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東醫寶鑑.
선조 30년(1597) 임금의 병과 건강을 돌보는 어의 허준(1546∼1615)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적을 하나로 모아 편집에 착수하여 광해군 3년(1611)에 완성하고 광해군 5년(1613)에 간행한 의학 서적이다. 이는 총 25권 25책으로 목활자로 발행하였다.
허준은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내의원의 의관이 되었다.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책이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 독일 등의 의학 서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의보감》은 의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탁월한 의학적 내용과 세계 최초로 발간된 공중 보건안내서라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1610년(광해군 2) 허준(許浚, 1546∼1615)이 저술한 의학서적으로, 1613년(광해군 5) 내의원(內醫院)에서 허준의 《동의보감》을 훈련도감자(訓鍊都監字)로 찍어내었다.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서적은 2009년 7월 31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5년 6월 국보로 지정되었다.
허준은 이름 있는 양반 가문의 서자, 즉 양반 출신의 아버지와 평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양반과 상민 사이의 중인 신분으로 살아야 했어요.
대부분 양반들은 과거 시험 중 문과에 응시해 합격한 후 문신(文臣)으로 활동했는데, 중인은 과거 시험 중 기술을 가진 신하를 뽑는 잡과에만 응시할 수 있었어요.
중인 신분이었던 허준은 잡과에 응시해 합격한 후, 의술을 닦아 궁중 의사인 내의원이 되었어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신분에 과하다는 여론이 일자 취소되었다.
『동의보감』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며, 허준 선생은 이외에도 중국의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2천여 가지의 병종을 밝혀내고 4천여 가지의 처방과 1400 종의 약제에 대해 기록한 동양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 이 동의보감이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의원이 된 허준은 의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궁중 의사로서 나날이 이름이 높아만 갔어요. 또 왕자 신성군의 천연두를 치료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지요.
중인으로서 과분한 지위까지 오르고, 양반으로까지 신분이 상승되자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어요. 그동안 조정의 문신들은 기술관 출신의 신하들을 무시해 왔지요.
의관 출신 허준은 신분이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왕에게 파격적인 특별대우를 받다보니 불만이 터진 겁니다.
그러나 허준을 향한 선조의 신뢰는 변함이 없었어요. 허준 역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의주로 가는 선조의 힘겨운 피란길을 끝까지 함께하여 충성을 다했지요.
선조는 허준의 실력을 믿고 지지해 주며 의학책을 쓸 수 있도록 지시해 『동의보감』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무엇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동의보감』이라는 탁월한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한 치료법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선조와 허준의 사명감 때문이었어요.
선조는 전쟁 통에 곳곳에서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구석진 시골 마을에는 의술과 약이 없어 일찍 죽는 사람이 많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약품이 많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약초의 이름과 효과를 적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선조의 명령으로 대대적인 국가사업이 시작되었어요. 일본과 명이 휴전을 맺어 잠시 전쟁이 중단된 틈을 타 허준과 더불어 다른 몇몇 의원들이 힘을 모아 책을 만들기 시작.
개주갑인자본, 25권 25책이다. 1596년(선조 29) 왕명에 의해 내의원(內醫院)에 편찬국을 두고 허준·양예수(楊禮壽)·이명원(李命源)·정작(鄭碏)·김응탁(金應鐸)·정예남(鄭禮男) 등이 한(漢)나라 때에 체계화를 이룬 한의학을 중심으로 동방의학의 총집성과 더불어 민족의학을 정립시키는 대역사(大役事)에 착수하였다.
착수 1년 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일시 중단되는 곡절이 있었지만, 허준은 이를 자신의 일생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결심하고 집념으로 저술에 임하였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증적 학구의 자세와 명민한 관찰력 그리고 고전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토대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살려 기본학리가 임상에 직결되기까지 일관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의술의 구체화를 이룩하였다. 그 결과 14년 후인 1610년(광해군 2) 8월 6일 마침내 25권이라는 방대한 의서가 완성되었고, 《동의보감》이라 이름하여 1613년 11월에 개주갑인자로 인쇄, 간행되었다.
감교관(監校官)은 내의원 직장(直長) 이희헌(李希憲), 부봉사(副奉事) 윤지미(尹知微)였으며, 서문은 이정구(李廷龜)가 썼다. 이 책에 인용된 의서(醫書)는 조선 세종(世宗:재위 1418∼1450) 때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방유취(醫方類聚)》와 선조 때의 《의림촬요(醫林撮要)》를 비롯해 중국의 한(漢)·당(唐)나라 이래 명(明)나라까지의 의방서가 인용되었다.
이 책은 내과에 관계되는 내경편(內經篇) 4권, 외과에 관한 외형편(外形篇) 4권, 유행성병·급성병·부인과·소아과 등을 합한 잡병편 11권, 약제학·약물학에 관한 탕액편(湯液篇) 3권, 침구편(鍼灸篇) 1권, 목차편 2권, 계 25권으로 되어 있다.
동의보감은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하여 지금까지 의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동의보감 초간본(목활자본)은 전본이 드물어 희소성이 있으며 한국의학사와 임난 이후 도서출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의보감(오대산사고본, 25권25책, 36.6×22.0㎝)은 1614년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에 보관된 책이며, 1991년 9월 30일 보물 제1085-1호로 지정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동의보감(적성산사고본, 25권25책, 36.6×22.0㎝),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동의보감(태백산사고본, 24권24책과 17권17책 2종류, 36.6×22.0cm)은 2008년 8월 28일 각각 보물 제1085-2호, 제1085-3호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은 완질이지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두 종류는 일부가 빠져나간 결락본(缺落本)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은 완질이지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두 종류는 일부가 빠져나간 결락본(缺落本)이다.
해당 소장본 중 24권24책은 잡병편 권6의 1책이 결본이고, 17권17책은 8책이 결본이다. 다만 24권24책에서는 빠져 있는 잡병편(雜病篇)이 제17권17책에는 포함되어 있다.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서 《동의보감》이 담은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하여 1613년 허준이 간행에 직접 관여한 초판 완질 2본(오대산사고본, 적성산사고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이는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었으며, 의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서 《동의보감》이 담은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하여 1613년 허준이 간행에 직접 관여한 초판 완질 2본(오대산사고본, 적성산사고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이는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었으며, 의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2015년 6월 22일 동의보감 세 본은 각각 국보 제319-1호, 제319-2호, 제319-3호로 승격·지정되었다.
[UNESCO 지정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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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유산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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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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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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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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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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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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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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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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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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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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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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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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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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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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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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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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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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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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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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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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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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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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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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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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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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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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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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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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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에게도 위기는 있었어요. 가장 큰 위기는 선조의 죽음이었어요.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허준을 쫓아내기 위해 신하들이 입을 모은 거예요.
“전하가 돌아가신 건 다 허준이 약을 잘못 썼기 때문이오. 어의(궁궐 내에서 왕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라면서 임금님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했으니 그 벌을 받아야지요!”
조선 시대 왕의 죽음은 담당 어의의 책임이었어요. 이때 허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다름 아닌 광해군이었어요.
한번음 허준의 치료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광해군은 허준을 감싸려 했어나.
해군은 허준을 시기하던 신하들의 반대를 꺾을 수는 없었어요. 결국 허준은 의주로 유배를 떠나야 했고, 그곳에서 묵묵히 의서 집필에 몰두했지요.
시간이 흘러 유배가 풀렸을 때 광해군은 70세가 넘은 허준을 내의원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병을 돌보게 했어요.
『동의보감』을 계속 쓸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동의보감』이 완성됐습니다. 허준이 처음 책을 쓴 지 15년째 되는 해의 일이었지요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반인들도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하여 전국에 보급하려 했어요.
이러한 임금의 뜻을 받들어 어의로 있던 허준은 왕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학서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의서를 완성했으니, 이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에요. ≪동의보감≫이 다른 의학 서적에 비하여 돋보이는 점은 여럿 있어요.
첫째,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재 대신 우리 산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어요.
둘째, 약재 이름을 의원들이 쓰는 전문 이름과 시중에서 민간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한글 이름으로 함께 기재해 놓아 누구라도 쉽게 약재를 찾을 수 있게 했어요.
셋째, 세계 최초로 예방 의학을 강조했어요. 병들어 몸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병이 나기 전에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을 강조하여 세계 보건 기구가 중시하는 ‘정신적·육체적·사회적 건강과 안녕’이라는 이념을 이미 400여 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어요.
넷째, 중국·일본·대만 등지에 번역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어요.
동의보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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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록 유산 등재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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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시기 |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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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화재 지정 종목 |
국보 제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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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곳 |
국립 중앙 도서관, 한국학 중앙 연구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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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종목 | 국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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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의서, 개주갑인자본 |
저자 | 허준 |
지정번호 | 국보 제319-1호(오대산사고본), 제319-2호(적성산사고본), 제319-3호(태백산사고본)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15년 6월 22일 |
소장 | 국립중앙도서관(오대산사고본), 한국학중앙연구원(적성산사고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태백산사고본) |
소재지 |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오대산사고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적성산사고본),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태백산사고본) |
종류/분류 | 활자본류 |
≪동의보감≫ 어떻게 편찬?
임진왜란으로 전염병이 번지며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선조 임금은 당시 최고의 의사였던 허준에게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하게 했어요. 임금님의 지시를 받은 허준은 이날부터 중국과 조선의 여러 의서들을 연구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의서를 만들어 냈으니, 이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에요.
≪동의보감≫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동양 의학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세계 최초의 일반인을 위한 의학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유네스코는 ≪동의보감≫의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세계 기록 유산으로 ≪동의보감≫을 등재했어요.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 유산은 약 200여 점에 달하는데, 이 중에서 의학 서적은 ≪동의보감≫이 유일하다고 해요.
1597년에 전쟁(정유재란)이 다시 시작되어 정국이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자, 의서 편찬 작업은 잠시 중단되었어요. 이후 1598년에 왜란이 완전히 끝나며 전후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선조 임금은 대중 의학서 편찬을 재차 지시하였고, 이때부터 책은 허준이 단독으로 집필해요. 따라서 1610년에 완성된 ≪동의보감≫은 처음에는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만들다가 중간부터 허준 단독으로 만들어 완성한 책이에요.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다.
선조 임금이 처음 책 만들기를 지시했을 때는 임진왜란 중으로, 일본과 명나라가 휴전 협정을 맺어 잠시 전쟁을 중단하고 있던 때였어요. 이 시기에 임금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의서를 편찬하라고 왕실의 의사들에게 지시하여, 의사들은 대표 의사인 양예수를 중심으로 6명이 공동으로 1596년부터 의서 만들기에 들어갔어요.
2009년 여름, 제9차 세계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는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네덜란드의 《안네의 일기》 등 총 35점의 기록물이 새롭게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동의보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보감》을 주목한 것은 《동의보감》이 의학 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193점의 기록 유산 중 의학 서적은 《동의보감》이 유일합니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발간한 의학 서적은 매우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보감》을 주목한 것은 《동의보감》이 의학 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193점의 기록 유산 중 의학 서적은 《동의보감》이 유일합니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발간한 의학 서적은 매우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보감》이 의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의학적 내용과 세계 최초로 발간된 공중 보건안내서라는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지요.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은 물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동양 의학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은 물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동양 의학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조선 14대 임금 선조의 명으로 펴내게 되었어요. 궁궐에는 《동의보감》을 편찬하기 위하여 편서국이란 기구가 따로 만들어졌지요. 어의 출신인 양예수와 허준 등 총 여섯 명이 1596년부터 편서국에서 집필을 시작했답니다.
《동의보감》 편찬은 임진왜란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안정을 찾자 허준은 홀로 《동의보감》을 쓰기 시작하여 1610년 광해군 때 완성했습니다.
《동의보감》은 각 병마다 증상과 처방을 체계적으로 풀이한 의학 서적이지만, 병을 고치는 것에 앞서 미리 병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는 것을 중시하여 쓰여진 것이 큰 특징입니다.
《동의보감》은 각 병마다 증상과 처방을 체계적으로 풀이한 의학 서적이지만, 병을 고치는 것에 앞서 미리 병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는 것을 중시하여 쓰여진 것이 큰 특징입니다.
서양 의학에서는 어느 부위에 병이 생기면 그것을 자르고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동양 의학은 병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관리하고 예방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이런 의학적인 형태를 ‘양생’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서양 의학에서도 동양 의학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동의보감》은 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총 25권의 책에 담아 놓았습니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인 오장육부에 관한 내경편, 눈에 보이는 몸의 각 부위에 관한 기능과 질병에 관한 외형편, 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병의 원인과 증상을 설명하고 기본적인 치료 방법을 기록한 잡병편, 그리고 약재를 구하는 방법과 처방하는 요령을 적은 탕액편, 마지막으로 침과 뜸에 관한 이론과 시행 방법이 적힌 침구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양 철학과 동양인의 마음을 의학에 접목시킨 것도 서양의 의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의보감》의 우수성이지요.
동양 철학과 동양인의 마음을 의학에 접목시킨 것도 서양의 의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의보감》의 우수성이지요.
《동의보감》은 기본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어요. 병이 단순히 어떤 한 부분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현대 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모든 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측면까지 다루고 있는 거예요.
《동의보감》은 어느 의학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과 희귀성을 갖춘 책입니다. 백성을 위해 국가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어느 의학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과 희귀성을 갖춘 책입니다. 백성을 위해 국가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서를 두루 참고하여 쓰여진 책이에요. 《동의보감》이 비단 우리만의 의학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서적이라는걸 알 수 있어요.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 등에도 소개되어 지금까지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총 25권의 책에 담고 있어요.
지금처럼 의료 보험이 없던 조선 시대에는 돈이 없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를 마음 아프게 생각했던 허준은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와 치료 방법을 《동의보감》에 썼습니다.
그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과 의원이 없는 곳에 살던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요. 《동의보감》이 발간되고 약 200년이 지난 조선 후기에는 보다 많은 백성을 병마로부터 구제하기 위하여 왕실에서 아예 한글로 된 《동의보감》을 간행하여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의 건강을 위하여 국가가 나서서 의학서를 발행한 것은 《동의보감》이 처음이었습니다.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신뢰성을 더욱 인정받았고, 이는 《동의보감》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백성들의 건강을 위하여 국가가 나서서 의학서를 발행한 것은 《동의보감》이 처음이었습니다.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신뢰성을 더욱 인정받았고, 이는 《동의보감》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내경〉편 -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인 오장육부에 관한 사항을 담아 놨어요.
〈외형〉편 - 눈에 보이는 몸의 각 부위에 관한 기능과 질병을 써 놓았어요.
〈잡병〉편 - 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병의 원인과 증상을 적고, 이에 따른 기본적인 치료 방법을 써 놓았어요.
〈탕액〉편 - 약재를 쉽게 구하는 방법과 처방하는 요령을 적어 놨어요.
〈침구〉편 - 침과 뜸에 관한 이론과 시술 방법을 기록했어요.
〈외형〉편 - 눈에 보이는 몸의 각 부위에 관한 기능과 질병을 써 놓았어요.
〈잡병〉편 - 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병의 원인과 증상을 적고, 이에 따른 기본적인 치료 방법을 써 놓았어요.
〈탕액〉편 - 약재를 쉽게 구하는 방법과 처방하는 요령을 적어 놨어요.
〈침구〉편 - 침과 뜸에 관한 이론과 시술 방법을 기록했어요.
『동의보감』「내경편」권1 첫 장. 「내경편」에는 신형(身形)·정(精)·기(氣)·신(神)·혈(血)·몽(夢)·성음(聲音)·언어(言語)·진액(津液)·담음(痰飮)·오장육부·포(胞)·충(蟲)·대소변 등 내과에 딸린 질병과 함께 수양·양로병들과 목록이 부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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