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5일 일요일

한국의 친족 항렬법(行列法)외,,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

한국의 친족 항렬법()

한 가족의 이름에는 돌림자가 있다. 이를 항렬자()라고도 한다. 같은 집안 사람들 간의 서열을 알려 주는 표지이다. 같은 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동항()이라고 하여 이름 중에 한 글자를 같은 자로 통일해서 쓴다. 따라서 타고난 성()씨와 항렬자를 제외하면 자신의 고유한 이름은 한 글자에 불과하다.<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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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경우 조상들이 미리 정해 둔 항렬자에 따라 후대 자손들의 이름을 짓는다. 항렬자를 정하는 순서는 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오행 상생법()으로 금수목화토()가 부수자로 들어가는 글자를 가운데 글자와 끝 글자에 번갈아 넣는 방식으로 쓴다.

예를 들어, 아버지 대에 돌림자로 물 수()자가 들어간 큰 물 한()자를 가운데 글자에 쓰면, 아들 대에는 나무 목()자가 들어간 기둥 주()자를 끝 글자에 쓴다. 다시 손자 대에는 불 화()가 들어간 노나라 노()를 가운데 글자로 붙이는 방식이다. 혹 집안 형제가 이름에 돌림자를 쓰고 있을 경우, 아버지 할아버지 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런 항렬자의 규칙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 밖에 십간()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갑을병정()의 자나 변을 따서 쓰고, 십이지()로는 자축인묘()의 순서로 이름자에 붙여 쓰기도 한다. 일이삼사() 등의 숫자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항렬의 규칙 때문에 나이와 관계없이 촌수의 차이가 생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성씨의 본관과 돌림자만 보고도 그 집안의 내력을 훤히 다 알 수가 있었다. 이름자 안에 한 집안의 역사가 이미 다 깃들여 있는 것이다. 요즘은 작명소()에서 돈을 주고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또 한글 이름도 많이 짓다 보니, 항렬자를 지키지 않은 이름이 갈수록 많아진다. 항렬자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족 간의 관계를 이해하기는 참 편리한 방법이 항렬이다.

혈연관계 및 인척관계에 의해 맺어진 사회적 집단을 가리키는 사회학용어.

개설

친속()이라고도 한다. 친족이란 특정한 사회에서 혈연·혼인으로 맺어진 가족 이외의 사람들 사이에 기대되는 태도·행동 내지 권리·의무의 사회관계이다.
이러한 친족은 인간사회에 보편적인 것 중의 하나이며, 따라서 행동의 규제와 사회집단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구실을 수행한다.
친족관계는 가족이 단위가 아니고 가족과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개인을 관련점으로 전개되는 친족의 관계로서, 여기에는 기대된 이상적 행위와 개인의 현실적 행위가 포함된다.
친족은 사회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변화한다. 친족을 지칭하는 용어, 친족원의 범위, 친족조직 내지 친족집단의 유무와 그 결속력의 정도, 조직원리로서의 출계규칙()과 혼인규칙, 다양한 범주의 친족원을 표시하는 친족명칭, 친족관계를 통하여 조정되는 다양한 권리·의무, 가족에 대한 통제의 정도 등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친족제도의 주요한 특성이다.
친족을 고찰할 때는 이와 같은 다양성과 변화의 측면에 주목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같은 형태의 용어라 하여도 그것이 사용된 시대에 따라서 내포하는 의미가 서로 다를 수 있고, 또한 중국에서의 의미가 곧 우리 나라에서의 의미와 같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외국의 친족을 연구하여 얻은 결과를 한국의 경우에 적용할 때에는 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의 용어나 이론이 그것을 취급하는 연구자에 따라 혼란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친족을 연구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법제 혹은 규정상의 친족과 실제의 친족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법제적인 것과 실제상의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물론 우리의 관심은 실제상의 친족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출계규칙과 출계집단의 존재는 별개라는 점이다. 즉, 부계의 출계규칙이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처럼 부계이면서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는 시대나 사회도 있지만, 일본의 예처럼(엄격한 의미에서는 부계가 아님) 부계이면서도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도 있기 때문에 이 양자의 구별은 필요한 것이다.
친족을 분석하기 위해 친족에 관계되는 각종의 사료·금석문·분재기()·족보·입양문서·문집 등을 통하여 친족용어·친족범위·상속·양자·족보·항렬()·친족명칭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현대의 친족관계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직접조사에 의한 연구결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친족을 고찰할 때는 그것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는 것이 편리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부모를 기준으로 하여 아버지를 통한 친족을 부계친(), 어머니를 통한 친족을 모계친()으로 구분하고 부부를 기준으로 하여 남편을 통한 친족을 부계친(), 아내를 통한 친족을 처계친()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부계친()과 모계친은 그 성()이 같고 다름에 따라 각각 부계친을 동성친()으로, 모계친을 이성친()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이성친이라 하는 경우에 처계친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구분하면 부계친()에는 부·모·조부·조모·자·여·자부()·서(婿)·손·손녀·형·제·자·매 등이 포함되고, 모계친에는 외조부·외조모·외숙·외숙모·이모·이모부·외종형제자매·이종형제자매 등이 포함된다. 또한, 부계친()에는 남편·시부()·시모·시조부·시조모·자·여·자부·서·손·손녀 등이 포함되며, 처계친에는 장인·장모·처조부·처조모·처남·처남댁·처형·처제·동서·처질()·처질녀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구분할 때, 물론 분류의 기준이 부모와 부부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즉, 부계친()은 남편의 부계친()과 중복된다. 또한, 자기의 성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서 같은 부계친()이라도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위와 같은 구분은 친족을 고찰함에 있어서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한 가지 덧붙여 둘 것은 남녀의 성에 따라 남계친과 여계친의 구분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친족집단을 분류할 때 출계규칙에 따라 단계()출계집단과 단계가 아닌 출계집단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때 출계규칙은 대체로 집단성원권()의 전달방식 또는 집단형성의 규칙을 말하는 것으로, 단계에는 부계·모계·이중출계가 포함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단계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그 명칭이나 포함내용에 있어서 학자마다 견해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존재하는 친족집단을 부계출계집단(씨족)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이전 시기의 경우에 대해서는 약간 혼란이 있다.
즉, 고대의 친족체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종래에 바이래트랄(bilateral)·코그내틱(cognatic)·이중출계(double descent)·앰비래트랄(ambilateral)·라마지(ramage)·킨드레드(kindred)·모계씨족·부계씨족·리니지(lineage)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외국에서조차 개념상의 혼란이 있는 것을 성급하게 한국에 적용하려 한 데에서 연유하는 혼란으로 생각된다.
이 분야에서 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출계규칙과 출계집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15세기 이전의 시대(신라·고려)에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한다는 견해는 다분히 조선 후기의 눈으로 그 시대를 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친족용어

친족에 대한 용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고, 또 같은 용어라 하여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내용이 변화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친족용어를 분석함으로써 친족의 범주 내지 친족조직의 특징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의하여 살펴볼 측면은 부계친과 모계친, 처계친을 엄격하게 구별하였는가 하는 점과 만약 구별하였다면 그것은 언제부터이며, 그리고 하나의 조직 내지 집단으로서의 부계친()의 존재는 언제부터 뚜렷해졌는가 하는 점이다.

신라

신라시대의 친족의 성격에 관한 종래의 연구결과는 대부분 이 시기에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그 존재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거나 제시하는 경우에도 성이나 족이라는 용어의 존재로부터 그 근거를 찾고 있는데, 이러한 추론은 중요한 결점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
성이 있으면 곧 씨족이 존재한다고 본다거나, 부계의 출계규칙이 있으면 곧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든가, 7대나 7대조하면 곧 7대의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사실을 올바르게 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족()·촌()·부()·골()을 곧 부계의 혈연집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위와 같은 사고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사료와 각종 금석문 등 자료가 있는 범위에서 친족용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족’을 살펴보면, 대체로 골과 동의어이거나 골 또는 골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들·친손·딸·사위·외손이 모두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점,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자·여·서·친손·외손의 차별이 거의 없이 골(성골 또는 진골)이라 한 점, 그리고 왕과 왕비 및 이들이 낳은 자녀는 모두 골(제1골)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손이면 친손·외손의 구별없이 모두 골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족은 왕의 자·여·서·친손·외손의 범위와 동의어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신라시대의 족이 조선 후기의 부계혈연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다음에 종과 성도 족과의 관련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용어는 중국이나 조선 후기의 용법과는 판이하며, 결코 동성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성골()이라는 용어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골품과 동의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종족()·족인()·종당() 등의 용어는 얼핏 생각하기에 부계혈연집단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이미 살펴본 족의 내용이나 다음에 살펴볼 고려시대에서의 이러한 용어의 의미내용을 생각한다면 결코 부계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씨족이라는 용어는 세계(), 즉 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의 가계는 친가만의 가계가 아니라 외가의 가계도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되며, 오늘날의 부계친만을 지시하는 용어는 아니었다.
요약하면 종·성·성골·종족의 어느 것도 부계친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었고, 족의 경우처럼 동성친·이성친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된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조상의 입장에서 보아 친손과 외손을 모두 지칭하는 용어였다.

고려

≪고려사≫·≪고려사절요≫, 각종의 묘지(), 기타 가용한 자료를 통해 고려시대에 사용된 친족용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족과 족이 들어 있는 용어를 살펴보면, ‘족’은 이성의 친족을 의미하는 경우와 동성의 친족을 지칭하는 경우 모두에 사용되었다. 동성인 경우에도 동성이본()에 사용된 예가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족이라는 용어는 동성친뿐만 아니라 이성친(모계친)과 인척()도 지칭하는 용어로 해석할 수 있다. 족이 들어 있는 용어에는 족인()·족녀()·족부()·족형()·족제()·족질()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동성친뿐만 아니라 이성친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족당·족친·족파·족속·족류 등의 용어도 어느 것이나 부계친, 즉 동성친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가족을 가리키기도 하고(족파), 어떤 것은 이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편, 족장()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종래 이 족장이라는 용어의 존재는 고려시대는 물론 삼한시대에까지도 부계혈연집단 존재의 근거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족장이 반드시 부계혈연친의 집단이나 조직의 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위의 여러 용어들이 이성친에도 사용된 것처럼 족장이 이성친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고, 또 가족의 장을 의미할 가능성도 있다.
씨족의 용어는 세계, 즉 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오늘날과 같이 부계친만을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며, 본족()도 자매의 남편, 당자매()의 남편, 사위, 손녀서(婿)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부계혈연친만을 지시하는 용어는 아니다.
다음에 종을 포함하는 용어를 살펴보면, 종족이 동성친과 이성친을 구별하지 않고 막연하게 사용된 예가 있고 종과 종인이 동성친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종친이라는 용어는 왕실 내지 왕족을 뜻한다.
한편, 동종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동성친을 가리키는 경우와 사손(使:조선왕조 때 유산을 상속할 수 있는 일정한 범위의 친족) 또는 본손()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이 사손에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포함되는데, 이렇게 본다면 동종이 동성남자나 그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종자라는 용어는 종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실제로 부계혈연집단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종손이 아니라 법령상의 종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친·친족·친속·친척·속 등의 용어는 어느 것이나 가족 내지 동성친이나 이성친을 구별하지 않는 친척의 개념과 일치한다. ‘내외친척’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런 뜻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인()이 들어 있는 친족용어를 알아보면 인당()·인척()·인친() 등은 대체로 사돈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친인()은 내외친척을, 종인()이나 인족()은 위 두 가지 모두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구별은 명확한 것이 아니다.
어머니 쪽의 친정가족이나 친족은 외족 또는 외척이라고 하였으며, 처의 가족이나 친족은 처족이라 하였다. 이상의 용어 중에서 족이나 족인 등의 용어와 종·종인 등의 용어는 중국과 고려에서 뜻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즉, 족이나 족인 등의 용어는 중국에서는 동성친집단과 그 성원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였으나, 고려시대에는 이성친이나 이성친의 한 사람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하였다.
한편, 종이나 종인 등의 용어는 중국에서는 부계친족의 조직 내지 집단과 그 성원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고려에서는 이 용어가 조직이나 집단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동성자의 범위와 동성인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은 용어가 고려에서도 사용된다고 하여 고려도 중국과 같은 동성인의 집단이 존재한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조선

조선시대의 친족용어를 입양문서인 ≪계후등록 ≫과 ≪법외계후등록 ≫을 통하여 살펴보면, 먼저 족에 관한 용어로서 1600년대초(1618)까지는 남편과 처가 동등한 위치에 서서 남편의 부계친과 모계친이나 처의 부계친과 모계친 모두를 ‘족’이라는 용어로 지칭한 듯하다. 즉, 남편쪽이나 처쪽을 불문하고 친족관계에 있으면 동성친과 이성친을 구별함이 없이 모두 족으로 표현, 지칭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혈연관계에 있거나 인척관계에 있으면 구별없이 모두 족이라 칭하였다. 이렇게 보면 고려시대의 족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1627년의 ≪계후등록≫의 입양기록에는 족이라는 용어는 없고, 그 대신 양변족친()·양변문족()이라는 호칭이 등장한다. 이때의 족친·문족이라는 용어도 족과 마찬가지로 혈연과 인척을 구별함이 없이 모두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1700년대 이후에 나타나는 제족()의 ‘족’이나 문족()은 부계친만을 의미한다. 1700년대 이후부터 일반입양시에 입양상담대상자는 벌써 부계친만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입양협의대상자로서의 친족이나 문족이 부계친을 지칭하는 것은 명백하다.
한편, 17세기 후기에 나타나는 소족()·소원족()·원족()은 부계의 원친()을 의미하고 근족()은 부계의 근친을 나타낸다.
동성친과 이성친에 관한 용어를 살펴보면, 동성동본의 혈연관계자는 보통 성족()·동성친()·동종()이라 칭하고, 드물게는 친족이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용어는 대체로 1700년대에 출현하고 그 이전에는 적어도 입양문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모계친은 흔히 이성친이라 칭하며, 모족·모당()이라 칭하지 않고 드물게 외친이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외4촌, 외6촌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외4촌, 외6촌보다는 이성4촌, 이성6촌으로 불려지고 있다.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는 물론 현재까지도 문중이나 종중은 최소한 8촌 범위 이상의 부계혈연관계자의 조직체를 말하고, 문장은 그 문중의 대표자 내지 통솔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17세기에 사용된 문장의 개념은 조선 말기 이후에 사용된 개념과는 달랐다. 즉, 이 시기 혹은 이 시기 이전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사용된 문장의 개념은 가족의 장 내지 가족의 대표자로서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친족호칭

친밀의 감정과 존중의 의식이 강한 친족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하여 독특한 대인호칭, 즉 친족호칭을 사용한다. 친족호칭은 직접면접호칭과 관계지시호칭으로 구분하여 고찰할 수 있는데, 이 양자는 서로 크게 다르다. 일반적인 규칙으로는 특정 친족원에 대한 직접호칭은 몇 개 되지 않는 데 반하여 관계지시호칭은 각양각색이다.
또한, 특정의 사회적인 전후관계에는 직접호칭이 관계지시호칭으로 사용되는 데 반하여 관계지시호칭은 일반적으로 직접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친족호칭 자체와 친족조직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친족호칭이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산물인만큼 친족호칭과 사회조직의 하나인 친족조직과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친족호칭의 역사적 변천

≪고려오복제 ≫·≪대명률 ≫·≪주자가례≫·≪경국대전≫·≪사례편람≫·≪대전회통≫·≪형법대전≫·≪관습조사보고서≫ 등의 자료를 통하여 친족호칭의 역사적 변천을 개관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친족호칭의 대부분이 고대중국의 호칭이거나 중국에서 시대에 따라 변천한 것 또는 중국의 호칭을 고친 것이다.
둘째, 친족호칭이 시대에 따라 변천한 것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방계친보다 직계친의 호칭이 그리고 같은 방계친에 있어서도 소원한 친족보다는 친근한 자에 대한 친족호칭이 분화되어왔다.
셋째, ≪경국대전≫부터 한국고유의 호칭은 ‘촌()’을 사용하여 종형제를 4촌형제, 종숙을 5촌숙 등의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넷째, 방계친의 조부세대와 증조세대의 혈족남자에 대하여는 일률적으로 대부()라 칭하고 혈족여자에게는 대모()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즉, 4촌대부, 5촌대모 등이 그것이다.
다섯째, 종고()와 재종고()에 대해 현재 혈족남자의 배우자에만 사용되는 숙모의 호칭이 사용되어 5촌숙모, 7촌숙모로 불린 점이 주목된다.
여섯째, 부계친과 처족에 대한 호칭에서는 고유의 호칭이 사용되지 않고 남편의 부모 또는 남편의 형제의 처, 처의 부모 등으로 사용한 경향이 있다.
한편, 고려시대의 각종 묘지명()에 나타난 증조·조·부·모·처·남편〔〕의 호칭을 보면 고려시대에는 모나 남편이나 처에 관한 호칭보다는 증조·조·부에 관한 호칭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와 부()에 대하여 동일한 호칭인 ‘왕부()’를 사용한 것이 주목된다. 이러한 호칭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증조(), 조(), 부(), 모(), 남편(), 처(, ○, ○, ).

친족호칭의 특징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친족호칭을 분석하여 보기로 한다. 현재 한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친족호칭을 서울·경기·충남·강원 등 중부 한국의 중류 내지 상류계층의 자료를 통하여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되었다.
① 한국인의 친족호칭은 주로 공식성()이나 권위, 존경의 표시로서의 기능만을 하고 있다.
② 동일한 유교문화권인 일본만 하더라도 친족호칭(직접호칭)을 선택할 때 세대의 요인보다 연령이나 혼인여부의 신분요인이 우선하는 경우가 있는 데 반하여, 한국에서는 세대의 요인이 다른 요인보다 거의 절대적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③ 한국의 친족호칭에는 세대나 연령의 신분질서의 존중을 강조하는 면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자기보다 윗세대의 친족원을 그의 개인명으로 호칭할 수 없고, 언제나 친족호칭만으로 호칭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④ 친족호칭을 선택할 때 세대나 연령의 요인 이외에 계보상의 위좌(), 즉 종손이냐 지손()이냐가 또한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근친자에 대해서는 세대의 요인이 우세하고 원친자에 이를수록 연령의 요인이 중요시되고 있다.
⑤ 동일한 친족에 있어서도 여자보다는 남자를, 모계친보다는 부계친을, 부계친()보다는 부계친()을(자기가 여자인 경우), 처계친보다는 부계친()을(자기가 남자인 경우), 방계친보다는 직계친을, 미혼자보다는 기혼자를 더욱 존중하는 가치의식이 친족호칭에 나타나 있다.
⑥ 여러 종류의 1대 위의 남자 중에서도 아버지의 형제에 대해서만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로 호칭하고 있는데, 이는 부계의 가계계승을 중요시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⑦ 자기의 배우자 즉, 자기의 남편이나 처를 친족원에 인용할 때는 절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본 관계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 친족원이나 또는 제3의 친족원과의 관계호칭으로 인용된다.
⑧ 해당 친족원과의 개인적 특수관계는 친족호칭의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⑨ 지역적으로는 도시보다는 농촌에, 연령적으로는 연소한 자보다는 연로한 세대에, 계급적으로는 상민계급에 속하는 자보다는 이른바 양반계급에 속하는 사람은 더욱 모계친보다는 부계친을, 부계친(친정)보다는 부계친()을, 처계친보다는 부계친()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식은 앞으로 차츰 느슨해져 친족범위의 축소와 더불어 부계친() 편중으로부터 양계 친족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미 도시의 젊은 세대에 이러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관계지시호칭을 혈족남자에 대해서만 살펴보면 〔그림〕과 같다.
이 〔그림〕을 통해 한국인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공식적 관계지시호칭은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이 사정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친족의 친소()의 측정척도인 촌()을 적용하여 표시하면 〔표 1〕과 같다.
[표 1] 친소의 표시

친족

친족
2
4
6
8
3
5
7
9
2
4
6
8
3
5
7
9
2
4
6
8
즉, 조·숙·형(제)·질·손 등은 세대표시의 기능을 하며, 종·재종·삼종 등의 제한사()는 방계친 사이의 친소표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은 세대표현의 호칭과 친소표현의 제한사를 조합함으로써 그 해당 친족원이 자기의 어느 직계친에서 분기하였는가, 그리고 어떠한 세대적 지위를 차지하는 친족인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친족호칭에는 직접호칭과 간접호칭이 있는데 그 내용을 일람표로 만들어보면 〔표 2〕와 같다.
[표 2]  ① 를 통해서 맺어진 

친족

친족
의  ()
아버지 아버님 아비 아범 애비 집의 어른                 椿  椿 椿 椿  어른 어르신네 椿       
아버지 아버님
어머니 어머님 어멈 에미 어미 엄마   

     

        
어머니 어머님
 
할아버지 할아버님 할아범 할애비   님                
할아버지
 
할머니 할머님 할멈   님  

  



    님  
할머니
할아버지 할아버님 
()할아버지
할머니 할머님 
()할머니
할아버지 할아버님 
()할아버지
할머니 할머님 
()할머니
머슴아 애놈 우리집 놈 집의 놈 아들 사내아이 아드님 큰 아들 맏아들   놈             (            
애비 예 아애비 ○○애비  
계집아이 애 딸년 딸아이 우리집 계집애 우리집 아이 우리집 애 따님 계집애 큰딸 맏딸         
애 아에미 ○○에미  애어미

사위 

서방 
 
며느리 
아기 ○○에미 에미 ○○애
 손주  
 ○○애비 
 
 손주딸
 ○○에미



사위 손주사위
서방  
 
 손자며느리 손주며느리
애기 ○○에미 △△애 
 
(손주
 손주딸
애기
 
 :  언니       님                           
 : 오빠 오라버니 오라비 오라범 큰오빠 작은오빠 둘째오빠
 : 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님

친족

친족
 : 동생 아우            동생           
 : 동생 동생
 : ○○애비  
 : ○○애비   동생
 : 누나 누님      
 : 언니 (님)  
 : 누님 누나
 : 언니 
 : 누이 누이동생 동생       
 : 동생 누이동생 동생
 : 누이 동생 집( ○○에미
 :  ○○에미 동생 집()
의 
 :  아주머니   님     
 : 올케 오라버니
 : 아주머니 형수씨
 : 님 언니
의 
 :    
 : 올케 동생댁
 :   아주머니
 : ○○에미 △△
의 
 :  
 : 
 :  
 : 
의 
 :  
 : 
 :  서방
 : 서방
조카      
 조카(님)  ○○애비
 
조카딸 
명호칭 ○○에미 ()
 
조카며느리 
△△애 ○○에미 
 
 조카사위
  서방
 
 ○○에비 
 ○○에미
△△애 ○○에미  애기
애기
 
 큰아버지 큰아버님 큰아범 맏아버님  님  님     

 

   

  

큰아버지 
 
숙부 작은아버지 아저씨 작은아버님 아재비 작은아범 작은애비   님  님 

 

 

 

  
숙부님 아저씨  작은아버지
 
 큰어머니 큰어머님 맏어머님 큰어멈  님   님    님 
님 큰어머님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작은어머님  님 작은어멈 작은에미  님   
님 작은어머님 작은어머니
 
 님  아주머님   
님 아주머니 
고모부  님     
님 아저씨

친족

친족
 
 :    님 님                
 : 오빠 오라버니 오라버님
 : 형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님
 
 : 동생  아우  
 : 동생 동생
 :   ○○애비
 :   ○○애비
의 
 :  
 : 올케 오라버니
 : 아주머니 형수씨
 : 언니 
의 
 :   
 : 올케 동생댁
 : 
 : ○○에미 △△
 
 : 누님  누나  
 : 언니 
 : 누님
 : 언니  
 
 : 누이 동생 
 : 동생 동생
 :  ○○에미 집()
 :  ○○에미 집()
 
  
  조카 조카님 ○○애비
 
 ○○에미 집()
 
△△애 ○○에미()
  ○○애비
애기 ○○에미 △△애 
 ○○에미
 종조할아버지  님   님 님   큰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할아버지 큰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님 할아버지
 할머니 님  큰할머니 작은할머니  님 
할머님 님 큰할머니 작은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저씨        () ()   
아저씨
   아주머니
아주머니
 
(()
아주머니
 : 육촌형 재종형
 : 육촌오빠 육촌오라버님 재종오라버님
 : 형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니
 : 육촌동생 재종제 육촌아우
 : 육촌동생 재종남동생
 : 명호칭 자명 ○○애비
 : 명호칭 동생 자명 ○○애비
 : 육촌누이 재종형수
 : 육촌올케 재종올케 육촌오라버니댁
 : 아주머니 형수씨
 : 언니 올케 형님

친족

친족
 : 육촌누나 육촌누님 육촌자씨 재종자
 : 육촌동생 재종동생
 : 명호칭 집(실) ○○에미
 : 명호칭 집(실) ○○에미
의 
 : 육촌형수 재종형수
 : 육촌올케 재종올케 육촌오라버니댁
 : 아주머니 형수씨
 : 언니 올케 형님
의 
 :    
 : 올케 올케 동생댁
 : 
 : ○○에미 △△
 
  ○○애비 조카(님)
 
△△애 ○에미 
 
 ○○에미 집()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할머니
()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
할머니
재종숙(부) 재당숙(부) 칠촌 칠촌숙 칠촌아저씨
아저씨
재종숙모 재당숙모 칠촌숙모 아주머니
아주머니
재종고(모) 재당고모
아주머니 
 : 팔촌형 삼촌형
 : 팔촌오라버니 팔촌오빠 삼종오라버니
 : 형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니
 : 팔촌동생 삼종제 팔촌아우
 : 팔촌동생 삼종동생
 :  ○○애비 
 :  ○○에미 
 : 팔촌누나 팔촌누님 팔촌자 삼종자 삼종누님
 : 팔촌언니 팔촌형님
 : 누님
 : 언니 형님
 : 팔촌누이 팔촌누이동생 팔촌자 삼종자
 : 팔촌동생 삼종동생
 : 명호칭 ○○에미 집(실)
 : 명호칭 ○○에미 집(실)
의 
 : 팔촌형수 삼종형수
 : 팔촌올케 삼종올케 팔촌오라버니댁 삼종오라버니댁
 : 아주머니
 : 언니 형님
의 
 : 팔촌제수 팔촌계수 삼종계수
 : 팔촌올케 삼종올케 팔촌동생댁 삼종동생댁
 : 계숙씨
 : ○○에미 △△댁
 
외손(자) 외손주
 명호칭 ○○애비
외손녀 외손주딸
명호칭 ○○에미
외손부 외손자며느리
○○에미 애기 △△애
 
 : 
 : 
  ○○애비
 : 
 : 
 ○○에미 집()
 : 
 : 
 ○○에미 집()
 
 :   
 : 오빠 오라버님 오빠
 : 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님

친족

친족
 :  동생  동생
 : 동생 동생
 :   ○○애비
 :  동생  ○○애비
의 
 :  
 : 올케 올케
 : 아주머니 
 : 언니 형님
의 
 :  
 : 올케 올케
 : 
 : ○○에미 △△댁
 : 누나 누님 
 : 언니  언니
 : 누님
 : 언니 형님
 : 누이동생 누이  누이
 : 동생 동생 종생
 :  ○○에미 집()
 :  ○○에미 집()
             님      집사람 안댁 마누라 계집 아내 안사람 색시 여편네
당신 임자 자기 여보 애기엄마 마누라


② 를 통해서 맺어진 

친족

친족
의          
  
 할아버지 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님  할머니 할머님   
할머니 할머니
 
 () 아저씨   ((님   
 아저씨 
  
 님         
아주머니 외아주머니 
 
 님   
 님 아주머니
  
 님  (  
(님) 아저씨
  
 : (님) (님)  (님)   ( (
 : 오빠 오라버니
 : 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님
  
 :    동생
 : 동생
 :   ○○애비
 :   ○○애비
  
 : 누나 누이 
 : 님 언니
 : 누님
 : 언니 
  
 : 누이동생 
 : 동생
 :  ○○에미 집()
 :  ○○에미 집()
  
 : (님)   
 : 오빠 오라버니
 : 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님
  
 :  동생
 : 동생
 
 :  ○○애비 
 :  ○○애비 
  
 : 누나 누님 
 :  언니
 : 누님
 : 언니 
  
 :  누이동생
 : 동생
 :  집() ○○에미
 :  ○○에미 집()
 :  
 : 올케
 :  아주머니
 : 언니 
의 
 :  
 : 올케
 :  아주머니
 : ○○에미 △△
  
 
 ○○에미 조카(님)
 
 ○○에미
(님) (할아버지 할아버님
할아버지 할아버지

친족

친족
(님)  할머니 할머님
할머니 외할머니
  
(()
아저씨
(님)  (님) 
아주머니
 :  
 : 오빠 오라버니
 : 님 언니
 : 오빠 오라버님
 :  동생
 : 동생
 :   ○○애비
 :  동생  ○○애비
 :  누나 누님
 : 언니 
 : 누님
 : 언니 
 : 누이동생 
 : 동생
 :  ○○에미 집()
 :  ○○에미 집()
③ 를 통해서 맺어진 친족

친족

친족

 
      
의 
   (   님     
어른 어른 어른 
의 
(님)  (님     
님 
의 
 
의 
 
의 
 
 
의 
 
  
의 의 
 아주머니
의 의 
 아주머니
의 
의 
의 
便

의 
便

서방 
의 
 조카
의 
 조카딸
 집()
의 
(님) 
의 
(님)  
 
의 
(님) 
의 
(님) 
의 
(
④ 를 통해서 맺어진 

친족

친족
의       
사내 便   영감 사랑양반      

바깥양반  애기아버지 아이아버지       나으리 주인어른  그이
여보 임자 당신 애기아버지 영감
의 
 아버지 어른 님 바깥시어른 아버님
아버님
의 
 어머니 어머님 님 님 안시어른
어머님 어머니
의 
할아버님
의 
할머님
의 
할아버님
의 
할머님
의 
할아버님
의 
할머님
   놈     (   아들 큰아들 맏아들 사내아이 머슴아 놈 집의 놈 아이 애 자식놈 막둥이 아드님 애놈 우리집 놈
  얘 ○○애비 아애비 애비
     큰딸 맏딸   계집아이 딸 딸아이 딸년 계집애 우리집 아이 우리집 애 따님 우리집 계집애
 얘 아 에미 ○○에미



사위

서방
 
 며느리
아기 ○○에미 △△애
 손주 
 ○○애비 
 
 손주딸
 ○○에미



사위 손주사위
서방 
 
 며느리 손주며느리
애기 ○○에미  △△애
 
 며느리
애기
 
의 
 아주버니
아주버님
의 
동생 서방님 도련님
도련님 서방님
의 
누이
형님
의 
누이 아가씨 작은아씨
아가씨 아씨 작은아씨 작은아가씨 ○○어머니
의 의 
큰동서
형님
의 의 
작은동서
동서 △△ ○○에미
의 의 
누이남편 
○○아버지
의 의 
누이남편 
의 
조카 
조카(님)  ○○애비 
의 
조카딸 
 조카(님) ○○에미 집()
의 
조카며느리 
△△애 ○○에미 
의 


조카사위
의 
 ○○애비
의 
 ○○에미

친족

친족
의 
 ○○애비
의 
 ○○에미
의 
애기 △△애 ○○에미 
의 
의 
의 
애기
의 
큰아버님 
의 
작은아버님 
의 
큰어머님 
의 
작은어머님 
의 
님 아주머님
의 
님 아저씨
의 
 
아주버님
의 
동생 동생
도련님 서방님
의 의 
동서 동서
의 의 
동서 동서
동서 △△(집) ○○에비
의 
누이 누이
언니 
의 
누이 누이
작은아씨 작은아가씨 ○○어머니 ()
의 
 조카(님) ○○애비
의 
 ○○에미 집()
의 
△△애 ○○에미 
의 
○○애비
의 
애기 ○○에미 △△애 
의 
 ○○에미
의 
할아버지 작은할아버님
의 
할머니 작은할머니
의 
할머니
의 
할아버지
의 
  
아저씨 
의 
 
님 아주머니
의 
 
아주머니 
의 
 
아주버님
의 
동생 동생
도련님 
의 
누이 누이
언니 
의 
누이 누이
작은아씨 ○○어머니 집()
의 의 
동서 동서

친족

친족
의 의 
동서 동서
동서 ○○에미 △△(집, )
의 
 ○○애비 조카(님)
의 
△△애 
의 
 ○○에미
의 
할아버님 할아버지
의 
할머님 할머니
의 
할머니 할머니
의 
할아버지
의 
할머니
의 
할머니
의 
 
아저씨
의 
아주머니
의 
님 아주머니
의 
 
아주버님
의 
동생 동생
도련님 서방님
의 
누이 누이
의 
누이 누이
작은아씨 ○○어머니 
의 의 
동서 동서
의 의 
동서 동서
동서 ○○에미 △△ △△집()
 
(손주
 ○○애비 
 손주딸
 ○○에미
 손자며느리
애기  ○○에미
의 
 조카님 ○○애비
의 
 ○○에미 △△애
의 
○○에미
의 
아주버님
의 
동생
도련님 서방님
의 의 
동서
의 의 
동서
동서 ○○에미 △△
의 
누이
의 
누이
작은아씨 ○○어머니  

친족제도

혼인·양자·상속·족보·항렬과 문중의 형성 등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의 친족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친족관계와 동족(씨족)조직을 살펴볼 수도 있다.

신라

신라의 친족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적지 않게 행하여졌고, 그 주제나 규모는 각양각색이라 하더라도 한결같이 부계혈연집단의 존재를 주장해왔다는 점과 그러한 견해가 근거 없음을 이미 친족용어를 살피면서 언급하였다. 여기서는 왕실의 혼인에 대해서 살펴보고, 다음에 왕위계승에서 본 친손과 외손, 항렬, 양자 등을 알아보겠다.
신라시대의 친족연구는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존하고 일부 금석문과 외국(중국)의 사료를 이용하게 된다.
이처럼 자료가 빈곤하고 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는 여러 시기로 세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되어서 자료를 신라 초기부터 후기로 나열해 놓고 거시적·통시적으로 전시대를 전망하여 그 특징을 찾는 입장을 취하였다는 점을 부언해 둔다.
신라왕실의 혼인제를 알아보기 위해 가능한 한 왕비와 왕모()의 성(), 왕과 왕비의 친족관계, 왕부()와 왕모의 친족관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향을 알 수 있다.
첫째, 신라 전사회를 통해 왕실의 혼인(왕과 왕부의 혼인)을 보건대 이성간의 혼인보다는 동성간의 혼인이 더 많다. 즉, 이성혼은 22사례인데 동성혼은 38사례나 된다. 이렇게 볼 때 신라왕실은 동성혼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근친혼과 원친혼의 관점에서 보면, 편의상 6촌까지의 혼인을 근친혼으로 간주한다면 원친간의 혼인이 22사례, 근친간의 혼인이 16사례였다. 원친혼이 근친혼보다 많지만 신라왕실에서는 근친혼이 성행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질녀와의 혼인이 6사례, 고모와의 혼인이 1사례로서, 매우 가까운 근친간의 혼인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신라 왕실혼인의 특징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즉, 상대·중대·하대 어느 시기에도 근친혼과 원친혼 및 이성혼이 존재하고 있다.
넷째,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사료가 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많은 시기로 구분하여 고찰하는 것보다는 인접시대(고려)와의 맥락을 더 중요시하여 거시적·통시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관점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는 동성·근친혼에서 시작하여 후대로 내려올수록 신라·고려의 동성혼은 점차로 사라지고, 그 대신 동성불혼제가 굳어져갔다.
다섯째, 신라왕실 내에서 이성간의 혼인도 박씨·석씨·김씨 3성간의 혼인만이 존재하였고, 그 밖의 성과의 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왕비·왕모의 성을 조사하면 김씨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박씨, 석씨의 순이었다.
아들과 딸(사위) 사이나 친손과 외손 사이에 사회적 차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은 친족구조의 성격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 이러한 차별의 유무는 신라의 경우 왕위계승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신라의 왕위는 거시적으로 말하면 시조 혁거세()의 아들과 사위(친손의 사위와 외손의 사위), 친손과 외손(외손의 외손, 외손의 외손의 외손 등 포함)이 계승한 것이며, 미시적으로 말하면 아들과 친손에 못지 않게 사위·딸·외손도 왕위를 계승하였다.
다시 말하면, 아들과 사위를 차별하지 않고 친손과 외손을 거의 차별하지 않았으므로 아들과 친손만의 집단인 부계혈연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신라에는 항렬자() 사용이 제도화되지 않았으며, 입양에 의한 성원의 충원도 행하여지지 않았다.
항렬자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소목()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없는 경우 소목지서(: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에 적합한 부계의 근친남자를 입양시켜 그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지 않고 사위·손자·동생 또는 외손으로 왕위를 계승시켰던 것이다.
또한, 시조묘()와 신궁()의 제사나 혼인거주규칙의 측면에서도 신라시대는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

고려의 혼인을 ≪고려사≫·≪고려사절요≫, 기타 관련자료를 통하여 혼인의 거주규칙, 혼인의 규제, 혼인연령, 혼인의 형태, 부녀의 재혼 등 다섯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보면 다음과 같다.
혼인의 거주규칙에 대하여 살펴보면, 고려 후기까지도 서류부가(婿)의 전통이 강하여 24세부터 30세까지도 딸이 남편과 친정에서 생활한 사례가 많았으며, 최고 37세의 딸이 그때까지 친정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또 실제 12세기까지도 동성의 5, 6촌에 해당하는 근친간에 혼인이 행하여졌으며, 고려 말까지 동성간의 혼인은 상당히 행하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동성혼은 1200년대 초에서 고려 말기로 내려올수록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자의 초혼연령은 20세 미만이 제일 많고 여자는 18세 이하가 제일 많았다. 부부의 초혼연령의 차이를 보면 계급에 관계없이 남편연상형이 지배적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 뿐만 아니라 일반서민층에서도 다처()간의 지위가 동등한 일부다처제가 존재하였다. 첩이 있는 경우 처첩간의 지위 차이는 그다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설령 차별이 있더라도 그것은 처·첩의 지위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첩이 되기 전의 신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고려시대에는 조선 후기와는 달리 왕실이나 지배층 양반 또는 양인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었다.
남편을 사별한 과부는 그 시가에 머무르지 않고 친정부모가 사망한 뒤라도 재가할 때까지 오라버니댁에서 머무를 수가 있었으며, 전남편의 자식을 데리고도 재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재가한 남편집에서 그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남편의 자식을 공부시킬 수 있었으며, 죽은 남편의 재산을 가지고 재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시대에 비교적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제 고려시대의 족보와 그 수록자손의 범위를 알아본다. 고려에 족보가 존재하였는지의 여부는 현재 당시의 족보가 보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12∼14세기의 묘지명에 족보를 지칭하는 가보()·가첩()·세보()·보() 등의 명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 고려시대 후기에 족보가 존재하였음은 명백하다.
조선 초기의 족보나 묘지명 등의 각종 기록으로 종합해보면 고려시대의 족보는 가족 내지 이보다 약간 넓은 범위의 집단의 조상()과 자손을 수록한 정도의 족보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각종 묘지명의 기록과 ≪고려사≫ 등으로 살펴보면 고려시대 족보에는 친손과 외손이 모두 기재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족형태는 서류부가의 형태를 취하였고, 재산상속에서도 아들·딸의 차별이 없었으며, 그 밖의 다른 제도면에서 아들과 딸〔婿〕, 또는 부계의 조상(혹은 친손)과 모계의 조상(혹은 외손)의 차별이 없다면 족보에도 차별없이 모두 기재될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 전기의 족보를 살펴보면 아들과 딸, 친손과 외손의 차별이 거의 없이 양자가 모두 족보에 기재되어 있는데, 고려가 조선 전기 이상으로 친손과 외손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족보에 친손과 외손이 모두 기재되었을 것이라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의 거의 모든 묘지명에 친손과 외손을 모두 기재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음으로 고려시대의 양자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제적인 면과 법제도적인 면을 구별하여 살펴보아야 혼란이 없을 것 같다. 현재까지 학계에서는 고려시대에 이성양자가 널리 행하여졌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문맥으로 보아서 친생남자()가 없으면 딸이 있더라도 외손을 포함하는 이성양자를 하여 가계계승을 시킨다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족보를 살펴보면,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장자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은 족보는 하나도 없는데, 그것은 당시 양자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고려시대의 과거의 기록인 ≪국조방목≫을 살펴보거나 각종 묘지명 가운데 아들이 없는 사례를 보아도 한결같이 자식이 없어도 양자를 하지 않았던 점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열전과 묘지명 중에서 양자한 사례를 찾아보면 14사례의 양자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고려시대 양자의 성격을 살펴보면, 고려의 양자는 조선 후기의 제사·가계계승을 위한 동성친 입양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다시 말해 조선 후기에는 딸이 있더라도 아들이 없으면 동성의 자()를 입양시키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고려시대는 아들이 없더라도 양자를 하지 않으며, 양자를 하는 경우도 주로 보은()과 아부, 출세와 존경 때문이었으며, 이리하여 양부와 양자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자기의 아들이 있고 없고에 구애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상에서 고려시대는 극히 일부분의 사람만 양자와 양녀를 취하였는데, 그것도 가계계승과는 관계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실제와는 달리 법제상·규정상의 양자는 어떠하였는가를 알아보자. 우선 양자라는 용어보다는 당나라에서 유래된 수양()이나 시양()이라는 용어가 더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법제적으로는 아들이 없으면 형제의 아들, 동종의 아들, 세 살 이전에 버려진 아이 등을 양자로 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상의 양자는 그 명칭과 원칙만이 도입되어 있었을 뿐 실제에 있어서는 행하여지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친족상의 종자()와 지자()의 차별이나 구실이 없는 고려에 부계혈연집단이 조직되어 있고, 또 종·지의 차별이 명확한 당나라의 친족용어가 사용되었다고 하여 바로 그러한 조직이 고려에도 존재하고, 또 그러한 양자가 고려에서도 행하여졌다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제·종형제·재종형제 등 같은 세대인 사람의 이름은 2자 중 1자는 같은 자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항렬자이다.
이러한 항렬자의 사용은 종족내의 세대를 표시함으로써 종족인 사이에 동배 또는 존속·비속을 뚜렷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며, 종족내의 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보다 넓은 범위의 부계혈연친이 지속적으로 그 공통의 항렬자를 사용하였다면 부계친의 집단이나 조직이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문화유씨() 족보, 이자연()과 조인규()의 자손, 해주최씨()와 파평윤씨() 가문 등을 조사하여 항렬사용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경향을 알 수 있다.
첫째, 고려 전기·후기를 통해 형제간에도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는 사례가 있고, 또 형제 가운데 몇 사람만 항렬을 사용하는 예가 있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형제간에 항렬자를 사용하는 예가 더 많다.
둘째, 고려 전기에서 후기로 내려올수록 항렬사용의 범위가 확대되는 경향은 조금도 없다. 전기·후기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항렬을 사용하는 범위는 형제간이다. 형제간에도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는 사례가 있지만, 고려시대는 가족적 규모의 항렬자 사용의 형성시기라 볼 수 있다.
셋째, 4촌과 6촌의 범위에 해당되는 친족간에 항렬을 사용한 예가 매우 드물게 나타났지만, 그것이 각각 1회에 그쳤을 뿐 지속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도화된 항렬사용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친족용어나 이제까지 살펴본 혼인·족보·양자·항렬사용의 측면을 통하여 고려시대에는 조선 후기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부계혈연집단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족보·양자·항렬 등의 실제적인 면에서 부계혈연집단의 존재는 모두 부정되었다. 또한 종자·지자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종가우대사상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규정상·법제상의 것일 뿐임도 명확하다.
내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기재하는 묘지명이나 가산을 아들·딸 구별없이 균분 상속하는 고려시대에 외손을 따돌려놓고 친손만으로 집단을 구성할 리 만무하다.
부계혈연의 성원을 충원하는 동성자의 양자는 물론이거니와 양자 자체가 거의 행하여지지 않았으며, 혈연집단내에서의 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는 항렬도 가족의 범위를 넘지 못하였으니 이보다 더 넓은 범위의 부계혈연집단이 조직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조선

동성간의 혼인유무로 볼 때 고려시대는 근친혼 내지 동성혼이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동성불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동성불혼은 조선시대의 제도적 규정이나 유학자들의 견해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실제로는 동성동본불혼만 지켜졌을 뿐 동성이본간의 혼인은 보통 행하여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606년과 1630년의 산음장적()의 분석에 의하면, 적어도 1600년대 초에는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다. 첫째, 동족인 동성동본의 혼인도 적은 숫자이지만 실제 존재하고 있으며, 둘째, 동성이본혼은 동성동본혼보다는 많다 하더라도 이 비율도 실제는 그다지 많지 않다. 셋째, 동성동본을 포함하는 동성혼은 실제 약 6%에 불과하여 이성혼이 약 94%이다.
넷째, 동성동본혼인자는 모두 상민이고 다섯째, 동성이본혼인자는 주로 상민이지만 양반도 포함되어 있다. 여섯째, 동성이본혼인자는 희성()은 적고 대부분 김씨·이씨 등의 대성이다.
한편, 족보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 있다. 즉, 족보의 시간()이 곧 씨족의 성립 내지 발달이 아니라는 점, 족보는 초기에는 친손과 외손을 동등시하는 자손보()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자손보의 성격을 가진 족보가 동족사상의 형성·강화로 말미암아 외손범위의 축소, 자녀의 연령순위 기재에서 선남후녀()의 순위로 전환, 양자에 있어서의 종가사상의 대두, 항렬자 사용범위의 확대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성격들의 변화의 시대는 거의 일치하며 상호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 전기의 족보와 후기의 족보 사이에는 그 성격상 현저한 차이가 발견되며, 따라서 족보의 출현시기가 부계혈연집단으로서의 동족조직의 형성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8촌의 범위를 씨족의 최소 단위라 한다면 통제성과 조직성을 가진 동족의 출현은 16, 17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시기에 외손의 범위, 남녀의 서열, 양자의 신분, 항렬의 출현과 확대, 재산과 제사의 상속, 외손봉사 등 여러 측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는데, 변화의 방향이 전반적으로 외족과 처족관계가 약화되고 남계집단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직적인 동족집단의 형성이 16, 17세기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동족집단(씨족)을 그 내부의 결합강도와 범위와 넓이의 차이에 따라서 보면 성과 본을 같이하는 최대의 집단(동성동본집단)과 그 밑에 파조()를 정점으로 그 자손으로 이루어지는 파집단()이 존재한다.
족보를 통하여 조선시대의 파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족보에 있어서 파는 17세기에 출현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18세기 이후에 출현하였다.
둘째, 파의 명칭, 파명() 글자의 크기나 위치, 그리고 파조의 변동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파가 출현한 초기의 파는 단지 족보에서 자기의 직계조상을 쉽게 찾아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이러한 기능보다는 파조를 중심으로 자기 파의 결합과 다른 파와의 구별을 뚜렷이 하기 위한 기능으로 바뀌어 갔다.
셋째, 조선 후기의 파를 그 집단성과 조직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파도 형성하지 못한 집단, 족보에 파만 구성한 집단, 파도 구성하고 파보()도 발간한 집단, 파와 파보 이외에 파 단위의 항렬도 제정하여 사용한 집단의 4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집단성의 차이는 거의 대부분 자손의 수, 경제력, 씨족의식의 강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넷째, 파조에 대한 의식의 변화시기와 족보에서 자녀의 출생순위로부터 선남후녀의 순으로 기재방식이 변화한 시기, 입양에 있어 종가전대()로의 변화의 시기, 그리고 대동항렬자()의 출현시기 등은 거의 상응하고 있다. 이제 조선시대의 양자제도를 통하여 친족의 성격과 그 변화를 살펴본다.
17세기 중엽까지는 양자 결정시에 남편 쪽의 친족과 동일하게 처 쪽의 친족도 그 결정에 참여했으나, 그 이후 점차로 처 쪽의 참여는 제거되고 남편 쪽 친족의 결정만으로 양자가 행하여졌다.
이는 17세기가 양계 존중에서 부계() 한쪽만을 존중하는 것으로 기울어져가는, 말하자면 친족 성격의 전환시기임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부계친의 존중은 부계친의 유대범위의 확대와 조직화, 그리고 아들에 의한 가계계승사상을 낳게 하고 이것을 강화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적인 양자비율의 증가, 근친에서 원친으로 입양 범위의 확대, 입양이 가족의 관심에서 가족대표자의 관심으로, 그리고 일정범위의 부계친의 관심사로 확대된 점 등과 그 궤를 같이한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의 부계혈연집단인 문중의 형과 조직, 문중의 기능에 대하여 살펴보면, 우선 부계혈연집단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문중 이외에도 종중·종족·종계()·족중()·문당()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이 중 문중과 종중이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각종 문집과 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문중의 초기 형태는 16세기에 출현하고 있으며, 이것이 좀더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로 여겨진다.
15세기 이전, 즉 1400년대와 그 이전에 이러한 문중조직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세종조 신랑이 처가에서 장성하기도 하고 혹은 그 자녀(외손)가 외가에서 길러진다는 서류부가의 전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 역시 세종때에 아들이 없더라도 여손()이 있으면 타인의 아들을 양자로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 나라는 소종()도 대종()도 없었다는 기록 등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문중형태는 6∼8호 정도의 근친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문중의 규모는 점차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입양자의 혈연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가고, 항렬자의 사용범위도 넓어지는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문중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문중의 운영을 담당하는 문장이나 유사()와 같은 기구가 나타나며, 씨족의 공유재산인 문중재산도 형성된다.
문중의 중요 재산으로는 논밭과 그것의 소출인 곡물 및 노비·산림 등이 있는데, 논밭은 보통 묘전()·관둔전()·묘답()·제전()·위전() 등으로 호칭된다. 문중재산의 사용처는 크게 제사·자녀교육·길흉사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지는데, 제사의 용도로는 기제()·묘제()의 제수()·제기() 구입, 묘산·선영의 유지, 제각() 수리에 드는 비용이 포함되고, 길흉사의 용도에는 문중성원의 초상·혼인에 드는 비용이 포함된다.
이러한 문중재산의 관리는 주로 문중의 유사가 관장하고 있다. 즉, 위토의 관리, 위토의 소출의 관리, 의전(:문중성원의 자제의 교육을 위하여 만든 문중재산의 일종)과 의곡()의 관리, 제사를 위하여 갹출한 곡물의 보관·관리, 문중재산의 증식, 묘지의 관리, 제수의 관리, 제사 불참자로부터의 벌미()의 징수 등을 문중에서 선출된 유사가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유사가 단독으로 문중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종손 또는 문중의 연장자의 지시·감독하에서 그 구실을 수행하고 있다.
문중의 기능은 제사, 유교적 혈연질서의 유지, 길흉사의 협조, 문중자제의 교육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 중 조상의 제사는 조선시대의 문중이 담당한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서 숭조사상()의 고취가 그 중심이 되고 있다.
문중의 두번째 큰 기능은 유교적 혈연질서의 수립과 유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는 항렬과 연령의 존중, 종손과 문장에 대한 존경, 효제(), 예의, 동종간의 화목, 덕업상권(), 과실상규() 등이 포함된다.
문중의 세번째 기능은 길흉사 때의 상호협조로서 흉사란 구체적으로 질병·수재·화재·장례 등을 가리키며, 길사란 생원·진사·대과()에 급제하거나 혼인 등을 의미한다.

현대의 친족관계

일반적으로 도시화·산업화하면 친족기능이 약화되고 조직이 소멸하리라 기대되는데 우리 나라의 현상은 어떠한가를 살펴본다. 또한, 도시와 농촌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1974년에 경상북도의 1개 마을과 전라남도의 2개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통하여 농촌사회에 있어서의 친족의 기능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조사대상가족은 가구주의 부계친과 모계친이 부락내의 거주여부에 따라 부락내에 부계친만 거주하는 집단(ㄱ집단), 부락내에 부계친과 모계친이 공주()하는 집단(ㄴ집단), 부락내에 모계친 또는 처계친만 있는 집단(ㄷ집단), 마을내에 부계친도 모계친도 없는 집단(ㄹ집단) 등으로 구분하여 분석되었다. 적어도 3개 마을의 조사에 의하면 농촌인은 그 대다수가 ㄱ집단이고 ㄴ·ㄷ·ㄹ집단에 속하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체로 ㄴ의 경우나 ㄷ의 경우는 생계유지를 위하여 처가를 의지하여 이주해왔거나 또는 남편의 사망 후 역시 생활방편상 친정마을에 와서 생활하는 데에서 생겨났지만, 적게는 동일 마을사람끼리 혼인하는 데에서도 발생하였다.
ㄹ의 경우는 대부분 머슴살이를 하다가 그곳에 정착하였거나 일단 도시로 이주하였다가 농토가 싼 마을을 찾아 이사왔거나 다른 직업상의 이유로 이사온 사람들의 예이다.
ㄱ집단의 경우에는 모계친·처계친에 대한 관계는 있을 수 없고 사교·생산·가사협조·의례적 관계 등 모든 기능을 부계친이 담당한다. ㄴ의 경우에는 부계친 못지 않게 모계친이나 처계친에 대하여도 친족관계가 강화되고 현실생활에 대한 기능도 활발하다.
ㄷ의 경우는 사교·생산·가사협조·의례 등 모든 기능을 모계친 또는 처계친이 담당하고 있다. ㄹ의 경우는 마을 외에 거주하는 친족과 의례적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고, 사교·생산·가사협조의 기능은 친족원이 아닌 마을주민과의 관계에서 충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ㄱ의 경우가 한국 농촌마을의 일반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친족의 현실생활에 대한 기능, 즉 일상생활의 상호협조 내지 상호부조는 대개의 경우 부계친이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의 관점에서 친족의 기능을 보면 윗세대에 대하여는 의례적 관계, 동세대에 대하여는 사교의 기능이 활발하여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1974년에 서울시의 1개 아파트 101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도시 중류아파트 가족의 친족관계는 다음과 같다.
① 원친과는 친족의식이 약화되어가고 있지만 근친과는 친족의 중요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② 먼 친족은 원거리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가까운 친족은 근거리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③ 시가 쪽 친족보다 친정 쪽 친족이, 그리고 혈연이 먼 친족보다 가까운 친족간에 접촉이 활발하다.
④ 친족관계를 크게 사교·가사협조·의례적 관계로 나눌 경우, 어느 친족이든 사교의 기능이 제일 강하고, 그 다음이 의례적 기능(제사참여 제외)이고, 제일 낮은 것이 가사협조의 기능이다.
⑤ 사교나 가사협조 등의 일상생활과 관련되는 면에서는 시가 쪽 친족보다는 친정 쪽 친족과의 친족관계가 강하나, 집안의 유지와 관련이 있는 제사에 있어서는 시가 쪽 친족과의 관계가 강하다.
⑥ 가사협조 중 경제적 협력관계에 있어 가장 기능적인 범위의 친족은 시가에서는 4촌 정도까지이고, 친정 쪽에서는 형제자매까지이다. 그러나 사교나 의례적 관계에 있어서는 이보다 훨씬 그 범위가 확대된다.
⑦ 친족관계는 시가냐 친정이냐에 따라서 강약의 차가 생기지만, 다시 이들이 친가·외가와 세대차이, 혈연의 원근, 남녀의 구별에 따라서 차이가 생긴다.
⑧ 대체로 거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친족간의 사교나 가사협조 등의 일상생활의 유대가 강화되지만 의례적 관계에 있어서는 지리적 거리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는다.
⑨ 가계존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양자문제에 있어서만 시가지향성이 강하고, 경제문제 등 그 밖의 문제에 있어서는 친정지향성이 강하다.
⑩ 이웃관계·친구관계·친족관계 중 제일 월등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관계는 친족관계이며, 이러한 친족의 중요성은 좀처럼 약화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동족집단의 조직체인 종친회와 농촌사회의 동족조직인 문중(종중)의 성격을 비교하면 [표 3]과 같다.
[표 3] 도시와 농촌의 동족조직 비교

친족

친족
구 분도 시농 촌
명 칭
종친회·화수회 등
문중(종중)
거 주 지
전국(주로 도시)
지역사회
구 성 원
원친자
근친자
조 직
인위적
자연적
중 심
사회·경제적실력자
종손
주요기능
친목·제사·족보편찬· 정치
제사
규약·정관
있다.
불문율
가입·탈퇴
자유롭다.
운명적이다.
참여범위
관심있는 일부성원
전성언
조 직 수
일부 동족
집단동족 대부분

형제간의 서열, 
옛날에는 형제간의 서열을 백중숙계()로 나누었다. 숙()은 셋째, 계()는 막내를 가리키는 말로 썼다. 남자의 나이가 스물이 되면 자()를 받는데, 백중숙계의 서열로 자()를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만 보고도 집안에서의 서열을 쉽게 알 수 있다.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는 첫째와 셋째이다. 공자의 자는 중니()이니, 그가 둘째 아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 아들이었던 송강 정철()의 자는 계함()이다. 뒤로 오면서 구분이 번거로워져서 그냥 큰아버지는 백부(), 작은아버지는 숙부()라고 부르게 되었다.
옛날에는 형제간의 서열을 백중숙계(伯仲叔季)로 나누었다. 남자들의 자(字)만 보고도 집안에서의 서열을 알 수 있었다.

친족의 범위

우리가 친족을 하나의 사회적인 집단으로 문제 삼을 때, 그 집단에는 어느 범위까지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도 아니고, 별로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에 따라서 관습이 다르고 같은 사회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또는 친족집단에 따라 그 범위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서는 친족의 범위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상속법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친족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친족의 범위를 알아보기로 하자.

현재의 친족법으로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법제상 친족 범위는 부계친족제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즉 친족의 범위를 ① 8촌 이내의 부계혈족, ② 4촌 이내의 모계혈족, ③ 남편의 8촌 이내의 부계혈족, ④ 남편의 4촌 이내의 모계혈족, ⑤ 처의 부모, 그리고 ⑥ 배우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 간의 이런 차이는 이제 적어도 법제상으로는 시정 되었다. 즉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민법 제777조에 규정된 범위는 부계와 모계를 따지지 않고, ① 8촌 이내의 혈족, ② 4촌 이내의 인척, 그리고 ③ 배우자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수정된 내용은 단지 성에 따른 차이는 없앴지만, 실제적인 친족의 범위는 종래의 ‘4촌 이내의 모계혈족’이 ‘8촌 이내의 모계혈족’으로 확대되는 등 넓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법제상의 친족범위는 사실상의 친족의 범위, 즉 일상생활의 한 사회집단으로서의 친족범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인류학자들은 법제상의 규정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예컨대 부계의 8촌 이내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거의 접촉이 없다면 사실적인 친족원은 아닐 것이며, 비록 촌수가 멀더라도 가까이 살면서 친족집단의 제반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그 집단의 성원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기혼남자들은 장인·장모뿐만 아니라 처가의 성원들과 근친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친족과 같은 어떤 사회집단의 범위를 말할 때, 마치 그 집단의 성원권이 분명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친족의 경우 개인 또는 그의 가족은 여러 범위의 다양한 친족집단에 소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족의 범위를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군대의 조직에 비유해도 좋겠다. 한 육군사병이 소속하고 있는 집단을 잠깐 생각해 보자. 그는 순서대로 분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사단, 군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군의 한 구성원이다. 그와는 다른 분대에 소속한 사람이 같은 소대원일 수도 있고, 다른 중대에 소속한 사람과는 같은 대대의 대원일 수도 있다.

부계친족제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친족조직도 위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몇 대 조상의 부계자손들로 구성된 집단을 말하는 것인가에 따라 개인은 수많은 친족집단에 성원권을 갖게 된다. 우선 같은 부모의 자녀들은 혼인한 후에 분가해서 흩어져 살더라도 부모를 중심으로 단합하고 긴밀한 유대를 가지면서 하나의 친족집단을 형성한다.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가장 뚜렷한 범위의 친족단위는 아마도 우리의 전통적인 조상제사의 관습과 관련된 ‘당내()’집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같은 고조의 부계자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제사 관습에 의하면 사대()조상인 고조까지만 기일에 제사를 올린다. 사대조를 넘으면 기제()를 더 이상 지내지 않고 다른 윗대 조상들과 함께 일 년 중 수확이 끝난 가을 어느 일정한 날에 자손들이 해당 조상의 묘지에 모여서 묘제()를 올린다. 이와 같이 사대봉사의 관습으로 인해서 고조의 자손들인 8촌 이내의 자손들은 기제를 중심으로 하여 잘 단합된 하나의 사회집단인 당내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이 당내의 범위를 넘으면 친족집단의 응집력은 비교적 약화되지만 묘제를 같이 지내는 부계자손들로 더 넓은 범위의 친족집단들이 존재한다. 대체로 같은 지방에 살고 있는 자손들로 과거에 명망이 있었던 어떤 유명한 조상의 자손들로 ‘문중()’집단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것은 당내의 범위를 넘어 조직된 집단으로 대개 문중에는 결합의 중심인물인 특정 조상의 제사를 위해 공동재산을 가진 경우가 많다. 가문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문중의 범위를 넘어서 종중()이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가문에서는 문중 대신에 종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종중의 최정상에 있는 조상이 유명한 인물이었거나 또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정착시조인 경우에는 그의 자손들만으로 전체 동성동본집단의 한 파()를 형성하여 파보()를 가지기도 한다. 이 파보는 이 집단의 단합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고, 다른 집단으로부터 구별 짓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넓은 범위의 친족집단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동성동본집단을 들 수 있겠다. 규모가 큰 성씨의 경우 이 집단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고, 전국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어서 단일의 통합된 친족집단으로 간주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전국적인 규모의 ‘화수회’, ‘종친회’ 등과 같은 조직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법인체를 형성하여 동족들 간의 상호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 집단의 가장 뚜렷한 기능은 그것이 하나의 외혼집단이라는 점일 것이다. 아무리 촌수가 멀고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동성동본의 사람들 간에는 혼인하지 않는 우리의 관습은 이 씨족의식의 위력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부계친족에만 국한하여 한국사회에서 형성된 친족집단들의 범위에 관해서 잠깐 살펴보았지만, 이런 경향은 많은 다른 사회에서도 적용되어 통합의 정도에 따라 친족의 범위는 극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국사회에서와 같이 가계계승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상당히 넓은 범위의 친족집단이 형성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들에서는 극히 좁은 범위의 근친들만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구미사회의 친족제도는 이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즉 구미의 핵가족사회들에서는 부부의 결합으로 하나의 가족이 생성되고, 자녀들이 혼인해 나간 후에 부부의 사망으로 그 가족은 끝난다. 이런 순환을 되풀이하면서 새로운 가족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등, 거기에는 가계의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조상의 직계자손들로 구성된 친족집단이 없고, 단지 개인은 자신을 중심으로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과만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런 사회에서는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의 친족들에게 똑같은 비중을 둔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제자매와 그들의 배우자들을 단지 남녀로만 구분하여 ‘아저씨’, ‘아주머니’로 부르고, 자기 세대의 사촌들을 고종사촌, 이종사촌, 외사촌 등의 구분 없이 모두 한꺼번에 ‘사촌(cousin)’으로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이 부모 양쪽의 형제자매, 그들의 배우자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자신의 형제자매, 그들의 배우자들과 자녀들은 출생 및 혼인과 같은 경사에나, 병환 및 사망과 같은 위기를 당했을 때에 함께 모여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사람들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범주에 드는 사람들을 좁은 의미의 ‘친척(kindred)’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말에서는 친척이라는 용어를 넓은 의미에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좁은 의미의 친척들은 대개 둘 또는 세 세대에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세대마다 새로운 친척이 형성되어 이전의 친척을 대체한다. 간단히 말해서 친척은 아무런 지속적인 의무를 수행할 수도 없고, 영구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 기여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친척은 당사자에게는 양쪽의 가족으로부터 모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친족원으로 남아 있다.

친척의 의미

친척이란,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우리는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친척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친척은 내척(), 외척(), 인척() 등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직·간접적인 모든 인간관계나 집단을 총칭한다. 이에 비해, 친족은 친척()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나, 친족()은 법률상의 용어이고, 그 범위가 가까운 관계로 한정되어 있다.

내척, 외척, 인척

친척을 더 나누어 보면, ‘나’를 기준으로 하여 아버지 쪽의 친가()를 말하는 내척(), 어머니 쪽의 외가()를 지칭하는 외척()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혼인을 하면 아내 쪽의 처가() 또는 남편 쪽의 시가()가 추가되는데, 이를 ‘인척()’이라 한다.

가문과 족보

가문은 가깝고 먼 정도에 따라 8촌 이내의 동성() 친척으로 이루어진 집안을 ‘당내간()’으로 부르고, 8촌을 벗어난 동성 친척으로 이루어진 집안을 ‘종인()’ 또는 ‘일가()’라고 불렀다. 그런데 전통 사회에서는 신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가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문의 번영을 무엇보다 중시하였다. 족보에는 동일한 세대의 이름에 항렬()을 사용하여 공통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형제나 4촌 형제처럼 매우 가까운 사람들만이 항렬을 사용하였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러 족보의 간행이 활발해짐에 따라 항렬의 사용이 점차 먼 친척에 까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직계(直系)와 방계(傍系)

직계 : 조부·부·자·손과 같이 조부로부터 손자까지 바로 이어지는 관계.

방계 : 
형제, 조카 등과 같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지는 관계.

전통 사회에서의 친척 간의 예절 변화

조선 초기에는 아들과 딸, 장자와 차자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았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는 처가를 멀리하는 풍습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혼인은 오로지 여자가 시댁에 시집가는 풍습으로 변화되었고, 외손봉사를 꺼리게 되면서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집안에 딸이 있어도 가까운 동성()의 남자를 양자로 삼기도 하였다.

관련 지식

종법(宗法)

종법은 중국 주나라 때 성립한 종족()의 조직 규정으로 대종()과 소종()으로 이루어진다. 대종은 제후()의 적장자()이외의 아들()을 별자()로 하여 조()로 삼고, 적장자 상속으로 무한히 이어져 가도록 한 가계()를 말한다. 이에 비해, 소종은 대종의 집안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적장자 자손의 남동생들이 세운 가계이다. 주나라 왕실은 이와 같은 종법에 입각한 신분 질서의 원칙을 봉건 제도에 도입하였다. 그러므로 주나라의 천자()로부터 분봉()된 제후는 대종인 주나라 왕에 대하여 소종이 되었다.

제후의 상속도 이와 같은 종법에 입각한 봉건 상속법이 적용되었다. 종가()의 가장은 종주()가 되어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종묘를 모셨으며, 모든 족인들을 통괄하였다. 종주는 종족을 대표하고, 족인 중에서 범법자나 종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은 축출 또는 처형할 수 있었으며, 전쟁 시에는 족인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종법은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가부장적 가족주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17세기 중엽부터 문화의 계승자로써 종법제도가 강화되었다.

법정상속순위

 상속에는 상속인·상속순위·상속분 등 모두를 법률에 의해 정하는 '법정상속'과, 유언에 의하여 상속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을 인정하는 '유언상속'이 있다. 법정상속순위는 법정상속의 경우에 있어 정해지는 상속순위를 말한다.
외국어 표기 
(한자) 
상속에는 상속인, 상속순위, 상속분 등 모두를 법률에 의하여 정하는 '법정상속'과, 피상속인의 유언에 의하여 상속재산의 귀속을 인정하는 '유언상속'이 있다. 만약 피상속인의 유언이 없는 경우 법정상속이 개시된다.
법정상속인 범위와 법정상속순위
법정상속인은 민법상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될 수 있으며, 그 순서는 피상속인(사망한 자)을 기준으로 직계비속  → 직계존속 → 형제자매 →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된다.
배우자
배우자의 경우 1순위와 2순위의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상속인이 되며 1, 2순위 상속인이 없는 경우에는 단독 상속인이 된다.
직계비속
직계비속은 피상속인의 아들·딸·손자·손녀를 말한다. 즉, 피상속인으로부터 출생된 친족에 해당하며 양자도 직계비속에 속한다.
직계존속
직계존속은 피상속인의 부모, 친조부모, 외조부모가 이에 해당한다. 즉, 피상속인을 출생하게 한 친족(양부모도 직계존속)을 말한다. 
형제자매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로, 여기에는 이복형제도 포함된다. 
4촌 이내의 방계혈족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은 조카, 생질, 백부·숙부, 고모·이모 등 3촌과 4촌을 말한다. 즉, 자신와 같은 시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혈족을 말한다. 
문중회의 / 종친회
문중회의 / 종친회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의 종친회 문중회의 모습. 
유씨 집안 친족들의 모임이다. 김수남 사진

용어해설

사대 봉제사() : 직계 4대조인 고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

참고문헌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조선왕조실록』
  • 『이태조호적원본(李太祖戶籍原本)』
  • 『국조방목』
  • 『계후등록』
  • 『법외계후등록』
  • 『朝鮮金石總覽』
  • 『도시인의 친족관계』(이효재, 한국연구원, 1971)
  • 『한국농촌사회연구』(최재석, 일지사, 1975)
  • 『한국호적제도사연구』(최홍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5)
  • 『한국금석문추보』(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76)
  • 『한국가족의 사적 연구』(이광규, 일지사, 1977)
  • 『제주도도의 친족조직』(최재석, 일지사, 1979)
  • 『한국가족제도연구』(김두헌,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 『현대가족연구』(최재석, 일지사, 1982)
  • 『한국가족연구』(최재석, 일지사, 1982)
  • 『한국가족제도사연구』(최재석, 일지사, 1983)
  • 「조선시대의 상속제에 관한 연구」(최재석, 『역사학보』 53·54합집, 1972)
  • 「17세기초의 동성혼」(최재석, 『진단학보』 46·47합병호, 1979)
  • 「조선시대의 족보와 동족조직」(최재석, 『역사학보』 81, 1979)
  • 「조선시대의 양자제와 친족조직」(최재석, 『역사학보』 86·87, 1980)
  • 「족보에 있어서의 파의 형성」(최재석, 『민족문화』 7, 1981)
  • 「고려조에 있어서의 토지의 자녀균분상속」(최재석, 『한국사연구』 35, 1981)
  • 「고려조의 상속제와 친족조직」(최재석, 『동방학지』 31, 1982)
  • 「고려시대의 친족조직」(최재석, 『역사학보』 94·95합집, 1982)
  • 「고려시대의 혼인제도」(최재석, 『고대인문논집』 27, 1982)
  • 「조선초기의 상제」(최재석, 『규장각』 7, 1983)
  • 「조선시대의 문중의 형성」(최재석, 『한국학보』 32, 1983)
  • 「신라왕실의 혼인제」(최재석, 『한국사연구』 40, 1983)
  • 「신라왕실의 왕위계승」(최재석, 『역사학보』 98, 1983)
  • 「신라왕실의 친족구조」(최재석, 『동방학지』 35, 1983)
    [네이버 지식백과] 친족 [親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재미있는 항렬법(行列法)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2011.)
형제간의 서열,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2011.)
친족의 범위 (문화인류학, 2011.)
친척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한림학사)<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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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상속순위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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