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6일 월요일

목단, 牡丹 , Tree Peony.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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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명
목단, 牡丹 , Tree Peony. (모란)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약전CP, KP, JP, VP
중약명목단피() - 목단(Paeonia suffruticosa Andr.)의 뿌리껍질을 건조한 것
학명
Paeonia suffruticosa Andr.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

모란속(Paeonia) 식물은 전 세계에 약 35종이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 지역에 분포한다. 
중국에는 약 11종과 10종의 변종이 있으며, 이 중 약으로 사용되는 것은 약 11종이다. 
이 종은 중국의 각지에서 재배된다.
‘목단’이라는 약명은 맨 처음 《신농본초경()》에 중품으로 기재되었다. 
《중국약전()》(2015년 판)에서는 이 종을 중약 목단피의 법정기원식물 내원종으로 수록하였다. 

모란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신라 진평왕 때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높이 2m 정도로 자라며 가지가 굵고 털이 없다. 
뿌리의 껍질은 약재로 쓰인다.

주요산지는 중국의 안휘, 사천, 호북, 호남 등이다.
목단의 주요 활성성분은 모노테르펜, 모노테르펜 배당체 및 페놀류 화합물 등이다. 
《중국약전》에서는 고속액체크로마토그래피법을 이용하여 패오놀의 함량을 1.2% 이상으로 약재의 규격을 정하고 있다.

약리연구를 통하여 목단의 뿌리껍질은 중추억제, 항염, 항균 등의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 목단피는 진경(), 지통(), 양혈산어() 등의 효능이 있다.

모란이라는 이름은 꽃색이 붉기 때문에 란[]이라 하였고,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고 모()자를 붙였다. 학명은 Paeoniasuffruticosa ANDR.이다.
중국 원산으로서 신라 진평왕 때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정원에서 가꾸고 있으나 때로 약용식물로 재배하기도 한다.

높이는 2m 정도 자라며 가지가 굵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2회 우상복엽이며, 소엽은 다시 두세 개로 갈라지기도 하고 표면에는 털이 없다. 
꽃은 5월에 피고 양성이며 지름은 15㎝ 이상이고, 홍자색이지만 백색·홍색·담홍색·주홍색·농홍색·자색 및 황색이 있다.
꽃잎은 5∼7개인데 많은 꽃잎이 달리는 품종이 개발되어 있다. 

모란

꽃이 피는 기간은 2∼3일이지만 꽃잎이 많은 종류는 7∼10일간 피기도 한다. 
꽃은 아침부터 피기 시작하여 정오에 절정에 달한다.
뿌리의 껍질은 해열·진통·진경()·구어혈()·통경()·양혈()·소염()의 효능이 있어 약재로 이용한다. 
약성은 양()하고 신고()하다. 
각종 열성병의 항진기(), 골증노열()·경간()이나 각종 혈행장애·월경불순·폐경·질타손상()·옹종() 등에 탕()·환() 또는 산제()로 하여 복용한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설총()의 「화왕계()」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화목 9등품론이라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할 때,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이와 같은 상징성에 따라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왕비나 공주와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는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모란은 빠질 수 없었다. 
미인을 평함에 있어서도 복스럽고 덕 있는 미인을 활짝 핀 모란꽃과 같다고 평하였다

항염
목단의 물 추출물과 패오놀은 디메칠벤젠에 의해 유도된 Mouse의 귓바퀴 종창과 내독소에 의한 복강 모세포혈관 투과성 증가 및 카라기난, 알부민, 포름알데히드, 히스타민, 5-하이드록시트립타민, 브라디키닌 등에 의해 유도된 Rat의 발바닥 종창에 대해 모두 뚜렷한 억제작용이 있는데, 양측 부신을 모두 제거한 Rat에 대해서도 여전히 항염효과를 나타낸다. 
패오놀은 염증성 조직 내의 프로스타글란딘 E2(PGE2)의 생합성 및 카라기난으로 인한 흉막염 다형핵 백혈구의 전이를 억제할 수 있다. 
목단피의 목심에도 뚜렷한 항염작용이 있는데, 디메칠벤젠으로 유도된 염증에 대하여 뚜렷한 억제작용이 있으며, 카라기난으로 인한 발바닥 종창에 대해서도 뚜렷한 길항효과가 있다[참고문헌:12].

항알러지 반응
패오놀은 기니피그의 포스만(Forssman) 피부혈관염 반응, Rat의
재발성 피부과민 반응, Rat의 능동/수동적 아루투스(Arthus, 곤충알러지)형 발바닥 부종 등에 대해 뚜렷한 억제작용이 있으며, 면양적혈구와 소의 혈청알부민으로 유도된 Mouse의 지발성 발바닥 종창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 
디니트로플루오로벤젠으로 유도된 Mouse의 접촉성 피부염에 대해서도 뚜렷한 억제작용이 있다. 
목단피의 목심 부위에도 뚜렷한 항염작용이 있는데, 디메칠벤젠으로 인한 염증 등에 뚜렷한 억제작용이 있으며, 카라기난으로 인한 발바닥 종창도 뚜렷하게 억제한다.
항균
목단피의 물 추출물은 in vitro에서 황색포도상구균, 백색포도상구균, 녹농간균, 탄저간균, 변형간균, α-연구균, β-연구균 등에 대해 뚜렷한 억제작용이 있으며, 말라쎄지아(malassezia)에 대해서도 억제작용이 있다.

진통
Mouse의 열판자극실험, 몸통비틀기실험 및 포름알데하이드 통증유도실험 등을 통해서 패오놀에 진통작용이 있음이 알려져 있는데, 그 진통효과에는 내성이 없고 날록손에 의해서도 작용이 역전되지 않으나, 레세르핀에 의해서는 진통효과가 감소된다[참고문헌:16].

심혈관계에 대한 영향
1) 목단피와 목심은 토끼의 평균 동맥압력에 대해 모두 뚜렷한 혈압강하작용이 있으며, 목심의 작용이 목단피보다 강하다.
2) 패오놀은 농도 의존적으로 정상 및 칼슘 파라독스가 있는 어린 Mouse의 심근세포 내 지질과산화물(LPO) 함량을 뚜렷하게 저하시키는데, 이러한 작용은 심근세포가 칼슘에 민감성을 보이기 때문이며, 이는 패오놀의 항산화작용이 칼슘 파라독스로 인한 심근세포의 손상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를 통하여 패오놀이 칼슘 파라독스로 사육된 어린 Mouse의 심근세포 Ca2+의 내입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
3) 패오놀은 Rat의 전체 혈액점도를 낮추며, 적혈구의 압착을 감소시킴과 동시에 적혈구의 응집성과 혈소판의 점착성을 저하시킴으로써 적혈구의 변형능력을 증강시킨다.
4) Rat의 심근결혈재관류 모델에서 패오놀은 각기 다른 정도로 심실의 떨림과 가속 발생을 저해한다.  심근경색의 범위를 감소시키며, 슈퍼옥시드디스무타아제의 활성감소를 억제시킬 뿐만 아니라 말론디알데하이드의 증가도 억제할 수 있다. 
패오놀은 칼슘이온통로의 전류를 차단하는 작용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심박실상을 길항하는 효능이 있다.
5) 패오놀은 메추리의 총콜레스테롤(TC), 중성지방(TG), 저밀도지단백(LDL), 극저밀도지단백(VLDL), 아포리포단백질 B100 등의 함량을 뚜렷하게 감소시킴과 동시에 고밀도지단백(HDL)의 함량을 증가시킨다. 
각기 다른 정도로 혈액 비점도, 혈장 비점도, 섬유단백원 비점도, 적혈구 응집성 등을 저하시키며, 주동맥 및 간장의 TC의 함량을 뚜렷하게 감소시킨다. 반괴의 면적을 축소시키며, 주동맥의 지질반괴 형성을 억제한다.

항종양
패오놀은 Mouse 간암세포 HepA의 성장을 억제하며, 인터루킨-2 및 종양괴사인자-α(TNF-α)의 성장을 촉진하는 작용이 있다.

간 보호
목단피의 배당체는 클로로포름과 D-칼락토사민에 의해 유도된 Mouse의 알라닌아미노기전이효소(ALT)와 아스파트산아미노기전달효소(AST)의 증가를 억제할 수 있으며, 혈청단백의 함량 증가와 간당원의 합성을 촉진한다. 
CCl4에 중독된 Mouse에 펜토바르비탈을 투여한 뒤 나타나는 수면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데, 이는 간장의 해독능력을 증강시키는 작용이 있음을 의미한다.
혈당강하
목단피의 다당은 II형 당뇨모델 Rat에 대해서 뚜렷한 치료작용이 있는데, 음식과 물의 섭취량을 현저하게 감소시키며, 혈청포도당 및 TC와 트리글리세리드의 함량을 감소시킨다.

포도당 내성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간세포막 친화력에 따른 인슐린 수용체의 최대 결합 용량(Bmax2) 및 인슐린민감지수(ISI)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혈당강하의 작용기전은 인슐린 수용체의 수치를 증가시키고, 인슐린 저항성을 감소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면역조절
목단피는 단핵거식세포의 탐식기능을 촉진하며, 인체의 특이성 면역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면역기관의 중량을 증가시킨다.

기타
목단피에는 진정, 최면, 항경궐, 이뇨, 해열 등의 작용이 있다.
목단피는 중의임상에서 사용하는 약이다. 
청열양혈[, 열사()를 꺼 주고 열로 인해서 생긴 혈분()의 열사를 식혀 줌], 활혈산어(, 혈의 운행을 활발히 하여 어혈을 없애 줌)의 효능이 있어 반진토뉵(, 피부에 붉은색 또는 자색의 반점이 생기며 토하고 코피가 나는 증상), 온사상음[, 온열병()으로 진음()이 손상된 것], 
음허발열(, 음허로 인한 발열), 혈체경폐(, 혈행()이 응체()되어 월경이 멎음), 통경징가(, 월경 중에 또는 월경 전후에 아랫배나 허리가 아프고 아랫배 속에 덩이가 생긴 증상), 질타손상(, 외상으로 인한 온갖 병증), 옹양종독(, 큰 부스럼 등에 의한 독), 장옹복통(, 장옹이 있고 복통이 있는 것)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모란은 꽃이 화려하고 풍염()하여 위엄과 품위를 갖추고 있는 꽃이다. 
그래서 부귀화()라고 하기도 하고, 또 화중왕()이라고 하기도 한다.

모란은 장미와 함께 인간이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 낸 최고의 예술품이다. 

그것도 살아 있는 예술품인 것이다. 
호화현란()한 아름다움과 기품에 있어서는 서로 비견되지만 풍려()함으로는 모란이 단연 돋보인다. 
모란은 장미에 비해 그 꽃모양이 장려()하고 소담스러우면서 여유와 품위를 지니고 있다.



모란은 백화의 왕이라고 할 만큼 그 아름다움을 진중()하고 있는 나머지 이명()도 대단히 많다. 
목작약()을 비롯해서 화왕()·백화왕()·부귀화()·부귀초()·천향국색()·낙양화()·상객()·귀객()·화신()·화사()·화사부() 등 극히 귀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모란의 품종 이름이면서 모란의 이명처럼 알려져 있는 것으로 요황()·위자()·일녑홍() 등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먼저 모란의 이명()에 관한 설명과 함께 모란의 중국에서의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모란은 가장 중국적인 꽃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모란 문화는 그대로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우리의 꽃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모란의 이명인 목작약은 작약과 비슷한 목본이란 뜻이다. 
모란과 작약은 다 같이 그 꽃모양이 장려하고 잎모양이 단정하여 모든 꽃 가운데 뛰어나다고 일컬어져 왔다.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란 말도 생겨났다. 
중국사람은 이 두 가지 꽃을 다 같이 사랑하여 나무에 속하는 모란과 풀에 속하는 작약을 접목·교배 등을 해서 친족관계에서 혈족관계로까지 발전시켰다. 
모란을 목작약이라 하고 작약을 초목단()이라고 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목경해고()》에는 "옛날 목작약이라고 하는 것은 모란을 지칭한 것이다. 

모란은 처음에는 따로 이름이 없었다. 
작약을 빌어 모란의 이름에 사용하였다"라고 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모란에서 "당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목작약이라고 불렀다. 
꽃은 작약과 비슷한데 몇 년을 지난 그 줄기는 나무를 닮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다. 
목작약이라는 이름도 당나라에서 나왔는데 궁중에서는 현종의 개원(, 713~741년) 이전부터 모란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나 천보(, 742~756년) 이후에 민간에서도 모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왜 종전처럼 목작약으로 부르지 않고 모란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서는 수·당()시대에 히말라야의 부탄지방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서방의 나라 부탄과 발음이 비슷한 모란(중국에서는 '무탄'으로 발음한다)이란 말을 선정해서 이름을 붙이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모란의 원산지는 중국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수동()은 〈당인희애모란고()〉라는 글에서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9세기 전반 서원흥()의 〈모란부()〉 서()에서는 측천무후()가 모란을 고향인 서하(西, 산서성)에서 궁중의 어원에 이식하여 점차 장안에 퍼지게 되었다고 하고 있으므로 모란이란 이름은 무후의 황후시대인 고종조(, 649~683년)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자인 고종은 꽃이름을 고치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후는 그녀와 대립하고 있던 왕황후()와 소양제(, 양제는 황후 아래에 있는 여관의 관명)를 죽이고는 왕씨의 성을 망(, 구렁이)씨, 소씨의 성을 효(, 올빼미)씨로 고쳤다. 
황제가 되고나서 거란()의 이진충()·손만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들의 이름을 이진멸()·손만점()으로 고쳐 버렸다. 
이로 미루어 목작약을 모란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무후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는 것이다.



모란의 한자 글자를 보면 모(, 중국발음 mŭ)는 목(, mū)와 음이 가깝고 단()은 당나라 황제가 즐겨 복용한 선약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작약의 약을 단()으로 바꾸고 목을 대신한 모()를 합해서 모란()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모()는 남성을 의미하고 단()에는 단심()·단성()의 뜻이 있으므로 술어로서의 모란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는 천하의 남자가 그녀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것이 된다. 
모란의 자의()를 직접 해석한 당대()의 사료가 없는 이상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다음 화왕과 백화왕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꽃 가운데 가장 호화롭고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작약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생겼다. 
이 두 가지 꽃을 비교해서 풍염농후한 모란에 비해서 약간 순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작약과의 관계를 화왕()과 화상()으로 구별했다. 
모란이 백화 가운데 왕이라면 작약은 재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란이 제1위, 이어서 작약이 제2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암수록》 〈화품평론〉에서는 "작약은 충실하고 화려함이 화왕(모란)보다 못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화왕에게 머리를 숙이고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다음 부귀화·부귀초인데, 부귀란 중국에서는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모란은 그러한 성격을 가진 명화()라는 뜻이다. 

그것은 꽃이 풍기는 화려함과 덕스럽고 부귀로운 분위기를 나타내는 품격 때문이다. 
상객·귀객·화신·화사·화사부 등도 이에 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천향국색()은 문헌에 따라서는 국색천향이라고 하고 있는 곳도 있다. 

국색은 나라 가운데서 가장 미인이란 뜻이고 천향은 하늘에서 내려진 향기라는 것인데 대단히 좋은 향기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진 것과 같은 향기로움을 지니고 나라 안에서 제일 가는 미인과 같이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현종이 모란꽃을 감상하며 즐기다가 "모란을 읊은 시 가운데 누구의 것이 가장 훌륭한가"라고 물으니 정수사()가 이정봉()의 다음 두 구절을 일러 드렸다.

나라에서 으뜸 미인의 얼굴엔 아침에도 술기운이 돌고 
천계의 맑은 향기가 밤에 옷에 스며드네 衣.

이 시를 본 현종은 뜻밖의 생각에 미쳐 곧 귀비에게 거울 앞에서 황금의 술잔을 들고 시의 뜻에 맞는 포즈를 취하게 하고는 만열(滿)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모란의 짙고 아름다운 자태를 '국색천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시의 작자 이정봉은 현종보다 뒤의 인물이다).



《모란보()》에는 양비취구()·취옥환(, 옥환은 귀비의 어릴 때의 이름)·양비심취()·태진만장(, 태진은 귀비가 여도사로 있을 때의 이름)·태진관()·일녑홍() 등 양귀비와 연유한 품종의 이름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만큼 모란과 양귀비와의 인연이 깊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대임상에서는 피부병, 원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 열병으로 자색의 반점이 발생하는 증상), 고혈압 및 과민성 비염 등의 병증에 사용한다.
중국 약용 목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약의 기원이 풍부한 만큼 상품의 규격 또한 다양하다. 

《중국약전》에 수록된 이 품목의 건조된 뿌리껍질이 정품 목단이며, 그 밖에도 자반목단(Paeonia suffruticosa var. papaveracea (Andr.) Kerner), 왜목단(P. suffruticosa var. spontaneaRehder), 사천목단(P. decomposita Hand.-Mazz / P. szechuanica Fang), 야목단(P. delavayiFranch.), 협엽목단(P. delavayi Franch. var. angustiloba Rehd. et Wils.) 등이 있다. 
이들의 뿌리껍질도 모두 목단피로 사용된다.
목단피의 활성성분인 패오놀에는 항균소염(), 혈압강하, 이뇨 등의 작용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패오놀의 약리활성과 이와 관련된 제제에 대한 연구 또한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일녑홍이란 꽃은 양면()이 현종에게 헌상한 모란으로 뒤에 양귀비에게 주어졌는데 화장을 하던 그녀가 무심코 지분이 묻은 손으로 꽃잎을 만졌는데 그후 이 모란은 홍색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종은 이 모란을 일녑홍이라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낙양화()는 낙양의 꽃이라는 뜻이다. 
낙양은 동주()·후한()·위()·서진(西) 등이 도읍한 중국의 역사상 가장 유서깊은 도시이다. 
이곳에는 옛부터 모란 재배가 성행하였다.

요황()과 위자()라는 꽃이름이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요황은 요가()에 황색의 아름다운 모란꽃이 있어 그렇게 불렀고 위자는 위가()에 붉은색의 아름다운 모란꽃이 있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데 그 꽃이 너무 아름다워 후대에 내려오면서 모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다. 

《화암수록》에도 모란의 이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산림경제》(진고사책)에서는 모란의 천엽자()를 경화()라고 하는데 이는 낙양화의 일종이고 단엽자()를 천화()·산화()·산단()이라 부른다고 하고 있다. 
심거나 접을 붙이는 것은 추사() 전후가 좋다고 하고 중추()를 이 꽃의 생일이라 하는데 이때 이식을 하면 반드시 무성하게 자란다고 하였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이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많이 개량되었으며 중국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아온 꽃이다.  
가장 중국적인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란은 수나라 때(6세기)에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서 재배식물로 재배하게 되었는데 그후 당대(7~8세기)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였다. 
《오잡조()》에는 당나라 고종과 무후()시대에 모란이 처음으로 후원에 심어져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현종의 개원() 연간에는 궁중을 비롯해서 민간에서도 다투어 배양하여 진중()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장안에서는 5월이 되면 온 도시가 모란꽃으로 가득차고 곳곳에서 품평회나 원유회가 열리고 꽃구경하는 사람이 넘쳤다고 한다. 
그 모습을 "장안 사람들은 성을 비우고 나와서 취한 듯 미친 듯 하였다()"고 표현하였다.



모란이 문학작품에 오르게 된 것은 현종의 개원(, 713~741년) 연간 말기에 배사엄()이 분주(, 산서성 근처)에서 백모란을 한 포기 장안에 이식한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 새로운 재배 화목이 그렇게도 짧은 기간내에 최고의 꽃의 지위까지 뛰어오르게 된 것은? 
그것은 물론 모란꽃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풍려함, 부귀의 품격, 조형적 아름다움이 자연히 관상자를 압복()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당 현종이 모란을 편애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현종은 또 모란 이외에 풍만염려한 양귀비를 편애했다. 
현종은 장안의 흥경궁()에 양귀비를 데리고 나아가 주연을 베풀었다. 
흥경궁 정원에는 황제의 권력으로 수집한 수많은 모란이 식재되어 있었다. 
현종은 시인 이백으로 하여금 꽃과 미인을 읊은 시를 짓게 하였다. 
이 시에서 이백은 명화인 모란과 경국()의 미인과의 무비()한 풍려()를 상찬했다.



모란은 드디어 화왕의 지위에 오르게 되고 또 최고의 미인의 상징으로 일반 세인의 진상애완()하는 바가 되었다. 
이후 모란은 송나라 때까지 그 왕위를 물려주지 아니하였다.

그런 가운데 모란을 또 유명하게 만든 것은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이름 높은 구양수()가 쓴 〈낙양모란기()〉이다. 
그는 이 글 가운데서 "모란에 이르러서는 굳이 꽃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고 바로 꽃이라고 한다. 
그 뜻은 천하의 진정한 꽃은 오로지 모란 뿐이라는 것이다(  )"라는 최상의 예찬을 헌사하고 있다.



중국인은 모란을 사랑하여 모란꽃 아래에서 죽는 것을 일종의 풍류로 생각할 정도였다. 
명대()에 탕현조()의 희곡 〈모란정환혼기()〉는 두보()의 딸 여랑이 유종원()의 28대손 유춘경과 모란정에서 환생하여 사랑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모란꽃 아래에서 죽어 풍류로운 귀신이 되고지고( )"라는 시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그러한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모란 애호는 대단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모란 재배가 대단해서 양자강 이북 지방에서는 훌륭한 모란원이 많다고 한다.

이리하여 중국에서 모란은 온 국민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중국민족 전체의 번영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모란은 당대 이래 중국의 국화였다는 설이 있다. 
명대() 북경의 모란 명소로 알려진 극락사() 한쪽에는 국화당()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황제가 좋아했던 꽃이라는 의미였고 모란이 정식으로 국화로 선정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목단[牡丹] 꽃이 달린 가지[花枝]

모란이 구미()에 건너간 것은 화란의 동인도회사가 1656년에 중국에서 도입한 것이 최초이다. 
그후 영국·프랑스 등에도 중국에서 모란이 건너갔고 특히 프랑스에서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 
모란과 작약은 우리나라나 중국·일본에서는 구별해서 취급하고 있지만 구미에서는 양자를 다 같이 피오니(peony)라고 부르고 있다. 

구태여 구별할 때는 목성() 피오니, 초성() 피오니라고 한다.

모란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진평왕 때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진평왕 때 "당 태종()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빛깔의 모란을 그린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엽의 최치원()이 각 사찰과 석대()를 돌아다니면서 모란을 심었다는 고사도 있다.

고려시대에 내려와서도 모란에 관한 기록이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 

현종 때에는 대궐 안 사루() 앞에 손수 모란을 심었으며 예종은 이 사루에서 모란 시를 짓고 유신들에게 명령하여 화답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 이전 덕종으로부터 숙종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모란꽃을 읊고 신하들은 이에 화답하는 행사가 되풀이되었다고 한다. 
의종 때 임춘()의 《서하집(西)》에 실린 〈양국준가정홍모란()〉이란 시에서는 "벼슬하는 집들은 다투어 모란을 심는다"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이후 충숙왕 때에는 왕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본국으로 돌아올 때 원나라 천자가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 황·백·적·홍색의 모란이 들어 있었다고 하므로 모란은 그때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궁중은 물론 권문세가들이 서로 다투어 진귀한 품종을 집안의 정원에 심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고려사》 〈열전〉에는 기홍수()와 차약송()이 어느날 관청에 앉아 모란 기르는 법을 논했는데 사람들이 호화사치를 숭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brt>고려시대 고분에서 발굴된 부장품인 화운개() 등에서는 모란꽃 문양이 발견되고 있다. 
이로 보면 고려시대의 귀족들은 사후에도 모란꽃을 좋아하고 부귀를 누리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고려 고분에서 발굴된 부장품의 하나인 화운개(花雲蓋)고려 최사위(崔士威, 960~1041)의 묘에서 발굴됨. 장서각 소장."

고려시대에 그렇게도 대단했던 모란에 대한 애상 열기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유교사회에서 아취와 고절을 숭상하는 선비들의 꽃에 대한 애상의 열의가 모란에서 매화나 국화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크고 넉넉하며 화려하고 농염한 모란에 대한 애호 열기가 쉽사리 가라앉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민중의 생활 속에 침투되어 애호의 정도가 더욱 깊어진 면도 없지 않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서는 모란은 설명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화암수록》에 실려 있는 그의 〈화목구품()〉에서는 1품의 송()·죽()·매()·연()·국()에 이어 2품으로 모란 하나만을 올려 놓았다.

《화암수록》의 〈화목구등품제()〉에서는 모란을 작약·왜홍()·해류()·파초와 함께 부귀를 취하여 2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모란의 품종에 정황색·대홍색·도홍색·분홍색·자색·백색·청색의 여섯 가지 색깔에 120종이 있다고 하였다. 

모란을 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특이하게 "모든 꽃은 대체로 봄철에 심는 것이 보통인데 오직 모란만은 입추() 뒤 다섯 번 째 무일()을 전후하여 심고 또 접붙이는 것이 좋다"고 하고 있다.

같은 《화암수록》의 〈화목이십팔우()〉에서는 모란을 열우(), 작약은 귀우()라고 하고 있다.


만생모란()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에 적는다. 
원래 모란은 덩굴이 지는 식물이 아니다.  
현존하는 덩굴모란도 볼 수 없다. 
《지봉유설》과 《대동야승()》에는 덩굴모란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대동야승》의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란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심고 있으나 아직까지 덩굴로 나는 것은 없다. 
함경도 경흥() 땅에 바로 덩굴로 난 모란이 있는데, 식자들은 생각하기를 여기를 금()나라 황룡부()의 땅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부()에서 6~7일의 일정밖에 안 걸리기 때문이다. 
금나라 사람이 송나라 간악()의 화목을 다 옮겨다 황룡부에 심었다는데 이것은 그 종자다.

고찰해 보면 송경(, 지금의 개성)에 진봉산()이 있는데, 도성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몇 리 안 가서 옛 절터가 있는데, 돌틈에 덩굴로 된 모란이 있다. 

붉은것과 흰것이 서로 섞여 나와 돌 위에 뻗었는데, 사람들이 옮겨다 심으려고 해도 그 뿌리가 돌 사이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캐어 내지 못한다. 
산불이 나서 매양 타 버리지만 죽지도 아니한다.

위의 기록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러한 식물이 존재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무늬 가운데는 모란꽃이 덩굴과 함께 그려져 모란당초문()이라 불려지는 문양이 많다. 
이것을 실재로 있는 덩굴모양을 본따서 만든 문양으로 보기는 어렵고 아마 모란문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또 부귀의 연속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목단()이라고도 한다. 높이 2m이며 각처에서 재배하고 있다.
 가지는 굵고 털이 없다. 
잎은 3겹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잎은 달걀모양이며 2∼5개로 갈라진다. 
잎 표면은 털이 없고 뒷면은 잔털이 있으며 흔히 흰빛이 돈다.

꽃은 양성으로 5월에 홍색으로 피고 지름 15cm 이상이며 꽃턱이 주머니처럼 되어 씨방을 둘러싼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꽃잎은 8개 이상이며 크기와 형태가 같지 않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서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게 깊이 패어 있는 모양이 있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2∼6개로서 털이 있다. 
열매는 9월에 익고 내봉선()에서 터져 종자가 나오며, 종자는 둥글고 흑색이다. 
많은 재배품종이 있으며 뿌리껍질을 소염·두통·요통·건위·지혈 등에 쓴다.

모란을 심는 적기는 10월 상순∼11월 상순이며 토양은 메마르지 않은 양토()가 적당하다. 
번식은 실생(포기나누기·접붙이기의 3가지 방법이 있다. 
모란의 종류는 발달 과정에 따라 중국종·일본종·프랑스종의 3계통으로 구분하고, 개화기에 따라 보통종과 겨울모란으로 나눈다. 
꽃말은 ‘부귀’이다.

문헌
목단 [牡丹, Tree Peony] (세계 약용식물 백과사전 2, 2016. 11..,) 
모란 - 들어가는 말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모란 [牡丹] (두산백과)


 목단 [牡丹, Tree Peony]. 모란모란의 꽃목단[牡丹] 꽃이 달린 가지[花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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