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서비스 업체"
미국의 대표적인 인맥 사이트, 페이스북.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 웹상에서 이용자들이 인맥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 웹사이트 중 하나로, 한국의 싸이월드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2년 5월 현재 나스닥 상장 회사로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서부에 있는 팰러앨토(Palo Alto)에 본사가 있다.
미국 나이를 기준으로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름·이메일·생년월일·성별 기입만으로 간단하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친구 맺기’를 통하여 많은 이들과 웹상에서 만나 각종 관심사와 정보를 교환하고, 다양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
2004년 2월 4일 당시 19살이었던 하버드대학교 학생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학교 기숙사에서 사이트를 개설하며 창업하였고, 개설 첫 달에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Moskovitz)와 크리스 휴스(Chris Hughes)가 동업자로 합류하였다.
처음에는 하버드 학생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된 사이트였다. 2월 말 무렵 하버드 재학생 절반 이상이 가입하였고, 3월에는 스탠포드·컬롬비아·예일 대학교 학생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개설 두 달 만인 4월에는 MIT·보스톤·노스이스턴 대학교와 모든 아이비리그까지 확장되었다.
2005년 9월 2일 고등학교 학생들도 가입할 수 있게 되었고, 2005년 말에 이르러 미국, 캐나다, 영국 등 7개국의 2,000개 이상의 대학교와 2만 5,000개 이상의 고등학교에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2006년 9월 11일 마침내 전자우편 주소를 가진 13세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었다.
2006년 야후가 10억 달러에 이르는 인수제안을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스북의 지분 1.6%에 이르는 2억 4,000만 달러를 투자하였다.
2008년 말부터 세계 최대의 SNS 사이트였던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따돌리고 SNS 분야 선두주자로 나섰고, 2009년 9월 가입자수 3억 명을 돌파하였다. ‘세계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겠다’는 목표를 지닌 페이스북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가입자의 70%는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나타났으며, 2016년 기준 가입자수가 15억여 명에 이르렀다.
창립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4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여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0년 3월 발표한 세계 10대(大) 청년 부호 1위에 오른 바 있다.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사생활 보호와 관련된 논란이 일은 바 있으며, 2016년 1월 독일 연방법원은 이용자의 이메일 주소록에 접근해 초대장을 보내는 페이스북의 '친구찾기' 기능을 중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은 사적 정보의 보호와 공개 사이의 모순된 이중성을 통해 성장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사적 정보,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올리는 각종 콘텐츠와 이용자의 활동을 공개했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친구를 매개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그것이 페이스북이 인터넷에 몰고 온 가장 큰 변혁이다.
페이스북의 역사
페이스북(Facebook)은 10억 명의 이용자가 가입한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다. 2003년 10월 28일 하버드대학교의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urg)가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이름으로 학내에서 장난삼아 출발한 서비스가 이후 9년 만에 10억 명이 넘는 이용자가 가입한 세계 규모의 사이트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용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모바일 기기로도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에 가입한 다음 자신의 프로필을 만들고 다른 이용자들을 친구로 추가하면 타임라인에 글을 쓰거나 친구와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다. 친구들이 프로필을 업데이트하거나 타임라인에 글을 쓰면 자동으로 알림 메시지가 떠서 이용자 상호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실제 정체성을 보여 주는 각종 정보와 그들의 활동을 공개하도록 유도했고 이용자들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각종 기능을 제공해 왔다. 2010년 3월에 시작된 '좋아요(Like)' 버튼은 페이스북이 도입해 성공한 대표적인 소셜 플러그인이다.
페이스북은 2012년 10월 4일에 9월 14일 오후 12시 45분을 기준으로 월 이용자 수가 10억 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모바일 이용자는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6억 명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이용자 10억 명이 페이스북에 올려 놓은 글과 링크와 '좋아요'와 댓글은 실시간으로 빅데이터를 구성한다.
페이스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뉴스피드에는 자신이 올린 글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동정이 실시간으로 게시된다. 페이스북에서는 자신과 친구로 맺어진 사람들의 반응과 정서, 감정을 '좋아요'와 답글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특성이 발현되는 지점이다.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이 웹 문서끼리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라면 페이스북의 타임라인과 뉴스피드는 사람들끼리 만드는 하이퍼링크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서로의 감정과 생각, 정서를 실시간으로 하이퍼링크한다. 그래서 어떤 정서나 의견이 전달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 전달 범위 또한 매우 넓다.
구글은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인터넷 콘텐츠를 검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검색의 주체는 이용자 개인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검색 서비스에서는 페이지끼리 상호 링크된 결과물의 반영이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반영되지만 이용자 간 상호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페이스북의 타임라인과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각종 콘텐츠들은 페이스북이란 닫힌 공간 안에 거주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을 서로 연결한다. 전 세계 10억 명 이용자가 들락거리는 페이스북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인 것이다. 페이스북은 인터넷의 독립적 웹을 자신의 닫힌 세계 안으로 흡수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페이스북 월드를 만들 수도 있다.
페이스북과 프라이버시
페이스북은 사적 정보의 보호와 공개 사이에서 모순된 이중성을 통해 성장했다. 하버드대학교 재학생의 실제 얼굴 사진을 온라인에 게재한 페이스매시(Facemash)가 이후 페이스북으로 발전했다.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서로 결합된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익명의 가짜 정체성과 현실 세계의 진짜 정체성도 달리 구별되지 않는다. 현실 세계와 온라인 페이스북 안의 정체성이 서로 엉기고 양쪽을 오가면서 사생활의 고유영역은 공개된 기록의 영역과 뒤섞인다. 이제 익명성 뒤에 숨었던 복수 정체성의 시대는 지나가고 페이스북류의 공사 융합, 위선위악 혼합, 드러냄과 감춤의 복합체, 얼굴 표정에 대한 섬세한 관리의 시대가 되었다.
페이스북의 프로필이 요구하는 개인 정보는 특정한 개인의 독특한 개성에서 나오는 그야말로 고유한 사적 정보는 아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자신의 프로필 정보는 네트워크화된 다른 수많은 개인들의 정보와 함께 분류된 후 범주화와 통계의 가공을 거치면서 퍼스널화된 정보로 모양이 바뀐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것을 소셜 그래프라고 불렀다.
'네트워크된 개체(networked individuals)'는 '네트워크 집합화(networked grouping)'를 통해 탈개체화된다. 탈개체화된 개체는 주체성을 상실하며 소셜 네트워크 체계 안에서 언제든지 조종되고 통제될 환경에 놓이게 된다. 주체적이고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던 개인 이용자가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의 정문에서 프로필을 작성하고 아이디를 받아 회원이 되는 순간 자동화된 프로파일링(profiling)과 '퍼스날리제이션(personalization)'을 거쳐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된다.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은 페이스북이 설정하는 범주와 척도에 따라 적당하게 재단된 후 시장의 타깃 마케팅 표적으로 변환된다.
페이스북 모델
페이스북은 두 가지 오픈 정책을 통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이용자 정보 및 활동의 공개와 자사의 플랫폼을 열어놓는 '오픈 플랫폼' 정책이 그것이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사적 정보,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올리는 각종 콘텐츠, 이용자의 활동과 그 결과를 공개했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아는 사람끼리 폐쇄적인 만남을 지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공개해야만 클 수 있다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페이스북은 오프라인의 개인 정체성이 페이스북 안으로 그대로 투영되도록 유도했다. 그러한 실제 정체성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사라지면 오프라인의 사회망이 강화되면서 페이스북 왕국이 탄생한다.
이용자의 사적 정보를 공개하는 동시에 페이스북은 자신의 플랫폼도 과감하게 개방했다. 페이스북은 API(Application Platform Interface)를 공개해 60만 개가 넘는 서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을 페이스북 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었다. 게임회사 징가(Zynga)는 팜빌(FarmVille)이라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페이스북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처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페이스북 플랫폼과 결합되면서 페이스북은 포털 사이트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었고, 마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 체제처럼 자신을 중심으로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라는 새로운 세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 플랫폼은 이용자의 활동 결과물을 공짜로 거두어간다. 이용자가 공짜로 페이스북의 각종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용자 활동의 모든 결과물들은 자동으로 페이스북의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 벌꿀이 돌아다니며 꽃에서 화분과 꿀을 따와 양봉업자의 꿀통을 채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페이스북은 구글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자동 닭장과 벌통을 마련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들에게 닭장 속의 방 한 칸, 벌집 속의 한 뼘 공간을 제공해 주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닭과 벌이 다 알아서 만든 것이다. 공간이 급격하게 커지고 벌이 벌을 부르고 닭이 닭을 불러 10억 마리의 벌과 닭이 우글대는 새로운 서식지가 만들어졌다.
인터넷은 자동 저장성과 개방성 때문에 사람들의 행위 결과를 언제 어디서나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투명한 창을 통해 이용자의 행위가 드러나고, 바깥으로 드러나는 참여자들의 행위에 힘입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더욱 확장된다. 2010년 12월 15일자 《타임》는 '올해의 인물'로 저커버그를 선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를 소개했다.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더욱더 그 안으로 묻혀버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통찰력의 소유자." 페이스북은 친구를 매개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그것이 페이스북이 인터넷에 몰고 온 가장 큰 변혁이었다.
우리나라의 싸이월드와 같은 미국의 인적 네트워크 중심 웹 기반 소셜(Social) 네트워크이다.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인맥을 중심으로 학교 동창 등 여러 정보를 기반으로 지인을 만들어 가는 미국의 대표적인 인맥 사이트이다. 2004년 2월 당시 하버드대 재학생이었던 마크 주커버그가 처음 시작했고, 하버드대 학생만이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부터는 스탠퍼드대, 콜럼비아대, 예일대 학생들의 요청으로 타 대학생들도 가입이 가능해졌고, 점차 확산되어 현재는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되었다.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인 버추얼 기프트(virtual gifts)는 컴퓨터 온라인상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콘의 일종으로, 대부분의 아이템이 1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1달러라는 가격 경쟁력과 한정 판매라는 방식을 이용하여 소비자들의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Facebook)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MarkZuckerberg, 1984~)는 2002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수업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컴퓨터뿐이었다. 그는 수업은 잘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볼 수 있는 '코스매치(Coursematch)'를 개발했고, 누가 인기가 있고 없고를 가리는 '페이스매쉬닷컴(Facemash.com)', 하버드생들끼리 인맥을 구축할 수 있는 '하우스 시스템(houseSYSTEM)'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페이스매쉬'는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저커버그가 다닌 명문 사립고 필립스엑스터는 학생들의 사진과 학년, 주소, 전화번호를 담은 '사진주소록(The Photo Address Book)'을 발간해 정보를 공유했는데, 학생들은 이것을 '페이스북'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하는 학교가 많았거니와 '페이스북'이란 말은 다른 학교들에서도 널리 쓰이던 말이었는데, 하버드 대학에서는 다른 학교와 달리 학생들의 기본적인 정보와 사진 등이 들어 있는 디렉토리, 즉 페이스북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저커버그가 이런 서비스를 하려고 했지만 대학 측에서 사생활 정보를 모으는 것을 반대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대담하게도 어느 날 밤 하버드 대학의 전산 시스템을 해킹해 학생들의 기록을 빼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2003년 11월 2일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간단한 사이트를 제작하여 12개 기숙사 여학생들의 사진을 2명씩 올리면서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고르게 했다. 4시간 만에 450명이 이 사이트를 방문했고, 사진이 2만 2,000번 노출되었다. 페이스매시의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외모로 하버드에 입학했는가? 아니다. 우리는 외모로 판단될까? 그렇다." 하버드 대학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Crimson)』은 페이스매시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저커버그는 하버드 학생들이 가진 최악의 측면에 대한 요구를 맞추고 있다.······우리 하버드 학생들은 주변 사람들을 직접 대면할 필요도 없이 표면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 취미를 몰입하게 되었다."
대학 당국은 이 사태를 뒤늦게 파악하고, 저커버그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윤리 규정 위반과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그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는 보호관찰을 받게 되었고, 상담사를 찾아갈 것과 그 사이트에 대해 항의한 라틴계 여학생 단체인 푸에르사 라티나(Fuerza Latina)와 하버드 흑인여학생연합과 같은 단체들에 사과할 것을 명령받았다.
이 사건은 그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어떻게하면 윤리 위반과 법적 분쟁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이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사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직접 업로드하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즉 "공개하고 싶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한다"와 "그 정보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2가지 조건을 내세우면 된다는 해법을 찾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저커버그는 2004년 2월 4일 하버드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인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에두아르도 새버린(Eduardo Saverin), 크리스 휴즈(Chris Hughes)와 함께 인맥과 지인 관리 인터넷 사이트로 페이스북을 개설했다. 오프라인 페이스북을 온라인으로 옮겨 실시간으로 친구들의 소식과 안부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페이스북이 폭발적 인기를 끌자 다른 대학들에서도 서비스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쏟아졌다. 그래서 당초 하버드생으로 국한했던 회원 가입 조건을 아이비리그 대학, 미국 전역의 대학, 13세 이상 등으로 점차 확대해가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바로 이런 점진적 확대가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페이스북의 경쟁력을 높여주었다.
저커버그는 2010년 5월 『와이어드(Wired)』인터뷰에서 "내가 정말로 신경 쓰는 것은 세상을 개방적인 곳으로 만들겠다는 사명이다(The thing I really care about is the mission, makingthe world open)"고 말했다. 늘 엄청나게 큰돈을 번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돈을 버는 게 자신의 첫 번째 관심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저커버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데, 어떤 때는 '세상을 연결하는 것(connecting the world)'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다. 어떤 때는 둘을 합해서 말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은 원래 기업이 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좀더 공개적이고 연결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졌다.(Facebook was notoriginally created to be a company. It was built to accomplish a social mission-to make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
저커버그는 '개방'과 '연결'에 따라붙기 마련인 '공유'의 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와 더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더 개방적으로 공유하는 데 익숙해졌다. 사회적 표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는 그 무엇이다."
저커버그는 그런 고상한 명분들을 들이대면서 아예 '투명성'을 외쳐댄다. 저커버그가 그러하니 페이스북 직원들이야 그 뒤를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페이스북 직원들은 '절대 투명성(ultimate transparency)' 또는 '혁신적인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투명성이 사람을 더 선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페이스북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이 바람을 피우기 힘들어졌다는 예를 들기도 한다.
'공개'와 '연결'에 대한 저커버그의 집착은 2009년 『포천』기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DavidKirkpatrick)과의 인터뷰에서도 발견된다. 저커버그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집니다(You have one identity)"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e days of you having a differentimage for your work friends or co-workers and for the other people you know areprobably coming to an end pretty quickly······Having two identities for yourself is anexample of a lack of integrity(여러분이 직장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각기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는 시대는 아마도 빠른 시간 내에 종료될 것입니다.······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중적인 정체성을 지니는 것은 온전한 자기 자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커버그는 커크패트릭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집니다"는 말을 1분 동안 3번이나 강조하며 반복했다고 한다. 페이스북 초기에 성인 가입자에게 2가지 프로필, 즉 업무용과 여가용 프로필 생성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저커버그는 바로 위와 같은 논리로 반대했다.
이와 관련, 사생활 정보를 입력하지 않게 되어 있는 비즈니스형 SNS인 링크드인(LinkedIn)의 창업자 레이드 호프먼(Reid Hoffman)은 이렇게 말한다. "Mark doesn't believe that socialand professional lives are distinct. That's a classic college student view. One of the thingsyou learn as you get older is that you have these different contexts(저커버그는 사회생활과 직업생활이 구분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건 고전적인 대학생의 시각이죠. 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것들 중 하나가 이런 다양한 관계들을 갖게 되는 건데 말이죠)."
단지 어린 나이 때문만일까? 페이스북에는 저커버그와 그 일행들의 풍요롭고 안락한 계급적 배경이 전제되어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 어떤 면에서든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인한 불이익이나 취약성을 느껴보지 못한 젊은 세대의 자신감이 페이스북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저커버그가 언제까지 "세상을 좀더 공개적이고 연결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까? 또 그게 과연 좋기만 한 건가? 왜 꼭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깊이 알아야만 하는 걸까? 너무 고독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SNS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인간이 '고독'과 '관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걸 말해주는 건 아닐까?
데이비드 커크패트릭(David Kirkpatrick)은 『페이스북 이펙트(The Facebook Effect)』(2010)에서 지리적 · 문화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공통의 경험, 관 심사, 문제, 대의 등을 갖게 되는 걸 가리켜 '페이스북 효과(Facebookeffect)'라고 불렀다. 그는 페이스북이 새로운 공동체 개념을 창출해냄으로써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이 약 반세기 전 예견했던 지구촌(global village)을 실현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크 저커버그.
1984년 미국에서 태어난 저커버그는 치과 의사인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1세 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치과 사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 음악재생 프로그램 시냅스를 제작해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의 인수 및 고용 제안을 받았지만 제안을 거절하고 2002년 9월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2004년 친구들과 함께 하버드대 학생들끼리 연락처를 공유하고 인맥을 관리하는 서비스인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스탠퍼드ㆍ컬럼비아대 등 미국 전역 대학으로 가입 대상을 확대시켰다.
2011년 현재 페이스북은 전 세계 회원이 6억 명, 우리나라 사용자도 250만 명에 육박한다. 미국 비상장기업 주식 매매 서비스 셰어포스트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는 약 431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저커버그가 시사주간 <타임>지가 선정한 2010년 12월 15일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1927년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이래 최연소 선정으로, 저커버그의 재산은 69억 달러(약 7조 9,000억 원)로 <포브스>지의 평가에 따르면 세계 35위다.
미국의 젊은 기업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설립, 운영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선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가 하버드대학교 재학 시절 대학생이라는 제한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그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어 2012년 현재 가입자가 9억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런 성장에 힘입어 그는 정보화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 기업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E. Zuckerberg, 1984~)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인 페이스북(Facebook)의 공동 설립자이자 회장 겸 CEO로서, 차세대 디지털 거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재학 중 친구들이었던 에두아르도 세버린(Eduardo Saverin), 앤드류 맥컬럼(AndrewMcCollum),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크리스 휴즈(Chris Hughes)와 함께 페이스북을 설립했다.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주의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과 의사였으며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였다.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로부터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집 근처 머시 칼리지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크〉란 영화에서는 저커버그를 프로그래밍밖에 모르는 사회부적응자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실제의 저커버그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그는 서양고전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3학년 때 학교를 옮긴 뒤에도 과학과 서양고전 연구 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펜싱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저커버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synapse media player)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용자의 음악 감상 습관을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음악 플레이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고 저커버그를 고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컴퓨터 과학과 심리학을 전공할 생각으로2002년 9월 곧바로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Wikipedia, 2012).
저커버그는 2학년 때인 2003년 10월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이름으로 SNS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 2월 4일에는 '더 페이스북(TheFaceBook)'이란 이름으로 서비스를 개편했으며, 2005년에는 지금의 이름인 페이스북으로 변경했다.
페이스북은 배타적인 대학생 커뮤니티로 출발했다. 처음엔 하버드대학교의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후 전국 대학교로 서비스 영역이 확대됐다. 2005년 9월에는 고등학교 학생도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고, 2006년 9월에는 13세만 넘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확대되었다.
페이스북은 2006년 야후(Yahoo)로부터 1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이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벤처캐피털로부터 2억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아 계속 페이스북을 직접 운영해 나갔다. 2012년 8월 현재 페이스북 이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9억 명을 넘어섰다.
페이스북의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저커버그가 갖는 위상 역시 커져가고 있다. 잡지 《배니티 페어》는 2010년 저커버그를 '정보화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했다. 2009년 이 잡지의 같은 랭킹에서 저커버그는 23위에 불과했다. 저커버그는 2010년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급격한 가입자 증가와 더불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덕분에 마크 저커버그는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억만장자에 15억 달러의 자산으로 785위에 올랐다(Wikipedia, 2012).
2012년 2월 1일 페이스북은 기업공개를 신청했으며 상장을 통해 5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밝혔다. 그해 5월 18일 페이스북은 나스닥 주식시장에 상장, 미화 104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기업공개가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지금까지 페이스북이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2011년엔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가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FTC와 페이스북은 20년간 외부 기관의 정기적인 감사 등의 내용을 포함한 합의안에 합의했다(Wikipedia, 2012). 저커버그는 다른 서비스를 모방해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고소당해 수년간 법정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4년 미국에서 태어난 저커버그는 치과 의사인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1세 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치과 사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 음악재생 프로그램 시냅스를 제작해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의 인수 및 고용 제안을 받았지만 제안을 거절하고 2002년 9월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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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수용하라. 기뻐하면 기뻐할 일만 생겨난다 힘든 것에는 뜻이 있다. 감사함으로 수용하라. 믿음의 열도를 10배로 늘여라. 100배의 수확이 보장된다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나를 위하는 지름길이다 진리가 아니면 따르지 말라. 길 한번 잘못들면 평생 후회한다.
2019년 4월 3일 수요일
페이스북,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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