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5일 토요일

라면,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라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스턴트
국수를 증기로 익히고 기름에 튀겨서 말린 즉석식품. 가루수프를 따로 넣는다.

즉석식품의 하나. 지방함량 16%, 단백질 8~9%, 탄수화물 등 영양분이 많으며, 500g당 390㎉의 높은 열량을 가진 식품이다. 근래에 와서는 각 회사의 제품다양화로 3분 동안 끓이는 라면에서 더운 물만 따르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즉석라면 등과 같이 제품 종류가 많아졌고, 이로 인해 국민 식생활 보급에 기여하고 있다.

라면의 유래는 중국의 건면에서 나왔다는 설과 안도[安藤]라는 일본 사람이 오뎅튀김을 보고 착안하게 되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현재의 즉석식품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일본으로 1958년경부터 생산했으며, 한국에서는 1963년 삼양식품이 처음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라면을 생각할 때 대부분 빨간 국물을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고, 198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고춧가루가 조금씩 더 들어가 국물이 빨간 색을 띠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라면을 좋아한다. 세계 최대 라면 소비국은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으로 따지면 한국이 최고다. 한 사람이 1년에 68개를 먹는다고 하니까 적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이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것이 1963년이니까 벌써 50년이 됐다.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개발된 해로 따지면 55년이다. 라면, 이 위대한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반백 년 라면의 역사는 시련에서 출발한다. 그 탄생사는 전쟁의 고통, 그 혼란에 내동댕이쳐진 개인의 눈물, 그리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라면의 역사는 고난 극복의 궤적이며 인간 승리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의 땀과 눈물이 모두 스며 있다.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로 연명했다. 뒤집어 보면 국수 장사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직장을 잃은 안도는 장기간 보관해도 원래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국수를 대량 생산해 사업화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업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거의 10년 동안 국수 개발에 매달린 안도는 마침내 가진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가정은 파탄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나이도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안도는 좌절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자며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던 안도는 포장마차 주인이 어묵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젖은 국수를 기름에 튀기면 밀가루 반죽에 포함된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밀가루에 숱한 구멍을 남긴다. 이 구멍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면 국수가 다시 부드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안도는 연구에 매달린 끝에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간편하게 먹는 즉석 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라면 생산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안도가 라면 제조 방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도 쉽게 라면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식 라면이 만들어진 계기???


라면에첨가된 고추, 가루를 내어서 첨가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곡식 위주의 생활을 하던 국민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라면을 섬유의 한 종류로 오해해서 먹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삼양식품은
캠페인 성격의 시식을 실시하고 라면 알리기 운동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일본식의 담백한 국물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이 삼양라면에 흥미를 보였다.

“한국 사람은 맵고 짠 것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좀 더 들어갔으면 좋겠군.”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것은 1963년이다.
경쟁이 치열한 일본 라면업계에서 한국에 라면 제조 기술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지만 라면이 처음 국내에 선보였을 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느끼한 국물에 값도 싼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라면은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식당에서 사 먹는 백반이 30원이었으니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라면이 널리 보급된 것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덕분이다. 쌀을 아끼려고 라면 보급을 장려한 것인데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이 우리 국민은 맵고 짠 것을 좋아하니 느끼한 국물 대신 고춧가루를 이용한 수프를 개발해보라고 제안하면서 개발 자금까지 지원했을 정도다.  그때 당시 박정희대통령,

일본 라면이 패전의 허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발달했다면, 한국 라면은 산업화 도중 식량 자급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라면이라고 하면 인스턴트 라면부터 떠올리지만 라면은 사실 생라면을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생라면은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일반적으로 생라면의 뿌리는 중국으로 보고 있다. 1870년대, 요코하마의 부두에서 일하던 화교 노동자들이 먹었던 국수를 원조로 본다. 이들이 고향에서 먹던 ‘라몐(拉麵)’이 일본의 생 ‘라멘(らめん)’의 뿌리라고 하는데, 라몐이란 쉽게 말해서 수타국수다.

수타국수가 밀가루 반죽을 바닥에 때리며 늘리는 것과 달리 라몐은 공중에서 그대로 잡아 늘리는 것이 다르고 수타국수보다 면발이 훨씬 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수타국수를 주로 짜장면으로 비벼 먹지만 중국은 라몐을 쇠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다. 때문에 겉보기에도 일본의 생라면과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생라면을 예전에는 지나(支那)소바, 또는 주카(中華)소바라고 불렀다. 생라면에는 이렇게 격변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요코하마에 와서 돈을 벌어야 했던 중국 쿠리(부두 노동자)의 눈물이 배어 있다.

라면은 지나치게 먹으면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라면은 싼값에 허기를 잊도록 해주는 구원의 음식이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라면에는 극한의 가난을 견디어낸 중국 부두 노동자들의 질곡과 패전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본인의 노력, 산업화 과정에서 잘살아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인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목차

인스턴트 라면, 호평을 받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2009년 우리나라, 라면 종주국이 되다/ 한ㆍ중ㆍ일, 라면의 시초를 두고 논쟁하다/ 1870년 일본에 라멘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 라멘, 일본의 전통 음식이 아니다/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 일본 라면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 안도 모모후쿠/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 닛싱 치킨 라멘/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 개발/ 안도 모모후쿠의 경영철학 : 인스턴트 라면 제조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다/ 안도 모모후쿠,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전중윤 회장, 인스턴트 라면으로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겠다/ 삼양라면, 1980년대에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 한국식 라면이 만들어진 계기/ 맵고 짠 한국식 라면의 폭발적인 성장/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덕에 쌀 소비도 늘어나다/ ‘우지파동’으로 라면 고급화와 다양화의 길을 걷다/ 가장 늦게 라면을 만든 한국, 세계 최대의 라면 수출국이 되다

인스턴트 라면, 호평을 받다

세계라면협회(IRMA)에 의하면 2009년 기준 전 세계에서 연간 1천억 개의 인스턴트 라면이 소비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스턴트 라면은 쌀과 빵에 이은 인류의 식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리가 쉽고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구호물자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빈민들에게 라면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주식이다.

<뉴욕 타임즈>는 인스턴트 라면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인스턴트 라면을 끓일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수 있다지만, 인스턴트 라면을 주면 그 무엇도 가르쳐줄 필요 없이 평생 먹을 수 있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라면을 소비하는 나라는 단연 중국으로 연간 408억 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그에 이어 인도네시아 139억 개, 일본 53억 개, 베트남 43억 개, 미국 40억 개이고 그를 이어 우리나라가 34억 개로 6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1인당 소비량에서는 수십 년간 한국이 독보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소비량 69개(전체 소비량으로 세계 1위인 중국의 1인당 소비량은 32개로 반절에 못 미친다)!

2009년 우리나라, 라면 종주국이 되다


러시아에서 많이 팔리는 ‘팔도 도시락’

2009년 한국 라면의 수출량은 약 1억 4천만 달러로 중국, 일본, 미국을 크게 웃돈다. 상하이에서 한국 라면의 브랜드 인지도는 90% 이상이고, 러시아에서는 ‘팔도 도시락’이라는 제품이 라면 시장 점유율의 60%를 차지해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용기 라면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다. 심지어 라면의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을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는 라면 종주국이다.

한ㆍ중ㆍ일, 라면의 시초를 두고 논쟁하다



그런 점을 내세우며 이렇게 주장하는 이도 있다.
“라면의 시초가 일본이나 중국이란 말이 있지만 지금 팔리고 있는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은 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납면’이나 ‘라멘’은 라면과 다르다. 라면의 종주국은 한국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시초임을 주장하며 자존심 싸움을 하는 한ㆍ중ㆍ일이기에 라면의 종주국이 어디냐는 논쟁 역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과연 라면은 어떤 식으로 시작된 것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오게 된 것일까?

1870년 일본에 라멘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



본래 라면은 중국 음식으로 한자로는 ‘납면()’이라고 쓴다. 중국에서는 노면(), 유면()이라고도 했다. 납면을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라멘’이 된다.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 요코하마 등 일본의 개항장에 들어온 중국 사람들이 라멘을 노점에서 만들어 팔면서 일본에 라멘이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라멘이란 명칭이 아니었고 ‘지나()소바’ 혹은 ‘남경()소바’라고 불렸다.

라멘, 일본의 전통 음식이 아니다

라멘은 닭 뼈, 돼지 뼈, 멸치, 가다랑어포 등을 우려내고 여러 소스를 가미한 육수에 중화면이라는 국수를 말아 먹는 것으로 일본에서도 중화요리로 구분되었다.


차후 라멘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라멘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중화요리 집에서만 라멘을 다뤘다는 점, 중국 본토 란저우에 그와 유사한 납면(, 라미엔)이라는 국수가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 등을 봤을 때 라멘은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당시 중국인들이 만들던 납면은 수타면을 가늘게 뽑아내던 형식으로 굵은 면발의 일본라멘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납면은 일본식 라멘으로 변형된 것이다.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

일본식 라멘은 우리가 자주 먹는 인스턴트 라면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밀가루  일본에 구호물자로 넘쳐났다

밀가루 일본에 구호물자로 넘쳐났다.
일본은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넘쳐났다. 그 시절 사업가 안도 모모후쿠는 밀가루를 원료로 한 식품을 개발하면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온 뒤 전쟁과 패전의 배고픔을 겪었던 그에게는 사업 기회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류가 배고픔을 극복할까?’라는 커다란 그림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에게 이것은 사업의 기회일 뿐 아니라 일종의 성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쌀을 중심으로 한 식습관의 벽을 깨뜨리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는 사업 실패와 탈세 혐의기소 등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되었다.

일본 라면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 안도 모모후쿠

좌절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마시자는 생각에 조그만 선술집을 찾았다.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마시는 마지막 술.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서 자작을 하던 그는 멍하니 식당 주인이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도 모모후쿠의 동상,

주방장은 어묵을 튀기고 있었는데,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이 기름에 빠지자 밀가루 속 수분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모습을 보며 안도는 방금 전까지 자살하고 싶었다는 마음 따위는 까맣게 잊고 회사로 달려갔다.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 닛싱 치킨 라멘


조리전의 치킨 라멘 면에 양념이 배어 있는 형태이다.

“면을 기름에 튀기면 건조되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물을 부으면 다시 원래 상태로 풀어질 테지?”

그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58년 ‘닛싱() 치킨 라멘’이라는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상품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화에는 반론도 있다. 이미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건면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타이완 출신의 안도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 개발

라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납면에서 유래된 중화풍의 라멘과는 면과 맛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는 식품이었다. 하지만 닛싱 치킨 라멘의 출시 이후 지나 소바, 남경 소바 등으로 불리던 비 인스턴트 라면(즉, 일본식 라멘) 또한 라멘이란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이후 미국의 인스턴트 라면 소비자들이 컵에 면을 넣고 포크로 먹는 것을 보고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을 개발하는 등 인스턴트 라면의 대중화와 정립에 있어 인스턴트라면 역사의 처음과 끝에 모두 관여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안도 모모후쿠의 경영철학 : 인스턴트 라면 제조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다


세계최초의 컵라면과 치킨 라면

그의 경영 철학은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먹는 것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식족세평(),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는 식창위세().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특허 등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업체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등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 행보를 걸어왔다.

안도 모모후쿠,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다

91세가 되던 2001년에는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 라면 개발을 진두지휘했고, 실제로 2005년 7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스테이션에서 사상 처음으로 라면을 먹는 중계 장면을 보고 안도가 감개무량해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STS-114에서 노구치 소이치 비행사가 처음으로 우주유영을 하는 장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으면서 싸게 팔리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들어 인류가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그의 철학은 현실이 되었다.

언론은 그를 “미스터 누들”이라 부르며 세계 평화에 기여한 안도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 마땅하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실제로 노벨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채 그는 2007년 1월 5일 향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삼양공업주식회사에서 제조한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
우리나라의 인스턴트 라면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도 모모후쿠가 제조특허를 독점하지 않은 덕에, 그리고 일본의 ‘묘조라면(Myojo Food)’ 사장이 노하우를 전부 이전해 준 덕에 1963년 삼양의 전중윤 회장은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할 수 있었다.

전중윤 회장, 인스턴트 라면으로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겠다, 박정희 대통령께보고'


이런시절,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미군의 음식 쓰레기로 꿀꿀이죽을 끓여 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들어왔지만 사람들의 입맛에 제대로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던 당시는 패전 직후 일본의 상황과 너무나도 유사했다. 일본식 인스턴트 라면을 도입한다면 식량 자급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중윤 회장의 생각이었다.

삼양라면, 1980년대에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



삼양공업주식회사에서 제조한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 국수를 증숙시킨 뒤 기름으로 튀긴 꼬불꼬불한 유탕면과 국물을 만드는 수프가 첨부돼 있다.

1966년 3월 21이라는 제조일자, “최고의 맛, 정확한 양, 최선의 서비스”라는 문구가 써 있다. 이 라면은 일본의 명성식품주식회사와 기술 제휴하여 만든 제품으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이다.

종류
면의 종류에 따라 유탕면, 호화건면, 숙면 등으로 나뉜다. 유탕면은 가장 기본형태의 라면으로 기름에 튀긴 면을 말하고, 호화건면은 한번 익힌 면을 다시 말린 것을 말한다. 숙면은 반쯤 익혀서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상태에서 포장한 면이다.

이 밖에도 용도에 따라 비빔면, 컵라면, 라면사리 등으로 나눌 수 있어 비빔면은 비벼 먹을 수 있게 얇고 꼬들꼬들한 면으로 만들어지고, 컵라면은 끓이지 않고 뜨거운 물을 부어도 완전히 익을 수 있게 면의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많이 나 있다.

라면사리는 음식점에서 부대찌개나 전골 등에 추가해서 먹는 것으로, 분말 수프와 건더기 수프 없이 면만 포장하여 판매한다.  

조리법
제조방법은 제면→중숙→납형→튀김→냉각→스프첨부→포장의 공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것은 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할 때의 공정이고, 라면을 끓여 먹을 때에는 보통 해당 라면 봉지에 적혀 있는 조리방법을 따른다. 가장 보편적인 조리방법은 종이컵을 기준으로 물을 세 컵 정도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면과 건더기 스프, 분말 스프를 넣고 4분 30초가량 더 끓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호에 따라 계란이나 치즈를 추가하기도 하며, 아예 채소나 고기를 넣고 질이 높은 요리처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완성된 라면은 보통 김치와 곁들여 먹는다.

라면 영양정보,
분류1회 제공량칼로리,
면,만두류/ 500g/ 387.6kcal

라면  ⓒ 농촌진흥청


출처 ^ 참고문헌,
[삼양라면
[농심라면
[네이버 지식백과] 라면 -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스턴트 (사물의 민낯, 2012.., 갈릴레오 S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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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2주 빨른 어제 백두산에 첫눈이 내렸다. (20, 9, 4)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작년보다 2주 빨른  어제 백두산에 첫눈이 내렸다. (20, 9,  4)

백두산에 올가을 들어 첫눈이 내렸다.

북한 라디오 조선중앙방송은 5일 백두산 기상관측소를 인용해 전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백두산에 눈이 내렸다고 밝혔다.

적설량은 1㎝를 기록했다.

이번 첫눈은 지난해보다 14일 빠르다.
평년에는 백두산에 9월 13일께 눈이 내렸으며 작년에는 9월 18일 첫눈이 관측됐다.

백두산은 북한 양강도 삼지연시와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주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약 8천㎢의 전체 면적 중 3분의 2는 북한 영토에 속하며, 나머지는 중국 영토에 속한다. 해발 2천750m로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두산, 멀리서 바라본 눈 덮인 백두산, 평년에는 백두산에 9월 13일께 눈이 내렸으며 작년에는 9월 18일 첫눈이 관측됐다.

백두산지구의 눈
백두산지구는 우리나라에서 눈이 제일 일찍 내리고 눈내리는 기간이 길며 눈이 쌓여 있는 높이도 높다. 눈은 높은 곳과 추운때에는 싸락눈 형태로, 비교적 낮은 곳과 온도가 높아질 때에는 함박눈, 덩이눈 형태로 내린다. 백두산에서 4월 말~5월 초에는 때때로 싸락눈과 함박눈이 내리며 눈송이와 눈의 밀도가 크다.

백두산에서는 눈과 비, 우박이 섞여 내리는 경우도 자주 있다. 1983년 6월 18일 천지에는 우박이 내렸고 천지와 향도봉의 중간경사면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이때 장군봉과 향도봉에는 싸락눈이 왔다.

백두산에서는 여러 가지 눈형태가 부단히 교체되면서 내린다. 1984년 6월 10일에는 하루동안 눈이 내렸는데 오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싸락눈, 덩이눈이 번갈아 내리고 오후부터는 직경 2㎝내외의 큰 눈송이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백두산지구에서 첫눈이 내리는 평균날자는 백두산에서 9월 5일, 삼지연에서 9월 24일, 백암에서 9월 27일이다. 이것은 평양에 비하여 1.5~2개월이나 빨리 눈이 내리는 것으로 된다.

백두산의 눈시작, 마감날자와 쌓인눈 일수 및 최대높이,
백두산의 눈시작, 마감날자와 쌓인눈 일수 및 최대높이지점/ 시작날자/ 마감날자/ 눈 내리는 기간의평균일수/ 쌓인 눈일수쌓인 눈높이, ㎝가장 빠른평균/ 가장 늦은/ 가장 빠른 평균가장 늦은 해발 1400m 아래지역에서는 눈이 10월 초~중순에 내린다. 첫눈은 해에 따라 빠르거나 늦어지는데 가장 빠른 날자는 삼지연과 백암에서 9월 10일이고 혜산에서 9월 26일로서 평균첫눈날자보다 15일 정도 앞선다.

첫눈이 가장 늦을 때는 삼지연에서 10월 10일, 백암에서 10월 25일, 혜산에서 11월 2일로서 평균 첫눈오는 날자보다 20일정도 늦어진다.

봄철마감눈은 해발높이 800m이하되는 지역에서는 평균 4월 하순, 해발높이 800~1300m인 곳에서는 5월 상순, 1300m이상 지역에서는 5월 중순 또는 하순에 내린다.

백두산에서 마감눈은 6월 12일경에 내린다. 봄철마감눈이 제일 빨리 끝날때에는 평균날자보다 25일~1개월 빨라지는데 혜산에서 4월 5일, 삼지연에서 4월 14일에 끝난다.

봄철마감눈이 제일 늦게 올 때는 평균날자보다 20일~1개월 늦어지는데 삼지연에서 6월 7일, 혜산에서 5월 30일까지 온다. 이와 같이 봄철 마감눈이 오는 날자는 가을철 첫눈이 오는 날자보다 지역적 차이가 심하다.

백두산지구에서 눈이 쌓여 있는 일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 해발높이가 800m이하인 지역에서는 110일내외이며 800~1300m지역에서는 120~150일, 1300m 이상되는 지역에서는 150~180일, 백두산에서는 8개월정도이다.

눈내리는 기간의 평균일수는 삼지연에서 237일, 백암에서 240일, 백두산에서 289일이며 기타 지역은 200일 안팎이다.

눈오는 일수는 백두산에서 134일로서 평양의 32일에 비하여 무려 102일이나 더 많고 백암에서 107일, 포태에서 97일, 혜산에서 96일이다. 겨울철에는 매달 15일이상 눈이 내린다. 눈오는일수는 봄철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적어진다.




눈온일수의 변화

눈이 가장 많이 쌓였을 때의 눈높이는 삼지연에서 120㎝이고 기타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30~60㎝이다. 눈쌓인 높이는 월에 따라 다르며 같은 지역에서도 지형부위에 따라 다르다.

관측자료에 의하면 눈이 최대로 쌓인 때는 겨울초보다 겨울이 끝나가는 3월이다. 삼지연에서는 4월에 최대로 된다. 이때 눈높이는 120㎝였다.




쌓인눈 최대높이의 변화

백두산지구에서 눈쌓인 높이는 일반적으로 해발높이에 따라 높아지는데 지형이 두드러진 곳과 우무러진 곳, 바람맞이면과 그 뒤면,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달라진다.

백두산의 눈깊이(1989년 4월 6일)
백두산에서 평균눈높이는 천지호반에서 2m, 백두산경사면에서 3m 정도이고 일부 골짜기에는 수십m에 달하는 눈무지가 있다.

백두산에서는 눈의 두께가 5월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며 5월 중순부터 눈석이가 시작되여 6월 초순에 대부분이 녹는다.




쌓인눈높이,

백두산밀영 주변에서 눈분포상태를 조사한데 의하면 다음 표와 같다.

백두산밀영 주변의 눈분포

백두산밀영 주변의 눈분포장소 눈높이, ㎝조사한 시간4월 초에 백두산밀영지구에서 눈분포를 보면 백두산밀영의 고향집뜨락과 정일봉마루와의 눈깊이차는 40㎝였다. 백두산밀영의 뒤 경사지에서는 해빛을 받아 눈이 다 녹았으나 거기로부터 100m정도 떨어진 정일봉절벽밑에서부터는 눈높이가 평균 60㎝였고 높이가 2~3m되는 곳들도 있었다.

백두산밀영에서의 월별 눈높이는 다음 표와 같다.
백두산밀영에서의 월별에 따르는 눈높이

백두산밀영에서의 월별에 따르는 눈높이 월 눈최대 높이, ㎝ 평균 높이, ㎝눈 높이 30㎝ 이상되는 일수/백두산밀영에서 눈최대높이는 2월에 172㎝로서 제일높고 11월에 56㎝이다.

백두산지구의 눈밀도는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1990년 3월 중순에 측정한 자료에 의하면 평균기온이 -5℃ 안팎인 때 신무성에서 0.22g/㎤, 무두봉에서 0.27g/㎤, 향도역에서 0.13g/㎤, 백두산밀영에서 0.26g/㎤이였다.

눈립자의 크기를 보면 산림한계선이상에서는 0.1㎜미만이 대부분이고 그 아래에서는 1.0㎜안팎이다. 눈의 구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삼지연-무두봉밑까지의 구간에서는 넙적하고 다각형모양이 기본인데 무두봉이상에서부터는 기둥형태가 위주로 되면서 다각형모양이다.

백두산밀영에서는 6각판대기형과 다각형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립자의 크기는 0.5~1.0㎜이다.

백두산지구의 눈은 매우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장군봉에서 눈에 포함된 이온을 분석한 데 의하면 다음과 같다.

백두산 장군봉의 눈에 포함된 성분량
pH는 6으로서 약산성을 띠며 염소는 1.36ppm으로서 위생허용한계의 4.5%정도로서 극히 적고 류산기도 위생허용한계의 17%정도밖에 안된다.

백두산지구의 눈에 포함된 원소함량을 지점별로 분석한데 의하면 다음 표와 같다.

백두산의 눈에 포함된 원소함량
 Ca, Na, Cu가 다른 원소들보다 많은데 1~2ppm이다. 원소의 함량은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많아지는 경향을 띠는데 Ca는 삼지연에서 1.3ppm인데 장군봉에서는 2ppm이며 Na는 삼지연에서 0.5ppm인데 장군봉에서 2ppm이다. Cu는 삼지연에서 0.01ppm인데 장군봉에서 1.2ppm으로 많아진다. Mg는 전반적지역에서 0.2~0.3ppm정도 포함하고 있다.

백두산지구에서는 눈보라일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백두산지구가 기온이 낮고 바람이 세기 때문이다.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부는 높은 산정들과 산림한계선이상지역에서 눈보라가 자주 일어나는데 눈보라일수는 백암에서 76일, 삼지연에서 18일, 백두산산정에서 230일 안팎이다. 년중 월별 눈보라일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백두산의 눈보라일수 눈보라는 전반적지역에서 11월부터 증가하여 12월부터 급격히 많아지고 3월까지 계속된다. 전반적지역에서 눈보라일수는 3월에 제일 많다.

백두산의 눈보라는 그 지속성이 길고 매우 엄혹하다. 눈보라가 한 번 일기 시작하면 몇일씩 계속되며 온천지를 눈가루 속에 파묻혀 버린다.

1990년 12월 20일부터 시작된 백두산의 눈보라는 26일까지 7일간이나 계속되였다. 1984년 4월 9일에 있은 눈보라때에는 1m앞도 보이지 않았다.

백두산지구는 년강수량중에서 강설량이 차지하는 비률이 높다. 백두산지구의 전반적지역에서 강설량이 차지하는 비률은 10%이상인데 무두봉에서 24%, 백두산밀영에서 20%로서 평양에 비하면 3~4배에 달한다.

다음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강설량이 년강수량에서 차지하는 비률은 높이에 따라 커진다. 특히 강설량이 많은 때는 11월과 3월이다.

백두산의 강설량
백두산의 설경, 연합뉴스 사진 겹처,
유의 사항
  • ***본 내용은 1992년 북한에서 발행된 '백두산 기상수문' 자료로, 북한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북한 자료의 특수성으로 내용의 최신성이나 이미지의 선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점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출처 ^ 참고문헌,
[백두산지구의 눈 (북한지리정보: 백두산 기상수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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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4일 금요일

'한국, 라면 · 김치,' 날개 달았다,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한국, 라면 ·김치,' 날개 달았다,

코로나 속 김치·라면 주도로 농식품 8월 누적 수출, 지구촌 라면 열풍에…

라면,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요?
중국인들이 먹던 납면(拉麵)으로부터 라면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중국의 란저우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즐겨먹던 국수 중 하나였던 ‘납면’은 중국어로 [라미엔]이라고 발음됩니다.

일본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 중국사람들이 일본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납면을 노점판매하면서 일본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라멘’이 초기에는 중화요리로 구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라멘’은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먹는 라면의 형태는 일본 닛신식품이 1958년 8월25일 '치킨라면(チキンラㅡメン)'을 대량생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의 라면, 어떻게 ?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닛신식품을 설립한 안도 모모후쿠입니다.

그는 한 선술집에서 뜨거운 기름에 반죽을 입힌 어묵이 튀겨질 때 밀가루 속의 수분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라면의 원리를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국수를 튀긴 후 건조시키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그걸 다시 뜨거운 물에 넣으면 원래 상태로 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라면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건면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녔는데 이러한 점을 미리 알고 라면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초기 라면의 진화,


1958년 「라면 탄생」
1958년 닛신식품의 “치킨라면”이 최초로 출시되었습니다. 현재처럼 스프가 따로있지 않고 면 자체에 양념이 반죽되어 있는 형태였습니다.

1961년 「분말스프 개발」
1961년 일본 명성식품은 양념을 건조•분말화하여 현재와 같이 별도 포장한 스프 형태로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건더기 스프가 대중화 되면서 라면의 맛과 품질이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962년 「건면 출시」
1960년대, 일본 각 제조사에서는 기름에 튀기지 않고 열풍으로 건조시킨 건면을 개발했습니다. 건면의 등장으로 건조기술이 발전하고 건면에 어울리는 액상스프, 포장재와 설비 개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971년 「용기면의 등장」
뜨거운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용기면」이 개발되었습니다. 닛신식품의 안도모모후쿠 사장이 회의석상에서 미국 바이어가 종이컵에 라면을 부수어 포크로 먹던 모습에서 착안하였다고 합니다

전세계의 사랑을 받는 라면! 라면의 세계화!
라면은 현재 일본과 한국, 중국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인도, 호주,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영국 등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식품이 되었습니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라면을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으로 연간 462억 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합니다.


중국 다음으로 인도네시아, 일본, 베트남, 인도,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는 35억 개로 6위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인당 라면 연간 소비량은 73개로 수십 년간 독보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00여개국 이상에 라면을 수출하는 라면 강국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의 라면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 라면의 브랜드 인지도는 90% 이상이고, 러시아에서는 88올림픽 이후 한국의 용기 라면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라면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신라면과 같은 한국의 라면이 인기를 얻고 있을 정도입니다.


전 세계가 '집콕' 하니???!
올들어 코로나로 수출 부진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아이스크림이나 라면 같은 식품들은, 날개 돋친듯이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거리 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식품을 많이 사먹은 영향 인데요.

올들어 사상 최대 수출 기록 까지 갈아 치우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한국 식품을 소개하는 영상이 넘쳐납니다.

라면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스턴트, 국수를 증기로 익히고 기름에 튀겨서 말린 즉석식품. 가루수프를 따로 넣는다,.

먼저,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멜론이나 수박맛 아이스크림.
"Oh yeah, oh yeah, This is so good."

물고기 모양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 본 외국인은 한국 사람과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꼬리부터 먹을래요." "저는 입부터…"

독창적인 소재나 모양에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한국 아이스크림은 외국인들 입맛도 사로잡아, 올해 수출액은 4천 7백만 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넘게 증가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가장 잘 팔렸는데, 올들어 8월까지 수출액이 지난 한해 전체 수출액보다 29%나 많았습니다.

[강연호/관세청 통관기획과장] "북미지역에서 BTS 등으로 대표되는 한류 문화의 확산, 그리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동제한이 확대되면서, 아이스크림 등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양식품 삼양라면 120g



삼양식품 매운맛 삼양라면 120g



한국의 각종 라면들,

라면 역시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습니다.

올들어 8월까지 수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6% 증가한 4억 5백만 달러.
전체 식품군 가운데 수출 1위 품목인 라면은, 아예 해외 현지법인을 세워 직접 판매도 하는데, 한 기업의 올해 해외법인 판매액은 수출액의 3배에 달했습니다.

[천재하/라면업체 과장] "연초 짜파구리 열풍에 이어서 코로나19로 '집콕'이 늘어나면서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30%가 증가한 사상 최대 해외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국 등에서도 집밥을 많이 해먹으면서 김치 수출도 40% 늘었고, 된장·고추장 같은 소스류 수출도 24%나 증가했습니다.

"한국 문화가 인지도가 높아지고,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고요. 처음 입맛을 들이기가 힘들지, 이제 문이 열려버리면 수요는 계속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풀무원이 미국 진출 23년 만에 처음 흑자를 냈고, 해외 판매 비중이 높은 오리온도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코로나로 인한 수출 부진 속에서도 한국식품 'K-푸드'는 약진하고 있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라면 판매대,


코로나 속 김치·라면 주도로 농식품 8월 누적 수출, 지구촌 라면 열풍에…8월 누계 농식품 수출액 49억달러,
1~8월 농식품 수출액 48억4567만달러…전년 동기비 4.9% 증가,

라면 수출만 4억500만달러…김치·고추장·삼계탕도 해외서 인기농림축산식품부는 8월말 누계 기준 농식품 수출액(잠정)이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한 48억4567만달러(약 5조7600억원)를 기록했다고 3일 밝혔다.

우리나라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김치와 라면 판매가 늘면서 농식품 수출은 지난해보다 5% 가까이 늘어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8월까지 누적 농식품 수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9% 증가한 48억4567만달러 잠정 집계됐다고 3일 밝혔다.

김치는 지난해 동기보다 40.3% 증가한 9800만달러를 수출했다. 미국과 호주로의 수출이 각각 69.1%와 76.4% 뛰었고 일본 수출도 29.3% 증가했다.

코로나19로 건강·발효 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순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비건 김치' 등을 통해 새로운 수요층을 공략하면서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라면 수출액은 36.7% 증가한 4억500만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가정 내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으로 수출이 늘었다. 라면 수출은 전체 농식품 수출액의 8.4%에 달했다.

가정에서 요리에서 쓰이는 고추장 등 장류와 즉석밥, 떡볶이 등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소스류·쌀가공식품의 수출도 호조세를 보였다.

고추장 수출액은 332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35.6%,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8500만달러로 21.7% 증가했다.

닭고기는 홍콩·미국에서 여름철 보양식품으로 간편식 삼계탕이 잘 팔렸고 베트남에서는 닭가슴살이 인기를 끌어 수출액이 5000만달러를 넘어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연말까지는 하반기 출하가 집중되는 포도·배·딸기·파프리카 등 과실·과채류 신선농산물 수출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올해 1~8월 농식품 수출액을 집계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며, 품목별로 김치(9790만달러, 40.3%↑), 라면(4억540만달러, 36.7%↑), 소스류(2억90만달러, 23.5%↑), 닭고기(5020만달러, 24.2%↑), 쌀가공식품(8500만달러, 21.7%↑) 등의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김치는 코로나19로 인해 건강·발효 식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년 동기대비 40.3% 증가한 9800만달러를 수출했다.

라면은 장기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토대로 가정 내 간편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미국·일본·중국 등에서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수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36.7% 증가한 4억500만달러다. 이는 전체 수출액(48억4567만달러)의 8.4%에 해당한다. 농식품부는 "라면은 올해 들어 수출 증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별 전략 품목을 선정하고 비대면·온라인 마케팅을 적극 추진하여 김치(40.3%↑), 라면(36.7↑), 소스류(23.5↑), 닭고기(24.2↑), 쌀가공식품(21.7↑) 등의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김치는 코로나19로 인해 건강·발효 식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비건 김치 등 새로운 수요층을 적극 공략하여 전년 동기대비 40.3% 증가한 98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였다.
라면은 장기보관 및 가정 내 간편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수출대상국에서 큰 폭으로 증가하여 전년 동기대비 36.7% 증가한 4억 5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 신세계푸드.>

이는 전체 수출액 48억 4570만 달러의 8.4%에 해당하는 것으로 올해 수출 증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스류·쌀가공식품의 성장도 눈에 띄는데 가정에서 요리에 활용되는 고추장 등 장류의 소비 증가, 즉석밥과 떡볶이의 인기가 수출 증가로 이어졌다.

닭고기는 계절적 수요로 홍콩·미국에서 보양 식품으로 간편식 삼계탕과 베트남에서 닭가슴살 등의 인기에 힘입어 5천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였다.

아울러 소스류·쌀 가공식품 역시 즉석밥, 떡볶이는 물론 가정에서 요리에 활용되는 고추장 등 장류의 인기가 오르면서 수출액이 증가했다. 닭고기는 홍콩·미국에서 간편식 삼계탕 수요가 증가했으며 베트남에서 닭가슴살 인기가 오르면서 5000만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김종구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국가별 전략 품목을 선정하고, 민간과 정부가 협력해 온라인 비대면 사업을 적극 추진한 결과 농식품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수출 여건 속에서도 농식품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것은 국가별 전략 품목을 선정하고 민간과 정부가 협력하여 온라인 비대면 사업을 적극 추진한 결과로 판단된다"며 "연말까지는 하반기에 출하가 집중되는 포도·배·딸기·파프리카 등 과실·과채류 신선농산물에 대한 수출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수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치와 라면 수출이 크게 늘면서 농식품 수출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들어 지난달까지 농식품 수출액은 48억 4567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4.9%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라면 ???
인스턴트 라면, 호평을 받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2009년 우리나라, 라면 종주국이 되다/ 한ㆍ중ㆍ일, 라면의 시초를 두고 논쟁하다/ 1870년 일본에 라멘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 라멘, 일본의 전통 음식이 아니다/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 일본 라면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 안도 모모후쿠/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 닛싱 치킨 라멘/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 개발/ 안도 모모후쿠의 경영철학 : 인스턴트 라면 제조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다/ 안도 모모후쿠,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전중윤 회장, 인스턴트 라면으로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겠다/ 삼양라면, 1980년대에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 한국식 라면이 만들어진 계기/ 맵고 짠 한국식 라면의 폭발적인 성장/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덕에 쌀 소비도 늘어나다/ 우지파동’으로 라면 고급화와 다양화의 길을 걷다/ 가장 늦게 라면을 만든 한국, 세계 최대의 라면 수출국이 되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라면 -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스턴트 (사물의 민낯, 2012. 4.., 갈릴레오 S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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