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
한국 의 문화재.
한국의 문화재,&문화유산 [文化遺産].<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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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口傳)·음악·인종학적인 유산·민속·법·습관·생활 양식 등 인종적 또는 국민적인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문화재라는 말보다는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다. 문화와 자연 유산은 그것을 소유하는 당사국의 전유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문화재의 정의는 정의를 내리는 목적에 따라 다소 상이한 표현들이 사용된다.
그 중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서술된 정의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rtural Origanization)가 1970년에 채택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국제 협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협약에서 ‘문화재’라 함은 고고학·선사학·역사학·문학·예술 또는 과학적으로 중요하며 다음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종교적 또는 세속적인 근거에 따라 특별히 지정한 재산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진귀한 수집품·동물군·식물군·해부체 및 고고학적인 관심 물체, ② 과학 및 공업의 역사와 군사 및 사회의 역사를 포함하는 역사와 관련되는 재산 또는 민족적 지도자·사상가·과학자·예술가들의 생애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과 관련된 재산.
③ 정규적 또는 비밀리에 행하여진 고고학적 발굴 및 발견의 산물, ④ 해체된 예술적 또는 역사적 기념물의 일부분 및 고고학적 유적. ⑤ 비문·화폐·인장 같은 것으로 100년 이상 된 골동품, ⑥ 인종학적 관심의 물체.
⑦ 미술 관계의 재산으로 다음 네 가지에 관한 것, 즉 그 바탕이나 재료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손으로 제작된 회화·유화·도화(단, 공업 의장과 손으로 장식한 공산품은 제외), 재료 여하를 불문한 조각 및 조각 기술의 원작품들, 목판화·동판화·석판화의 원작들, 재료 여하를 불문한 미술적인 조립품 및 몽타주(합성화) 등.
⑧ 단일 물체 또는 집합체의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예술·과학 및 문화의 측면에서 특별한 관심사가 되는 귀중한 필사본·고서·인쇄물로서 다음 세 가지에 관한 것, 즉 단일 물체 또는 집합체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표나 수입인지 같은 형태의 인지물, 녹음·사진·영화로 된 기록물, 100년 이상 된 가구와 오래된 악기 등.
이 협약에서 특기할 점은 문화재를 크게 인류의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으로 나누고, 동물군과 식물군을 문화재에 포함시킨 점이다. 그리하여 지구의 표피와 자원, 생물학적인 환경, 수자원과 해양, 인간과 도시 등의 문제에까지 고루 취급하고 있다.
1962년 1월 10일에 제정된 우리 나라의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를 다음의 네 가지로 정의, 분류하고 있다. ① 유형 문화재 : 건축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 자료, ② 무형 문화재 :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
③ 기념물 : 패총·고분·성지·궁지·요지·유물 포함층 등의 사적지로서 역사상·학술상 가치가 큰 것과 명승지로서 예술상·관상상 가치가 큰 것. 그리고 동물(서식지·번식지·도래지 포함)·식물(자생지 포함)·광물·동굴로서 학술상 가치가 큰 것.
④ 민속 자료 : 의식주·생업·신앙·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습관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기구·가구 등으로 국민 생활의 추이를 이해함에 불가결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1933년에 제정한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호령」이 효력을 유지한 셈이다.
「문화재보호법」은 제3조에서 문화재위원회의 설치를 규정하고 국가 지정 문화재의 지정과 그 해제, 국가 지정 문화재의 보호물 또는 보호 구역의 지정과 그 해제, 중요 무형 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 단체의 인정과 그 해제 등 11항에 이르는 사항의 조사·심의 기능을 규정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권한과 관장 업무를 규정하는 「문화재위원회규정」에 의하면 60인 이내의 위원과 120인 이내의 비상근 전문으로 구성하며 위원회에 제1분과위원회에서 제6분과위원회까지 둔다.
그리고 국보지정심의·분과위원회·박물관분과위원회와 합동분과위원회를 두고 문화재의 지정 또는 가지정·보존에 관한 기본 시책,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관한 기본 시책, 연구·개발·보급에 관한 사항, 국가 매입 문화재의 평가, 발견된 매장 문화재의 보상 금액 등을 심사,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유형문화재
① 국보 : 「문화재보호법」 제4조 제2항에 의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 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가치의 크고 작음을 가늠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설정하기는 어려우나 유례가 드문 것, 즉 독특하고 희귀한 것을 가려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목조 건축물에서 예를 들어보면, 남대문을 국보로 지정하고 동대문을 보물로 지정한 이유는 남대문(1395년)이 동대문(1396년)보다 1년 먼저 세워졌고, 또 남대문은 우리 나라 성문의 대표적 건축으로서 건축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즉, 남대문을 성문의 대표적 건축으로 국보로 지정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목조 건물은 그 희소가치와 각 건물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다. 비석·탑·부도·석탑 등이 주류를 이루는 석조 건축물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2017년 10월 기준,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321점(국보 제1호~제321호)에 달한다.
② 보물 : 「문화재보호법」 제4조 제1항에 의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 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보급의 문화재가 그 분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보물급에 속하는 문화재는 그와 유사한 문화재로서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10월 기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목조 건축물·석조 건축물·전적류·서적류·고문서·조각류·공예류·일괄 유물 및 기타에 총 1,943건(보물 제1~제1943호)에 이른다.
③ 사적 : 「문화재보호법」 제6조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념물 중 중요한 것을 사적·명승 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적은 6개 분야로 분류된다.
첫째, 선사 시대의 유적 및 고분들이 있다. 둘째, 제사와 신앙에 관한 유적으로 절터·사직단·종묘 등 왕실의 제사에 관한 유적과 가톨릭 성당 등도 포함된다.
셋째, 정치 및 전쟁에 관한 유적으로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조까지의 성·궁터와 독립문, 구 러시아 및 벨기에 영사관까지 포함한다. 넷째, 산업·교통·토목 관계 유적으로는 도요지·옛날 다리·제방 등이 포함되고 교육·사회 사업 관계 유적으로는 서원, 정약용(鄭若鏞) 유적 및 근대 교육의 선구적인 구실을 담당하였던 학교 건물들이 포함된다.
다섯째, 분묘와 비석에는 삼국시대 이래 역대의 능묘와 전설지로서 경주의 계림과 제주의 삼성혈을 포함한다. 2017년 10월 기준, 남한의 사적은 540건(사적 제1호~제490건)에 이른다. 한편,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었던 곳은 2009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분」에 따라 사적 또는 명승으로 재분류되었다. 사적 및 명승 제1호 경주 불국사 경내는 사적 제502호, 사적 및 명승 제3호 내성유곡권충재관계유적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여타 ‘사적 및 명승’ 역시 문화재 성격에 맞게 사적 또는 명승으로 재분류되었다.
명승·천연기념물
「문화재보호법」 시행 규칙은 명승과 천연기념물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명승은 ① 저명한 건물이 있는 경승지 또는 원지, ② 화수·화초·단풍 또는 조수·어충류의 서식지. ③ 저명한 협곡·해협·곶·급류·심연·폭포·호수 등, ④ 저명한 해안·하안·도서·기타 경승지, ⑤ 저명한 풍경의 전망 지점, ⑥ 특색 있는 산악·구릉·고원·평원·하천·화산·온천지·냉광천지 등을 대상으로 한다. 1997년 12월 현재 지정된 명승은 8건이다.
천연기념물은 동물·식물·지질·광물과 천연 보호 지역으로 구분된다. 동·식물과 관계된 것으로는 ① 우리 나라에 특유한 것으로서 저명한 것 및 그 서식지와 생장지.
② 석회암 지대·사구·동굴·건조지·습지·하천·호수·폭포의 소·온천·하구·도서 등 특수 지역이나 특수 환경에서 서식하거나 생성하는 특유한 동·식물 또는 그 무리·서식지·생장지 또는 도래지, ③ 보존이 필요한 희귀한 동·식물 또는 그 서식지 및 생장지.
④ 우리 나라 특유의 축양 동물, ⑤ 학술상 가치가 큰 사총·명목·거수·노수·기형목, ⑥ 대표적 원시림·고산 식물 지대 또는 진귀한 삼림상, ⑦ 진귀한 식물의 자생지, ⑧ 저명한 동·식물의 분포의 경계가 되는 곳, ⑨ 유용 동·식물의 원산지, ⑩ 귀중한 동·식물의 유물 발견지 또는 학술상 특히 중요한 화석과 표본 등이다.
지질·광물의 지정은 ① 암석·광물의 생성 원인을 알 수 있는 상태의 대표적인 것, ② 거대한 석회 동굴 및 저명한 동굴, ③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암석 또는 저명한 지형, ④ 지층단 또는 지괴 운동에 관한 현상, ⑤ 학술상 특히 중요한 표본, ⑥ 온천 및 냉광천 등이다.
천연 보호 지역은 보호할 만한 천연기념물이 풍부한 대표적인 일정한 구역으로 정한다. 천연 보호 구역으로 설정된 곳은 전라남도의 홍도, 설악산·한라산·대암산·대우산 그리고 향로봉 등 6곳이다. 1997년 12월 현재 천연기념물은 295건이 지정되어 있다. 특히, 설악산은 1982년에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생물권 보호 지역 설정의 요건을 살펴보면 ① 자연 생물군의 대표가 되는 곳, ② 특별한 관심을 끌 수 있는 희귀한 특색을 지닌 곳으로 유일무이한 군집이거나 지역, ③ 토지의 이용과 조화를 이룬 경관, ④ 자연 조건하에서 아직도 회복될 수 있는 변화하거나 황폐된 생태계로 규정되어 있다.
무형문화재
「문화재보호법」 제5조에 의하면 “중요 무형 문화재의 지정은 문화재를 지정할 때 그 문화재의 보유자(보유 단체)를 인정하여야 하며 또 추가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24조에서는 그 문화재의 전승 보전을 위하여 전수 교육을 실시하며 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고 되어 있고, 또 제36조에서는 매해 1회 이상 중요 무형 문화재의 공개(전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무형 문화재는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및 기타로서 우리 나라의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으로 되어 있다.
① 연극 :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과 가면극이 지정되어 있다. 전자는 등장 인물의 이름을 따서 ‘박첨지놀음’ 또는 ‘홍동지놀음’이라고도 부른다. ‘남사당’이라고 불리던 직업적인 광대들이 전국을 누비며 풍물·살판·어름 등을 엮어 펼치는 이름 그대로 ‘놀이’였다.
열두 과장으로 구성된 이 놀이의 특징은 주인공인 박첨지가 내레이터의 역을 겸하고 있어서 막간마다 나타나 연극의 계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점이다. 가면극은 탈춤·탈놀이 등으로도 불리며 다루는 주제는 대체로 동일하다.
예를 들면 잡귀를 내쫓는 춤으로 시작해서 파계승의 풍자, 양반들의 일부다처간의 갈등상, 양반의 위선과 횡포의 풍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생 무상과 내세의 행복을 비는 것 등이다.
② 음악·무용 : 우리는 옛날부터 가무(歌舞)라 하여 음악과 무용을 공존하는 개념으로 보았다. 사실, 음악은 무용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어도 무용은 음악과 분리될 수 없다.
현재 음악은 종묘 제례악을 위시하여 판소리·가곡·가사·범패·대취타·산조 등이, 무용은 진주 검무를 위시하여 처용무·승무·승전무·학무 등이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기타 「강강술래」·기지시줄다리기와 같은 민속놀이, 강릉 단오제 등의 행사와 「진도씻김굿」 등이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③ 공예 : 이상에서 살펴본 공연 예술은 모두가 공간과 시간 속에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행위 자체 속에 그 예술성이 드러나는 데 비해서 공예는 그 기술이 유형적으로 남는 것이 특징이다.
1997년 12월 현재 38종목의 전통적인 민속 공예 기술이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가 우리 문화와 생활 양식의 독특한 면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갓이나 길쌈 또는 신발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만드는 기술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생활 용구를 만들고 꾸미는 나전 칠기·낙죽장·채상장·장도장이 있다. 또 우리의 건축의 특징을 표출하는 대목·소목·단청장이 있으며, 악기를 만들고 활과 살을 만드는 기술도 들어 있다. 1997년 12월 현재 103건이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 민속 자료" 우리 민족의 기본적 생활 문화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 중 전형적인 것을 지정한다. 이것은 유형적인 것과 무형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후자는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이 분야에 지정된 자료는 모두 유형적인 것만을 다룬다. 「문화재보호법」 시행 규칙에 명시된 지정 기준은 8개항으로 구분되어 있다.
① 의식주에 관한 것, ② 생산·생업에 관한 것, ③ 교통·운수·통신에 관한 것, ④ 교역에 관한 것, ⑤ 사회 생활에 관한 것, ⑥ 신앙에 관한 것, ⑦ 민속 지식에 관한 것.
⑧ 민속 예능·오락·유희에 관한 것 등이다. 또한 이상의 자료들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서 역사적 변천을 나타내는 것, 시대적 또는 역사적 특색을 나타내는 것 그리고 생활 계층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도 지정 요건이 된다.
민속 자료가 일정한 구역에 집단적으로 소재한 경우는 집단 민속 자료로 지정할 수 있다. 그 기준은 ① 전통적 생활양식이 보존된 곳, ② 고유 민속 행사가 거행된 곳으로 민속적 풍경이 보존된 곳, ③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민가군이 있는 곳.
④ 전통적인 전원생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곳, ⑤ 역사적 사실 또는 전설·설화와 관련이 있는 곳, ⑥ 옛 성터의 모습이 보존되어 고풍이 현저한 곳 등이다. 1997년 12월 현재 지정 중요 민속 자료는 228건이다.
지방 지정 문화재
「문화재보호법」 제55조를 보면 지방 장관은 그 관할 구역 안에 있는 문화재로서 국가가 지정하지 않은 문화재 중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것을 ‘시·도 지정 문화재’, 그리고 향토 문화의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문화재 자료’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재관리국은 지방 지정 문화재를 유형 문화재·무형 문화재·기념물·민속 자료의 순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정·비지정 문화재를 막론하고 이들은 모두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그 보호와 보존에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화재 중 국보나 보물급이 발견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립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 중에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문화재가 새로이 지정된 예도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한 사례가 예견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문화재의 등록이다. 등록이 되어 있어야 그것이 해외로 유출되었는지 소유주가 바뀌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발굴
「문화재보호법」은 매장 문화재의 발견·신고·발굴·국가 귀속과 보상 문제 등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매장 문화재라 함은 ‘토지·해저 또는 건조물 등에 포장된 문화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기할 사항은 매장되지 않고 건조물 등에 포장된 문화재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재를 발견한 사람과 소유자·관리자는 그 현상을 변경함이 없이 발견된 사실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매장 문화재가 포장되어 있는 곳으로 인정되는 곳은 이를 발굴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① 연구가 목적인 경우, ② 건설 공사를 위하여 부득이 발굴이 필요한 경우, ③ 공사 시행 중 매장 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그 공사를 계속하기 위하여 발굴이 불가결한 경우 등은 관할 장관의 허가를 얻어 이를 발굴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발굴은 주로 ①과 ②항의 경우이나, 도로 건설이나 댐 건설 도중 문화재가 발견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발굴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주무 장관의 명령이나 허가를 받아 매장 문화재를 발굴할 때 그 소유주나 관리자는 발굴을 거부·방해·기피할 수 없다.
발굴로 인하여 발견되는 문화재는 원칙적으로 그 소유주에게 돌려주고, 소유주가 판명되지 않을 경우 국가에 귀속하게 된다. 문화재를 발견 또는 습득한 자와 그 문화재가 발견된 토지나 건물의 소유주는 보상금을 지급받게 되어 있다.
매장 문화재의 발굴은 어떠한 이유에서 행하여지건 간에 학술적인 연구와 조사를 목적으로 한다. 발굴이라 함은 고고학적인 가치와 성격을 가지고 있는 물건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조사·연구를 말한다.
발굴에 앞서 주무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발굴을 담당할 단체나 기관의 자격을 중시하는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장을 유린하는 도굴을 방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고고학상 발굴에 적용되는 국제적 원칙에 관한 권고’는 발굴에 국제적인 협력을 권장하는 반면에, 점령군은 피점령 지역에서의 고고학적 발굴을 삼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우리 나라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발굴 사업은, 1946년 국립 박물관이 실시하였던 경주호우총의 발굴이 그 효시이다. 이듬해 개성법당방고분 발굴이 두 번째이다.<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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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전쟁을 치르던 1952·1953년에도 국립 박물관은 경주 일원에서 두 차례의 발굴사업을 전개하였다. 1950년대를 마무리 짓는 대발굴 사업은 국립 박물관이 실시하였던 감은사 발굴이었다. 계속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역사적인 발굴 사업이 진행되어 지금까지 계속 이루어져 오고 있다.
해외유출 문화재.
불법 유출
우리는 역사적으로 대륙에 인접한 중국 및 바다를 건너 일본과 오랫동안 교섭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문화재에 해당하는 물품들을 교역품으로 또는 선물로 주고받아 왔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쇼소원[正倉院] 소장품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중국에도 상당한 분량의 우리 문화재가 있을 것이나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극히 드물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 금으로 쓴 불경이 북경(北京)의 고궁박물원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재는 끊임없이 이어졌던 외국의 침략과 내란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또 약탈당하였다. 경주의 황룡사에 있던 목조 9층탑은 13세기 몽고의 침입 때 소실되어, 우리 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웅장하였던 목탑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16, 17세기에는 40여 년 간격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수많은 문화재가 불타버리거나 약탈당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중 일본은 전투 부대 이외에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할 목적으로 이른바 6부라는 특수 부대를 파견하였다.
도서·공예·포로·금속·보물·축부 등 6부의 요원들은 전투 부대의 후방에서 우리의 문화재를 조직적으로 약탈하였고 수많은 도공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 도공들이 뒤에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꽃피게 하는 데 주역을 담당하였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궁궐·사찰·향교 등의 건축물을 불태우고 그 안에 보관 중이던 동산 문화재, 특히 서화·도자기·공예품을 빼앗아 갔다. 이들이 강탈해 간 문화재의 숫자는 아직도 밝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육중한 석탑이나 범종까지 실어간 것을 보면 반출하기 쉬운 문화재는 얼마나 많이 가져갔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동산 문화재는 산산이 흩어졌으나 우리의 서적과 고문서는 여러 문고로 구분되어 아직도 일본에 보관되어 있다. 이처럼 문고에 수집되어 알려진 이외에도 일본의 박물관·도서관·사찰·개인 등의 소장품에는 많은 우리 나라의 서적이 있을 것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수탈해 간 기간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한 40여 년간이었다. 관리들뿐만 아니라 기간 산업의 요직에 있던 많은 일본인들까지 우리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빼앗거나 도굴꾼을 시켜 매장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이들의 약탈이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수행되었음은, 현재 국내에는 고려시대의 우수한 불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일본에는 알려진 것만도 80여 점이 넘는다는 사실로 반증된다.
일본 나라(奈良) 소재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이 1978년에 주최한 ‘특별전―고려불화전’에는 우리 나라의 불화 53점과 17점의 사경이 전시되어 큰 주목을 끌었다. 현재 일본에 알려진 우리 나라 유물의 수집품은 구 오쿠라(小倉武之助)콜렉션과 아다카(安宅)콜렉션으로 알려진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자는 동경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1982년 그 목록이 출판되고 특별전이 열렸다. 이 목록에 따르면 고고 자료 557점, 조각 49점, 금속 공예품 128점, 도자기 130점, 목칠 공예품 44점, 서적 26점, 염직 25점, 민속품 2점 등 총 1,030점으로 그 질과 양의 면에서 우리 나라 밖에 있는 수집품 중에서는 단연 제1급이다.
다음으로는 도자기 전문 수집품인 아다카콜렉션을 들 수 있다. 이 수집품은 총 793점이 1982년 대판부립동양도자미술관(大阪府立東洋陶磁美術館)으로 넘어갔다. 아사미문고[淺見倫太郎文庫]라고 알려진 한적의 수집품은 1950년 미국의 한 대학 도서관으로 팔려가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국·공·사립 박물관과 도서관·사찰·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일본 다음으로 우리 나라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미국·프랑스·독일·영국·덴마크를 들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대부분 한말 우리 나라에 공관을 개설하였던 열강들로, 외교관·선교사·상인 등을 통하여 우리의 문화재와 민속 자료들을 수집해 갔다. 러시아의 국립극동박물관에도 상당한 우리 나라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는 그 질이나 양에 있어서 몇몇 특수한 예외를 빼면 일본에 있는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직지심경≫은 금속 활자로 인쇄된 세계 최고(最古)의 활자본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박물관·도서관·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중 1945년 이후에 한미간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서 반출된 것이 많다. 외교 행낭이 문화재 밀반출의 주범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중 상당한 분량은 불법적으로 반출되었을 것이다. 특히, 1950년대 후반기부터 1960년대 중반기까지 우리 나라에서 외교관을 지냈던 인사들이 적지 않은 개인 콜렉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출 문화재의 조사· 연구· 반환 문제
1965년 우리 나라는 일본과 「문화재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그해 12월 18일 쌍방이 비준하였다. 전문 4조와 합의 의사록·부속 문서로 구성된 이 협정은 부속 문서에 열거된 문화재를 본 협정 효력 발생 뒤 6개월 이내 우리에게 인도하도록 되어 있다.
그 중 합의 의사록이 암시하는 바가 큰데, 그것은 당시의 협상 과정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인이 사유로 가지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되돌려줄 것을 희망하였고, 일본은 그것이 한일간의 문화 협력 증진에 기여할 것이므로 정부로서는 이를 장려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일면 그 당시 일본이 우리의 문화재는 국유가 아닌 사유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사유 재산을 침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버티고 나갔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이 협정 당시 사유 수집품이었던 오구라콜렉션과 아다카콜렉션이 이제는 동경국립박물관과 대판부립동양도자미술관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반환(기증)을 요구한 바 없고, 또 일본도 그것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협정에 의해서 우리가 돌려 받은 문화재는 총 1,329점인데 이것은 우리가 어림으로 알고 있는 숫자의 20분의 1 정도였다. 이 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우리 문화재는 불법적으로 일본에 계속 유출되었다. 신안 인양 유물이 공공연하게 일본의 골동가에서 거래되고 있음이 이것을 증명한다.
유네스코가 1970년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그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을 채택함에 따라 우리 나라도 1983년 이 국제 조약에 가입하였다. 우리 나라의 「문화재보호법」도 이 국제 조약에 맞게 개정은 되었으나 소유권 양도의 금지 조항은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 조약이 명문화한 조항에 따라 앞으로의 개정이 요망된다. 또한 집행에 철저를 기해서 우리 문화재가 불법적으로 외국으로 유출되는 통로를 봉쇄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또한 1979년의 총회 결의에 따라 ‘전쟁이나 식민지로 인하여 빼앗긴 문화재의 원산지 반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사업을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하여 10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정부간 위원회를 발족시켜 최소한 2년마다 한 번씩 회의를 열어 원칙적인 문제 및 국제법적인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등 관계 당사국들간의 중재를 맡고 있다.
이러한 사업의 제1 단계는 첫째로 문화재의 목록을 만드는 일이고, 둘째가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유네스코의 재정 지원으로 1981년부터 해외 유출 문화재 조사 사업을 시작하였다.
우선 우리 문화재가 제일 많이 유출된 일본 지역을 제1차 대상 지역으로 정하고, 회화·조각·공예·전적·고고학 자료 등 5개 분야의 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재원이 한정되어 있고 조사 대상은 막대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조사 뒤 결과를 평가해야 알 수 있다.
1984년 2월 말 현재 3개 분야의 1차 결과가 접수되어 분석과 평가만 남아 있다. 한국위원회의 계획으로는 이 사업을 연차적으로 북미·유럽·기타 지역으로 확장할 예정이나 재정 조달이 큰 문제이다.
다행히도 로스앤젤레스 소재의 한국문화원이 미국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의 주요 한국 문화재의 콜렉션을 연재로 다루고 있고, 또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미술사가가 유럽에 산재하여 있는 우리 문화재의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출 문화재의 실태 조사는 궁극적으로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우리의 상대국인 일본은 벌써 오래전부터 이런 사업을 전개해서 그 결과를 『해외비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다.
보전과 관리
문화재의 보전과 관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복원·복구
문화재관리국이 1977년에 실시한 전국의 문화 유적지 지표 조사 결과 총 1만1670건의 문화재가 확인되었다. 이중에서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커서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지정 관리하고 있는 지정 문화재는 1997년 12월 현재 7,315건에 달한다.
동산 문화재의 관리
관리는 문화재의 등록, 매장 문화재의 발견·신고·발굴 및 국가 귀속에 관한 사항은 문화재관리국이 취급하나, 일단 국가에 귀속된 문화재는 박물관에서 보전·전시·연구되고 있는 이중적인 구조이다.
그러나 개인이 사유로 소유하고 있는 동산 문화재는 소유주가 아직도 그것을 사유 재산으로 간주하는 한편, 등록 규정에 의하여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벌칙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등록이 미흡한 실정이다. 그러나 문화재의 유출을 방지하는 데는 등록이 제일 선결 요건이므로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그 지정 여부를 불문하고 해외 반출이 국내법과 국제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도는 전국의 국제 공항과 부산항에 문화재 감정관실을 두어 반출 문화재의 감정을 하고 있다.
무형 문화재의 전승 교육
무형 문화재의 지정 및 해제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1968년부터 정부는 무형 문화재의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계에 매달리지 않고 자기 전공분야에 헌신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1997년 현재 월 70만원의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전수 장학생에게는 장학금이,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전수 교육비가 지급된다. 또한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사람들이 그 기(技)와 예(藝)를 연마하고 후계자들의 양성과 교육을 위하여 전수 회관을 연차적으로 건립하고 있다.
보존 과학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과학과 기술의 활용은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되어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1956년 ‘문화재의 보존 및 보수의 연구를 위한 국제 센터’의 규정이 그해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되어 속칭 ‘로마센터’가 설립되었다.
이 센터는 정부간 기관으로 우리 나라도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주요 업무는 문화재의 보존 및 보수의 학술적 문제에 관한 자료의 수집·연구 및 그 결과의 배포, 연구의 국제적 조정 및 촉진, 연구원 및 기술자의 양성 등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1969년 문화재관리국에 문화재보존과학실이 생겨 문화재 보존 과학의 효시가 되었다. 1975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설치되어 부서로서 미술공예연구실·예능민속연구실·보존과학연구실이 설치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국립목포해양유물전시관이 있다.
이 밖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 과학실이 1976년에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대구의 계명대학교부속박물관에 보존과학실이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호암미술관과 문화재보호재단발굴조사사업단에도 보존과학실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보존 과학은 문화재가 화학적·물리적·생물학적인 피해를 받아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많은 학문 분야의 공동 연구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우리 나라 문화재의 대부분이 금속류·도자기류·석재류·목재류와 섬유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타학문간의 연구가 요망된다. 이런 점에서 전문적인 요원의 양성과 기재의 보강이 필요하다.
전시는 대부분 박물관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나라는 국립 박물관·대학 박물관·사립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서 문화재를 상설 또는 정기적으로 일반에게 공개 전시하고 있다.
이 밖에 특별 기획전을 열기도 한다. 또한 문화재의 해외 전시는 외교 수단의 연장으로 많은 나라들이 자기들의 찬란하고 장구한 문화를 선전하기 위해서 많은 예산을 들여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공연 예술단의 해외 파견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것은 문화 가치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진하는 수단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미국 같은 나라들이 많은 돈을 들여 외국의 전람회를 유치하는 이유는 이런 전시를 통해서 자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함이 첫째 목적이다.
전람회의 교육적인 목적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 나라는 1950년대 말 미국의 8개 도시에서 197점의 문화재를 전시한 데 이어, 1960년대 초기는 영국·네덜란드·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서 총 152점의 문화재를 전시한 바 있다.
이 후 15년간 대규모의 해외 전시는 뜸하다가 1976년 2월부터 7월까지 일본의 3대 도시에서 개최된 ‘한국미술오천년전’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그 해 8월 국내에서 앙코르전이 열렸다. 이 전람회는 국내외적으로 우리 문화재가 세계의 각광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미·한영·한독 수교 100주년을 맞은 1984년 영국과 독일에서 한국미술오천년전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외에서 열리는 특별전에 우리 문화재를 대여하기도 하고, 또 외국 박물관의 한국실에 우리 문화재를 대여하여 전시하고 있다.
한국믜 문화재.
출처 &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문화재관리국, 1967∼1983)
- 『한국고고학연보』 13·14(서울대학교박물관, 1986)
- 『동산문화재관리편람』(문화재관리국, 1978)
- 『문화재보호』(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76)
- 『문화재관리관계법령집』(문화재관리국, 1973)
- 『무형문화재총람』(민학사, 1975)
-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재 [cultural properties, 文化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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