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시장 과 책방골목. (부평동,보수동.)
부평깡통시장이 물질문화를 대변하는 공간이라면,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공간이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때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을 때 북한에서 피란 온 부부가 보수동사거리에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헌책 등을 좌판으로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부평깡통시장이 물질문화를 대변하는 공간이라면,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공간이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때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을 때 북한에서 피란 온 부부가 보수동사거리에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헌책 등을 좌판으로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한국전쟁 때 부산에 있던 학교 외에도 서울 등지에서 피란 온 학교들이 보수동 뒷산 등에서 노천교실, 천막교실 등을 열게 되면서 골목길은 학생들로 붐비게 되었다. 당시 물자의 부족으로 변변한 책을 구할 수 없었던 학생들을 상대로 하나둘씩 골목에 서점이 등장하면서 노점과 가건물로 이루어진 책방골목이 형성되었다. 1960~1970년대에는 70여 개의 점포가 자리를 잡으면서 부산의 명소가 되었고, 학생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책을 사고팔았다. 종종 값비싼 고서가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면서 책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다양한 행사를 통해 부산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구심점으로 자리해 왔다. 부산이 1914년 부산부가 되었을 때 부평정이 되었다가 1947년 동제로 바뀌면서 부평동 1, 2, 3, 4가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가 되면서 중구 부평동 1, 2, 3, 4가가 되었다. 부평동은 거주 인구에 비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상업에 의존 하는 것이고 또한 부산광역시 중구이며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서쪽에는 용두산이 있고, 동쪽에는 광복동이 인접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부민동과 함께 동래구의 부평리였다. 풀밭과 갈대밭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부산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깡통시장은 부산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남포사거리에서 접근하면 부평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이 마주하고 있는 길로 갈 수 있고, 부평교차로 방향에서 가도 된다.깡통야시장거리는 시장 4번 출구, 패션거리는 시장 2번 출구, 먹자거리는 시장 1번 출구로 들어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야채와 청과, 육류, 수산물, 곡류, 반찬, 의류와 침구류, 잡화 등 다양한 품목의 물건들을 판매한다.
여기 = https://youtu.be/fKNbbj5Mj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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