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6일 토요일

호랑이 , tiger, 虎狼

학명인 'tigris'의 어원은 '화살'이란 뜻의 페르시아어이다. 일설로는 메소포타미아지역을 흐르는 티그리스 강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생물종 분류로는 고양이과에 속하며 사자, 표범재규어와 근연속(Panthera)이다. 검은 가로줄무늬가 특징적인데, 생후부터 성장 후에도 남아 있다. 몸통은 길고 발은 비교적 짧고 코와 입끝의 폭이 좁다. 귀는 폭이 좁고 그 등면은 검은색이며 중앙에 크고 흰 얼룩점이 있다. 

수컷은 암컷보다 크고 강한 턱과 긴 송곳니가 특징이다. 발톱의 발달이 좋고 특히 첫째, 즉 엄지발톱이 강력하다. 보통 때에는 발톱집 속에 넣어 둔다.





학명Panthera tigris
동물
척삭동물
포유류
식육목
고양이과
종수6아종
멸종위기등급위기(EN : Endangered, 출처 : IUCN)
크기몸길이 1.86m∼4m
수명야생 15년, 사육 20년
서식장소산림·관목림·덤불
분포지역한대에서 열대


첫 번째 작은 어금니는 없거나, 발생 초기에 없어졌거나 위축되었다. 첫 번째 작은 어금니가 없는 만큼 송곳니 주위 간격이 상대적으로 넓어져서 사냥 시 먹이의 목덜미 깊숙한 곳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사냥 시에는 목덜미의 측면을 물어서 경추쪽에 상처를 입힌다.

망막이 잘 발달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생활이 자유롭다. 동공은 평소에는 둥근 모양이지만 빛 조절로 인해 줄어든다. '삵'이나 '와일드캣'같은 소형의 고양잇과 동물은 길쭉한 타원형으로 줄어들지만, '호랑이'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경우 작은 원형을 띤다.

몸의 세로 줄무늬는 개체마다 특이적이며, 어느 정도의 위장 효과도 있어 숲이나 초원에서 눈에 띄지 않고 먹이에 접근할 수 있다. 고위도에 분포하는 개체일수록 체형이 크다. 수컷이 암컷보다 크며, 이러한 현상은 체형이 커질수록 두드러진다. 그래서 몸 크기와 무게 역시 편차가 심하다. 가장 큰 것은 시베리아 동쪽에 분포하는 시베리아호랑이로 길이가 최대 4m에 이른다. 몸무게는 시베리아 동쪽에 분포하는 시베리아호랑이는 최대 306kg에 이르지만, 수마트라 등 저위도 지역에 분포하는 호랑이들은 70~140kg으로 시베리아호랑이의 절반이 채 되지 못한다.

성 성숙연령은 암수가 다르며 암컷은 3~4년, 수컷은 4~5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짝짓기는 정해진 시기가 있지만, 연중 내내 짝짓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임신기간은 평균 104~106일 정도이며, 평균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고양잇과 동물의 발톱은 그 끝부분이 뾰족하게 구부러져 있다. 발톱은 다리 아랫부분과 힘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으나 근육이 긴장하면 발가락이 펴지는 동시에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적응력이 뛰어나 적당한 덮개, 물, 먹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서식할 수 있다. 야행성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낮에도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으르렁: 설골이 완전한 뼈로 되어 있는 고양이 속 동물들과 달리, 범속에 속하는 대부분의 동물은 탄력성이 있는 연골성 설골을 지니고 있어서 낮은 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낼 수 있다.

물속의 호랑이?: 보통 땅 위 생활을 하지만 물을 좋아해서 수영도 잘하며, 나무 위로 올라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기록상으로는, 거리가 29km에 달하는 긴 강도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열 번에 한번: 사냥할 때는 시각이나 청각을 주로 이용하며 성공할 확률은 열 번에 한 번 정도로 그리 높지는 않다. 사냥한 동물을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우기도 하지만, 나중에 먹기 위해 먹이를 은신처로 끌고 가서 풀 등으로 덮어 놓기도 한다.

단독생활: 주로 혼자서 생활하지만 번식기에는 암수가 짝을 지어 함께 생활하며, 새끼도 독립하기 전까지는 어미 아래에서 함께 생활한다. 무리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혈연관계에 있는 개체들끼리는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개체들끼리는 서로 2~5km 정도 거리를 두고 생활한다.
호랑이의 화석은 북극해의 노보시비르스크제도와 중국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호랑이의 북방기원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기온의 저하와 더불어 다음 두 가지 길을 통하여 남하한 것으로 보고 있다.

① 우수리에서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들어가고 남하하여 말레이반도나 인도에 널리 퍼졌다. 또 육지로서 인접해 있던 수마트라·자바·발리섬까지 이르렀다.
② 서쪽으로 진출한 호랑이는 중앙아시아·이란에 이르러 널리 아시아에 분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현재는 한대에서 열대까지 분포되어 있어서 지방에 따라서 형태나 크기가 상당히 다르며 아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열대지방에 살고 있는 개체도 더위에 강하지 못하여 물가에 들어가서 몸을 식히는 일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호랑이의 기원은 추운 지방이라고 짐작한다.
고양이아과 중에서 가장 원시종이라 할 수 있는 벵골살쾡이가 분포하는 발리섬에 호랑이가 서식하였다는 점과, 오래전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잇는 육로를 통해서 많은 동물의 종이 이동하였는데 북아메리카에 호랑이가 없는 점으로 호랑이의 남방기원설도 주장되기도 한다.
6종의 아종과 3종의 멸종종으로 분류한다. 돌연변이의 결과로, 백호가 태어나기도 한다.
1) 수마트라호랑이(P. t. sumatrae): 몸이 작고 체색은 전체적으로 황갈색 또는 적갈색이다. 뺨의 털이 상당히 길고, 줄무늬의 색깔은 검다. 줄무늬의 폭이 좁고, 간격이 좁으며 수가 많다. 몸길이는 수컷 2.5m 정도, 두골길이는 수컷 30∼33cm이며, 몸무게는 75kg∼140kg이다.
2) 인도호랑이(P. t. tigris): 벵골호랑이라고도 한다. 체색은 황갈색부터 적갈색까지 다양하며 몸의 아래쪽은 흰색 털이 나 있다. 줄무늬가 적은 편이다. 겨울에는 털의 길이가 2cm 정도이며 여름털은 더 짧다. 수컷은 뺨의 털이 8cm 정도 되나 암컷은 짧다. 몸길이는 수컷 2.5∼3.2m, 두골길이는 수컷 33∼38cm이며, 몸무게는 100∼260kg이다.
3) 시베리아호랑이(P. t. altaica): 아무르호랑이, 한국호랑이(백두산호랑이)라고도 하며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크다. 과거에는 백두산호랑이가 시베리아호랑이와 다른 아종으로 분류되었으나, 현재에는 같은 아종으로 분류한다. 여름털은 짧고 겨울털은 길며 솜과 같이 빽빽하다. 몸빛깔은 황갈색이고 검은 줄무늬는 폭이 좁다. 몸길이는 수컷 2.7~3.3m, 암컷 2.4~2.7m, 두골길이는 33~40cm이며, 몸무게는 수컷 180∼370kg, 암컷 100∼200kg이다. 현재 백두산 일대와 중국 동북부 지역에 5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에서는 1929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이후 그 모습을 감추었고 1996년 4월 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멸종한 것으로 발표하였지만, 이후 2012년 7월 27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었다.
4) 말레이호랑이(P. t. jacksoni): 멸종위기종으로 체모가 약간 길고 줄무늬가 넓다. 과거 인도차이나 호랑이와 같이 구분 지었으나 현재에는 서로 다른 아종으로 분류한다. 몸길이는 2.8m 정도, 몸무게는 100∼195kg으로, 호랑이 중에서도 작은 종에 속한다. 약 1,000여 마리 정도가 생존해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말레이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의 일부의 높은 산이나 깊은 숲속에 서식한다.
5) 아모이호랑이(P. t. amoyensis): 남중국호랑이라고도 불린다. 체모가 약간 길고 줄무늬가 넓다. 몸길이는 수컷 2.3~2.7m, 암컷 2.2~2.4m, 두골길이는 수컷 31~34cm, 암컷 27~30cm이며, 몸무게는 100∼175kg이다. 중국 양쯔강 이남의 광동, 후난, 장시 지역에 분포한다. 야생에서의 개체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동물원에 극소수의 개체만 살아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6) 인도차이나호랑이(P. t. corbetti): 한때 말레이호랑이와 같은 종으로 취급하였으나 현재는 다른종으로 구분된다. 털빛이 진하며 송곳니가 발달하였다. 몸길이는 수컷 2.55~2.85m, 암컷 2.7~2.75m, 두골길이는 수컷 27.5~31.1cm, 암컷 24~24.5cm이며, 몸무게는 수컷 150~190kg, 암컷 100~130kg이다. 중국 서남부와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 분포하며 산의 깊은 숲속에 서식한다.
7) 발리호랑이(P. t. balica): 9종의 호랑이 중 가장 작은 종으로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서식하였던 호랑이다. 1937년 멸종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몸길이는 수마트라 호랑이보다 작은 2~2.2m이며, 몸무게는 수컷 90~100kg, 암컷 65~80kg이다. 털은 짧으며 진하고 어두운 주황색에 줄무니가 다른 아종에 비해 적다.
8) 자바호랑이(P. t. sondaica):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서식했던 호랑이로 현재는 멸종되었다. 몸길이는 약 2~2.45m로 발리호랑이 보다 조금 크며, 몸무게는 수컷 100~141kg, 암컷 75~115kg이다. 대부분 길고 얇은 줄무늬를 가지고 있고, 빰의 털이 상당히 길다. 서식지 파괴와 수렵으로 인해 멸종되었다.
9) 카스피호랑이(P. t. virgata): 멸종된 3개 아종 중 하나로 1970년대 멸종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페르시아호랑이, 히르카니아(hyrcania)호랑이라고 불렸다. 카스피 남쪽부터 중국 서부에 분포하며 몸길이는 수컷 2~2.7m, 암컷 1.6~1.8m이며, 몸무게는 최대 240kg이다. 줄무늬는 좁고 촘촘하며 털색은 주황색에 가깝다.
호랑이는 산림·관목림·덤불과 같은 곳에서 서식하며 물가에서 헤엄을 즐긴다. 단독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새끼를 키울 때에는 암·수와 새끼들로 구성되어 가족 단위의 무리를 이룬다. 발정기가 되면 독특한 신음소리를 내며 늦은 가을에서 봄에 걸쳐서 교미가 이루어진다. 발정은 11월부터 2월까지에 많이 볼 수 있는데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임신기간은 대개 100∼110일이며 한배에 평균 2∼4마리를 낳는다. 보금자리는 바위그늘이나 동굴 같은 곳에 만든다. 새끼는 태어났을 때부터 줄무늬가 있으며 몸무게는 1kg 내외이다. 1∼2주 사이에 눈을 뜨고 4∼5주 후에 걷기 시작하며 약 3개월이면 젖을 뗀다. 1∼2년이면 독립하며 암컷은 3∼4년에 성숙한다.
먹이는 자연계에서는 사슴이나 산양·멧돼지·토끼·들쥐·꿩 등이 주를 이루며 파충류도 잡아먹는다. 수명은 야생 상태에서는 약 15년 정도이며 사육을 하면 약 20년 정도이다.
 
옛 조상들은 호랑이를 범이라고 불렀으며 산신령()·산군()으로, 백두산 인근에서는 노야()·대부()로 여겼다.
호랑이는 건국신화에 등장하여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조급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이는 범 부족이 곰 부족에게 패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삼국유사》에 후백제의 견훤이 유아 때 호랑이가 젖을 먹였다 하여 영웅의 보호자이며 창업의 조력자로 부각시켰고, 고려 태조의 5대조 호경()이 굴 속에 잠을 자다가 굴 입구에서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었다. 이에 호경이가 밖으로 나왔더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굴이 무너졌다. 여기서 호랑이는 신의 사자 또는 신 자체로 등장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호랑이를 산군()이라 하였다. 호랑이 숭배사상과 산악 숭배사상이 융합되어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를 상징하여 산신당의 산신도로 나타나 있는 등 한국 민족에게 신수()로 받들여진 것은 오래 된 일이다. 호랑이의 용맹성은 군대를 상징하여 무반()을 호반()이라 하였다. 호랑이는 병귀나 사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져 호랑이 그림이나 호()자 부적을 붙이면 이를 물리친다는 속신이 있다. 소의 목에 단 쇠방울이나 절의 풍경도 같은 속신에서 나온 방편이었다.
호랑이는 인간의 효행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고, 성묘하는 효자를 등에 실어 나르거나 시묘살이하는 효자를 지키며, 은혜를 갚기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는 호랑이를 효와 보은의 동물로 묘사한 것이다. 문학에서, 박지원의 《호질()》, 유몽인의 《호정문()》, 이광정의 《호예()》에는 호랑이가 인간사회를 질타, 풍자하는 심판자로 등장한다.
범이라고도 하며, 학명은 Panthera tigris altaica(TEMMINCK)이다. 호랑이는 서울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며, 그 밖의 여러 설화를 비롯하여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역()』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하는 인방()도 만주와 우리나라를 지목하는 동북방인 것을 보면 우리 민족과 호랑이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형태 및 생태

등쪽의 색은 암적황색이고, 사지에 이르러 약간 담색이 된다. 등쪽에는 불규칙한 검은 무늬가 많이 있으나 앞다리와 앞면에는 적다. 주둥이 끝은 암연피색()이고, 눈과 뺨 밑은 흰색이며 검은 점이 있다. 머리 위와 등의 뒷부분, 복부, 뒷다리에는 뚜렷한 갈색 반점이 있다.
꼬리의 기부()는 등쪽과 같은 색이며, 끝과 뒷면은 대회백색() 또는 연피색()으로 8~9개의 둥근 검은 무늬가 있는데 꼬리 끝 가까이에 있는 2개는 더욱 뚜렷하게 검은 편이다. 귀 뒤는 광택이 있는 흑색이고, 귀 끝 가까이에는 흰 점이 있다. 겨울털은 여름털에 비하여 담색이고 길며, 수염은 백색이다. 몸길이는 180㎝, 꼬리길이는 87㎝에 달한다.
고양이속의 여러 가지 성질과 습관을 지니고 있으며, 동작이 매우 빠르고 매사에 조심성 있게 행동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먹이가 되는 다른 야생동물에 접근하며, 자기 몸이 보이지 않게 걸어가는 동작과 모양은 마치 뱀이 땅 위를 기어가는 동작과 비슷하다. 먹이를 찾아서 하루 동안 보통 80∼100㎞를 달린다. 보폭은 80㎝에 달하며, 항상 뒷발이 앞발자국을 되밟는 습성이 있다.
뛰는 것이 매우 빨라서 한번의 도약이 4m에 달하며, 다른 야생동물을 쫓아갈 때에는 7∼8m의 먼 거리를 무난히 뛰며, 큰 바위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도약할 때에는 10m까지도 뛰어내린다. 헤엄을 잘 치며 무더운 여름에는 냇가로 내려가서 산간 계류의 선선한 곳에서 쉬고, 낮에는 모기와 등에를 피하여 폭포수가 떨어지는 물안개가 낀 물가의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잔다.
산의 급한 경사지나 바위 위를 잘 오르내리며 개에게 추격을 당하게 되면 나무의 경사가 45° 정도만 되면 나무 위를 자유롭게 기어 올라간다. 나무 위에서 내려올 때에는 회전하여 머리를 밑으로 향하여 내려온다. 여름철의 무더위를 제일 견디기 어려워한다. 따라서, 6∼7월에는 1,500m 이상 되는 심산유곡에서 살고, 8월이 되면 다소 밑으로 내려와서 산다.
겨울에는 ―30℃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년 중 이 시기에는 특히 피하지방조직의 발달이 잘 되어 배와 겨드랑이 밑의 지방층은 5㎝ 두께로 두꺼워진다. 또, 달 밝은 밤에 눈 위에서 뒹구는 모양은 마치 개가 눈이 오면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과 흡사하다.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한겨울 동안 눈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배 밑과 발에 있는 털이 다 빠지게 되며, 따라서 오래된 발자국을 밟으려고 힘쓴다.
해가 진 뒤와 해가 돋기 직전을 제일 좋아하지만 낮에도 수시로 먹이가 되는 야생동물을 찾아다닌다. 배가 부르면 하루 종일 드러누워 낮잠을 자다가 해가 지자마자 활기를 띠고 약탈적 행동을 시작한다. 배가 고픈 호랑이는 밀림의 넓은 지역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지대를 선택하려고 힘쓰고, 배가 부른 호랑이는 특히 추울 때에는 나무가 무성한 장소를 선택하며, 그때 그때마다 항상 장소를 바꾸는 성질이 있다.
만약, 먹이가 되는 동물을 잡기 위하여 밤에 활동하는 것이 불편할 때에는 낮에 대기한다. 또 먹이가 되는 동물을 잡기 위하여 이동할 때에는 좌우 양사면()이 잘 보이는 산마루를 좋아하며 때때로 계곡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뾰족한 바위 위에서 엽장()을 내려다보며, 먹이가 되는 야생동물을 확인하게 되면 뱀과 같이 미끄러져 내려가서 등 뒤에서 덮친다.
교미()시기와 교접()은 12∼1월 초순경에 시작되며, 젊은 호랑이는 2주일간 늦어진다. 이 시기에 수컷은 이산 저산 숲이란 숲은 모조리 뒤져서 암컷을 찾아 헤맨다. 수컷 여러 마리는 암컷 한 마리를 두고 큰 투쟁을 벌인다. 제일 힘이 센 호랑이는 특권을 가지고 욕정()을 충족시킬 때까지는 다른 수컷이 암컷 있는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
수컷의 투쟁은 맹렬하며 투쟁장소는 항상 피투성이가 되는데, 발톱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투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일은 없으며, 약자는 패배당하면 그 투쟁하던 장소를 강자에게 양보하고 새로운 행운을 찾아서 물러서게 된다. 임신기간은 98∼110일이며 1회의 새끼 수는 3마리이다.
암컷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로 된 동굴이나, 바위와 바위 사이에 움푹 팬 곳, 절벽의 동굴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보금자리는 먹이를 찾는 데에서 너무 멀지 않은, 즉 멧돼지와 여러 가지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을 선택한다. 또, 일반적으로 보금자리는 바위 위의 자연히 움푹 팬 곳에 만들며, 나무의 마른잎, 마른풀을 보금자리 밑에 깐다.
암컷은 항상 경계하기 위하여 결코 일직선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바위를 밟고 다녀서 자신의 발자국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서는 맹목적으로 용감하여져서 모성애를 발휘하며 미친 듯이 엽사()에게 덤벼드는 성질이 있다.
갓난 새끼는 어린 고양이 크기이지만 성장속도는 매우 빠르다. 2개월이 경과되면 어미는 새끼들을 보금자리에서 나오게 한 뒤에 새끼들에게 반쯤 죽은 야생동물을 운반하여다가 육식동물로서의 기술을 습득시키기 위하여 훈련을 시작한다. 6개월간 젖을 먹이며, 매일의 일과로서 짐승을 잡는 기술을 연마, 습득하게 하여, 9개월째부터는 어미호랑이와 동반하여 수렵을 하기 시작한다.
새끼들은 1, 2년간 어미 곁에 머무른 뒤 서서히 독립생활에 들어가지만, 어미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는 않는다. 3년 뒤에야 좋은 서식장소를 찾기 위하여 방랑하기 시작한다. 호랑이는 생후 5년이 되어야 비로소 성숙하며, 수명은 15∼20년이다.
1년에 두 번 털갈이를 하는데 그 시기는 9월과 3월이다. 검은 줄무늬와 코와 발의 털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빨리 털갈이를 하며 털갈이 기간은 약 2주간이다. 또, 길고 날카로운 발톱도 매년 바뀌며, 바뀌는 시기는 12월경이다.
호랑이의 식성은 자기 자신이 잡은 신선한 야생동물의 고기만 먹는데, 시장기가 날 때에는 죽은 고기, 오래된 고기도 먹는다. 주식물()은 멧돼지이며 노루·산양·곰·사슴들이 살고 있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덤벼들어 잡아먹는다. 호랑이는 도망가는 야생동물을 쫓아가서 잡는 일은 거의 없다.
야생동물을 잡기 위하여 동물에게 소리 없이 접근하여 도약하면서 넘어뜨린 뒤에 목덜미를 물어뜯는데, 멧돼지는 목덜미가 굵어서 그 앞목을 물어뜯어 죽인다. 호랑이의 호화찬란한 생김새, 번개같이 빛나는 눈, 짐승들이 싫어하는 독특한 냄새로써 다른 야생동물에게 마비와 공포를 주게 되어 다른 동물들은 마치 최면술에 걸려든 것 같이 되어 도망하지 못하게 된다.
큰 멧돼지를 물어뜯어 죽인 뒤에는 조용한 개울 근처로 끌고 가서 넓적다리와 복부()의 연한 부분부터 먹기 시작하여 배가 부르면, 물을 많이 마시고 그 옆에서 쉬면서 서서히 여러 번 물을 마시고 또 계속하여 잠을 자는데 하루 이상 푹 쉰다. 멧돼지 다음으로 좋아하는 동물은 개·말·소·염소 같은 것인데 큰 짐승들의 뼈가 많이 붙어 있는 곳과 내장은 결코 먹지 않으나 노루·멧돼지의 새끼, 개와 같이 작은 동물은 전부 다 먹는다.
소화작용을 돕기 위하여 여름부터 가을에는 여러 가지 잡초를 먹는 외에 도토리, 산림 속의 여러 가지 과실, 즙액()이 많은 머루·다래 같은 것도 잘 먹는다. 때로는 물가에 내려가서 물고기도 잘 잡아먹는다. 음식을 충분히 먹은 뒤에는 산골 냇가로 내려가서 코와 입을 물 속에 담그고 입 속에 남은 고기 부스러기와 피를 깨끗이 씻는 습성이 있다. 겨울에는 물을 얻기가 어려우므로 물 대신 눈으로 목마름을 면한다.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장백산 일대, 중국 동북지방의 소흥안령 일대와 소련의 극동지방, 연해주의 흑룡강 계곡 등에 극히 일부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전에는 백두산 고준지대() 원시산림과 바위동굴에서 볼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의 연해주 일대의 원시산림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극동지역의 분포권 내에서는 약 200마리가 생존하리라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방에 60∼70마리, 북한에 40∼50마리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나 근거는 희박하다. 현재 동물원에서 기르고 있는 개체는 약 150마리로 집계되었는데, 이 가운데 수컷이 약 70마리, 암컷이 약 80마리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수컷 39마리와 암컷 46마리 및 어린 새끼 등 87마리는 야생이 아닌 동물원에서 출생한 것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경동물원에서는 소흥안령과 장백산에서 포획하여 다른 동물원에 분양을 해주었다. 또한, 러시아(당시 소련)도 1963∼1964년 사이에 약 15마리를 생포하여 다른 동물원에 수출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까지 모두 25마리가 포획되었다.
1918년 강원도 춘성군 가리산에서 수컷 1마리, 1922년 경상북도 경주시 대덕산에서 수컷 1마리, 1946년 평안북도 초산에서 1마리를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멸종되고 말았다. 국제자연보존연맹의 적색자료목록에 제108호로 수록된 국제보호동물이다.

민간신앙에서의 호랑이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으로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호랑이가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매우 심하여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환난을 일컬어 ‘호환’이라고까지 칭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885년(헌강왕 11) 2월에 호랑이가 궁궐 마당으로까지 뛰어들어 왔다고 하였으니, 호랑이의 피해가 나라 전체에 걸쳐 매우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산중 혹은 인근 마을에서 마주치는 맹수 중 가장 두려워한 존재가 바로 호랑이였다.
호랑이를 야성의 맹수로 인식하는 것은 단군신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곰과 호랑이는 모두 인간으로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결국 호랑이는 그 야성을 순화시키지 못하고 동굴 속에서 뛰쳐나와 맹수로 머무르고 만다. 이렇게 인간에게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본능은 급기야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되어 살아 있는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고 제사까지 지내는 풍속이 오랜 옛날부터 행하여졌다.
『후한서()』 동이전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가 있어 서로 간섭할 수 없다.……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풍속은 원시부족국가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호랑이를 산군()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에서 도당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호랑이숭배사상은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즉, 산을 숭배하는 사상은 산속에 사는 숭배의 대상인 호랑이와 연계되어 산신이 호랑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호랑이를 별칭하여 산군·산군자()·산령()·산신령()·산중영웅()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이 엿보이고 있다. 오늘날에도 심마니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깍듯이 대접하고 있다.
그러나 산신을 모셔놓는 산신당에는 호랑이가 산신의 사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호랑이 자체가 산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산신도에 묘사되고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기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고 있다. 호랑이의 자세도 공격적이거나 서 있기보다는 산신의 옆 또는 앞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도에서의 호랑이 의미를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의 군자 호랑이는 엎드려 있어도 모든 헤아림이 그 속에 있다”라는 말에서와 같이,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의 신지()를 받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어떻게 관장할 것인가를 헤아리고 있는 사려 깊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소곳이 엎드려 길게 다물고 있는 입 양쪽으로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인 토치()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호랑이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는 꼬리는 소나무 사이로 길게 뻗어 구름 속까지 닿게 하며 화면 전체에서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눈은 왕방울만하게 그려 전체적으로 아래로 내려뜨린 모습이며, 파란색 금박으로 눈동자를 박아 어둠 속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호랑이의 모습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서의 분위기와 함께 친근한 시골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나타냄으로써 확실하게 선과 정의의 편에 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베리아호랑이.
현존하는 호랑이 개체 중 가장 큰 체구를 지닌다. 다른 호랑이들에 비해 콧등이 다소 넓고 낮다. 입 주변과 후두부, 목 윗부분으로는 긴 털이 자라난다. 겨울털은 여름털에 비해 다소 두껍고 길고 부드러우며 녹이 슨 듯한 어두운색을 띤다. 겨울털의 경우, 등쪽은 4~5cm, 목 윗 부분은 7~11cm, 가슴, 배쪽은 6~10.5cm 길이이다. 여름에는 해발 1,200m, 겨울에는 더 낮은 고도의 지역에서 생활한다. 성성숙시기는 수컷 4~5년, 암컷 3~4년이다.
학명Panthera tigris altaica
생물학적 분류 : 동물계(Animalia)
 : 척삭동물문(Chordata)
 : 포유강(Mammalia)
 : 식육목(Carnivora)
 : 고양잇과(Felidae)
 : 표범속(Panthera)
크기2.4~3.3m
무게100~360kg
수명26년
식성육식성(멧돼지, 붉은사슴, 와피티사슴, 스라소니, 담비, 산토끼, 곰)
활동시간
서식지늪이나 개울 근처에 위치한 저지대의 숲, 다 자란 갈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호수 부근, 저지대의 산, 특히 강을 끼고 있는 계곡 부근, 소나무나 오크나무가 무성한 지역
분포정보
분포지 : 시베리아의 남동쪽, 만주 지역

고양잇과 동물의 발톱은 그 끝부분이 뾰족하게 구부러져 있다. 발톱은 다리 아랫부분과 힘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으나 근육이 긴장하면 발가락이 펴지는 동시에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첫 번째 작은 어금니는 없거나, 발생초기에 없어졌거나 위축되었다. 첫 번째 작은 어금니가 없는 만큼 송곳니 주위 간격이 상대적으로 넓어져서 사냥시 먹이의 목덜미 깊숙한 곳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사냥시에는 목덜미의 측면을 물어서 경추 쪽에 상처를 입힌다. 망막이 잘 발달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생활이 자유롭다. 동공은 평소에는 둥근모양이지만 빛조절로 인해 줄어들면 삵이나 와일드캣같은 소형의 고양잇과 동물같은 경우 길쭉한 타원형으로 줄어들지만, 호랑이 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경우 작은 원형을 띤다. 1월 하순과 2월에 짝짓기가 집중되지만 연중 가능하다. 다양한 동물과 하루 평균 9kg의 먹이를 필요로 한다.
한배에 최대 6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새끼를 낳고 기를 때는 동굴과 같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이용한다. 암컷의 경우, 무리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늦고 독립 후에도 무리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 위급한 상황에서는 무리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수컷의 경우, 독립 시기가 이를 뿐만 아니라 그 행동반경이 넓어서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잦다.

일반적으로 단독생활을 하지만 번식기 전후로는 암수가 함께 다닌다.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마리로 구성된 무리생활을 하는 개체도 존재한다.
3~7일 주기로 사냥을 나간다. 한번 사냥에 나갔을 때 많은 양을 먹어치우고 다음 사냥 때까지 버틴다.

풍수에서의 호랑이
호랑이는 일찍이 풍수설에서도 중요시되어 왔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우주를 진호()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을 방위신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 4신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풍수지리에서는 좌청룡·우백호·전주작·후현무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다. 즉, 좌청룡·우백호가 서로 어울려 여러 겹으로 주변을 감싸는 것을 최고의 명당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무덤을 쓸 때에는 좌청룡·우백호를 보아 자리를 정하고 무덤을 보호하는 능호석()에는 12지신의 하나로 호랑이상을 새겼으며, 무덤 앞의 석물에도 호랑이상을 조각하였다.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서의 4신은 풍수에서뿐 아니라 부대의 깃발과 포진에도 응용되었다. 12지신은 땅을 지키는 12신장으로 열두 방위에 맞추어서,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를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이 12지신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신으로서 그 성격이 변모해 갔다.
우리 설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첫번째는 고려의 태조 왕건()과 관련된 설화에서와 같이 신령하고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물로서 표현되는 경우이다. 왕건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폭우를 피하여 동굴 속에서 친구들과 머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입구에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으려 하였다.
친구들과 의논하여 웃옷을 던진 뒤 두 개의 물어올리는 옷의 주인이 희생을 당하기로 하였는데, 두 개의 왕건의 옷을 물어올려서 약속대로 굴 밖으로 나가니, 그 순간 굴이 무너져 간발의 차이로 살아나게 되었으며,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김현의 설화에서와 같이 두 개의 자유자재로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과 교유한다는 내용이다.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던 김현은 한 소녀를 만났는데 이 소녀는 두 개의 변신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소녀를 따라 호랑이굴로 들어가게 되어 소녀의 형제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된 것을 소녀의 기지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형제호랑이의 살생에 대한 천벌이 멀지 않음을 감지한 소녀가 김현의 손에 죽음을 당하여 형제를 살리고 김현에게 공을 돌렸다는 내용이다.
세번째는 인간의 행위에 감동된 두 개의 인간을 도와주는 경우, 또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고 그 은혜를 갚는 경우이다. 이상의 유형이 호랑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라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랑이와 토끼의 설화는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유형에 속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꾀 많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되었다. 토끼는 꾀를 내어 먹을 것이 많은 곳을 가르쳐 줄 테니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호랑이는 토끼를 따라 강변에 가서 꼬리를 물에 담그고 많은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린다. 점점 물이 얼기 시작하여 꼬리가 무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더 많은 물고기가 달리기를 기다리다 결국 물이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상의 설화에 나오는 호랑이상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섭고 두려운 맹수이지만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물로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어리석고 의뭉스러울지라도 결코 간교하지 않은, 오히려 우직함이 돋보이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 민화에서 호랑이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호랑이에게 삿[]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하여 일반 민가에서도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여 삿된 것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벽사의 염원은 호랑이삼재부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삼재는 풍()·수()·화()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정초의 세화()나 부적에 호랑이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호랑이의 용맹성을 바탕으로 벽사행위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추측된다. 또,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의 그림도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관의 표시로 관복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호랑이그림을 걸어두면 관직이 높은 귀한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길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까치·호랑이의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대나무숲에 있는 호랑이그림도 벽사적 의미가 담긴 민화이다.
『담문록()』에 의하면 서방 산중에 인간에게 병을 주는 키가 큰 산귀가 살았는데, 대나무를 잘라 불 속에 던져 큰 소리로 그 귀신을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소리로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과 대나무숲을 그린 그림으로 병귀를 쫓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삿된 존재를 멀리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벽사적·길상적 의미가 강하였다.
호랑이는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기도 하였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호랑이의 각 부위가 약재로 이용되고 있다. 즉, 뼈는 사악한 기운과 병독의 발작 등을 멈추게 하여 풍병의 치료제로 쓰이고,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 쓰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광을 발하는 호랑이의 눈에는 사귀()도 놀라 달아나게 되어 마음을 진정시키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호랑이의 코는 미친병의 치료와 어린이 경풍에, 이빨은 매독이나 종기의 부스럼에, 발톱은 어린이의 팔뚝에 붙은 병도깨비를 물리치는 데, 털가죽은 사악한 귀신을 놀라게 하여 학질을 떼는 데, 수염은 치통에, 오줌은 쇠붙이를 삼켰을 때 사용되었다.
호랑이의 털가죽을 신행 때 신부의 가마 위에 덮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랑이가 지닌 벽사적 의미에서 실시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혹시 인간의 즐거움을 시기한 잡귀가 새색시를 넘보기라도 할까 미리 잡귀의 범접을 막고자 한 의도이다. 이것은 호랑이의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부녀자들이 패용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단옷날에는 궁중에서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신하에게 하사하는 풍속도 있었다.

백호, 虎.
흰털을 가진 호랑이로 한국과 중국 등지의 민화()에서는 영험한 상상의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백호는 실제 흰털을 가진 호랑이를 가리키는데 동양권에서는 신화나 민화에 등장하여 신비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실존하는 백호는 벵골호랑이 또는 시베리아호랑이의 일종이며, 유전형질이 헤테로일 때 나타난다. 보통 호랑이의 모피는 황갈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로 이루어져 있는데, 털 색깔을 흰색으로 발현시키는 열성 유전자에 의하여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의 백호가 태어난다고 한다. 야생에서 열성 인자를 지닌 암컷 호랑이와 수컷 호랑이가 교접하여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벵골호랑이의 경우 1만 분의 1, 시베리아호랑이의 경우 10만 분의 1이라고 한다. 야생의 백호는 흰털이 위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냥에 불리하게 작용하며, 유전병으로 사망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는 백호를 상서로운 영물()로 여겨왔다. 중국 설화 등에서는 청룡(주작(현무() 등과 함께 하늘의 사신()을 이룬다. 이들 4신은 하늘의 사방()을 지키는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호는 서쪽의 수호신이다. 서쪽에는 28수(宿) 중 규()·누()·위()·묘()·필()·자()·삼()의 7개 성좌()가 있는데, 백호는 '묘' 성좌를 다스린다고 하며, 일설에는 '삼' 성좌가 백호였다고도 한다. 《시경()》은 백호를 의로운 짐승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인원비광경()》처럼 흉신()으로 기록한 것도 있다. 백호를 그린 백호기는 천자()가 거둥할 때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풍수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주산()에서 오른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백호라 하고, 그 안쪽에 있는 것을 내백호(), 밖에 있는 것을 외백호()라고 한다. 백호는 청룡과 대칭되는 것이라 여겨 좌청룡·우백호로 일컬어지는데, 청은 동쪽, 백은 서쪽을 가리킨다. 여기서 용호()는 혈()의 호위()로 생각되었으며, 용호가 서로 어울려 주변을 여러 겹으로 감쌈으로써 명당지()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하늘을 별자리에 따라 구분한 동서남북의 4관() 또는 4궁() 중 서관에 속하는 규()·누()·위()·묘()·필()·자()·삼()을 다스리는 신으로 청룡()·주작()·현무()와 더불어 4신()으로 불린다.
서쪽 방위의 금() 기운을 맡는 태백신()을 상징한다. 『사기()』 천관서()에는 “서궁은 함지(西)”라고 되어 있는데, 함지는 필()자리에 들어 있는 별의 이름이다(오늘날의 명칭은 마부자리의 20로오를 포함하는 3개 별이다.).
『사기』의 주석서()인 『색은()』에서는 “서궁은 백제, 그 정은 백호(西)”라 설명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함지가 속한 서궁은 백색()으로 나타내었고 백호로 상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한 때의 서적인 『회남자()』의 천문훈()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오므로 그 이후부터 백호가 서궁을 대표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풍수지리설에서는 서쪽의 산이나 기운을 뜻한다.
마을과 택지 및 묘지의 위치를 정할 때 높은 산을 주산으로 보면, 주산을 후편에 두었을 때 주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서 뻗어나가는 산을 일컫는다.
백호는 실제로 털이 흰 호랑이를 뜻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 동양권에서는 신화나 설화에 나오는 영험한 상상의 동물을 의미한다. 민속 신앙에서는 호랑이에 바탕을 둔 상상의 동물로 청룡(), 주작(), 현무()와 함께 사신을 이루어 신격화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 백호는 긴 뱀의 형상으로 하늘을 나는 용처럼 그렸다. 백호를 용처럼 생각한 상상력은 용이 하늘과 바다를 거침없이 다니고, 비나 구름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백호를 용처럼 그린 현상은 고려시대에까지 이어진다.
민속 신앙 속 백호
영수화 중 백호도, 가회민화박물관소장
백호가 등장하는 산신도, 가회민화박물관소장
백호는 서쪽 방위를 맡은 신으로, 금()의 기운을 담당하는 태백신()을 상징한다. 서쪽 하늘의 28수 가운데 규(), 루(), 위(), 묘(), 필(), 자(), 삼() 7개의 성좌()를 지키고,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서쪽의 산이나 기운을 뜻한다. 지금은 화장하는 풍습이 많아졌으나 전통적으로 묘를 쓸 때에 풍수설에 의해 좌청룡() 우백호()를 기본축으로 하여 명당을 가리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출입문이나 벽장문, 중문 위에는 삼재소멸() 호랑이 부적을 붙이고, 대문에는 용과 호랑이 그림이나 글씨를 붙여 복을 빌고 액을 막고자 했다. 이와 같이 호, 특히 백호는 사악한 것으로부터 지켜주는 벽사의 기능을 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고대 무덤인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에 등장하는 백호의 형상을 보면 용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으나 머리에 뿔이 없고, 몸에 비늘 대신 호랑이 무늬가 묘사된다. 대체로 질주하는 듯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며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존재로 그려졌다. 이러한 벽사의 기능과 함께 백호의 영험함과 신성함은 용과 함께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요인이 되었다. 인도에서는 사자, 동남아 지역에서는 뱀, 중국에서는 기린이나 해태 등이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그 지역 자연환경이나 문화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동물들을 신격화한 결과이다. 특히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더 적극적으로 동물들을 끌어들여 수호의 의미를 부여했고, 그 지역 고유의 토착신앙 요소를 흡수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백호에 불법 수호 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백호는 조선시대 제작된 사찰 벽화나 불교의 교리를 그려낸 불화나 불단 조각에도 등장한다.
산신도에 나타나는 호랑이 중에는 백호로 표현하여 신성함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산신은 우리 민속 신앙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인간을 보살펴주는 신이다. 제석이 천신()이라면 산신은 지신()의 역할로 무속의 무교가 산신교라 할 만큼 확고하게 숭상되고 있다. 산신당에서 모시는 산신도를 살펴보면 주로 산을 배경으로 소나무가 있으며, 노인 또는 승려의 모습을 한 산신이 호랑이와 함께 나온다. 호랑이는 산신령의 사자(使) 또는 산신, 산군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민속 신앙에서 등장하는 백호는 현실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를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져 민화나 상여장식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 예술로 발전한다. 저승사자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저승사자는 대체로 도포를 입고 갓을 썼으며 호랑이를 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백호가 등장하는 것은 더 빠른 존재임을 암사한다고 하겠다.
문헌에 나오는 백호의 모습을 살펴보자. 예부터 우리문화 속에서는 백호()를 비롯하여 백우(), 백치(), 백작()처럼 하얀 것의 출현을 상서로운 현상으로 여겼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시기의 기록에 보면 중국에서 백호를 잡은 일을 아뢰는 기록이 나오는데, 신령스러운 동물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지(李至)가 말하길 “주왕(周王)이 사냥하다가 신기한 짐승과 아울러 그 새끼를 사로잡았습니다. 백호(白虎)의 검은 무늬였는데, 쇠사슬로 묶어 철롱(鐵籠)에 넣어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황제가 교외(郊外)까지 마중하였는데, 백관이 이를 보고 신령스러운 상상의 동물이라 하여 진하(進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짐승은 날고기를 먹었습니다.”
세종편에는 경상도 도절제사 최숙손이 흰 까치, 즉 백작()을 올렸으며 임금께 하례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밖에 세조편에도 백작을 명에 바치며 백작을 ‘빛나는 상서’, ‘기이한 상서’라 표현하고 태평한 세상에 나타남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백호, 백작처럼 일종의 돌연변이들은 실제로 드물게 존재했으며, 그 희귀함을 신령스럽고 길상의 징조로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백호는 예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서 함께 해왔다. 고구려 고분벽화 가운데 우현리() 중묘() 현실 서벽에 그려진 백호는 용과 닮은 모습이 흥미롭다. 영물로 신비롭게 그려내 사후 세계를 수호하는 상상 속 동물이라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김유신묘 십이지신상 가운데 백호는 아니지만 호랑이신상이 문관복식을 하고 검을 든 형태의 인간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황복사지나 흥덕왕릉 출토품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나타난다.
석관에 조각된 백호, 고려시대, 국립민속박물관소장
석관에 표현된 백호, 고려시대, 경기도박물관소장
부산 범어사 대웅전 백호도
고려시대의 경우 도참사상이 발전하고 분묘가 변화함에 따라 화장하여 부장품과 함께 석관에 넣어 묻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석관()의 외부에는 사신도를 조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사후 세계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의 전통은 이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원주 동화리 벽화묘는 41세에 사망한 노회신()의 묘로 15세기 중반 조성되었다. 석실 안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 사신도와 성좌도도 그렸다.
백호의 모습은 민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까치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의 친숙한 도상은 조선시대 후기~말기에 꾸준히 그려졌는데, 백호 그림 역시 당시의 호랑이 그림과 유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특히 민화 속 까치호랑이 그림은 연초에 ‘세화’라 하여 길흉화복을 다스리고 벽사의 기능을 지녀 대중화되었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백호를 보자.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남양주 봉선사 산신각 등에는 백호를 그렸는데, 신비로운 분위기로 표현하여 영험한 기운을 가진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 백호는 신령한 동물 가운데 하나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고, 민간의 회화 속에서는 산신령의 사자로 그려졌다.
또 다른 상상의 동물인 비호() 역시 호랑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호같이 빠르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듯이 빠르게 달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림 속에서는 실제로 날개가 달린 호랑이로 표현되었다. 사찰 벽화 중에 날개가 달린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백호는 자연 환경이나 생활 속에서 무서운 존재였지만,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오히려 벽사의 개념으로 재구성된 우리 문화의 수호신이다.

참고문헌
『수교집록(受敎輯錄)』
『용재총화(慵齋叢話)』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한국의 호랑이』(국립민속박물관, 1988)
『한호의 미술』(조자용, 삼화출판사, 1974)
『한국동식물도감 7 동물편』(원병휘, 문교부, 1967)
호랑이 [tige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호랑이 [tiger, 虎狼─] (두산백과)
호랑이 [Tiger] (서울동물원 동물정보.)
백호 [白虎] (두산백과)
백호 [白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백호 - 상상 속 동물 (유물 속 동물 상징, 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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