류, 소 등의 하천지형을 형성하였다.
비룡폭포는 설악산에 있는 폭포로서 설악산의 지형형성과정과 그 시작이 맞물려 있다. 비룡폭포의 기반암인 설악산화강암은 중생대 말인 백악기 초엽 즉 약 2억 1천만 년 전에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를 관입한 암석이다. 지질형성 결과 토왕골이 발달하였고 지질학적 기준으로는 매우 짧은 시간동안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 침식과 풍화는 곳곳에 발달된 절리를 따라 이루어지며 절리에 의해 암석들은 차별침식을 받고 다채로운 경관을 형성한다.
육담폭포를 지나 1㎞ 정도 올라가면 높이 약 16여m의 힘찬 물줄기가 내리꽂히며 골짜기를 울리는데 폭포소리가 무상무념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비룡폭포에 오르려면 설악동의 소공원에서 비룡교·학생휴게소·육담폭포·비룡폭포 경로를 따르면 된다.
층층폭포, [層層瀑布, Cheungcheungpokpo],
구분/ 위치/
자연지명
경상남도 > 밀양시
경상남도 밀양시의 단장면 구천리에 있는 폭포이다. 천황산에 속한 표충사 남쪽 계곡을 따라 사자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폭포이다. 사자평은 100만 평을 넘는 분지로, 층층폭포의 수량에 영향을 주어 폭포를 떨어지는 수량은 많은 편이다. 폭포높이는 30미터로 장관을 이룬다. 이 일대의 아름다운 수석(水石)을 일컬어 옥류동천(玉流洞天)이라 하는데, 이 폭포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경관이다. 사자평 끝에서 떨어지는 물이 절벽에 층을 지어 떨어진다 하여 칭칭폭포라 하였고, 그 아래 소(沼)와 골짜기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비로폭포(毘盧瀑布)라고도 부른다.
설악산 폭포,,,

설악산 폭포  : 2010.

설악산에는 폭포가 몇이나 될까? 크고 작은 것을 합하면 대략 100여 개는 될 것 같으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폭포 4개왼쪽부터 첫 번째가 설악동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토왕성 계곡의 비룡폭포인데, 이보다 상류에 토왕성폭포, 하류에 육담폭포가 있다. 폭포 물은 급경사의 단애를 따라 10여 미터를 떨어지며, 그 아래에는 전형적인 형태의 폭호가 발달해 있다.

두 번째가 십이선녀탕 계곡에 있는 복숭아탕이다. 단애면에 구멍이 뚫려 있는 특이한 형태의 폭호인데, 폭호 아래 또 하나의 폭포가 계속 이어진다. 뚫린 구멍의 장경이 무려 10m가량 되며, 물속에 자갈도 포함되어 있다. 세 번째는 남설악 입구에 있는 용소폭포인데, 폭포의 길이가 수미터에 불과하고 폭호의 출구까지 기반암으로 둘러싸여 있어 폭포라기보다는 침식와지인 포트홀(pothole)에 가깝다. 마지막은 남설악 흘림골에 있는 여심폭포이다.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폭포가 아니라 절리면을 따라 암괴가 떨어져 나가면서 만들어진 폭포이기 때문에 그 아래 폭호의 발달이 미약하다.
쌍폭포,
"상원골 쌍폭포:
"강원도 금강산 외금강지역 송림구역 송림동 골 안에 있는 폭포. 바위벽으로 두 줄기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쌍폭포라고도 한다.
"무릉계곡(두타산) 금란정 무릉반석 쌍폭포


한국의 폭포, 외 다수,,,
쌍용폭포 [雙龍瀑布]
용소폭포 [龍沼瀑布]
만수폭포 [萬水瀑布]
홍룡폭포 [虹龍瀑布]
도덕폭포 [道德瀑布]
육담폭포 [六潭瀑布]
백암폭포 [白岩瀑布]
옥녀폭포 [玉女瀑布]
용손폭포 [龍孫瀑布]  
내연산 12폭포, (상생폭포)
"계곡,,,구곡담계곡 [九曲潭溪谷],,,,


하트모양의지형,
참조항목,
설악산, 설악산국립공원, 설악산구곡담계곡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설악산 토왕성폭포 [雪嶽山 土王城瀑布] (두산백과)
[설악산 토왕성폭포 [雪嶽山 土王城瀑布] - 처음으로 보는 설악산 비경 (문화유산채널)
[ 비룡폭포 [飛龍瀑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대승폭포 [大勝瀑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발견·강원도·』(뿌리깊은나무, 1983)
[폭포의 성인과 발달과정에 따른 유형 분류 · 설악산, 제주도, 한탄강 유역 폭포를 중심으로·」(2006)
[설악산국립공원(雪嶽山國立公園) 자연자원조사(自然資源調査)』(국립공원관리공단, 2001)
[설악산국립공원(http://seorak.knps.or.kr)
[대승폭포 [大勝瀑布, Daeseungpokpo]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일러두기]
[대승폭포 (앵글 속 지리학 (상), 2011. 12..,)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일러두기
[독주폭포 [獨走瀑布, Dokjupokpo]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독주폭포 [獨走瀑布] (두산백과)
[관음폭포 [觀音瀑布] (두산백과)
[층층폭포 [層層瀑布, Cheungcheungpokpo]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
[설악산 폭포 시리즈앵글 속 지리학 (상)
[국토지리정보원
[네이버 지식백과] 불일폭포 [佛日瀑布] (두산백과)
[doopedia.co.kr
[지리산』(대원사, 1993)
[지리산 유람록-용이 머리를 숙인 듯 꼬리를 치켜든 듯』(보고사, 2008)
[하동 문화관광(http://tour.hadong.go.kr/)
[네이버 지식백과] 불일폭포 [佛日瀑布]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불일폭포 [佛日瀑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산천』(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강원 속초 설악산 토왕성 폭포, [雪嶽山 土王城瀑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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