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일 월요일

금와왕, [ 金蛙王 ]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

금와왕, [ 金蛙王 ]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본기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 통치제도, 문물, 경제, 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와 연표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현전하는 최초의 기전체 문헌인 삼국사기.
유형/ 시대/ 출생 - 사망/ 성격/ 성별/
인물
고대/초기국가
미상 ~ 미상
생몰년 미상. 동부여의 왕. 금와(金蝸)라고도 표기함.
서기전 1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행적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화를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 東明王篇>에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 삼국사기.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 통치제도, 문물, 경제, 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와 연표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현전하는 최초의 기전체 문헌인 삼국사기}.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후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의 이상한 돌 밑에서 금빛나는 개구리(또는 달팽이) 모양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를 하늘이 준 자식이라 생각하여 데리고 가서 키웠다.

금와라는 이름은 바로 금빛나는 개구리 모양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뒤 태자로 책봉되어 해부루를 이어서 부여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발견하고 궁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유화가 이상하게도 알을 낳자 이를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곧 알의 신비함을 인정하고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이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였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그를 처치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그 뒤 주몽이 달아나자 그를 추격하는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잡지는 못하였다. 주몽이 고구려 건국을 위하여 남쪽으로 떠난 후에 유화가 24년에 죽자 태후(太后)의 예로서 장사를 치러주었다. 그의 사후 왕위는 아들인 대소(帶素)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금와왕 설화, [ 金蛙王 說話 ]
동부여()의 왕인 금와()의 탄생 설화.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군은(君恩)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삼국유사 ()
• 내용 :
기원전 59년 4월 8일 아침, 하늘이 열리면서 천제가 다섯 마리의 용을 타고 홀승골성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북부여, 이름을 해모수라 하였고, 아들을 낳았는데, 부루라 이름지었다. 해모수왕에 이어 해부루왕이 북부여를 다스릴때였다. 어느날 해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나타났다.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할터이니, 너는 동해가에 가섭원이란 곳으로 가거라. 땅이 기름져 왕도로 삼기에 적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란불은 왕에게 권고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그 뒤 북부여에서 동명왕이 졸본주를 도읍으로 정하여 졸본부여를 세웠으니 이것이 고구려왕조의 시작이다. 그런데, 해부루에겐 근심이 있었으니, 바로 늙도록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이을 아들을 달라고 빌었다.

그날도 왕이 종일토록 기도를 올리고 해질무렵 귀가를 할 때 였다. 갑자기 왕이 탄 말이 곤연이란 연못에 이르자 커다란 돌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멈춰섰다. 이를 본 왕은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게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개구리처럼 생긴 황금빛 사내아이가 있는게 아닌가!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라 기뻐하며 말했다.“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그 모습이 금개구리와 같으니 금와라 하면 어떻겠느냐.” 그리하여 그날부터 금와를 곁에 두고 길러 금와가 청년이 되자 해부루는 그를 태자로 삼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이 되었고, 금와왕 이후 태자 대소가 나라를 이었으나 고구려의 무휼왕이 쳐들어와 동부여를 정복했다. 그로써 동부여는 멸망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1 시조 동명성왕조(始祖東明聖王條)와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제1, 동부여 고구려조에 나타나 있는 금와왕의 탄생에 얽힌 문헌설화이다. 위의 두 책에 실려 있는 설화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고 왕위를 이을 아들[嗣子]을 구하였는데, 하루는 왕이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보고 왕이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어 보니 그 밑에 한 어린 아기가 있는데, 빛은 금빛 같고 모습은 개구리와 같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것은 하늘이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거두어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금와가 장성하자 태자를 삼고 해부루가 죽은 뒤 왕위를 잇게 하였다.

「금와왕설화」는 인간 생명의 용출(湧出)로서의 지생관(地生觀)을 바탕으로 하여 천생관(天生觀)과 대립된다. 이는 또한 자연 발생적 인간 기원을 이야기하여 「견훤설화(甄萱說話)」류의 인위토생적(人爲土生的) 기원론과 대립된다. 한편, 금와왕은 고구려 시조 「동명왕신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금와왕은 즉위한 뒤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그 여자는 본시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인데,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사통(私通)하여 부모에게 내쫓기어 우발수에 살고 있었다. 금와가 유화를 데려왔는데, 햇빛이 유화의 몸을 따라다니며 비추었다.

도읍을 옮겨 새로 동부여를 창업한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로 인하여 태기가 있더니 마침내 닷 되들이만 한 알을 하나 낳으니, 금와는 이를 내다 버리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개·돼지·소·말 들이 이 알을 피하여 먹지 않으며, 새들이 보호하려 들자 왕 자신이 알을 깨뜨리려 해도 깨뜨리지 못하게 되니 왕은 알을 어미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알에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이다.

부여의 왕 해부루(解夫婁) 때의 재상(宰相) 아란불(阿蘭弗)이 에 천제(天帝)를 만났는데, 천제가 하기를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 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터이니 너희들은 이 곳을 피하여 동해 부근의 가섭원(迦葉原)으로 왕도(王都)를 옮기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아란불은 곧 왕에게 권하여 그 곳으로 천도(遷都)를 하고 국호(國號)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곤연(鯤淵)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타고 있던 말이 큰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겨 돌을 굴려 보니 그 곳에서 금빛을 두른 개구리 형상의 아이가 나왔다.

왕은 이를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 여기고 그 아이의 이름을 금와라 짓고 고이 길렀다. 이후 금와는 자라서 태자가 되었고, 해부루가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동부여는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천제의 명에 따라 도읍을 동해 바닷가 가섭원으로 옮겨 세운 나라이다. 뒷날 태백산(太白山)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데려다가 방에 가두었더니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뒤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주몽(朱蒙:동명왕)이 나왔다.

해부루가 나라를 옮긴 이유는 북부여의 도읍에 천제의 자손, 곧 주몽이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천제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와왕은 동부여를 세운 해부루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금와왕은 후에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우발수에서 발견하여 궁에 가두었고, 주몽이 태어난 후에는 그의 양육자가 된다. 아들들이 주몽을 두려워하여 죽이자고 했지만 그는 주몽을 시험하기 위해 말을 기르도록 한다.

주몽이 남쪽으로 떠나 고구려를 세운 뒤 동명왕 14년 8월에 유화가 죽자 금와왕은 태후의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고 신묘를 세워 준다. 이렇듯 금와왕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면 <주몽신화>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금와왕 스스로 주연인 이야기는 그의 탄생과 왕위 계승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이 신화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에 전해지는데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금와왕신화>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둘인데, 하나는 기자치성(祈子致誠)이고 다른 하나는 금와라는 이름의 유래인 ‘곤연의 큰 돌 아래서 나온 금빛 개구리 형상의 아이’이다.

기자치성은 일찍이 건국신화에서부터 나타난다.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기원한다. 이때 숭배의 대상은 단수, 곧 나무이다. 해부루는 곤연이라는 연못 안 또는 연못가에 있는 큰 바위에서 기자치성을 드린다. 말이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신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곤연이 제사의 장소이고 큰 바위가 숭배의 대상이므로 이는 곧 큰 바위에 빌었다는 뜻이다. 큰 바위는 오늘날까지도 기자석, 여음석, 남근석, 미륵바위 등으로 불리면서 널리 기자치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와왕은 바위에 기원하여 얻은 아들, 곧 산천이 점지한 아들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금와왕신화>의 핵심 화소는 금개구리이다. 『삼국사기』에는 금와(金蛙)를 금와(金蝸)로 쓰기도 한다고 했지만, 초점은 달팽이가 아니라 개구리이다. 이 개구리는 아이의 형상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부여를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로 보인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따르면 유리왕 29년 6월에 모천(矛川)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무리지어 싸우다가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하고 죽은 일을 두고 검은 색은 북쪽의 색이므로 북부여가 패망할 징조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북부여는 금와왕을 이어 대소왕이 통치하고 있던 동부여를 가리킨다. 이 기사에서 개구리는 단지 시끄러운 양서류가 아니라 특정 세력을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이다.

개구리는 신화적으로는 물, 달, 여성적 원리를 상징한다. 그래서 개구리는 하천 주변의 평야지대에 거주하며 농경에 종사하는 종족의 상징체계 속에 자주 등장한다. 동이계의 신화적 인물인 예(羿)의 처 항아(姮娥)가 불로장생을 원하는 남편을 위해 서왕모의 약을 훔치고는 달로 도망쳐 두꺼비가 되었다는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달은 두꺼비, 곧 개구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또, 여러 신화에서 개구리는 비를 예고하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금와왕신화>의 금개구리는 금와가 동부여의 수신계 집단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금와를 발견한 해부루는 북부여에서 온 해모수의 아들로, 해[日]나 밝음[光]의 상징체계를 지닌 집단, 다시 말하면 태양을 중심으로 한 천신계 집단의 수장이다. 고구려 <주몽신화>에서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아침에 내려와 정사를 보고 저녁에 승천한다고 하여 천왕랑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해모수는 태양신이 인격화된 존재이다. 이 해모수의 아들이 북부여의 해부루인데, 이는 동부여를 세운 주도 세력이 북부여 및 고구려의 주도 세력과 마찬가지로 천신계 집단이라는 것을 뜻한다.

천신계 집단에 속하는 해부루가 수신계 집단을 상징하는 금와를 발견하여 왕위계승자로 삼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해부루와 금와가 같은 혈통이 아니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동부여는 서로 다른 세력이 연합한 국가였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런데 동부여 <금와왕신화>에는 이 연합 관계가 고구려 <주몽신화>처럼 결혼 관계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주몽신화>에서 해모수와 유화의 결혼은 천신계와 수신계 집단의 연합을 상징한다. 이런 상징성이 <금와왕신화>에서는 왕과 태자의 관계로 표현되어 있다. 왕권이 천신계 집단에서 수신계 집단으로 넘어간 상황의 신화적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금와왕신화>의 두 번째 함의이다.

개구리는 물의 상상계를 대표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로 신화나 도상에 자주 나타나는데 <금와왕신화>는 한국의 건국신화나 왕권신화 가운데 유일하게 개구리 모티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광개토왕비문」
[금와 [金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금와왕설화 [金蛙王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설화문학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78)
[금와왕설화 [金蛙王說話] (두산백과)
[금와왕신화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금와왕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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