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0일 수요일

훈민정음. 東醫寶鑑.1

훈민정음. 鑑. 1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해설서.《훈민정음예의본()》과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한문해설서.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집필자들은 정인지·신숙주()·성삼문()·최항()·박팽년()·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전권 33장 1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1446년 9월 상한(:초하루에서 초열흘까지의 기간)에 완성되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으로 2권 2책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해례(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박팽년(신숙주(성삼문(최항(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殿)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동() 이한걸가()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용준은 안평대군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낙장된 이유는 연산군의 언문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언문정책 때문에 부득이 앞의 두 장을 찢어내고 보관하였다고 하며, 이를 입수한 전형필은 6·25전쟁 때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문장은 예의의 첫머리에 있는 한문으로 된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흔히 『훈민정음 언해본』이라 부른다.

서문을 포함한 예의 부분은 무척 간략해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도 실려 있어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해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 있는 훈민정음 정본이 1940년에야 발견되었다. 그것이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드디어 해례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 대중에게, 그리고 한글학회 간부들에게 공개된 것은 해방 후에 이르러서였다.

1446년(세종 28)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새로 창제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해설서. 목판본. 전권 33장. 1책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9월 상한()에 완성되었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 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세종어제() 서문과 훈민정음(새 글자)의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본문처럼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편이 제자해() · 초성해() · 중성해() · 종성해() · 합자해() · 용자례()의 순으로 나누어져 기술되고 있으며, 책 끝에 정인지의 서문이 실려 있다.

집필자들은 정인지 · 신숙주() · 성삼문() · 최항() · 박팽년() · 강희안() · 이개() · 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현존본은 1940년경 경상북도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고() 전형필() 소장본(현  소장)이며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인데, 아직까지는 국내 유일본으로서 광곽()은 가로 16.8cm, 세로 23.3cm이다. 예의 부분은 1면이 7행에 매행 11자, 해례 부분은 8행에 매행 13자이며, 정인지의 서문은 한 자책 낮추어서 매행 12자로 되었다.

이 책도 발견 당시 완전한 것은 아니고, 처음 2장이 빠져 있던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었던 것인데, 적을 때 실수하여 세종 어제서문의 끝 자 ‘이()’가 ‘의()’로 되는 등 오자가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갈다.
① 본문(예의) : 어제서문(훈민정음 창제목적을 밝힘), 예의(새 글자의 음가, 운용법을 설명함),
② 해례 : 제자해(제자원리, 제자기준, 자음체계, 모음체계,  등에 관하여 설명함) · 초성해(초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함) · 중성해(중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하고 중성글자의 합용법을 보임) · 종성해(종성의 본질과  등을 설명함) · 합자해(초성 · 중성 · 종성 글자가 합해져서 음절 단위로 표기되는 보기를 보이고, 중세국어의 성조에 대하여 설명함) · 용자례(단어의 표기례를 보임),
③ 정인지 서문 : 훈민정음의 창제이유, 창제자, 훈민정음의 우수성, 이 책의 편찰자, 편찰 연월일을 분명히 밝혔다.
‘훈민정음해례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종어제 서문에서는, 표기수단을 가지지 못한 비지식층 백성들에게 표기수단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창제목적이 밝혀져 있다.
중국36자모표에 나오는 한자를 그대로 이용하지 않고, 외래어인 한자어의 전래자음()을 이용하여 새로 만든 훈민정음(글자)의 음가를 설명하였다. 이 중에서 초성 23자모 체계는, 비록 전래자음을 가지고 음가를 설명하기는 하였으나 중국 36자모체계의 영향을 받은 체계였으며, 인위적인 개신() 의도를 가지고 정리하였던 ≪동국정운()≫ 23자모체계와도 일치하여, 15세기중세국어의 초성체계와 부합되지 않는 면도 조금 있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한문해설서.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집필자들은 정인지·신숙주()·성삼문()·최항()·박팽년()·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전권 33장 1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1446년 9월 상한(:초하루에서 초열흘까지의 기간)에 완성되었다.다<표 1>
전청 · 차청과 같은 술어는 제자해에 나오고 예의편에서는 단지 아음 · 설음과 같은 오음() 분류만 표시하였고, 전탁은 병서()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초성자의 설명을 위하여 이용한 한자들은 중성자와 종성자도 그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고른 것이었다.
중성자는 로 정했는데, 분명히 이중모음인 도 기본단위자로 삼은 것이 특색이었고, 종성자는 초성글자를 다시 써서 표시하도록 규정하었다.
예의편의 끝에서는 연서()와 병서 · 합용() 등의 표기방식과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초성 · 중성 · 종성 글자를 자소()처럼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각 음절마다 방점으로 성조를 왼쪽에 표시하도록 하였다.
해례편은 새로 만든 글자의 제자원리를 주로 밝히고, 그 음가 · 음용법, 이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다. 다만,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는 《성리대전()》 등을 통하여 송학사상()을 고도로 섭취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해례편의 기술에 있어서도 이러한 송학이론을 적용하여 일종의 언어철학을 전개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제자해에서는 《태극도()》 · 《역학계몽()》 · 《황극경세서()》 등 송학계통의 서적에서 이론을 섭취하여, 제자해의 첫머리부터 태극 · 음양() · 오행()과 결부된 언어관을 제시하고, 훈민정음의 창제도 성음()에 따라 음양의 이치를 다한 것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의 제자원리가 상형()에 있음을 말하고, 자음자()의 제자에 있어서는 먼저 조음위치별(調)로 기본이 되는 초성자()를 정하고, 이 기본글자들은 각각 그 조음방식 또는 조음위치를 상형하여 제자된 것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각 조음위치에서 발음되는 자음을 그 발음이 세게 나는(‘’로 표현) 정도에 따라 이 기본문자에 획을 더하여 제자한다고 하였다(보기, ㄴ→ㄷ→ㅌ).
계속하여 다시 오행설을 갖고 각 자음을 오행 · 계절 · 음계() · 방위() 등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오행과 결부된 오성의 음상()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한 다음, 중국의 전통적인 어두자음() 분류법의 36자모표의 분류방식에 따라 훈민정음의 자음자를 분류 설명하였다<표 2>.
오성()
아()
설()
순()
치()
후()
오행()
목()
화(
토()
김()
수()
오시()
춘()
하()
향하()
추()
동()
오음()
각()
징()
관()
상()
우()
오방()
동()
남()
중앙()
서(西)
북()
오행과 결부된 오성의 음상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하였다<표 3>.
오성오행발음기관음상오행과 음상과의 연관
아()
목()
착이장()
성사후이실()
여목지생어수이유형야()
설()
화()
예이동()
성전이체()
여화지전전이양양야()
순()
토()
방이합()
성함이광()
여토지함축만물이광대양야()
치()
김()
강이단()
성설이체()
여금지설성이단성야()
후()
수()
수이윤()
성허이통()
여수지허명이유통야()
다음에 전탁()의 음가는 ‘전청소리가 엉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훈민정음 28자와 따로 제정한 순경음()의 음가는, “가벼운 소리를 가지고 입술을 잠깐 합하고 목구멍소리(숨소리)가 많다.” 고 하였다. 중성글자는 초성글자와는 달리 천() · 지() · 인() 삼재를 상형하여 기본모음자 、 ㅡ ㅣ 를 제자하였음을 말하고, 이들 기본모음자에 대하여 다음과 갈이 설명하였다<표 4>.
자형상형내용발음상태소리(성())
천원()
혀를 옴츠름(설축())
깊음
지평()
혀를 조금 옴츠림(설소축())
깊지도 얕지도 않음(불심불천())
인립()
혀를 옴츠리지 않음(설불축())
얕음
이 세 기본모음자는 중세국어의 7 단모음체계를 세 갈래로 인식하고 제자한 것으로서, ㅣ 모음을 별도로 보고, 、 모음계열, ㅡ 모음계열로 나누어 나머지 모음자들( 이를 라고 하였음)을 제자하였음을 설명하였다<표 5>. 그리고 이들의 관게틀 다시 자음과 갈이 설명하였다.
<표5> 초출자의 제자원리
<표5> 초출자의 제자원리
훈민정음 본문 이미지 1
중성 11자 가운데 나머지(, 이들을 라고하였음)는 ㅣ 에서 시작되는 음으로 보고( ㅣ), 이어 또다시 역()의 수()나 위()를 가지고 중성글자들을 설명하기도 하였다<표 6>. 초성해에서는, 초성이란 운서의 자모에 해당한다고 하고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였다.
<표6> 위수도(位數圖)
<표6> 위수도(位數圖)
중성해에서도 중성이란 한자음의 개음()+운복음()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설명하였는데, 중국음운학에서 음절말음(라고 함)으로 다루는 반모음 [j]까지도 중성에 포함시켜, 제자해에서 설명한 11자 이외에, 다음과 같이 여러 모음자가 합용되어 중모음으로 쓰일 수 있음을 말하였다.

기본자 
초출자 
재출자 
합용자 
일자중성+ㅣ 
이자중성+ㅣ 

종성해에서는 종성이란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말음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고, 중세국어의 성조를 우선 종성만 가지고 설명하였다. 즉, 불청불탁자()는 평성 · 상성 · 거성의 종성이 되고 전청자 · 차청자 · 전탁자는 입성의 종성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어의 종성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ㅅ ᇰ 8자면 족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자음의 입성 가운데, ㄷ 종성음을 일반에서 ‘ㄹ’ 로 발음하고 있는데, 이를 ‘ㄷ’ 음으로 발음해야 된다고 하였다. 합자해에서는 초 성 · 중성 · 종성 글자를 자소처럼 인식하여, 이들 3요소를 좌로부터 우로, 위로부터 아래로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합용병서 · 각자병서의 서법()을 초성 · 중성 · 종성에 걸쳐 설명하였다.

이어 당시의 국어성조를 다시 설명하여, 입성은 중세국어의 성조단위가 아님을 말하였다. 즉 긷 : 깁 몯 등이 종성만을 가지고 볼 때에는 입성이지만, 성조로서는 평성 · 상성 · 거성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반설경음() ‘ᄛ’도 반설중을()인 ㄹ과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음을 말하고 중모음 ᅩ 의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용자례에서는 중세국어에서 90단어의 예를 들어, 그 표기법을 보였다. 초성 ㄱ ㅋ ᇰ, ㄷ ㅌ ㄴ, ㅂ ㅍ ㅁ, ᇦ ㅈ ㅊ, ㅅ ㅎ ㅇ, ㄹ △의 표기례를 각각2단어씩 들었는데, 각자병서와 ᇹ의 표기례가 제외되고, ᇦ의 표기례를 보인 것이 특징이다.

중성은,  표기례를 각각 4단어씩 보였으며, 종성은, ㄱ ᇰ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의 표기례만을 각각 4단어씩 보였다. 정인지의 서문에서는, 제 말의 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빌려 씀이 아무래도 어거지라는 것, 한자로 씌어진 책의 뜻을 깨치기 어렵다는 것, 한문으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것, 이두() 사용이 불편하다는 것 등을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로 들었다.

이어 세종이 1443년(세종 25) 겨울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것, 훈민정음은 간단하여 깨치기 쉬운 글자이면서 여러가지로 응용이 가능하여, 대개의 음(음악, 한자음, 자연음까지)를 표기할 수 있고, 이 글자의 창제로 한문책의 해석도 쉬워졌으며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례본의 저술자가 정인지 · 최항 · 박평년 · 신숙주 · 성삼문 · 강희안 · 이개 · 이선로 등 8명이라고 하였다. 이 서문을 쓴 날이 1446년 9월 상한이므로, 이 책의 완성일을 알려준 데에도 이 서문의 가치가 있다.

세종 때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우리 것을 존중하고 밝혀보려는 기운이 충만되어 있던 시대였으므로, 이러한 기운이국어의 문자화()를 위한 훈민정음 창제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자기 언어를 위한 새 글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훈민정음》같은 서적을 펴낸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책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훈민정음 언해본()은 편자 및 편찬연대 미상으로, 한문본 《훈민정음》의 예의편()만을 국역한 책. 세종 말년부터 세조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번역방식은 한문을 짧은 구절로 나누어 토()틀 달고, 한자마다 동국정운식(한자음을 표기하였으며, 그 아래에 두 줄로 한문의 자석( : 뜻풀이)을 한 다음, 그 구절 전체를 번역하였다.

한문본과 국역본은 그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어서, 국역본에는 원한문본에 없는 치음자()에 관한 규정, 즉 한어()의 치음을 표기하는 한글의 치음자를, 치두음자( : ᅎᅔᅏᄼᄽ) · 정치음자(: ᅐᅕᅑᄾᄿ)로 따로 제자해서 사용하도록 한 규정이 첨가되어 있으며, 이 규정은 1455년(단종 3)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성통고()》의 범례에도 들어 있으므로, 번역사업은 1455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역본 훈민정음》은 단행본으로 간행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는 박승빈본(, 현재 고려대학교 육당문고 소장)이 알려져 있었으나, 정밀한 조사에 의하면 《월인석보》 책머리 부분을 따로 제책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국역본은 1459년(세조 5)에 간행된 《월인석보》의 책머리에 실려 있는 <세종어제훈민정음()>이다. 그 원간본은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568년(선조 1) 희방사()의 중간본도 전한다.

참고자료
훈민정음 언해본 원문보기

관련이미지 19
훈민정음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 전권 33장 1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1446년 세종의 명으로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가 집필하였다.

[UNESCO 지정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기록유산 명
기록연도
1
1997.10
2
1997.10
3
2001.09
4
2001.09
5
2007.06
6
2007.06
7
2009.07
8
2011.05
9
2011.05
10
2013.06
11
2013.06
12
2015.10
13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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