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듯" 日 총리관저 정문 들어온 박지원.. 日"약삭빠르다"
"日 정보관리 부실로 회담 전 언론에 내용 보도"
日, 여론 우려해 총리 회담 사실 공개 신중/ 박 원장, 관저 정문으로 들어가 취재도 응해/ 관저 내에선 "박 원장 약삭빠르다" 불만까지,
박지원 국정원장이 10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예방했다는 사실이 언론 등에 공개된 데 대해 총리 관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12일 보도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총리가 박 원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보수파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외무성측은 또 스가 정권과 접촉을 꾀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지난 8일 일본을 찾은 박 원장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집권 자민당 간사장에 이어 10일 스가 총리와도 면담했다. 마이니치는 "스가 정권 발족 후 첫 한국 정부 고위 관리의 방일인 만큼 주목을 받았으나 (총리) 관저에는 '오산'이었다"고 이번 만남을 평가했다.
보통 정보기관 부문의 만남은 외교 정보를 공유하거나 문제를 물밑에서 조정하기 위한 경우가 많아 접촉 사실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초 총리 관저는 박 원장과 총리의 회담 사실을 공개하는 데 신중했다고 한다. 박 원장이 관저를 찾았을 때 기자들의 눈을 피해 뒷문을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박 원장은 10일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정문을 통해 총리 관저에 들어갔다. 회담을 마친 후에는 기자들에게 회담 내용과 분위기도 소개했다. 스가 총리의 저서인 『정치가의 각오』를 들고 "(스가 총리에게) 사인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영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이니치는 박 원장이 '싱글벙글했다(相好を崩した)'고 표현했다.
회담 후에는 박 원장이 스가 총리에게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같은 한일 관계의 미래를 모색하는 새 정상 선언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한일 양국 언론에서 나왔다.
10일은 시기적으로도 미묘했다.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심문서 공시송달 전달 효력이 발생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만일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에 도달할 경우 심각한 상황을 부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고위급 인사와 총리의 만남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보수층의 반한감정을 자극해 여론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게 마이니치의 해석이다. 또 한국 측이 한·중·일 정상회담 성사 등을 목표로 일본과 접촉을 시도하는 가운데, 그동안 한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스가 총리가 박 원장을 만남으로써 한국 정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원장과 스가 총리의 회담이 공개된 것은 총리 관저가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마이니치는 지적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회담이 공개된 이유에 대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어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 원장의 일본 방문이 11월 초부터 언론을 통해 보도된 상황에서 이를 계속 감추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박 원장이 8일 스가 총리의 최측근인 니카이 간사장과 만난 사실이 알려진 것도 스가 총리와의 회담이 자연스럽게 공개된 요인이 됐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지난 9월 스가 총리의 탄생을 위해 힘썼던 니카이 간사장은 박 원장과 20여년 친분을 쌓아온 사이다. 니카이 간사장은 주변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맞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고 박 원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일본 정부가 당초 여론 등을 우려해 박 원장과 스가 총리의 만남을 비밀리에 추진하려 했으나, 정보 관리 부실과 '니카이 간사장의 절친'이라는 박 원장의 개인적 특징이 변수로 작용해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됐다는 해석이다.
결국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총리 관저 안에서는 박 원장의 붙임성 있는 태도에 대해 "약삭빠르다"는 식의 불만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후 가토 관방장관은 10일 "박 원장으로부터 새로운 공동 선언을 포함해 한일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마이니치는 "정부 고위 당국자들끼리의 회담 사실을 공표하는 것조차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전후 최악'으로 불리는 한일관계의 타개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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