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1일 월요일

구포시장.

구포시장." 조선 중기에 개설된 구포장의 명맥을 이은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정기시장과 함께 장이 서며, 야채나 과일, 농산물, 수산물 등을 파는 골목 외에 약재와 가축을 파는 구역이 따로 있다. 구포는 낙동강 하류에 자리 잡은 포구로 내륙과 해안에서 생산된 물산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이렇게 모인 물산이 낙동강을 따라 멀리 안동까지 오갔다. 

구포는 이런 지리적인 이점을 잘 살려 크게 번영했던 곳이었으며, 감동창이라는 조창이 있어 세금으로 낼 곡물이 집산되는 곳이기도 했다. 번영은 수로 교통에서 육로 교통으로 바뀌는 20세기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1905년 개통된 경부선이 구포역을 지나면서 여전히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구포는 해방되기 전까지 영남에서 가장 번성했던 포구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부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구포는 주변으로 밀려났고, 구포시장도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성쇠를 함께했다. 오늘날 구포시장은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이 조화를 이루며 여전히 큰 시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구포의 정기시장은 장날이면 3~5만 명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고, 상설시장 역시 750여 개의 점포를 통해 고객을 맞고 있다. 

2011년에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었고 ‘정()이 있는 구포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구포는 오랫동안 동래에 속한 곳이었으나, 부산의 중심이 동래에서 부산으로 옮겨가면서 북구에 편입되었다. 과거 구포는 낙동강 하류에 자리 잡은 나루터였으며, 조선시대 좌이면이었던 구포는 오늘날 구포동이 되었다.

구포()는 인근에 있는 범방산 줄기가 거북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포의 어원에 대해 두 물이 만나는 곳 또는 갈라지는 곳에 자리한 큰 나루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탓에 구포에는 유난히 거북이 들어간 이름이 많다. 구포시장은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포는 오랫동안 동래에 속한 곳이었으나, 부산의 중심이 동래에서 부산으로 옮겨가면서 북구에 편입되었다. 과거 구포는 낙동강 하류에 자리 잡은 나루터였으며, 조선시대 좌이면이었던 구포는 오늘날 구포동이 되었다. 구포()는 인근에 있는 범방산 줄기가 거북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포의 어원에 대해 두 물이 만나는 곳 또는 갈라지는 곳에 자리한 큰 나루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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